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누구와도 쉽사리 나눌 수 없는 고집, 그것이야말로 사람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시합이 끝난 뒤에 홀로 천천히 경기장을 걷는 등이 아름다웠다. 무언가를 짊어진 인간의 등을 오랜만에 본 듯한 느낌이었다. 이 또한 보는 사람 멋대로의 감상이지만, 패배한 경기야말로 볼 대목이 많을지 모른다.

_ 그 사람의 등 중 - P23

그래도 그만한 것을 짊어지고 있으니까. 여러 가지 사정과 감정이 있겠지만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되도록 공적으로 사과하지 말았으면 한다. 사람들의 기대나 역사, 경기의 지위 향상에 공헌하지 못한 것을 선수 탓으로 돌리는 관람자를 키워서는 안 된다. 일사 만루의 역전 찬스에서 내야 땅볼을 쳐 병살됐을 때 얼굴색 하나 안 바꾸고 벤치로 돌아가 다시글러브를 끼는 것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사과하는일보다 더욱 어려울 터다. 사과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 내가 싸우는 상대는 그런 게 아니야. 그렇게 단언하는 듯한 옆얼굴이야말로 우리를 진실한 의미에서 고무시키는 게 아닐까.

_ 사과를 하다니 중 - P27

‘괴로운 시합일수록 보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을 줄 거라고 생각한다. 아아, 골치 아프다. 구경거리를 만들어내는 일에 종사하는 자의 마음가짐으로서 그 말을 가슴에 새기며, 올해도 어떻게든 헤쳐 나가자고 다짐한다.

_ 고락은 함께 중 - P49

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눈물이 날 정도로 고독하다. 우리역시, 이래 봬도 의외로 숫자 때문에 들뜬 게 아닐지도 모르죠.
당신의 ‘기록‘이 아니라 세상에 둘도 없는 그 고독의 광채로, 우리는 저마다 나아갈 길을 비추며 따라온 것이 아닐까요. 이치로 선수, 4257안타 정말 고맙습니다.

_ 세상에 둘도 없는 고독 중 - P73

‘하나의 규칙, 하나의 개념만으로는 세계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시사점으로 가득한, 양면적이고도 흥미로운 장소로서 앞으로도 계속 변화하겠지.

_ 소란한 여름밤 중 - P81

어째서히로시마 도요 카프는 이다지도 인생을 쏙 빼닮은 걸까. 실수를 반복한다. 기회는 살리지 못한다. 한심하게 제자리 걸음만 계속해도 울면서 매달릴 곳조차 없다. 그런 나 자신을 겹쳐 보며 눈물이 날 것 같다. 하지만 전국의 빨간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 역시 힘내라, 힘내, 카프! 외치며 스스로를 북돋우고 있는 게 아닐까. 대체로 인간은 사실 ‘특별하지 않으며, 어떤 입장이든 자신의 나약함에 이를 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생은 역시이야기처럼은 흘러가지 않는다. 굿바이 마에켄. 고마워요 구로다 씨. 우리는 다음 꿈을 꿀 때까지 잘 살 수 있을까, 쉰 목으로침을 꿀꺽 삼켰다.

_ 어째서 희로시마 도요 카프는 이다지도 인생을 쏙 빼닮은 걸까 중 - P86

‘이야기‘는 원래 존재하는 것도 갑자기 생기는 것도 아니다.
반드시 사람이 엮어나가는 것이다. 신은 하늘에서 내려와주지않는다. 사람이 손을 잡아끌어 데려오는 것이다.

_ - P88

대부분의 인생은 스포츠만큼 명쾌한 승패가 뒤따르지 않는다. 무엇에 졌는지, 누구에게 이겨야 하는지도 잘은 모른다.
바로 그래서 목표를 세우기가 어렵고, 때로는 번지수를 잘못 찾아 적의를 불태우기도 한다. 이미 졌는지도 모른다. 앞으로도진 채로 있을지도 모른다. 그 뜨뜻미지근한 진창에서 발을 잡아 빼는 일에도 역시 용기가 필요하다.

_ 뜨듯미지근한 진창에서 중 - P97

신화 같은 이야기지만 오랫동안 최전선에서 한 가지 일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미우라 선수의 말처럼 아무리 오래 해도 단순하게 자기 일이 즐거워서 못 참겠다는 ‘변태성‘일지도 모른다.

