더욱 의미가 있는 건, 유용한 종자들이 원산지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것이야말로 인류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거대한 축복이었다는 사실이다. 가령 안데스에서 생산되는 퀴닌은 채취자들이 안데스의 기나피나무를 빠짐없이 찾아낸다 해도 전 세계 수요에 턱없이 못미쳤다. 마크햄의 산업스파이 질이 무수히 많은 아프리카인과 아시아인의 목숨을 때이른 죽음으로부터 구해냈다. 감자가 유럽에 전파되고 고구마가 중국에 전래된 건 사회적·환경적으로 일부 부작용을낳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수백 수천만의 유럽인과 중국인을 기근으로부터 구해냈다. 종자 이동으로 인한 가늠할 수 없는 축복은, 그로인한 가늠할 수 없는 피해보다 언제나 우세하다. 비록 자유무역 신봉자들이 주장하는 것보다는 이득이 적다고 할지라도. "심지어 국경을넘는 씨앗 전파는 비록 추악한 자본주의의 영리 목적이거나 제국주의 침략의 일환일지라도 인류 전체 삶을 확장하고 향상시키는 선봉장이 되어왔다." (p.470)
하지만 문제는 언젠가 터진다. 그렇게 콜럼버스적 대전환의 사이클이 완성될 것이다. 한때 그곳에 주었던 선물을 앗아가면서, 나무들은 빠르게 죽어나가리라. 그 전염병은 우주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넓은 면적을 뒤덮을지 모른다. 불로 지진 듯한 검은 점이 중국 땅 끝지점에서 인도네시아 땅 끝까지 산재할 때, 그때 비로소 전 세계가이 병과 싸우기 위해 합동 대응팀을 꾸리고, 대응책을 모색하게 되리라. 더불어 그 일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플랜테이션 업자들은 우리가 호모제노센 세상, 아시아와 아메리카가 점점 더 똑같아지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불현듯 자각할 것이다. (p.490)
탄 문화를 자랑스러워했다. 이런 점에서 아마도 둘째가라면 서러울거리에서 드잡이를 하고,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고, 군대와는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던 그들. 느슨하게 구획된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그리고 아메리카 출신 인종들로 이뤄진 멕시코시티의 군중은, 이 도시를 지구상 최초의 명실상부한 메트로 시티로 만들었다. 바로 호모사피엔스의 호모제노센, 콜럼버스적 대전환의 인간판 작품 말이다. 이곳은 아프리카인과 인디언들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가운데, 동양과 서양이 뒤섞인 장소였다. 이 도시의 거주자들은 뒤범벅이 된인종 정체성을 다소 부끄러워했지만, 자신들이 창조한 코스모폴리탄 문화를 자랑스러워했다. (p.574)
유럽 선박들이 아프리카 해안에 출몰하기 시작했을 무렵인 대서양노예무역 초반기, 아프리카와 유럽 간 뚜렷한 차이점은 경제라기보다 문화였다. 유럽은 노동력을 사고파는 경제 시스템이었다. 노동력자체가 거래 대상이었다. 그 단적인 예가 계약이민하인제도이다. 반면 아프리카에서는 땅에 사는 사람들의 노동력을 통제하는 것이야말로 그 땅을 효과적으로 소유하는 수단이었다. 최종 목적지에 이르는길은 서로 달랐지만, 둘 다 땅과 노동력의 결합을 통한 결실로 이윤을 추구했다는 점에서는 똑같았다. 경제학적 측면으로 볼 때, 유럽인과 아프리카인은 생산요소 하나씩을 소유한 셈이었다. 유럽인은 ‘땅‘이었던 반면, 아프리카인은 ‘노동력이었다는 점이 달랐을 뿐이다. 두시스템 모두 노동력을 투입해 생산된 전체 혹은 일부를 소유할 권리가 소유자에게 주어졌다. 하지만 여기엔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했다. 노동력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끌어가는 게 가능한 반면, 땅은그렇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노동력은 운반이 가능하다. 이 점이 훗날 노예무역의 핵심요소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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