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야기 한국 근대 문학 기행
김남일 지음 / 학고재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일화친조약이 1854 년이고, 조일수호조규는 1876년이다.
메이지 유신이 1868년이고, 갑오개혁은 1894년이다. 그 시차가 고스란히 문명개화의 시차였다. 그런데 이때의 문명개화란사회진화론에 입각한 약육강식을 정당화하는 내용이었다. 서구에 비겨 약자였던 일본은 그 문명개화를 일찍 받아들여 이제조선에 대해 강자로서 우뚝 설 수 있게 되었다.

_ 신문관, 최남선의 근대 중 - P60

훗날 연구자 박진영은 그 최남선이야말로 이 땅에서 처음으로 전문성과 기획력을 갖추고등장한 번역가요 편집자임에 틀림없다고 장담한다. 그리고 그때의 번역과 편집은 단순히 바다 건너 일본의 그것을 그대로 복사해내는 일을 충분히 넘어선다고 말한다.

_ 신문관, 최남선의 근대 중 - P64

어쨌거나 나쓰메 소세키는 한국 작가들에게도 적잖이 영향을 미쳤다. 홍명희는 동경 유학 시절 ‘하여간 그때의 일본 문단의 독보였다는 그의 작품을 거의 다 읽었다. 이광수도 마찬가지였는데, 다만 그가 읽은 『도련님이니미니 『산시로』니 『문학론』이니 하는 책들은 다 홍명희가 사서 건네준 것들이었다. 가난한 그는 겨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만 제 돈으로 살 수 있었다. 심훈은 아직 심대섭이던 시절 흑석동 제집 따뜻한 방에 드러누워 겨우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었다. 하루는 일기에 "참 하목 선생은 박학광식한 사람이다.

_ 한국이 사라진 날 중 - P80

무엇보다 말이 문제였다. 도무지 서울말을 모르니 입을 열기가 두려웠다. 조선 팔도에서 두루 유학생들이 왔기에, 특히 남쪽 한라산 밑에서 온 학생하고 북쪽 두만강 유역에서 온 학생은 거의 외국 사람같이 서로 말이 통하지 못했다.

_ 서울로 가는 길 중 - P96

따지고 보면 안국동 일대가 서울의 모든 문화와 예술 사조의발상지였을지 모른다. 대개의 책방, 출판사, 인쇄소가 거의 그쪽 길가에 있었다.

_ 서울로 가는 길 중 - P97

‘지금 이러할 때 앓는다는 것은 불행을 넘어 하나의 죄악이다.‘

_ 무정의 무대 서울 - P110

옛것은 쇠하고, 시대는 변한다.
새 생명은 이 폐허에서 피어난다.

_ 문학의 봄 중 - P1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