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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드 1 - 가난한 성자들 ㅣ 조드 1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2월
평점 :
1.
김형수의 소설 <조드>는 우리 말로 쓰여졌지만 몽골어로 읽는 듯한 착각에 매번 빠지게 된다.
그의 은유 때문일 것이다.
타타르의 권세는 썩어도 아름드리인지라...아무리 위험을 경고해도 듣는 귀가 없다. 도대체 늑대 앞의 염소 새끼들처럼 높은 데만 기어올라 어쩔 셈이니 한심스럽기만 했다. p.37
소뿔 같은 초승달 아래, 말똥 같은 보름달 아래, 검은 조드 하얀 조드가 다 모이네. 하늘의 색깔이 잿빛이 되면 늦으리. p.84
우리는 서로 지문도 보여줬네
나의 운명을 엿본 네게, 너의 운명을 보여준 내게
양의 복사뼈가 닳고 닳은 후 늑대들 속에서 또 만났구나
헤를렌 강 얼음도 꺼지지 않겠지
눈에 불이 있고 뺨에 빛이 있는 친구
멋대로 가는 세파에도 무릎 꿇지 말기를
거칠고 험한 추위에도
마음의 성에가 끼어 흐려지지 않기를 p.63
은유에 한 사람의 문화적 체취가 묻는다는 걸 이해했다. 은유는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공히 이해를 해야 알아듣는 은근한 표현이라는 걸 알았다. 외국의 정서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 은유는 어떤 식으로 전달될까. 작가가 외국의 유명한 역사 속 인물인 칭기스칸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려고 했을 때 특히 고심한 부분이지 않을까.
외국 문물을 모르고 외국어만 이해한 채로 외국인과 대화할 때 난처한 상황에 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몽골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절에 속하는 행동인데 몽골에서 같은 행동을 취했을 때 무례한 행동, 내지는 시비를 거는 행동으로 오인된다면 그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닥치는 순간마다 하나씩 배워가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달리 조금 미묘한 차이는 있지만 우리 나라와 비슷한 정서의 은유도 역시나 존재할 것이다. 생경한 표현이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되는 그런 소소한 은유 말이다. 작가는 그런 은유를 많이도 찾아냈다. 몽골을 숱하게 오가며 몸으로 부딪히고 몽골에 대한 생각을 오래도록 잡고 있지 않으면 결코 찾아내지 못할 숨은 들꽃같은 은유들을.
그래서 이 소설은 한국어로 쓰여졌지만 더 몽골스럽고, 다음에 몽골어로 번역될 경우 (외국어가 가질 수 밖에 없는) 어색함이 탈색되어 마치 몽골 작가가 쓴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한국어로 쓰여진 몽골 소설을, 한국적인 감성까지 고스란히 살려진 소설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접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평소 나와 다른 가치관, 나와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의 세계에 대해 알아가는데 큰 재미를 느끼는 나에게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었다. 외국인이 자국의 생활권 내에 해당되는 소설을 쓸 경우 자국의 독자들에겐 당연히 이해되는 부분인데 문화적으로 동떨어진 타국의 독자에게는 어려운 부분이 되는 요소가 분명 존재한다. 이런 부분을 접하면 난 참지 못하고 읽던 책을 덮고 인터넷을 뒤지거나 참고 서적을 뒤지는 등 난리법석을 떨어서 기어이 이해를 하고야 만다. 그래야 다음 페이지로 진도를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그런 부분이 없진 않으나 최소한의 필요장치 정도로 그 부분을 남겨놓아서 독자에게 찾는 즐거움을 주고 있다.
몽골의 전통 집인 겔(게르)는 인터넷 뒤지면 금방 그 선연한 모습을 사진으로 볼 수 있다. 나는 그 외에 타르박 쥐도 뒤졌고 늑대의 사냥도 뒤졌고, 마두금도 뒤져봤다.
2.
소설의 내용으로 들어가보자.
소설은 젊은 테무진을 소재로 13세기 아시아의 중세를 그리고 있다. 작가는 아시아에는 마치 없는 듯 취급받는 중세가 궁금했고 그 시작점을 테무진과 그의 안다(벗), 그리고 그의 가족들에게서 찾고 있다.
사람은 위기 속에서 그 본질이 드러난다. 위기에서 자신을 먼저 챙기는 사람, 타인을 해하는 사람,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 등이 있겠다. 첫 위기에서는 자신을 먼저 챙겼다가 이내 자책하고 다음 번 위기에선 타인까지 챙기는 사람, 첫 위기에 타인을 챙겼다가 쓸데없는 짓이다 생각하고 다음 번 위기에선 자신만을 챙기는 사람 등도 있겠다. 인간의 삶에서 위기는 끊임없이 다가온다. 산 너머 산처럼 매순간 다가오는 위기는 지난 번의 경험을 발판으로 넘기기 마련이다. 테무진 역시 아버지 예수게이의 죽음으로 시작된 위기가 끊임없이 강도를 올려서 목숨을 수십 번 위협 당하고 또 당한다. 오랜 위기 속에서도 도와주는 이 없는 현실에 서서히 지쳐가는 테무진은 그러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인간성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벗이여, 홀로 외롭겠구나"
서서히 닫혀가던 테무진의 마음은 한 마디 위로로 다가온 또래 보오르추로 인해 순식간에 봄눈 녹듯 녹는다. 오래도록 지친 속에서도 보석을 알아보는 마음의 눈을 가졌다는 것. 진정한 벗은, 진실은, 가장 힘든 순간에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면 위기 속에서도 '포기'라는 마음을 품지 않아야한다는 것을 테무진은 그 순간 알았다. 위기 속에서도 하늘의 뜻을 찾으려는 그의 심성을 필두로 소설은 이후에도 있을 여러 번의 위기 상황에서 테무진의 심적 성장을 보여준다. 테무진은 서서히 대지를 닮은 인간으로 자란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조드' 역시 몽골에서 살기 위해서 겪을 수 밖에 없는 위기의 대표격이다. 위도상 북방에 속하는 나라의 특성으로 인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조드는 동물에게도 인간에게도 견디기 힘든 위기 상황이다. 그러나 역으로 이 위기 상황을 견뎌내기 위해 인간은 자연에 순응할 수 밖에, 그리고 뭉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또한 알게 된다. 쿠리엔을 형성하는 이유의 하나이기도 한 조드는 테무진을 칭기스칸으로 키워내는데 한 몫을 한다.
3.
책의 소제목인 가난한 성자, 에 대한 언급은 책의 뒷부분에 나온다. 이 부분이 바로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묘미인데 이 부분을 읽고나면 인간의 향기는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듯도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