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창포 향에 에워싸여 축제장을 걷고 있으려니 단오를 정말 단오답게 ‘쇠고‘ 있는 것 같아 잔잔하게 행복했다.음식점은 단오 메뉴를, 지역 양조장은 ‘단오 에디션‘을 내놓고, 지역 정보지 《교차로》의 강릉판은 축제 정보를 빼곡히 담은 ‘단오 특별판‘을 발행하며, 시내 곳곳의 상점들은 ‘단오 맞이 바겐세일‘을 연다. 지역의 모든 것이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단오를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그것도 지역의 색깔을간직한 채로, 다른 지역 축제들이 자신이 홍보할 무엇인가를뽑아 올려 뿜어내기 위해 수원지의 역할에 열심이라면, 강릉단오제는 시민들의 마음이 저절로 흘러들어 머무는 저수지가아닐까. 이 저수지 안에서 우리는 넉넉히 푸근했고, 게다가 강릉 시내는 간판부터 조경까지 어찌나 ‘힙’ 하고 예쁜지 축제장과 시내를 오갈 때마다 마치 어느 축제 기획자의 꿈속과 어느도시 디자이너의 꿈속을 걸어 다니는 것 같았다._ 강릉단오제 중 - P159

축제라기보다는 공무원들의 숙제 같았다. 악천후와 저예산 등 여러 악조건 속에서 분투하셨음은 알지만 태생부터가지자체와 별 관련 없는, 짝이 맞지 않는 젓가락이었으니 잘못출제된 과제 아니었을까. 다른 축제들은 거칠지언정 ‘이 축제를 왜 여는가.’에 대해 뜨거운 진심의 대답이라도 갖고 있는반면, 젓가락 페스티벌에는 마지못함의 기운이 팽배했다. 문화도시로 선정된 그해에 일회성으로 열었다면 모두에게 행복했을 축제를 어영부영 꾸역꾸역 끌고 와야 했던 청주와 젓가락의 슬픈 인연도 이제는 끝낼 때가 됐지 않나 싶다. _ 청주 젓가락 페스티발 중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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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뽕‘을 기대했는데 난데없이 ‘학뽕‘이 등장해 당황했지만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 돼라.‘ 라는 메시지가 ‘공부=성적’의 K식 교육관과 만나 빚어내는 향기에서 씁쓸그윽하게 ‘K’를 느꼈다. 그래도 그 사이에서 빛난 주최 측의 조심성과 균형감각, 어딜 가든 우리를 굽어봐 주던 월출산, 신나게 축제를 즐기는 영암인들의 모습과 고장에 대한 자부심, 미처 다 먹고오지 못한 맛난 남도 음식들, 그리고 비………. 이 축제에는 그런 것들이 가득 있어 부렀다. _ 영암왕인문화축제 중 - P50

지방 소도시의 침체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한때의 풍요를 누린 후 사람들이 빠져나간 탓에 유독 그림자가 크게 느껴지는 곳들이 있다. 처음 와 본 영산포가 그랬다. 일제가 수운을 이용한 곡물 수탈을 위해 일찌감치 등대를 설치할 만큼 번성했던 이곳은 옆 동네인 나주와 합쳐지며 그 하위 행정구역이 되었다. 그러니까 영산포는 ‘지방의 도심’도 아닌 ‘지방의 부도심‘, 이촌향도의 직격탄도 더 빨리 더 세게 맞을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1년에 한 번 열리는 축제 날인데도 동네에서 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범상치 않은 오라를 뿜는 홍엇집들이 늘어선 ‘600년 전통 홍어의 거리‘에도 오가는 발걸음이 없었다.(모두가 축제장에 몰려가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_ 나주 영산포홍어축제 중 - P67

따지고 보면 이 축제 자체가 이러한 영산포를 어떻게든 살리고 저떻게든 알리기 위한 발버둥인 셈이다. 전국적 인지도를 갖춘 유일한 특산물인 홍어를 두고 허송세월할 수도 없잖은가. 이런 걸 해 봤자 지역 재생에 극적인 변화가 있을 리없다는 걸 알지만 이조차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축제. 얼마나 요식이든 어쩔 수 없이, 하지만 그럴싸하게 만들어 내야만 할 축제, 영산포에서 유독 진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비슷한 딜레마를 갖고 있을 것이다. _ 나주 영산포홍어축제 중 - P68

한데 이 의령의 먹거리들이 꽤나 흥미로웠다. 대표 음식인 망개떡은 망개나무 잎에 싸서 찐 떡으로, 여러 유래 중 임진왜란 때 의병들의 식량이었다는 설이 가장 유명하다. 잎으로 싸매 흙이나 벌레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데다가 잎에 천연방부제 역할을 하는 성분까지 있어 오랜 기간 산에서 지내며 싸워야 했던 의병들에게 유용했다고. 의령 출신 독립운동가 안희재 선생이 독립군 식량으로 활용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300여 년의 세월을 건너 임란 의병의 손에서 독립군의 손으로 건네진 떡이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찡했다. _ 의령 의병제전 중 - P75

