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로 숨 쉬는 법 - 철학자 김진영의 아도르노 강의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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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종교의 주체가 삶에 지친 사람들이었다면 요즘엔 안 그렇죠. 삶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종교의 집단 주체로 변해가는 모습을 우리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어요. - P376

끊임없이 자기에게로만 되돌아오는 거예요. 우리는 그것을 무엇이라 부릅니까? 눈이 멀었다고 그래요. 맹목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 외의 것과 관련을 지으려하지 않아요. 오로지 아는 것은 자기밖에 없어요. 쾌락이라는 게 바로 그런 거예요. 영화 같은 데서 나오잖아요? - P385

다시 말하자면 무목적적입니다. 무목적성은 다른 의미에서 보면 철저한 목적성이죠. 왜냐하면 자기 목적성밖에 안 가지고 있거든요. 이런 점을 볼 때 육체적 쾌락은무엇이냐? 우리는 이것을 아주 순박한 것, 맹목적인 것,
순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순수한 것은 굉장히 래디컬한 겁니다. 순수라고 하면 사람들이 깨끗하고 얌전하고 착하고 이런 걸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순수하다는 건 야생적인 거예요. 순수하다는 것은 어떻게 해볼수가 없는 겁니다. - P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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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셸터 - 2023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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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일으키는 일에는 게으른 사람도 열성을 다한다고. - P315

그래서 지금 사람들은 그 자리 그대로 서 있을 뿐, 정확히언제 어디서 대화가 끊겼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침묵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끊어진 대화를 잇는 일은 더욱 불가능해진다. 단순한 얘기다. 침묵이 침묵을 낳는다는 것.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심지어 머릿속에서 굴려보고 숨을 들이쉰 뒤 입을 벌리기까지 하지만, 이내 아니라는 듯 손을 휘휘 젓고는 안에서 문을 닫아버린다. - P317

나는 컴퓨터 화면으로 모든 것을 보았다. 수백 년 된 종과문과 창문이 있는 이 금욕적인 프란체스코 수도원의 개조된 수도실에 처박힌 채로 말이다. 유리는 진정 놀라운 발견이었다. 우리는 오랜 세월을 견딘 건물이나 바위에는 익숙하지만 이토록 깨지기 쉬운 물건이 17세기부터 온전히 남아 있다는사실은 어떻게 보아도 기적이다. 사람의 손으로 직접 부어 거칠고 울퉁불퉁한 유리의 표면 아래에 재료가 된 모래알도 보였다. 수도원 근처 작은 농장에서 키우는 십여 마리의 암소 역시 17세기의 암소들과 다르지 않았다. 동물들은 시간 감각을 지워버린다. 나는 모든 것을 노트에 성실히 적었다. - P330

짧게 줄이면 이렇다. 재앙. 그의 가장 암울한 두려움이 현실이 되었다. 우리의 가장 암울한 두려움이. - P330

이미 생겨났다고 추정되는 어떤 일이 정말로 일어나기 위해서는 시간과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것은 지연되어 발생한다. 사진을 인화할 때 이미지가 어둠 속에서 천천히 나타나듯이....
1939년도 1939년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불확실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두통을 느끼며 깨어나는 아침들이 있었을 뿐. - P334

당신을 절망하게 하는 것은 충돌, 깨진 창문, 망명자, 수감자, 폭행과 강간 피해자, 심지어 살해된 자가 아니라, 훗날 어느 오후에 거리에서 웃고, 함께 어울리고, 당신을 오래삶에서 내쫓은 그 똑같은 체제 안에서 아이를 낳는 사람들을볼 때 미묘하게 찾아오는 오싹한 허무감이다. 역사에는 수천, 수만 년의 세월이 있으니 오륙십 년 정도는 망쳐도 별 탈이 없다. 역사에게 그 정도는 고작 일 초나 될까 말까 한 시간이다. 하지만 역사의 일 초가 일생인 인간-하루살이는 무엇을 해야하나? 68에 뒤이은 그 오후들 때문에 프라하는 60년대를 선택하고픈 마음이 없었다. - P350

1989년이 최초의 혁명이었던 그들 무리 속에서 나는 일인칭으로 말할 수있다. 마침내, 발생하지 않았던 일이 발생하게 될 것 같았고모든 것이 우리 앞에 놓여 있었으며 모든 것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것도 세기의 막바지에

경고, 백미러에 나타난 역사는 항상 보이는 것보다 더 가깝습니다...... - P361

사람은 하나의 몸과 하나의 시대라는 감옥에서 살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 P364

