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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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에서 가게를 거들고 있으면 자기다운 크기로 거기에있을 수 있다. 음악이 흐르고, 그것을 듣고 있는 귀가 곧 나다. 밤에도 낮에도 작은할아버지나 오카다가 만든 요리를 먹는다. 가족은 아니지만 아는 사람이 만든 요리를 한 입씩 먹고 씹는다. 까만 후추와 버터 맛. 인스턴트가 아닌 커피의 맛. 입은 이쪽이 곧 나다. 작은할아버지, 오카다하고 사이에 최소한의 대화가 있고, 최소한의 말로 대답한다. 대답하는 말이 곧 나다. 내 목소리도. - P62

"손님은, 오면 올수록 고맙지. 돌아가주면 더 고맙고." - P75

수용소 소장이 ‘일본이라는 나라는 너희를 보내달라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라고 조롱하듯이 내뱉은 말이 귓가에 되살아난다. - P91

사리하마는 죽은 동료가 돌아오지 못한 고향이었다.
손바닥에 들어갈 만큼 작은 유품을 간직하고 있었다. 여성용손거울이었다. 어머니 것인지 애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동료가 그것을 쓰는 것은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비단 주머니에 넣어 소중히 다루는 것은 알았다. 유품이라고 맡을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었다. 가방 안감에 잘 숨겨서 갖고 귀국했다. - P94

바다는 전부 연결되어 있다. 거기에 나타난 일본인의, 게다가 이름도 없는 일족이라면, 어쩌다 바람에 쏠려 바다 표면에 모습을 드러낸 한줄기 하얀 파도에 지나지 않는다. - P100

바닷물이 거품을 남기고 모래에 스며들면서 사라지는 부근에 귀를 갖다댄다. 해변 저 안쪽 깊은 곳으로 빨려 들어가면서바닷물과 거품이 모래를 희미하게 움직이는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들린다. 가네사다도 가오루도 사각사각 소리를 내면서 사라져 가는 거품인 것이다. 엄지손톱만큼의 크기밖에 안 되는 이름 모르는 옅은 분홍색 게가 부글부글 뱉어낸 거품을 물끄러미보고 있다. 거품이 된 가네사다에게도 가오루에게도 그게는 보이지 않는다. 돌아보아도 올려다보아도 이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둘은 따로따로 모래사장에 빨려 들어가 그냥 사라진다. - P101

빵집의 하얀 유니폼과 모자를 벗고 모든 사람에게 한결같이 보여주는 사회적 얼굴도 접고 단 한 사람에게만 솟구치는 자연스러움을 보이고 스킨십을 나누는 것이 연인이라면, 자기가 가오루 씨 애인이 되는 것은 도저히 무리다. 자신은 아직 아무런 바탕이 없다. 내밀 것이 없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안다. 애인이 생길 때쯤이면 나한테도 누구에게나 내밀 수있는 안정된 바탕이 만들어질까?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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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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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 도시의 저녁나절은 그저 어두워지는 도시와 달리 훨씬 더불온하고 뭔가 수상쩍다. 보이지 않는 커다란 대걸레 형태의 공기가 산기슭에서 해면으로 내려와 마을의 열기를 진정시킨다.
잠들기 힘든 도쿄보다 훨씬 시원하다. - P16

가오루의 아버지, 고이치는 가네사다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늘 쓴웃음을 띤다. 선생인 고이치가 볼 때 가네사다가 교육적인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게 된아들을 맡길 곳으로 고려할 때, 어쩌면 회복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엷은 기대를 품은 것은 가네사다가 교육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 P19

잠이 깨서 여기가 어딘지 깨닫기까지의 잠시 동안, 가네사다는 심장이 두근거린다. 여기가 사리하마의 자기 집이라는 것을깨달으면 바로 긴장이 풀린다. 그때 가네사다의 눈동자는 투명해진다. 사람 그림자 없는 광활한 사막이나 광야를 지금 혼자보고 있는 것 같은 눈빛. 그 눈동자의 엷은 빛을 볼 자는 여기없다. - P20

원래 가네사다는 특정한 인간에게 매달린 적이 없었다. 남자든 여자든 그것은 똑같았다. - P26

오 년 동안 함께 ‘오부브‘에서 일하면서 두 사람의 대화 내용과 분량은 최소한인 채, 변함없는 일상이 되풀이되었다. 그러나 같은 장소에서 일을 계속하면 말이 아닌 신뢰가 자란다. 물론신뢰만 자란다고는 할 수 없다. 너무 가까워서 불신의 씨가 떨어지고 이윽고 싹을 틔울 수도 있다. 가네사다와 오카다 사이에는 그런 씨가 파종되고 싹이 틀 기척이 없다. 서로를 신뢰하면서 여전히 거리를 둔 채 그저 시간만이 지나간다. - P34

