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하루치의 낙담
박선영 지음 / 반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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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잘 살고 싶어서 비관한다. 기대가 크니까 낙담하고, 환상을 품으니까 환멸에 시달린다. 낙담한다는 것은 생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다.

_ 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중 - P278

우리는 모두 한물간다. 1년 가까이 진행했던 인터뷰를 통해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모두 몰락하는 존재들이라는 것. 너무 높은 곳까지 올라간 사람들이나 낙폭이 큰 거지, 우리 같은 사람들의 소소한 성공에 몰락이라니 가당치 않다고 손사래를 칠 수도 있다. 어렵게 마련한 아파트 한 채 잘 쥐고 있고 싶고, 아이들은 어지간한 대학을 나와 그래도 좀 번듯한 직장에 들어갔으면 좋겠고, 하는 일이 잘되거나 재테크에 성공해서 집을 한 채 더 가지면 노후가 안정적일 것 같아 이리저리 좀 궁리해보는 것뿐이다. 이런 걸 욕심이라고 하면 좀 억울하다, 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_ 추락하는 모든 것은 날개가 있다 중 - P282

역사가 작고 평범한 한 인간을 자기 서사의 주인공으로 간택할 때, 거기엔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거대한 사명을 그 작은 인간이 벅차게 받아안는 어떤 숭고의 순간이 있다. 처음에는 그저 피곤했을 뿐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내가 해내는 수밖에 없겠구나. 울고 싶은 마음으로 일어서 가슴을 쫙 펴고 두 팔 벌려 달려나가는 순간. 그 슬픈 점화의 순간이 매번 그렇게 나를 뒤흔든다.

_ 지긋지긋한 것은 힘이 세다 중 - P311

언어에서 열에너지는 궁극의 힘이 아니다. 언어의 힘은 위치에너지에서 나온다. 저것을 움직이게 할수 있는가. 움직이라고 하는 말에는 힘이 없다. 힘은 움직이고 있을 때 비로소 생겨난다.

_ 지긋지긋한 것은 힘이 세다 중 - P314

이른 새벽 가족 모두가 잠든 시간. 홀로 고요히 목욕을한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 데도 가지 않지만, 꼼꼼히 오래 씻는다. 자기 존엄의 의식으로서의 목욕. 형용 못 할 참혹의 와중에도 인간의 존엄을 위해 씻기를 멈추지 않았던 한 아름답고 강인한 인간을 경의와 찬탄 속에 기리며, 경건한 마음으로 그의 단호한 말들을 떠올린다. 어떤 삶의 역경 속에서도 목욕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하사관 슈타인라우프를 언제까지고 기억한다.

_ 목욕하는 인간 중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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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하루치의 낙담
박선영 지음 / 반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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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돕기 위해서는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주어야 한다. 그 젊은이가 원한 것은 숙식과 호의였지, 숙식과 적의가 아니었다. 눈칫밥 잔뜩 줘놓고 은인 대접을 바라며 배은망덕을 운운한다. 이소라는 언제나 옳다. 추억은 다르게 적히는 것이다.

_ 타임의 불행에 대한 예의 중 - P217

원칙을 고수하지 않고, 원칙에 대해서는 그다지 생각하지 않으며, 깽판치는 주인의 폭력으로부터 다만 안전거리를 확보한 채 분노를 삭이는 것. 그러다 기회가 되면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 그게 우리의 기저욕망인 건 아닐까.

_ 웃을 일이 아니다 중 - P248

인간에 대한 염오, 세계를 향한 권태, 관계에 대한 냉소. 이런 것들과 맞닥뜨릴 때면, 지금 이곳이 아니라면 행복은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낙관 속으로 도피했다. 이것은강력한 이데올로기였다. 내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했던 건 언제나 적요와 침묵. 시끄럽고 소란스런 여기만 아니라면, 여기가 아니기만 하다면.

_ 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중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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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하루치의 낙담
박선영 지음 / 반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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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양지를 좇는다. 그것은 본능일 것이다. 그러나 음지의 슬픔에도 마음이 붙들리는 것이 인간이라고 나는 믿는다.