만일 누군가 그 순간에 행복이 뭐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소용히 그들 쪽을 가리킬 것이다. 이런 광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늙어가는 것, 훈훈한 밤에 오래된 건물로 둘러싸인 사각형 안뜰에서 맥주를 홀짝이며 잡담을 나누는 것, 잠시 대화가 끊겨도 개의치 않고, 그러다 또 와르르 웃음이 터지고, 당신은 세상에서 그것보다 더 낫거나 더 못한 것을 원치 않는다. 침묵과 웃음의 그 리듬을 보존하는 것 말고는, 앞으로 다가올 세월과 노년의 피할 수 없는 밤에도. - P371

아직 아닌 미래와 더이상 아닌 미래는 어떻게 다를까? 그 부재는 어떻게 다를까. 전자는 많은 것을 기약하고 후자는 세상의 종말이다………… - P401

나는 앞으로 걸어가 과거가 된다. - P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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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셸터 - 2023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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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맞는 말이지, 나는 나중에 생각한다. 홈리스에겐 역사가 없다. 그들은...... 어떻게 말해야 할까, 역사 밖 존재, 소속없는 존재다. 가우스틴 역시 어느 정도는 그런 사람이었다. - P123

그런 이들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해에 향수를 느껴서 그랬고, 다른 이들은 세상이 돌이킬 수 없이 퇴락하여 미래가 없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랬을거라고 생각된다. 이상한 불안이 공기 중에 감돌았고 숨을 들이쉬면 그 불안의 희미한 향을 맡을 수 있었다. - P147

그러나 인생이나 시간이라는 이 강도는 어느덧 다가와 모든 것 - 기억, 심장, 청력, 생기-을 앗아간다. 심지어 고르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손에 넣는다. - P169

모든 집착은 우리를 괴물로 만들고, 그런 의미에서 가우스틴은 괴물이었다. 좀더 신중한 괴물일지는 몰라도 어쨌든 괴물이었다. 그는 여러 병실과 층을 갖춘 클리닉으로 더이상 만족하지 못했고, 십 년 주기의 다양한 시대를 재현한 공동체 단지들이 점점 더 커지고 그 숫자가 늘어나는데도 불충분하다고 여겼다. - P175

알츠하이머병, 기억 상실이나 기억력 저하에 대해 말할 때우리는 중요한 어떤 것을 건너뛴다. 이런 병을 앓는 사람들은 예전의 사실을 잊을 뿐만 아니라 계획을 세우는 능력이 전혀없다. 심지어 가까운 미래에 대한 계획까지도. 사실, 기억을 잃을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바로 미래라는 개념이다. - P184

과거 쪽으로 불어닥치는 이 바람은 결국 아무리 멀리 되돌아가게 되더라도 훼손되지 않은 그곳에 도달하려는 시도가 아닐까? 모든 것이 아직 온전한 곳, 풀냄새가 나고 눈앞 가까이에 장미 꽃송이 속 미로가 보이는 곳으로, 나는 장소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건 시간, 즉 시간상의 장소다. 나의 조언은 이렇다. 아이였을 때 떠나온 곳을 다시 찾아가지 말기를. 그곳은 바뀌었고 시간이 사라졌고 버려졌고 으스스하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 P222

사회가 더 많이 잊을수록 누군가는 더 많은 모조품 기억을 생산하고 판매하며 그것으로 비워진 틈새를 메운다. 기억의 경공업, 경량 소재로 제작한 과거, 3D 프린터로 토해낸 듯한 플라스틱 기억. 필요와 수요에 의거한 기억. 새로운 레고-빈자리에 정확히 맞춰 들어가는 다양한 과거 모듈이 판매된다. - P267

저기에는 ‘동지‘가 있고 여기에는 ‘바초‘가 있었다. 언어는 짐 나르는 짐승처럼 모든 것을 감내하고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다. 언어는 우리가 존재하기 전의 시간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혹은 기억이란 게 아예 없기 때문이거나. - P270

그 누가 말했던가, 욕은 불가리아의 득도, 불가리아의 선, 번뜩이는 깨달음, 숭고함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 P274

봉기는 점점 재난으로 변해갔고 이는 역사적 사실과도 일치했다. 그래서 이 행사는 완벽히 실감나는 재현이 되었다.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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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셸터 - 2023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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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는 노년을 위한 도시다. 세상은 느려졌고 인생의 강물은 호수가 되어 고였다. 나른하고 고요한 표면, 무료함이라는 사치, 그리고 늙은 뼈마디를 위한 산기슭의 햇볕. 상대성이 도드라지는 시간. 바로 이 시간과 관련한 20세기의 주요한 발견 두 가지-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토마스 만의 『마의 산』가 하고많은 곳 중에 바로 이곳 스위스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 P41

