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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5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 구매 후 생각날 때마다 한 권씩 꺼내서 보는 만화책이다. 각 권이 비닐포장이 되어 있는데, 일부러 뜯지 않고 놔둔다. 뜯는 즐거움을 처음 책을 보는 재미와 같이 즐기고파서.
오늘은 5권을 집어들었다. 1권에 나온 인물들이 다시 나오기도 하고 새로 등장하는 인물들도 있어 기억력 테스트 하는 느낌도 조금 든다. 이 만화책은 불혹의 나이에 일본의 신인코믹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만화가로 데뷔한 아베 야로의 작품이다. 책 날개에는 아베 야로의 인사말이 있다.
<심야식당>에는 영웅도 귀여운 아가씨도 나오지 않고, 읽어서 도움이 되는 만화도 아닙니다. 제 자신이 그런 만화를 읽고 싶어서, '알 수 있는 사람만 알아주면 되지 뭐'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하하하. 뭔가 도움을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니까 목적의식을 가지고, 부담을 느끼고 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지. ㅋㅋ 어제 읽었던 김중혁 산문 <뭐라도 되겠지>가 갑자기 생각난다. 이 책을 소개하는 오지은은 이렇게 말한다.
김중혁 씨를 여러모로 존경하고 있는데 그건 그가 내 지인 중 가장 쓸데없는 것을 열심히 생각하는 사람이고, 글 멋있다는 말보다 웃기다는 말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중략) 인생의 비밀은 쓸데없는 것과 농담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이 산문집이 나오길 고대하고 또 고대했다.
괜히 속이 시원하다. 그냥 심심해서 읽고, 그냥 궁금해서 보고, 그냥 재미있어서 보고, 그러다가 쓸데없는 공상으로 빠져들어서 혼자 히죽거리고 웃으니 참 기분이 좋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마구마구, 자유롭게 하도록 도와주는 이 책들이 황금같은 휴일에 더욱 반갑다. 게다가 오전부터 공부같은 소설 읽기를 내도록 하고 난 뒤라서 더욱더!
밤은 마법의 시간이다. 지성으로 넘치는 낮의 시간이 지나면 감성이 안개처럼 공기 중으로 퍼지는 밤의 시간이 온다. 밤에는 뱃속조차 감성적이 된다. 낮보다 배가 더 고파온다. 더 견디게 힘들어진다. 아! 아! 배고파!!! 이때 야식을 시켜먹어도 되지만 부러 옷을 입고 집을 나와, 혹은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심야식당을 한 번 찾아가보자. 심야식당은 밤 12시부터 문을 연다.
심야식당에선 아주 작은 공통점도 큰 화제가 되며, 서로 다른 차이점도 좋은 관계로 바뀔 수 있다. 식당에서 옆 사람이 맛있게 먹는 요리가 더 군침이 나는 경우를 종종 느낀다. 원고를 마감한 어느날 밤, 호타루 씨는 여느 때처럼 통조림 음식인 꽁치구이 덮밥을 주문한다. 식당 주인은 통조림의 꽁치를 데워서 깨와 김, 산초 등을 뿌려서 같이 내놓는다. 아주 따끈하게. 오늘 처음 본 사람이지만 그 사람 앞에 놓여지는 따뜻한 음식을 보면서 이치조 씨는 이렇게 말한다. "저, 저도 같은 걸로 주세요!"
먹어본 음식은 푸아그라 같은 고급음식으로 입이 단련된 이치조 씨의 혀에 색다른 느낌을 주며 그 음식을 먹는 사람에게까지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따라쟁이를 몇 번을 하다가, 따라쟁이라고 말하는 호타루 씨의 퉁박에 얼굴이 빨개지면서도 이치조 씨는 용기를 내어 호타루 씨에게 선물을 건넨다. ㅋ 미리 생일을 알아놓는 센스! 결국 둘은 결혼을 한다. 하아..이건 좀..부럽구나..
마지막에 만화가는 깨알같은 웃음을 준다. 애초에 호타루 씨에게 통조림 먹는 법을 가르쳐준건 1권부터 계속 등장하는 마유미 씨이다. 그러니까 호타루 씨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마유미 씨랑 남자랑 인연이...? 하하. 물론 그런 일은 없겠다. 남자가 반한 건 통조림 요리를 먹는 누군가가 아니라, 통조림 요리는 먹는 바로 그, 호타루 씨일테니 말이다. 툴툴거리는 마유미 씨를 바라보는 식당 주인의 표정이 또 압권이다. 식당 주인은 눈에 칼자국이 있다. 왕년에 한가닥 했다는 소리다. 입이 댓발이나 나온 마유미 씨를 불쌍하게 보지도 않고, 못마땅하게 보지도 않고, 그저 지켜봐주는 식당 주인의 그 표정을 보는 맛이 이 만화책의 즐거움 중 하나이다. 이 만화는 이런 에피소드로 가득차 있다.
나는 내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유심히 볼 때가 가끔 있다. 달마다 처방전을 들고 와 커피를 한 잔씩 마시며 나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를 즐겨하셨던 한 노인이 생각난다. 그 노인은 머리엔 중절모를 쓰셨고 불편한 다리를 보조하는 지팡이를 늘 들고 다니셨다. 아들이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이며 약국이며 다니는데 그 아들 또한 뇌졸중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다가 겨우 조금씩 걷기 시작하는 입장이다. 서로를 의지하는 부자를 지켜보면서 앞으로 그들의 모습을 얼마나 더 오래 볼 수 있으려나, 마음이 짠해지기도 했다. 노인은 각종 성인질환을 앓았지만 무엇보다도 와파린을 복용 중이셨기에 더 그랬나보다. 어느날 한 달을 건너뛰면서 노인이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며느리에게 듣게 되었고, 또 얼마 후에는 부인되시는 할머니가 불면증 약을 처방받아 오셨다. 남편 장례까지 치르고 잠이 안 와 수면제를 처방받았다는 할머니의 말에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한참을 침묵하다가 겨우 입을 열어 할머니라도 친구분들과 여기저기 다니면서 지내시면 불면에 조금 도움이 될 거에요..라고 말을 했다.
"벌써..어떻게.."
눈이 급작스레 빨개지며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걸 보면서 나는 말실수를 알았고 수습할 수 없어 그저 할머니 힘내요..만 생각했다. 그리고 속으로 나는 심야식당 주인 만큼 되기엔 아직 멀었군..
생각했다.
말보단 그윽한 눈으로 바라만줘도 좋았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