_ 타인의 불행에 대한 예의 중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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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 미술 전문기자의 유럽 미술관 그랜드투어
김슬기 지음 / 마음산책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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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은 렘브란트의 <야경>이다. 왜일까. 서양미술사에서 처음으로 전통적인 대규모 초상화에 서사적 가치를 부여한 혁신적인 그림이기 때문이다. 스페인에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 있다면 네덜란드에는 <야경>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_ 암스테르담 국맂 미술관 중 - P346

한 시간 넘게 줄을 서서 입장하고 숙제를 하듯 관람해야 하는다른 나라의 초대형 미술관과 달리, 내셔널 갤러리는 무료 입장으로 개방된 미술관임에도 오히려 여유 있는 감상이 가능한 경우가많았다. 한가한 시간대에 쾌적한 관람을 즐길 수 있는 방들이 곳곳에 있어서다. 심지어 런던에서 1년을 살게 되면서 사시사철 마음대로 갈 수 있었다. 겨울에는 추위를 피하러 들렀고 여름에는햇살을 피하러 들렀다. 지나가다 그림 한 점이 궁금해 잠시 들를때도 있었다. - P387

"위대한 화가란, 삶의 어느 순간, 즉 단어와 사물이 낡아서 투명성외에는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을 때, 텅 빈 빛, 꺼진 불꽃의 둥지, 색이 없는 작은 벽에 도달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늘 생각해왔다." - P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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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하루치의 낙담
박선영 지음 / 반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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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자에게는 못날 자유가 없었다. 유능하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다. 이 거친 장시간 노동을 자녀 양육과 병행해 수십 년간 이어나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언니들이 버텨준 덕분에, 전사처럼 싸운 덕분에, 내가 기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_ 언니들의 어깨 중 - P73

나는 어느 날 갑자기 깨진 접시처럼 내 인생에서 떨어져나간사람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야멸차게 돌아섰던 사람들, 영문도 모른 채 내게서 멀어져간 사람들. 아마도 실금 때문이었을 것이다. 거기엔 어떤 사건이랄 것도 없었다. 우리 안에 차곡차곡 쌓여간 실금들만이 있었다.

_ 우리가 멀어져갈 때 중 - P82

우리의 상사들이 의견 반박과 복도에서 인사하지 않는 행위를 가장 견디지 못하는 것은 다 사랑받고 싶은 동물적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언어에서 메시지가 아니라 뉘앙스가 의미의 팔 할인 이유다.

_ 우리가 멀어져갈 때 중 - P83

실금이다. 너는 나의 비겁이 싫고, 나는 너의대책 없는 신랄함이 버겁다. 제도 바깥으로 나올 것도 아니면서 노상 징징거리고 있는 내가 실은 나도 싫다. 그렇지만 나는, 온통 뽀족한 너도 실은 제도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한다는 것을 눈치챈다. 우리는 피차 정직하지가 않다.

_ 우리가 멀어져갈 때 중 - P84

기쁨을 좋아하는 척하며 사람들 속에 너무 오래 있었다. 허위가 보였고, 가식이 보였다. 기쁨의 통속성에, 관계의 표피성에,
행복의 피상성에, 그 형이하학적 정념에 종종 구토감을 느꼈다. 형이상학을 향한 한 줌의 비루한 욕구가 포기되질 않았다.

슬픔 수집가 중 - P96

그렇다. 나는 아직도 기쁨을 좇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있다. 생의 비의를 알고 있다면 당신은 그렇게 기쁠 수 없다. 당신의 기쁨은 무지에 기반해 있다. 나는 당신이 슬픔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슬픔을 더 많이 보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슬픔에 대해 도란도란 더 많이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_ 슬픔 수집가 중 - P101

더 슬프고 더 현명한 사람A sadder and a wiser man. 깨달음이란기쁨과 함께 오지 않고 슬픔과 함께 온다는 것. 사람을 더 현명해지도록 만드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라는 것. 더 현명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더 슬픈 사람이며, 그것이 내가 그토록강렬하게 슬픔의 수집가가 되려던 이유였던 것이다. 나는 삶을잘 살고 싶다. 진짜 삶을 살고 싶다. 삶의 비밀을 속속들이 알고 싶다. 삶의 폭력을 현명하게 잘 헤쳐나가고 싶다. 그러려면슬퍼야 한다. 슬픔에 귀 기울여야 한다. 슬픔만이 나를 그 길로안내할 수 있다.

_ 슬픔 수집가 중 - P106

어엿한 중산층이 된 기득권자들이 옛날의 자기연민에 빠져 스스로를 약자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꼴불견이다. 자기연민은 어떤 경우에든 대체로 추하다. 지독한 자기애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_ 내가 가여울 땐 <엘리제를 위하여>중 - P119

자신의 오류를 정직하게 직시하고 끊임없이 수정하는 것도 용기요, 옳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 것도 용기다.

_ 용기의 장르들 중 - P135

정치에는 근본적으로 문학적 속성이 있어서 엘리트 교육을 받은 달변가에게 유리한 점이 많지만, 정치는 문학과 달리 논픽션이라 이 서사의 주인공들은 반짝스타로 쉬이 발돋움은 해도 클래식의 주인공으로 오래 남는 경우는 드물다.

_ 고통의 속지주의 중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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