언제나 죽는 쪽은 다른 사람들이고 우리 자신은 절대 죽지 않으니 말이야. - P42

과거에 무자비해져야 한다고. 왜냐면 과거 자체가 무자비하니까. - P49

알츠하이머병이라든가 치매라든가, 그 이름이 뭐든 기억 쇠퇴를 경험하는 환자들을 위해서 말이네. 이미 과거라는 현재에서만 살고 있는그 사람들 모두를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 P62

가우스틴의 말에 따르면 우리에게 과거는 과거이며, 우리는과거로 걸어들어갈 때조차 현재로 나가는 출구가 열려 있음을안다. 쉽게 현재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기억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이 문이 영원히 쾅 닫혀버렸다. 그들에게 현재는외국이며 과거야말로 모국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들 내면의 시간과 일치하는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 P63

반드시 경험한 일만 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 상상만한 일이 과거가 되기도 한다. - P68

일어난 이야기는 모두 비슷한 이유로 일어났지만, 일어나지않은 이야기는 저마다 다른 이유로 일어나지 않았다. - P70

시간이 흐르며 깨달은 사실은 과거는 무엇보다도 다음 두 곳에 숨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오후에 (빛이 떨어지는 길을따라) 그리고 향기 속에 나는 바로 그런 곳에 덫을 놓았다. - P71

그래서 나는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향기와 오후를 수집해 목록을 만들었다. 우리에겐 정확하고 철저한 묘사가 필요했다.
어떤 향기가 어떤 기억을 불러오는지, 어떤 향기가 어느 나이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지, 어떤 향기로 어느 시대를 불러올 수 있는지. 나는 여러 향기를 자세히 묘사해 그 결과를 가우스틴에게 보냈다. 클리닉에서는 향기를 언제든 필요할 때다시 만들어낼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특정한 향을 구성하는분자를 보존하려 했지만, 가우스틴에게 그것은 노력의 낭비였다. 그저 토스트 한 장을 굽거나 아스팔트 조각을 녹이는 방법이 휠씬 간단하고 진짜였다. - P74

"그 체제에 대한 나의 반감은정치적이라기보다는 미학적인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미스터N의 정리가 더 맘에 든다. 그 체제에 대한 그의 반감은 생리학적이었다. - P91

건망증이 심한 신,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신은 우리를 모든 의무에서 해방시킬 것이다. 기억이 없으면 범죄도 없다. - P96

숨바꼭질 놀이에서 최악의 순간은 아무도날 찾으러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때다. 그 노인은 절대로 그런 깨달음에 이르지 못할 것 같다. 다행히도.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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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연인을 만나러 가는 일
부희령 지음 / 강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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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는 핑계와 고친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는 자괴감으로 미루던 일을 더는 피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 P100

아무 근거 없이 혼자 사는 사람일 거라고 짐작했다. 어색한 상황에서 쉽게 미소를 짓거나 실없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단단함 때문이었을까. 편견일 테지만 수녕의 마음속에서 비혼과 기혼의 느낌은 난바다와 앞바다만큼이나 달랐다. - P103

며칠 전에 여기서 해 지는 걸 봤어요. 아름답더라고. 나는 평생 아름다움이 불편했소. 노을이 아름답다는 건 노을이 아닌자가 느끼는 거요. 아름다움에는 그런 함정이 있어요. 하지만아픔은 스스로 아픈 처지가 되어야 아는 거지요. - P106

왜 나는 소설 쓰기를 그만두지 못하는 걸까.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보면, 재능도 기회도 부족한 사람이었다. 무녀가 가리키던 날개옷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풍요로운 소설의 육체를 갖지 못했어도 언젠가는 그 위에 날개옷을 걸치고 싶은 욕망이 남아 있는 건가. - P111

요즘 붓과 물감으로 미술하는 사람이 어딨나. 요즘 다큐멘터리 같은 걸 보는 사람이 어딨나. 모두 지난 세기의 유물이야. 이런저런 트집을 잡다가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끼리끼리 모이는 거지. - P116

꽃과 별, 별과 꽃. 걷고 있는 향숙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우리에게도 꽃과 별 같은 시간이 있었다는 생각이 왠지 위로가 되었다. - P174

‘아니야. 맘대로 해. 어둠은 형태나 색채가 아니라 깊이라면서? 물기 없는 슬픔이고, 온기 없는 위로라고도 했지.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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