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퇴근을 했다.
평소 퇴근 시간보다 이른 시간이다. 일요일에 같이 개문한 다른 약국에 전화로 부탁을 하고, 인근 병원에 전화로 양해를 구해놓고 폐문했다. 징검다리로 계속 병가를 낸 직원으로 인해 덩달아 나의 몸 상태마저 말이 아니다. 2인 근무 직종의 애환이라고나 할까. ㅠ.ㅠ 최대한 버티고 버텼지만 오후 4시를 넘기면서 체력의 한계가 느껴졌다. 직업상 평소에 늘 환자들의 기침 포말과 접하기에 몇 년 전 신종플루 대유행 시절도 무사히 넘어갔고, 일반 감기는 오다가도 저 멀리 달아나 버리지만 체력이 다운된 상황에서는 그렇지도 않다는 걸 알기에 더욱 조심스럽다. 약을 주는 사람이 멀쩡해야 약을 타는 사람이 안심하는 부분도 있기에 평소에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 신경을 쓰는 편이니 더욱 그러하다. 다음 날을 위해 몸관리를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일찍 퇴근해야 하는 것이다. 오후 5시가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일찍은 아닐 수도 있지만, 내게는 마음 불편한 이른 퇴근이다.
설날 즈음부터 시작된 독감은 이제 대유행 전단계까지 가는 듯하다. 예년과 다른 점은 독감에 걸리는 아이의 태반이 영유아라는 점이다. 사분의 일 정도는 초등학교 저학년이고, 고작 15퍼센트 안쪽으로 성인이 걸리는 추세다. 아이들은 주로 (해열제를 먹어도 쉬이 떨어지는 않는) 고열 증상이고 어른의 경우는 견딜 수 없이 살이 아픈, 지독한 몸살을 동반한 고열이 많은 듯하다. 검사 결과 음성으로 나왔지만 고열을 동반한 심각한 증상이 이어지는 아이들은 비급여로 타미플루(독감 치료제)를 처방받았고 다행히 약을 먹고 대부분 경과가 호전되었다. 10세 전후의 아이들이 처방받는 경우엔 주의력 결핍 증상을 설명해야한다. 오래 전 일이지만 일본에서 이 약을 먹은 십대가 아파트에서 떨어지는 사례가 있은 후부터 10세 전후의 아이 부모에게는 반드시 설명을 하고 약을 준다. 간혹 이 설명에 너무 놀라하는 엄마 때문에 아이도 덩달아 불안해하는 경우가 있어서 엄마의 마음을 다독거리는 것까지 복약지도에 속하는 부분이다. 캅셀을 먹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의 경우는 가루약이 너무 써 뱉어내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소량의 음료수나 요플레 등에 타서 먹이는 등 다양한 방법에 대한 이야기도 어머니들에게 요긴한 부분이라 긴 설명을 요한다.
약국 직원도 독감과 비슷한 증상을 보여 병원에 보냈으나 조금 다른 질환으로 진단을 받았다. 독감은 아니었지만 몸 상태는 그리 좋지 못해 출근과 병가를 번갈아했고 2인의 사업장이기에 나 혼자 발을 동동거리며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봄방학이어서 조카들이 캐셔과 처방전 입력을 도와주었지만 직원의 병가 상태가 오래 진행되어 나와 조카들은 점점 파김치가 되어갔다. 급기야 오늘은 튼튼하기 그지없는 작은 조카 입에서 좀 쉬고 싶다는 말이 나왔다. 마침 그 즈음에 조카 친구들이 약국에 놀러왔다. 집으로 놀러왔다가 약국 일 도와준다는 말에 약국으로 온 조카의 친구들은 조카보고 그만 일 도와주고 같이 놀자고 한다. 그렇지만!! 의리심으로 똘똘 뭉친 작은 조카는 놀지 못한다며, 이모를 도와야 된다며, 친구들보고 가라고 했다. 그 배려심에 감동받은 나는 조카의 친구들에게 짱구 이온음료를 하나씩 쏘았다. ㅋ
어찌 되었건, 일주일 가량을 하루 온종일 정신없이 뛰어다녀 살이 홀쭉해진 모습으로 퇴근을 했건 말았건, 집에 들어오니 너무 좋다!! 집의 따뜻한 온기도 좋고, 간만에 블로그에 들러 이렇게 두서없이 글을 남길 수 있는 것도 좋다. 고요한 내 시간을 이렇게 조금이라도 가질 수 있는 게 너무 좋다. 게다가 오늘은 일요일. 케이팝스타 하는 날! 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