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르미도르 반동은 공포정치를 끝장내지 못한 대신 혁명을 끝장냈다. 곧바로 자코뱅파를 색출해 숙청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1797년공화국 프랑스가 치른 최초의 자유선거에서 다수의 왕당파가 의회로 복귀하며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이처럼 통제될 수 없는 혼란 속에서 주도권을 잡은 것은 결국 군대였다._ 테르미도르 반동 중 - P604
죽산 조봉암을 일러 ‘잃어버린 진보의 꿈‘이라고 말한다. 만약 그가 시대의 순교자가 되어 죽지 않고 살아서4·19 혁명을 볼 수 있었다면, 1950년대부터 진보 정치의 실험이 시작됐다면, 한국의 민주화는 ‘운동에 의한 정치‘가 아니라 정당정치의 발전으로 나타났을 것이다._ 잃어버린 진보의 꿈 중 - P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