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상)을 다시 읽다가 또 감동받았다. 내용이 훤한 소설을 다시 읽으려니..미리부터 감동와 슬픔이 준비되는 듯하다. 첫 페이지를 읽다가 갑자기 노트를 찾았다. 무언가를 끄적이다 남은 커다란 대학노트가 하나 보인다. 끄적이던 걸 부욱- 찢어버리고 새 노트로 변신을 시켰다. 그리고 첫 페이지를 따라 적어봤다.
1. 할머니의 집으로 (였던가...암튼..)
우리는 마지막 역에서 내렸다. 엄마는 눈이 빨갛다. 우리는 양쪽에서 짐을 들었다. 엄마는 가운데서 짐을 들었다. 아빠의 큰사전이 너무 컸다...(였던가..암튼..)
몇 줄 적다보니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이럴땐 잠시 다른 일을 해야한다. 걸레를 들고 약장 정리를 해본다. 철마다 하는 감사가 요새는 분위기가 험악해서인지 다달이 나온다. 아마 추석 지나면 또 나오겠지. 추석 전까지는 재고약의 유효기간도 죄다 새로 봐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한다. 여름동안 쌓였던 먼지가 제법 된다.
이런 젠장. 너무 흥분했나보다. 요즘 내가 푸욱 빠져서 보는 거의 유일하게 보는 TV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 시간을 놓쳤다. 아..오늘 잼있는 거 할텐데..드라마 하는 40분 정도를 완전 까먹고 딴짓을 하다니. 내가 흥분을 많이 하긴 했나보다. 그래도 어제 예고편은 봤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직원언니 통화소리가 들린다. 맥주 약속이다. 꺅! 나도 끼워줘욧!!
부리나케 가게 문을 닫고 직원언니 친구네 가게에 셋이 모였다. 캔맥주에 후라이드와 수다, 수다, 수다. 셋이서 후라이드를 하나 다 못 먹고 절반이나 남겼다. 다들 저녁도 안 먹었는데..이런 작은 위장들을 봤나.
맥주 한 캔에 흥분된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집에 가서 후딱 필사해야지. 집에 가는 길에 생각했다. 씻고 내 방에 들어와 가방을 열었다. 이런 젠장. 엉뚱한 책을 들고 왔다. 오늘 도착한 <이중섭을 훔치다>가 가방에서 나온다. 흥분하면 덜렁거리는 성격이 바로 표난다. 에라. 내일 출근해서 필사를 시작하고 오늘은 <이중섭을 훔치다>를 읽어야겠다. 이웃 알라디너의 방에서 본 멋진 책이어서 기대가 크다.
친구에게 필사를 하는 이유, 에 대해서 들었지만 나는 왠지 하기 싫었다. 귀찮기도 했고, 그렇게까지 책에 애착이 가지 않았다. 김훈의 책을 좋아하고, 하루키의 책을 좋아하지만, 필사까지는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10월에 출간될 어느 책'을 첫 필사본으로 생각하고 미리부터 기다리고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오늘 아침 갑자기 왜 이 책이 눈에 들어온 걸까. 루카스와 클라우스는 왜 내 마음에 손톱을 박고 안겨 있는걸까. 모를 일이다. 필사를 마치면 이유를 알게 될런지.
으악..생각과 실지는 많이 다르구나..
할머니 집에 가다
우리는 대도시에서 왔다. 밤새 여행한 것이다. 엄마는 눈이 빨개졌다. 엄마는 커다란 골판지 상자를 들었고, 우리는 각자 작은 옷가방을 하나씩 들었다. 아버지의 대사전은 너무 무거워서 우리 둘이 번갈아가며 들었다.
우리는 한참 걸었다. 할머니 집은 역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마을의 끝에 있다. 거기에는 기차도, 버스도, 자동차도 없다. 군인 트럭들만 오고 갈 뿐이다.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거의 없어서, 마을은 무척 조용하다. 우리는 우리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말없이 걸었다. 엄마는 우리들 사이 한가운데에서 걸었다. (p 1)
으음...근데, 왜 엔터키를 눌렀는데 중간에 한 칸이 뻥 비는거지..뭔가 조정하는게 없나..글 모양이 이상한데..으음..알라딘에서 직접 쓰면 엔터키가 이상하게 먹히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