_ 먹으면 먹을수록 중 - P116

보는 사람 마음속의 생각이야 오만 가지겠지만, 구장 전체에는 남의 집 아이의 앞날을 축복하는 다정함이 있다. 어느 쪽이 공격을 하든 수비를 하든 그때마다 환호하고 박수로 칭찬한다. 그것은 프로의 전장에는 없는 풍경이다. 평일 대낮의 관중 속에는 이미 여러 가지를 잃어버린 경험을 거듭해온 연령층도 많다. 아마도 아직 많은 것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을 사람들에게 뭐라 말을 걸고 싶어 하는 마음이 넘쳐나는 것처럼도 보인다. "아직 여름이 있어!" 패배한 아이들에게 그 말을 하며 모두가 스스로 곱씹어보고 있기도 하다. 아직 여름이 있어.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봄의 고시엔은 이른 봄 그 자체다.

_ 봄의 소리 중 - P126

그렇게 말하며 회사의 새 규정을 슬쩍 어기고 이제까지처럼 일을 계속하는 장년층도 자주 본다. 물은 마시지 말라고 훈련받은 아저씨나 아줌마는 갑자기 수도꼭지의 철사를 느슨하게 풀어줘봤자 어떻게 입을 대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 나라의 번영은 ‘불건전한 노동 방식‘이 낳은 산물이다. 서구인이 혀를 내두르며 기막혀 할 만큼 피학적으로 열심히 일한 끝에 얻은 성과가, 좁은 국토와 빈곤한 자원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고품질 생산물이었다. ‘근면함‘이라는 유일한 장점을 빼앗겨도우리가 매력적이려면……… 음, 어디 보자………… 역시 ‘웃는 얼굴‘일까요?

_ 우리들의 청춘 중 - P134

지방 대회의 그라운드를 달리는 소년들 대부분은 앞으로 인생에서 야구와 뒤섞일 일이 없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더더욱 밝고 눈부신 걸까. 매미가 그렇게 큰 소리로 울 수 있는 이유는 여름 한철의 생이기 때문이다. 자, 청춘을 제대로 끝내라.

_ 우리들의 총춘 중 - P136

태양의 중심 온도는 1500만도. 강한 빛을 발하며 웃는 사람은 마찬가지의 열량으로 화를 내고 분해하기도 한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체념하지 못한다. 분한 마음을 달래지 못한다. 엄청난 에너지다. 사람은 나이와 함께 ‘둥글어진다‘고 하지만, 그게 아니라 대부분은 그저 각을 세우는 게 피곤해질 뿐이다.

_ 태양의 중심 온도 중 - P147

휴대전화 주소록에는 도쿄에 사는 사람의 이름이 잔뜩 저장되어 있는데도 이럴 때 전화를 걸 만한 상대가 거의 떠오르지 않았다. 일 문제를 해결해 줄 좁은 세대 사이에서의 관계에는 부족함이 없지만 ‘인생 문제‘를 마음 편히 이야기할 수 있는 세로축의 관계는 부족하다.

인연이란 묘한 것 중 - P152

표면상 완력에 기대는 것을 금지해도 인간은 폭력성으로부터 해방되지 않는다. 그에 대한 반동처럼 다 큰 어른이 온갖 방법으로 남의 생활이나 마음에 너덜너덜한 상처를 낸다. 그것도 많은 경우 자각조차 없이 폭력은 대체로 ‘정의‘라는 주관과손을 맞잡고 있으므로.
사랑과 폭력의 경계 역시 지극히 모호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받아들이는 사람이 민감하게 느끼는 것이 폭력, 여간해서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애정일까. 그런 면에서도 "애정이 뒷받침되어 있었다"라고 많은 당사자가 이야기하는 호시노씨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에는 실로 엄청난 열량이 필요했음이 틀림없다.

_ 사랑과 폭력 중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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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도 3번의 기회가 있다는데 니시카와 미와 산문집 3
니시카와 미와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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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람만이 먼 곳으로 갈 수 있다.

