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으다 보니 이덕형 샘의 책이 하나 둘 늘어났다. 맨 처음 가지게 된 책은 생일 선물로 친구에게 받은 <러시아 문화예술의 천년>이었고 이 책으로 인해 '러시아'라는 나라에 관심이 생겼다. 아니, 러시아에도 문화예술이? 라고 생각할 정도로 러시아에 대해 무지한 나는 도스토예프스키가 러시아 태생인 줄도 미처 생각지 못했다. 전문적인 영역을 아주 체계적으로 서술하는 기법의 이덕형 샘 덕분에 러시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후에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책까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책을 선물한 친구의 고전 읽기 부추김이 없었다면.
얼마 전부터 고전을 읽기 시작하는 친구 덕분에 어렸을 적에나 읽었던 고전에 대해 다시금 관심이 생겼다. 그러나 어려운 고전에의 도전은 마음 먹기 쉽지 않았고 친구의 독서감상을 듣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입문서의 경우 초보자가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도대체 내가 뭘 읽고 있는지도 모를 경우가 많다. 대충 읽었다면 어쩔 수 없지만 매번 꼼꼼하게 읽었는데도 혼란스럽다면 그건 저자의 정리법이 두서없는 경우일 수도 있다. 이덕형 샘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저자의 정리법이 탁월하다는 데 있다. 이 책을 읽고나서야 나는 한국인에게 지리적으로 분명 유럽보다도 가까운 나라인 러시아에 대해, 러시아의 문학에 대해, 러시아의 종교에 대해, 이렇다 할 생각 없이 시간을 보냈구나, 라는 자각이 생겼다. 얼마 전 <이콘과 아방가르드>를 통해 러시아 정교에 대한 부분을 읽긴 했지만 비종교인에겐 너무 전문적인 책이어서 러시아 정교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진 않았다. 그런 의미로 이 책은 러시아에 대해, 러시아 문학에 대해, 러시아 정치에 대해, 러시아 문화에 대해, 알고자 하는 초보자에게 아주 좋은 입문서이다. 이 책의 이름이다.
1.
이 책은 도스토예프스키가 학업 및 창작을 한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사적 의미를 짚으면서 시작된다.
1703년 표트르 대제의 로고스를 체현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러시아 정신적 삶의 위엄'이자 '세계 문명 속의 독특한 현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매우 복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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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 어귀의 황량한 늪지에 건설된 이 '성 베드로의 도시'는 정교적 러시아의 영혼이 유럽의 모더니티와 착종된 결과였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이브리드적인 이종접합의 스핑크스 도시였던 것이다.
p. 11
나는 1703년을 이렇게 정리했다. 김연수의 최근작인 <원더보이>에서 힌트를 얻었다고나 할까.1234 숫자를 가나다라 와 매치를 시키는 방법인데 여기서 소개하면 소설이 재미없을까봐 소개안하고 패스~
검은 산에 걸린 창백한 달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표트르 대제가 건설한 해.
아주 운치가 있는 정리법이다. 암튼 백야의 도시, 그러니까 창백한 달의 도시, 성 베드로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703년에 탄생했고 태생부터 판타스마고리아적 의미를 벗어날 수 없었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유적이 그 나라에 있을 때는 역사적 의의를 가지지만 그런 유적이 영 딴판인, 게다가 아주 정교적인 나라에 어느 날 하루 아침에 세워진다면 그걸 보는 이국인이 얼마나 의아할 것인가. 그걸 보는 러시아 인은 또 얼마나 희박하기 그지없는 역사적 뿌리에 어이없을 것인가. 원로원 광장에 세워진 팔코네의 (표트르 대제의) 청동 기마상을 보면서 푸슈킨은 이 도시의 비현실적인 광기를 읽었고, 도스토예프스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실의 주제를 '환상적인 형상'으로 변형시키는 상상의 힘을 발견한다. 이 상상의 힘이 바로 판타스마고리아의 원천이 된다.

<p.52 팔코네의 표트르 대제 청동 기마상>
환영이라는 뜻의 '판타스마'에서 유래하는 판타스마고리아의 원래 의미는 18세기 말 프랑스에서 발명된 환등기의 투사 이미지, 즉 환(등)상을 지칭한다. 하지만 이 판타스마고리아의 개념은 발터 벤야민에 의해 보다 폭넓은 외연을 얻을 수 있었다.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모더니티가 가장 잘 구현된 장소를 '메트로폴리스'로 간주하는 발터 벤야민은 19세기 모더니티의 수도를 파리로 보았고, 이 모더니티의 수도를 구성하는 핵심 거점을 '파사주'라는 아케이드로 파악했다. 이 아케이드는 사용가치보다 교환가치가 우선시되는 최신 유행 상품을 파는 장소였다. 이곳은 상품 자본주의의 신전이자 성소였으며 상품은 성물이었다.
그러나 상품은 유행에 의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동일 반복과 욕망의 산물이었고, 벤야민은 '파사젠베르크'에서 이것을 판타스마고리아라고 불렀다.
p. 18
2.
판타스마고리아의 도시로 1837년 5월, 표트르 대제가 세운 지 104년이 흐른 뒤, 도스토예프스키 부자가 간다. 황제 차르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있던 공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역시나 1837년의 소개는 이렇게.
고요한 안개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도스트예프스키 부자가 입성한 해.
도스토예프스키가 장차 공부할
공병학교 전체의 분위기는 침울하고 엄격했으며 왠지모를 음산한 분위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미하일로프스키 성채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과도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 대천사 미하일 축일에 상량식을 거행한 미하일로프스키 성채는 예카테리나 2세의 뒤를 이은 파벨 1세가 거주할 목적으로 여름 궁전 자리에 지은 건물이었다. 1797년 건축을 시작해서 1800년 11월 8일에 준공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이 성채에서 1801년 파벨 1세가 암살되었는데, 궁중에서 벌어진 암살 음모에 파벨 1세의 법적 상속자인 알렉산드르 1세가 연루되었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아버지를 죽인 혐의와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알렉산드르 1세는 결국 스물세 살의 나이에 러시아 황제의 제위에 올랐다. 하지만 그에게는 '왕관을 쓴 햄릿' '유럽의 스핑크스' '수수께끼의 차르'라는 신비스러운 별명이 항상 따라다녔다. 이후 황실 가족들은 에르미타주 박물관 자리의 겨울 궁전으로 돌아갔고, 이 비극적인 성채는 폐가처럼 버려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러시아 제국 정부는 1819년부터 그 불길한 성채의 건물 내부를 수리하여 공병학교의 기숙사와 교실로 사용하게 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폰탄카 샛강이 내려다보이는 '2층 모퉁이 구석방'에 자리를 잡았다.
...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의 집과 작품의 주인공들이 거주하는 막다른 공간의 전조가 미하일로프스키 성채의 공병학교 구석방에서부터 시작된다.
p.58

<p.60 폰탄카강변의 미하일로프스키 성채>

<p.26 공병학교 인근의 지도>
미하일로프스키 성채, 즉 공병학교의 음울한 색채를 한껏 즐긴 후, 도스토예프스키의 학업과 이후의 창작 과정을 살펴봐야겠다.
이덕형 샘 책, 총 6권 모았다.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