화장은방역, 위생상의 이점도 있지만 그보다도 생사를 경계로 무엇인가를 청산해버리려는 인간의 과감한 지혜인 것이다. 가네사다는 그렇게 생각했다. 땅에 그대로 묻혀서는 정화가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남겨진 채가 된다. 그 두려움을 불로 바꿔서 죽은자를 재가 될 때까지 태우기로 한 것이 아닐까? - P43

가네사다의 발을 끌어당기고 먹어버리려는 바다는 이제 여기까지 밀려오지 않는다. 그래도 젖은 모래를 밟으면 발 형태 그대로 부드럽게 가라앉고, 밀려갔을 터인 바닷물이 스민다. 위태로운 밸런스 위에 있는 평온. - P47

사람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묻는다면 "어느 틈에"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젊을 때의 충족되지 않는 욕망은 도대체 얼마만큼이었을까? 자신의 일로 되새겨보기에는 너무 나이를 먹었다. 아니, 그렇게 말하면 거짓말이 될지도 모른다. 가네사다 같은 나이가 되어도 냉장고 깊숙이 있는 잊힌 건어물 정도의 괴로움은 있다. 연륜이나 경험으로 쉽게 사물을 단순화하는 것은 노인의 나쁜 버릇이다. "실컷 놀면서 면역력을 키우면 돼."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이 통용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뭐, 나머지는 자기가 알아서 어떻게든 하는 수밖에 없지.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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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 미술 전문기자의 유럽 미술관 그랜드투어
김슬기 지음 / 마음산책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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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스페인은 18세기를 정점으로 프랑스와 영국의 침공을 연이어 받으며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이 왕실 가족의 초상화는스페인의 영광의 마지막 순간을 기록한 그림이었다. 옷은 값비싼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지만, 얼굴은 우둔한 표정과 함께 주름까지 그대로 묘사되어 추하게 보인다. 인간적인 약점을 가감 없이 그려낸 고야의 붓은 가혹할 만큼 솔직하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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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 미술 전문기자의 유럽 미술관 그랜드투어
김슬기 지음 / 마음산책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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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도 미술관의 티켓에는 가슴에 맹세를 하는 한 남자의 손이그려져 있다. 엘 그레코의 <가슴에 손을 얹은 귀족〉의 손을 티켓에 새겨 넣은 것이다. 1580년에 그려진 이 작품은 엘 그레코가 스페인에서 그린 초기작 중 하나이며, 함께 걸려 있는 그의 초상화 여섯 점 중 가장 독특한 작품이다.


프라도 미술관 중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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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 미술 전문기자의 유럽 미술관 그랜드투어
김슬기 지음 / 마음산책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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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그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르네상스의 도시에 왔다. 베니스에서 기차를 타고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피렌체는 정말 그림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아름다운 도시였다. 무엇보다 음식과 와인이 맛있어서, 기대가 컸음에도 그보다 더 즐거운 여행이었다. - P87

피렌체는 『신곡』을 쓴 단테 알리기에리의 도시다. 단테는 당시지배 계급이 사용하던 신들의 언어, 즉 라틴어 대신 토스카나 방언으로 시와 산문을 썼고, 그 덕에 토스카나어는 모든 이탈리아인의 삶과 예술을 기록하는 언어로 거듭났다. 영어의 아버지가 셰익스피어라면 이탈이아어의 아버지는 단테다. - P89

위대한 예술은 절대 사진에 담기지 않는다. 우리가 여행을 해야 하는 이유다. - P111

분수를 내려다보는 조각은 그리스신화 속 물의 신 오케아노스를 중앙에, 바다의 신 트리톤과 말을 그 옆에 장엄하게 묘사했다. 두 세기에 걸쳐 완성된 이 분수는 베르니니의 바로크 미학이 잘 표현된 작품으로 손꼽힌다. - P114

카라바조의 기법적인 특징으로는 명암 대비를 통해 입체감을 극대화시키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와 후기작에서 도드라지는 테네브리즘Tenebrism이 꼽힌다.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시선을 집중시키는 이 기법은 등장인물을 단순화하고, 배경을 칠흑 같은 검정으로 칠해 마치 연극 무대의 핀 조명 같은 효과를 만든다. - P122

예술가들은 르네상스 시대에 홀로 일하지 않았다. 거장들은 마치 요즘의 미술학교처럼 공방을 운영하며 조수를 고용해 일했다. 교회와 귀족들에게 다양한 주문을 받았고 제자들에게 작법을 가르치면서 작품 제작을 병행했다. 공방에는 남성들만 참여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공방은 우아한 공간이 아니었다. 청년들의 땀과 시끄러운 말소리, 화구의 먼지로 가득한 곳이었다. - P136

낭만주의 작가 찰스 노디어와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가 왕립 예술원에서 이 그림을 보고 프랑스에 돌아가면서 반전의 계기를 맞게 됐다. 이 그림이 프랑스에서 찬사를 받고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가 되면서 유럽 전역의 풍경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그의 자연주의적 접근과 감성적 표현은 현대 풍경화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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