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한번 더 살 수 있다면, 아마도 이모는 정방동 136-2번지, 그 함석지붕집을 찾아가겠지. 미래가 없는 두 연인이 3개월 동안살던 집. 말했다시피 그 집에서 살 때 뭐가 그렇게 좋았냐니까 빗소리가 좋았다고 이모는 대답했다.
_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중 - P89
매일 밤, 밤새 정감독의 팔을 베고 누워서는 혹시 날이 밝으면 이 사람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어 자다가 깨고, 또 자다가 깨서 얼굴을 들여다보고, 그러다가는 다시 잠들지 못하고, 또 움직이면 그가 깰까봐 꼼짝도 못하고 듣던, 그 빗소리 말이다. 바로 어제 내린 비처럼 아직도 생생한, 하지만 이제는 영영 다시 들을 수 없는 그 빗소리.
_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중 - P90
아무튼 내 배로 낳은 자식이지만, 그 속까지 내가 낳은 건 아닌 모양이야.
_ 일기예보의 기법 중 - P109
"고통이란 가장 강한 놈이 독점한다는 것을.
_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중 - P166
우리의 맹세를 잊지 말라고 너는 내 손을 깨물었지. 오 해맑은 눈동자의 내 사랑아! 오 잘 물어뜯는 어여쁜 내 사랑아! 맹세는 제대로 된 것이었지만, 물어뜯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었네
_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중 - P179
우리는 나이가 들었고, 세계는 점점 나빠지고, 그 동네는 폐허가 됐다. 이사갈 곳을 마련하지 못해집을 비워주지 못하는 세입자들만이 그 폐허를 지키고 있었다.
_ 동욱 중 - P200
나는 용서해달라는 말을 하려고 거기까지 애들을 따라간 거였는데, 철교 아래까지 가서야 나는 일방적으로 용서받을 수 있을 뿐, 내게는 용서해달라고 간청할 자격 자체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 그래서 나는 강을 등지고 서 있었던 거야. 그래서 내가 볼 수 있는게 그 담배 불빛들뿐이었던 거야.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또 위로솟구쳤다가 아래로 떨어지는, 빨간 불빛들, 남편이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_ 동욱 중 - P202
어쩌면 속죄와 정화의 연소일지도 모를, 외로운 불. 이제 그 불은 내 안에서, 관계의 불이 되어, 나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내가 죽는 순간까지도 그 불은 꺼지지 않으리라. 거기에 비하면 15년이란 얼마나 짧은 시간일까!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_ 동욱 중 - P204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번뿐이리라. 한 번뿐인 인생 앞에서 도덕은 무엇이며, 또 윤리란 무엇일까?
_ 우는 시늉을 하네 중 - P225
"영범, 타인의 진심이라는 건 꽤 부담스러운 거야. 원치 않는 사람에게는 무거운 사슬이기도 해.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진심이라는 이름으로 그런 사슬을 채우는 건 옳지 않아."
_ 우는 시늉을 하네 중 - P227
행복은 자주 우리 바깥에 존재한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하지만고통은 우리 안에만 존재한다. 우리가 그걸 공처럼 가지고 노는 일은, 그러므로 절대로 불가능하다. 만약 실제로 그가 코끼리에게 갑자기 그 공을 던졌다면, 코끼리는 그 자리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곤충들은 그렇게 죽지 않겠지만, 적어도 말할 줄 아는 코끼리라면 그렇겠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죽으니까.
_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중 - P302
. 커츠가 마지막으로 알게 되는 건 세상의 모든 악의 근원이자, 암흑의 핵심이 자기 안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_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가지 즐거움 중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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