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란 질환은 이제 아주 보편적인 질환이 되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지자체에서 치매진단 받은 노인들에게 보조금 혜택을 줬지만 올해부터는 전국적으로 일 인당 매달 3만원선까지 혜택을 준다. 그러나 이 좋은 헤택을 받기 위해서는 신경외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아야 하고, 처방전에 치매 코드 번호가 등재되어야 하며, 해당되는 치매약이 들어가야 한다. 아리셉트 등이 대표적인 약이다.

내가 있는 이곳 시골 소도시에는 중소병원급이 3군데가 있는데 그 중 한 곳에만 신경외과 전문의가 있다. 모르고 다른 병원에서 아리셉트를 처방받아 먹게 되면 그 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유독 선한 눈매의 아들에게 이 좋은 소식을 알려줬다. 그러나 아들은 난감해 한다. 어머니가 치매신데, 그깟 보조금이 뭔 의미랴? 이런 의미의 눈빛만을 보여주며 그저 고맙지만...이라고 말을 하고 그치신다. 한 마디 덧붙이시는 말은 "우리 엄마는 그리 심한 편이 아니어서..." 이다. 어머니의 치매 질환을 애써 외면하고자 하는 아들의 마음씀이 보여서 더 이상 말을 건네지 못했다. 전문의에게서 진단을 받게 되면 정말로 그 질환이 확정적으로 되어 우리 엄마가 치매인 게 세상 천지에 까발려지는 느낌일텐데, 그 느낌이 서글퍼 아들이 거부하는데 내가 더 이상 무슨 말을 보태리.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어도 사람 마음의 상처를 토닥여주지 못한다면 그 제도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또한 사람에게는 있는 법이니까.

간만에 치매 노인의 아들이 약국을 들렀다. 음.. 실은  한동안 안 오셨지만 눈썰미가 제로인 나는 그 사실도 몰랐다. 간만에 오셨건만 나는 어제 오신 손님처럼 반가이 맞으며 처방전을 받아 들었다. 당연히 어머니 약이라 생각을 했고 처방전을 입력하는데 이름을 보니 마치맞게 이름도 여자 것이었다. "어머니가 이번에는 치매약이 아니시네요? 이번엔 기관지약이랑 천식 흡입기만 나왔네요." 내 말을 들으시고는 아드님이 울컥 하시면서 "네~ 어머니가 이제는 더이상 치매약을 드시지 않으세요." 하신다. '어머. 어머니가 많이 호전되셨어요? 어머 좋으시겠어요' 라고 운을 떼려는 순간에 잠시 침묵을 지키던 아들의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흘러나왔다.

"실은..어머니가 돌아가신 지가 벌써 두 달이 넘어 갑니다. 올 초에 돌아가셨으니까요."
"네? 어머..어쩌다가...어머님이..치매 약만 드신달 뿐 건강이 그리 나쁘진 않으셨잖아요. 어떡해요.. 아드님이 상심이 크셨겠어요.." 
"네. 치매만 있을 뿐 몸은 정정하셔서 동네 양로원도 다니고 하셨는데, 치매라고 사람들이 양로원에 못 오게 하셨어요. 계속 못 오게 하셔도 어머님이 양로원에 나가시니, 안 되겠다 싶었는지 집에까지 사람들이 와서는 당신 어머니 양로원 못 오게 하라고 고성을 지르시고 한바탕 하고 가시더군요. 어머니가 그걸 보시고 너무 충격을 받으셔서 이틀 있다가 갑작스레 운명을 달리 하셨어요. 어흑, 그리 급작스레 가시다니"
"................"
"그런 일이. 그런 못된 사람들이 어디 있어요. 지네들은 나이 안 먹나요? 지네들은 치매 안 걸린단 보장 있나요. 어떻게 자기들만 생각하고 그런 못된 짓을 할 수가..씩씩.."

한동안 말을 못 잇던 우리들은 그저 멍하니 있었고, 아저씨가 상황을 수습하면서 약을 달라 하신다. 알고보니 처방전은 아들의 것이었고, 아들의 이름은 여자 이름처럼 고운 이름이었다.