애국은 적어도 우리와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는 ‘구린‘ 것이었다. 나라가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해 온 대부분의 것들이 구렸고, 나라가 애국이라는 이름을 들먹이는 경우 대부분 뒤가 구렸다. 그랬기에 축제에 오기 전 김혼비는 마뜩잖았고 박태하는 다소 심술궂었다. 미안했다. 의병 개개인의 삶의결을 추상적 가치로서의 ‘애국‘으로 뭉뚱그려 버리는 게 K-민족주의라면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그 어떤 진심들마저 ‘구림‘으로 뭉뚱그려 버린 게 우리가 한 일이었다. 애국이니 민족주의니 하는 것도 어디 따로 뚝 떨어져 존재하는 가치가 아니라 결국 우리와 비슷한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나선 싸움과 마음의 합이라는 걸 느낄 때 평소 ‘쿨함’으로 덮어 둔 마음 한 쪽이 열려 버린다. 이 분분하고 분연한 마음들을 어떻게 쿨하게만 넘길 수 있을까. _ 의령 의병제전 중 - P80

축제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만날 K는 애국심이나 민족주의 같은 것들일 줄만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의병제전은 오히려 어떤 면에서 K를 넘어서는, 구시대적으로보일 수도 있지만 쉽게 포기하지 않는 어떤 ‘디그니티‘를 품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의외의 곳에서 결국 K를 만난다. 재벌들의 생가를 돌면서 부자들의 기를 받는 투어라니. K-자본주의와 K-샤머니즘의 이 단단한 결합. 이걸 이길 K를 우리가 다른 축제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인구 3만 명이 안 되는 작은 도시 의령이 찾은 진짜 살길은 의병이 아닌 재벌이었다. 자본은악, 의(義)는 선, 이런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_ 의령 의병제전 중 - P88

그런 점에서 애초에 ‘아리랑이란 무엇인가.’ ‘왜 밀양 아리랑인가.’ 같은 질문을 놓지 못한 우리가 고지식하고 순진했다. 축제란, 아니 K-쇼란 본디 그런 본질적인 질문 대신 우리가 왜 짱인가‘를 증명하기 위해 ‘관련’될 수 있는 모든 것을(관련 없을 것 같으면 ‘관련’의 의미를 무한 확장해서라도) 때려 넣어보여 주면 되는 것이었다. 부재한 철학은 중구난방 콘텐츠로, 중구난방 콘텐츠는 음향·조명·스케일을 최대치의 ‘고퀄‘로 뽑아내어 잘 커버하는 것이 K-쇼의 척도라면 ‘밀양강 오딧세이’는 예상을 훌쩍 넘는 양과 질로 흠잡을 구석 없는 쇼다. 축제 기간에 밀양에 갈 일이 있다면 꼭 한번 보라고 추천할 수도있겠다. K에게서 늘 배우는 교훈은 일관되게 일관성이 없으면일관성이 생긴다는 점이다. K에게 가장 아쉬운 점이면서 동시에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어떤 힘이기도 한, ‘이렇게 까지’를 통해 가닿는 K-뚝심. _ 밀양 밀양아리랑대축제 중 - P104

술은 새콤하고 구수하면서 부드러워 잘도 넘어갔다. 유난히 싫은 것과 좋은 것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축제였고 덩달아 감정 기복도 극명했던 탓에 지쳤던 듯하다. 그런 상태로 장터에 앉아 맛있는 술을 나눠 마시고 있자니 어쩐지 "용서와 위로가 사랑으로 넘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되어 마음속에 여전히 걸려 있던 ‘어쩌라고‘와 ‘어쩌려고‘와 ‘어쩌자고‘ 들도 술과 함께 어쩔시구 자알, 넘어갔다. 어쩌면 이게 아리랑의 정신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토로이면서도 연가이면서도 흥이면서도 체념이기도 한. _ 밀양 밀양아리랑대축제 중 - P111

품바도 품바의 관객들도 같이 나이 들어 가고 있다. 지금 이 세대가 이 땅에서 사라지면 품바들은 다 어떻게 될까? 현재로서는 시대 단절적인 문화의 산물로 보이는 장터 품바들이 과연 세대를 건너서까지 사랑받을 수 있을까? 살아남는다면 그때는 어떤 형태로 어떤 가치를 갖게 될까? 가치판단도 미래 예측도 도무지 할 수가 없다. 다만 시간의 흐름과 사회의 거대한 변화 속에서 누구도 너무 멀리는 뒤떨어지지 않기를, 아무도 너무 갑자기는 외로워지지 않기를. _ 음성품바축제 중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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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마을을 지나 상동으로 가는 길 주변은 들판이다. 밭에는 고구마와 콩과 보리를심었다. 놀리는 밭이 없는 것은 고맙지만 고통스러운 일이다. 고마운 것은 섬사람들이아직 땅의 생산성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고 고통스러운 것은 그 힘든 밭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노인이라는 사실이다. 하동 마을 초입의 낡은 집 한 채, 이 집에서도할머니 해녀가 성게 작업 중이다. 할머니는 손칼로 성게를 쪼갠 뒤 작은 숟가락으로성게 알을 긁어낸다. 고단하고 지루한 작업이다. _ 가파도 중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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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의 초록은 비를 맞으면 더욱 푸르다. 비바람에 흔들리는 초록 세상을 조우한 적 있으신가. 초록이 번지고 스미어 더 큰 초록을 이루는 장관을 목격한 적 있으신가. 비가 내리면, 만사 젖혀두고 사려니숲길을 걸을 일이다. _ 사려니오름, 물찻오름 중 - P209