신은 하늘에서 내려와주지 않는다.
사람이 손을 잡아끌어 데려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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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ny 2022-08-23 1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좋은 구절이네요
 
내성적인 여행자
정여울 지음 / 해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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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유럽의 어느 도시를 걷고 싶어지게 한다. 마음이 울쩍할 때, 문학속의 이야기가 있는, 예술가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그 장소에 한 명의 방랑자 되어보는 그런 여행자이고 싶다. 몇달전 강병융 선생의 <도시를 걷는 문장들>을 읽었고, 읽다 중단한 이병한 선생의 <유라시아 견문3>을 다시 읽을 예정이다.

이 책은 관광가이드가 아니라, 그 ˝장소˝에서 무엇을 느끼고 호흡하고 남겼으면 하는 지극 개인적인 여행기이지만, 공감지수가 높다는 정에서 여행에세이로서 선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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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그림 엄마
한지혜 지음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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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정혜는 혼자 아등바등하던 삶의 어려움을 나누는 게 결혼이라고 생각했지 다른 삶의 고단마저 없게될 수도 있는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_ 누가 정혜를 죽였나 중 - P152

"그래, 너는 네 팔자대로 살아. 인연이란 거 다 따로있어."

_ 누가 정혜를 죽였나 중 - P167

친구 따라 강남은 가도 영화 따라 연애는 하면 안 된다는 걸 엄마는 몰랐다. 그저 처음에는 모든 게 영화 같았고, 그래서 황홀하기만 했다.

_ 물 그림 엄마 중 - P217

엄마가 사라지는 모습이 한 방울의 물이 온 우주로 흩어져서 사라지는 모습을 닮았다면 태동은 한 방울의 물이 온 세상을 적시는 그런 느낌이었다. 우리의 삶이란 결국 물방울로 태어나 물방울로 흩어지는 건가. 하나의 물방울이 다른 물방울을 만나 시내가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되어 흐르다가 다시 저 홀로의 몸으로 구름이 되었다가 누군가는 빗방울이 되고 누군가는 이슬이 되어 저마다의 땅에 닿듯 그렇게 돌아오는 것일까.

_ 물 그림 엄마 중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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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그림 엄마
한지혜 지음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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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밖에 위할 줄 몰랐다. 우리를 키우는 동안에도 우리를 돌봐 주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돌봐야 하는 사람이었다. 다음 세상에 다시 만나자 할 만큼 애틋한 사람이 아니라 이번 생으로도 충분히 버겁고 힘든 인연이었다. 엄마는 그런데 환생이라니,

_ 환생 중 - P12

화병이란 게 그런 건가 봐요. 먹어도 답답하고 안 먹어도 답답하고, 가슴에 돌덩이 얹은 것처럼 무겁더니 그게 다 울음이었나 봐요. 한참을 목 놓아 울고 난 다음에 느꼈던 그 가볍고 개운한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_ 함께 춤을 추어요 중 - P39

"그런데 말입니다. 인생의 계기라는 건 아주 사소한겁니다."

_ 함께 춤을 추어요 중 - P46

저희가 제시하는 솔루션이라는 게 간단해 보이지만, 실은 간단하기도 합니다, 제삼자나 다름없는 카메라를 통해 본인들도 비로소 그 시선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게 하는 거죠. 카메라는 아주 소소한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소소한 매개체가 없어서 갈등을풀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저희는 그런 분들에게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그렇지만 저희가 알려 드리는 해결책이 모두에게 통할 수 없다는 ‘괜찮아‘님의 의견에 저도 깊이 공감합니다."

_ 함께 춤을 추어요 중 - P47

바람피우는 남자들은 애초에 싹을 잘라서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주위에서는 말했지만 사랑은 상대를 지배하는 게 아니라 내버려 두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가 밖에서 만나는 이가 여자가 아니라 엄마를 대신할 존재일 뿐이라는 걸 알았거든요.

_ 함께 춤을 추어요 중 - P58

오직 엄마의 고객인 노인들만 현관문을 열 수 있었다. 그것을 알고 나니 문을 잠글 수 없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늘도 살아 있다 외치는 노인들의 안녕 소리가 내게는 어쩌자고 여태도 살아 있느냐 묻는 저승사자의 문안인사 같았지만 알고 보니 그게 돈이라는데 어쩌겠는가.

_ 토마토를 끓이는 밤 중 - P79

행운은 어쩌다 한 번 오는데 불행은 늘 같이 온다.

_ 토마토를 끊이는 밤 중 - P96

"살아온 것도 인생이고, 살고 싶은 것도 인생이다."

_ 으라차차 할머니 중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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