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비가 오락가락한다. 조금 내리다가 그치는 듯하더니 갑자기 소나기로 변해서는 길 가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다. 소나기가 내리길래 약국문을 활짝 열어놨다. 아스팔트에 흥건한 빗물을 가르며 자동차들이 경쾌하게 스쳐 지나간다. 갑자기 여학생 둘이서 손을 잡고 약국을 뛰어들어온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었을까. 깜찍한 반바지에 시원한 티셔츠를 걸쳤는데 옷에 뭐가 덕지덕지 묻어있다.
"1회용 밴드 하나 주시구요. 그리고 소독약도..저기, 그런데 돈이..모자라서.."
한 아이의 손에는 1000원짜리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아이들의 행색이 이상해서 매대 밖으로 나가봤더니 아이들은 빗속에 엉덩방아를 찧었는지 반바지 엉덩이부분이 죄다 젖어있었고 진흙이 여기저기 묻어 엉망이었다. 무릎은 깨져서 핏물이랑 흙이랑 엉겨서 줄줄 흐르고 있었고 팔꿈치랑 손바닥에도 군데군데 상처가 보였다.
"얘들아. 우선 저기 밖에 수돗가에 가서 씻고 보자. 이리 따라와"
수돗물을 틀더니 아이들이 서로 씻겨준다. 나도 거들어서 아이들 종아리를 씻겨주다보니 멀쩡해보이는 다리에도 흙이 죄다 묻어있어 흙투성이였다. 까진 무릎에 흐르는 물을 갖다대니 시원한지 아이들이 슬며시 웃는다. 어..처방손님이 들어오신다. 두 사람의 약을 짓고 다시 나와보니 아이들이 다 씻고 엉거주춤 서 있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많이들 다친거냐고 물었더니 급작스레 내리는 비를 피하느라 뛰다가 넘어졌단다. 에고..둘이서 손 잡고 뛰다가 같이 넘어졌구나..
"자, 여기 수건. 핏물 묻어도 되니 뽀송뽀송하게 다들 닦고, 여기 의자에 앉아. 의자 젖어도 괜찮으니 앉아도 돼."
외상을 해도 되니 빨리 낫는 메디폼을 할래, 대신 이건 비싼데 엄마에게 말을 할 수 있겠니? 라고 물으니 아이들이 난감해한다. 그럼 집에 연고는 있어? 아..있구나. 그럼 이렇게 하자. 상처면을 소독할 과산화수소랑, 밴드랑만 사가자. 그래서 집에 들어갈 때까지만 임시로 상처를 감싸는거야. 집에 가서는 연고를 바르고 다시 밴드를 붙여. 알았지? 과산화수소를 상처면에 부으니 아이들이 따겁다고 신음을 하면서도 잘 참는다. 그래, 너희들은 용감한 아이들이니 잘 참는구나. 탈지면으로 상처면을 다시 닦아내고 밴드를 붙였다. 절반쯤 붙이다가 생각하니 냉장고에 샘플용으로 놔둔 상처연고가 생각났다. 아! 마침 연고가 있구나. 안되겠다. 연고를 다시 바르자. 붙였던 밴드를 살짝 떼어내니 아이들이 또 신음을 한다. 그래, 잘 참는구나. 연고를 발랐으니 금방 나을거야. 연고 위에 밴드를 다시 붙여줬다.
"자, 이제 다 했다. 너희는 지금 1000원 있구, 밴드가 대형, 일반형, 두 통을 썼으니 2000원이야. 집에 과산화수소는 있니? 그럼 이건 가져가지 말고 계산도 하지 말자. 총 2000원에 너희가 1000원을 냈으니, 이제 외상은 1000원만 남은거야. 다음에 1000원 갚으러 오면 돼. 알았지? "
아이들이 아주 예의바르게 인사를 하고 간다. 용기있게 약국을 들어설 때와는 달리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나간다. 아이들이 나간 자리를 보니 바닥은 아이들에게서 뚝뚝 떨어진 빗물이 흥건했고, 의자 위에는 물이 섞인 진흙이 군데군데 붙어있었다. 다음에 외상값을 갚으러올 때 아이들의 표정이 궁금하다.
"어이, 사이좋고 용감한 아이들, 왔어?" 라고 말을 해줘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