쉽게 풀이하면 곶자왈은 화산암이 깔린 숲이다. 딱딱한 용암지대 위에 오랜 세월 흙이 쌓이고 그흙에 풀과 나무가 뿌리를 내려 숲을 이룬 지형이다. 제주 특유의 화산용암 식생지대라 정의할 수 있겠다. 자갈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_ 저지오름 중 - P251

곶자왈의 나무는 대부분이 뿌리를 드러내놓고 산다. 하여 곶자왈에 들면 나무뿌리를 먼저 봐야 한다. 척박한 땅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생명의 도저한 몸부림을 지켜봐야 한다. 곶자왈에 자생하는 나무는 머리카락처럼 엉켜 있다. 제 형편에 따라 옆 나무에 기대기도 하고, 제 깜냥에 따라 옆나무를 받치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흙이 튼튼하지 못하니 나무끼리라도 의지하며 연명하는 것이다. 차라리 감격적인 장면이다. _ 저지오름 중 - P253

여기서 잠깐. 걷기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도 잘 모르는 이야기가 있다. 길에도 경계가 있다. 길이란 본래 이어져야 하는 법인데 우리나라의 길은, 그러니까 걷기여행을 위해 정부가 조성한 트레일은 넘어서는 안 되는 금이 있다. 정부사업은 예산을 집행하는 주체에 따라 성격과 대상이 달라진다. 쉽게 말해 북한산 둘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은 전혀 다른 성격의 트레일이다. 북한산 둘레길은 코스 대부분이 북한산국립공원 안에 있다. 반면에 지리산 둘레길은 지리산국립공원 안으로한 발짝도 못 들어간다. 북한산 둘레길은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조성한 트레일이므로 국립공원 안에 있고, 지리산 둘레길은 국립공원 바깥의 산림지대를 보유한 산림청이 조성한 트레일이어서 국립공원 바깥에 있다. 자치단체가 조성한 트레일도 사정이 같다. 강릉바우길은 강릉을벗어나지 못하고, 부산갈맷길은 부산 안에서만 맴돈다. 시오름 중 - P262

백주또가 남편을 쫓아낸 이유를 다시 생각한다. 농경사회에서 소만한 재산도 없었다. 송당 본향당 당제에서 소와 돼지를 올리지 않는 전통은 한 번의 예외 없이 지켜졌다. 설문대할망 신화가 제주 사람이 제주도라는 자연환경을 이해하는 방식이라면, 백주또 설화는 제주 사람의 고단한 일상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에 어울리는 신이면 백주또는 오름을 닮은 신이다. _ 당오름, 높음 오름 중 - P112

제주 유배형은 사형 다음으로 무거운 처벌이었다. 제주로 유배를 내려오는 죄목은 대부분 역모였다. 하여 제주 유배인은 대부분 정치범이었다. 한때 제주에서는 성공이라는 단어가 금기어였다고 한다. 유배지에서 성공은 역모를 뜻할 수 있어서였다. 제주에서 성공을 대체한 단어는 작산이었다. 지금 작산은 다 큰 어른을 가리킨다. _ 바굼지오름 중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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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걷다 -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로 떠나는 섬 여행
강제윤 지음 / 홍익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모두가 슬픔의 후예다. 우리는 모두가 고난의 후예다. 슬픔과 고난을 견디고살아남은 자들의 후예다. 그 모진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기란 진실로 희귀한 일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후예로 살아 있다는 것은 마침내 기적 같은 일이다. 살아 있는 것이기적인 삶이여! 기적 아닌 삶이란 세상 어디에도 없다. _ 강화 볼음도/아차도/주문도/말도 중 - P199

할머니는 섬으로 시집와서 60년 넘는 세월 동안 친정에는 가보지도 못했다. 옛날 섬에서는 다들 그렇게 살았다. 이제 할머니도 남은 날이 많지 않다. 할머니마저 떠나고나면 이 집은 폐허가 되고 할머니의 삶을 지탱시켜 준 물건들은 모두 불태워지고 말것이다. 삶의 흔적들이 아주 사라지고 나면 삶을 증거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한때 삶이 것들었던 물질들, 죽은 육신과 함께 아주 사라지고 나면 삶은 또 어디로 가서머물게 될까.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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