"아..네..이 흡입기는 ...그러니까...그러니까..."(너무 놀라 말도 제대로 못해, 말을 더듬고 있으려니)
"어머니 쓰시던 거랑 같네요. 어머니 쓰시던 거 어깨 너머로 봐서 대충 알 거 같애요. 어머니 쓰시던 흡입기를 이제 제가 쓰게 생겼어요. 어머니 아들이니까 같은 질환에 걸리나봐요. 하하하."

그럼요. 어머니 아들이니까요. 아침에 흡입기를 쓸 때마다 어머니와의 추억에 잠길 아들이 눈에 밟힌다. 어머니 생전에도 매일같이 안부를 묻던 아들은 이제 흡입기를 쓸 때마다 하늘에 어머님의 안부를 묻는다. 어머니. 그곳도 살 만 하지요? 어머니 닮은 아들은 어머니 쓰시던 흡입기를 이제 같이 쓰네요. 어머니 계실 때 같이 썼으면 어머니한테 사용법도 물어보고, 어머니와 사이좋게 흡입기를 쓸 수도 있었는데 말이죠. 왜 이렇게 급히 가셨대요?  

  

 <엄마 아들>

스피리바 뚜껑을  열
속뚜껑을 또 열어 캡슐을 넣고
단추를 누른다. 엄마 맞지요?
순서가 틀리면 말씀해주셔요
그러면 캡슐 안의 가루가 충진된다고 약사님이 알려줬어요
이제 우리 같이 해봐요. 엄마도 같이 해요

먼저 숨을 내쉬고
폐 속 공기를 죄다 빼내어 새처럼 가볍게
급히 스피리바를 입에 갖다대고
힘차게 빨아들여요. 후우우욱, 쭈우우우욱
폐 속 공기로 새처럼 자유로이, 폴짝 뛰면
구름 위에 엄마 손이라도 잡겠어요

자. 이제 숨을 멈춰야 해요
약물이 폐에 가득 차려면 숨을 뱉지 말고 가만히
아, 이때는 무슨 생각을 해야 참을 수 있을까요?
엄마가 양로원에서 사람들과 즐거이 노니는 생각을?
치매라고 울 엄마 쫓아내지 않고
하늘 양로원에선 고운 울 엄마가 인기 짱이겠지요!
아, 더 참을 수 없어요
스피리바를 입에서 떼내고 천천히 숨을 내뱉어요. 푸우우우우

자, 마무리로 입을 헹굽시다
엄마 먼저 가글가글, 꼬로로록
나도 따라서 꾸루룩
우리 엄마 참 잘 했어요
이제 엄마 입술에 루즈 발라줄께요
새색시처럼 고운 분홍빛 루즈를
우리 엄마 이쁘게 하고
하늘 양로원 나들이 가실 때
아저씨들이 침 흘리면 모른 척 눈웃음도 쳐주세요

엄마, 나 연습 많이 해 놓을께요
다음에 엄마가 보시고
우리 아들 참 잘 했네 나 닮아서
흡입기도 잘 써요 칭찬할 준비나 하셔요, 엄마....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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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4-18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아이도 약국에서 흡입기 구입할 때 약사님으로부터 사용법 설명을 열심히 들었던 생각이 나네요. 저는 한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었던지라.
충격으로 그렇게 운명을 달리하실 수도 있군요. 나쁜 사람들...집에까지 찾아와 그렇게까지 할게 뭐 있대요?

달사르 2011-04-18 13:55   좋아요 0 | URL
네. 저게 생각보다 하기가 어렵더라구요. 병원에서 설명해주는 곳도 있고, 약국에서 설명듣기도 하구요. 아이가 흡입기를 써봤군요. 요새는 기관지 천식 때문에 아이들도 꽤 쓰더라구요.

네. 치매기가 있는 어르신인데도 양로원 친구들이 자기를 핍박한 거는 마음에 와 닿았나봐요. 충격이 너무 크셔서, 이틀을 내리 서럽게 우셨다고 하시더라구요. 어머님 그렇게 보내시고 아드님 가슴에 대못이 박힌 느낌이어서 두고두고 짠한 느낌이 들어요.

달사르 2011-04-18 13:56   좋아요 0 | URL
참, 안녕하세요. 처음 뵙네요. ^^
제 블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저도 종종 찾아뵐께요. hnine님. ^^

2011-04-18 14: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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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8 18: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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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7 16: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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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7 23: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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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08 02: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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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0 0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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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0 02: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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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0 14: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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