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호크니 리커버 에디션)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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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을 무슨 말로 위로해야 했을까? 나는 순간 보현을위로할 수 있는 어떤 언어도 나에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언가 중요한 것이 가슴속에서 빠져나가버린 듯 싸늘했고, 나는 그게 생각이나 관념이 아닌 실재하는 감각임을 알았다.
그제야 어설프게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잠시 머물렀다 사라져버린 향수의 냄새. 무겁게 가라앉는 공기.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흐느끼는 소리. 오래된 벽지의 얼룩, 탁자의 뒤틀린 나뭇결, 현관문의 차가운 질감.
바닥을 구르다 멈춰버린 푸른색의 자갈, 그리고 다시, 정적.
물성은 어떻게 사람을 사로잡는가.
나는 닫힌 문을 가만히 바라보다 시선을 떨구었다. (p.218) _ 감정의 물성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마인드가 정말로 살아 있는 정신이라고말한다. 어떤 이들은, 이건 단지 재현된 프로그램일 뿐이라고 말한다. 어느 쪽이 진실일까? 그건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p.271) _ 관내분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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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호크니 리커버 에디션)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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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류드밀라를 끝까지 떠나지 않았던 거예요."
그때 그 장소에 있었던 모두는 같은 풍경을 생각했을 것이다. 류드밀라가 그렸던 행성. 푸르고 묘한 색채의 세계.
인간과 수만 년간 공생해온 어떤 존재들이 살았던 오래된 고향을.
수빈은 순간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고 느낀 적 없는 무언가가 아주 그리워지는 감정이었다. (p.142-3) _ 공생가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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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두 번째 부품을 들고 방에 돌아온 희진은 동굴 안의 한기를 느꼈다. 루이가 바위 앞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희진은 루이가 그렇게 잠든 모습을 처음 보았다. 작업중이던 그림이 루이의 상체 아래에 깔려 있었다. 도구들은엉망진창으로 흩어져 있고, 염료는 바닥으로 흘러 내렸다.
희진은 그 자리에 굳었다. 루이는 잠든 것이 아니었다.
루이는 죽어 있었다. (p. 78) _ 스펙트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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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역사
자크 엘리제 르클뤼 지음, 정진국 옮김 / 파람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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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언제부터 나타났을까? 그것은 인간의 탄생보다 훨씬 오래된 역사라서 우리가 모를 수밖에 없다. 인류가 산의 역사를 이야기했던 것은 지금보다 150세대쯤전부터였다. 이전까지는 인간 존재라고 해봐야 미미했으니까. 어쨌든 수 세기 전부터 산의 역사는 기록으로 존재했다. 문명이 태동하던 때부터 인류의 조상을 놀라게 했던 대사건이 무수한 전설로 남아 있다.

슬펐다, 살아가는 일에 지쳐 버렸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다. 계획이 무산되고, 희망도 물거품이 되었다. 친구라던 이들은 초라한 내 모습을 확인하고 등을 돌렸다. 자기 이익만 챙기려고 들떠 싸우는 인간들이 추해 보였다. 가혹한 운명이다. 그래도 어차피 죽을 것이 아니라면, 정신 차리고 다시 기운을 내든 해야지, 마냥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p.6) _ 나의 은신처 중에서

아지랑이가 희미하게 피어오르고 눈에 띄지도 않던 안개가 지평선에 모이기 시작할 때, 또는 기울어가는 해가 어둠에 의해 느슨하게 밀려날 때, 산은 정말 아름답다. 눈과 빙하와 피라미드 형태 모두가 하나둘씩 또는 단숨에 자취를 감춰버린다. 찬란하게 하늘 저편으로 사라진다. 그저 몽상과 어렴풋한 기억만 남길 뿐이다. (p.23) _ 산마루와 골짜기 중에서

아무튼 산의 구성요소는 몇 가지 안 된다! 그것을 단순히 조합할 뿐인데도 놀랍도록 다양한 모습이다! (p.32) _ 바위와 결정 중에서

이처럼 산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지속적 현상의 줄기찬 순환과변동을 생각해보면 산을 창조의 여신이라고 했던 신화의 기원이나오래전 시인들의 노래를 이해할 만하다. 산이 평야에 비옥한 물과흙을 보내주었고, 태양의 도움으로 산에서 생물과 인간이 태어났다. 산이 사막에 꽃을 피우고 행복한 도시들을 퍼뜨렸다. 고대 그리스의 전설에 따르면 에로스 신이 땅을 빚고 산을 세웠다. 태초의 혼돈에서 처음 태어난 에로스는 항상 어린 신이다. 끊임없이 새로워지는자연이야말로 영원한 사랑의 신이다.
(p.64) _ 무너지는 봉우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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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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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대와 어울리지 못하던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자신이 딱알맞은 때에 딱 알맞은 장소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사태가 전개될 수도 있다. 그 사람에게는 너무 생경해보이던 양식과 태도가 갑자기 깡그리 무시되고, 그 사람의 내면 깊은 곳의 정서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양식과 태도로 대체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랜 세월을 낯선 바다에 표류하던 고독한 뱃사람이어느 날 밤 잠에서 깨어 하늘을 보니 그곳에 익숙한 별자리가 있는것을 발견한 것과도 같은 상황이 된다.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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