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의 인기작이었던 이 소설은 상징적 차원에서 서울을 일종의 절대적인 중심으로 재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한 셈이었다. <무진기행>은일견 맹목적으로 보이는 서울을 향한 동경을 정서적·문화적으로 정당화하는 기제가 되어 서울과 지방 간의 상징적 위계질서를 만들어냈다. 시골에 남은 사람과 서울로 떠난 사람 모두가 공유했던 이 전도된 향수병‘의 긴 행렬 끝에 남는 것은, 사람들이 주고받는 상처와 서울중심주의의 강화일 것이다. _ 서울이라는 새로운 고향 중 - P67

서울 하늘 아래 저 수많은 불빛 중에 왜 내 방의 불빛 하나는 없는가하는 탄식은 집 없이 떠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보았음직한 탄식이다. 이 연보에서 그는 "자랑스런 서울 시민은 내 집 한 칸은 지닐 수 있어야 이 위대한 도시의 시민된 영광이 더욱 더 확고한 보장을 받는다" 는 신념을 ‘신앙‘에 비유하고, 그 신념을 이룩해줄 ‘서울의 집‘을 "신전"이라 표현하기까지 한다. "이 자랑스런 도시 서울에 내 집 한 칸을 지니려는 신앙 속에서 나의 20대와 30대는 온갖 기구와 봉사를 다 바쳐 온 느낌이 든다"는 소설가의 고백은 자조적인 어조를 풍긴다. _ 도시난민, 판자촌과 골방에서 절망하다 중 - P133

1960년대 서울의 거리는 합법적으로 지어진 건물이나 주택만으로이루어져 있지 않았다. 도시로 몰려든 빈민들과 그들이 지은 무허가 불량주택들도 서울의 경관을 결정하고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아니, 오히려 한국전쟁 이후 형성된 판자촌들이야말로 이 시기 서울의 가장 특징적인 경관이었다고 할 수 있다. 건축가의 의도하에 계획적으로 지어진 건물만이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듯이, 이 시기 판잣집들도 당시에만 가능했던 특징적인 외관을 노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삼각의 집>에서 철거 장면을 보고 "좋은 소재라도 얻었다는 듯이카메라를 꺼내 이리저리 핀트를 맞추던" 사진가 친구는, 이 시기 청계천에 줄지어 늘어서 있던 판잣집 사진을 찍었던 일본인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桑原史成를 떠올리게 만든다." 천변이나 산비탈에 늘어선 서울의 판잣집 풍경은 일본인 사진가의 눈에도, 국제적인 감각을 가진 것으로 설정된 소설 속 사진가의 눈에도 "한국적인 것" 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_ 도시난민, 판자촌과 골방에서 절망하다 중 - P140

1960년대까지 서울 시민 상당수가 사실상 빈민에 가까웠던 만큼, 빈민가의 풍경이 특별한 사회 문제로 부상할 수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 소설의 서울 재현에서 특이한 것은, ‘방’과 ‘집‘을 절망의 장소로 다루는 동시에, 빈민가 판자촌을 고향과 같은 애착을 느끼고 삶의 건강성을 발견할 수 있는 장소로도 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_ 도시 난민, 판자촌과 골방에서 절망하다 중 - P148

서울을 자유와 해방감을 안겨줄 가능성의 공간으로 상상한다는 것은, 도시 공간의 현재에 욕망을 투사시킨다는 의미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숨겨진 미래의 가능성을 함께 읽어내는 것을 포함한다. 가능성이란 현재에 실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은폐되어 잠재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문학 텍스트가 현재의 도시 경관에서 은폐되어 있는 미래의 가능성을 읽어내는 작업은, 현재의 핵심을 꿰뚫고 미래를 구상하는 작업과 관련되어 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소설이 최인훈의 <크리스마스 캐럴> 연작의 마지막 다섯 번째 작품이다. _ 서울의 변화를 예감하고 애착을 느끼기 시작하다 중 - P175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쎄인트saint 2021-12-16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21 ‘달인’ 축하드립니다~!!

mailbird 2021-12-16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달인이 무엇인지 잘모르지만...선정되었다니 기분은 좋아요~

서니데이 2021-12-16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ailbird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합니다.
행복한 연말과 좋은 하루 되세요.^^

mailbird 2021-12-16 1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다소 어리둥절 하지만 가문의 영광같은 거 같아요~ 서니데이님도 축하드려요

얄라알라 2021-12-18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ailbird님 조금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mailbird 2021-12-18 17: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여러 분들이 축하해주시니 약간 쑥스럽기도 합니다 ㅎ 즐거운 주말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