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알라디너의 페이퍼에서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되고, 작가의 작품을 알게 되고난 후 같은 책을 읽는 일이 종종 생긴다. 좀 두근거리기도 하고, 좀 긴장되기도 한다. 책을 펴면서, 그 사람이 감동받았던 지점을 지나쳐갈 때 나는 어떤 느낌이 들까, 라는 생각도 든다. 그 사람이 지나갔던 길의 궤적을 뒤따라 밟는 듯한 느낌은, 왠지모를 진한 동질감도 동반되는 듯하다.
아. 책을 읽다가 나는 문득 알았다. 처음 들어본 이름의 작가가 아니었다. 나는 언젠가 코맥 매카시의 '로드'를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았더랬다. 그래놓고 읽지 않았다. 몇 장 들춰보고선 읽지 않았다. 왜?
글쎄..왜였을까..곰곰 생각해도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 선물씩이나 받아놓고서 왜 읽지 않았던거지?
곰곰..곰곰..아! 알았다!
나는 그때 김훈의 '남한산성'에 빠져있었을 때였구나. 그래, 그 시절이면 이해가 간다. 그때는 '남한산성' 이외의 그 어떤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때였으니까. 심지어 동화책도 읽히지 않았고, 내가 아주 좋아라하는 '만화책' 류들도 읽을 수 없었지. '남한산성' 안에서 임금이 울고, 김류가 울고, 사람들이 울 때 나도 따라 울었으니까. 남한산성 안에서 그들이 하는 말, 그들이 먹는 음식..아, 그 음식엔 말(馬)도 해당이 되었다. 그들이 울면서 말죽을 끓일 때 나도 거들었고, 말죽을 퍼나를 때 나도 따라 퍼날랐다. 그렇게 일 년 이상을 '남한산성'에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절은 이제 다시 내게 오지 않으리라는 걸 안다.
책 한 권으로 그 정도까지 홀릭한다는 건, 그 책 한 권이면 족하다. 나는 아마 '남한산성' 이외의 책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아니, 나는 내어주고도 싶다. 다시 한 번, 그때처럼 책 속에 흠뻑 빠져 그들과 같이 울고 웃고 싶다. 그 가슴먹먹함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다. 그러나 그런 행복은 한 번의 생에 한 번 이상을 바라면 욕심이 될 터. 그때 '남한산성'의 그림자에 가려 읽지 못한 책 중에 '로드'가 있었구나..그래서 내가 코맥 매카시도 이제사 알았구나..
<모두 다 예쁜 말들>을 예쁜그녀를 통해 알게 된 후, 조금씩 읽고 있다. 그녀가 감동받은 지점도 이미 지나쳤다. 그 지점에서 오래도록 눈길이 머물렀다. 아주 오래. 그리고 나는 그 지점을 지나쳐, 그녀가 언급하지 않은 뒷 부분을 읽고 있다. 어느 순간, 나는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낀다. 그래서 책을 잠시 덮었다. 나는 쉬면서 예쁜 말들의 표지 사진을 바라본다. 예전에 어느 나라에서 탔던 아주 건장한 녀석이 떠올랐다. 내가 다시 갈 어느 나라에서, 다시 예쁜 말을 만나, 그들의 눈을 마주하고, 그들의 목을 쓰다듬어주고 있는 미래의 어느 날이 예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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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정말 시골 같지?
그래. 그만 자자.
있잖아?
응.
옛날 카우보이는 이렇게 지냈겠지?
그랬겠지.
여기에 얼마나 머물고 싶어?
한 100년. 그만 자자. (1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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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그곳에서 말을 타고 있는 사람에게서 카카오톡이 왔다. 넓디너른 평원 어드매쯤에서 전파가 송신되었을까. 나도 미래의 어느 날에 한국의 그녀에게 카카오톡을 보내기로 마음먹어본다. 아마 전파가 통하는 곳을 찾느라 오늘 아침의 그처럼 나도 고생을 할테지.
" 나 지금 예쁜 말 타고 있어요. 당신의 예쁜 말로 두근거려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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