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색기계 - 신이 검을 하사한 자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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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는 별로 재미없었다. 그래서 <야시>의 작가 작품이라는 얘기에 별 기대 없이 책장을 열었다. 그런데 이거, 꽤 재미있다? 옛날 이야기 같기도 하고 역사소설 같기도 한 이야기가 이리저리 얽히는데, 그 가운데 인간인 듯 인간이 아닌 듯한 '금색'님이 있다. 그런데 그 비율이 꽤나 적절하다. 금색님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도 없고 해결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인물들이 겪는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모든 인물들이 자신의 법칙과 욕망에 충실하다. 


하늘 어딘가에서 온 사람들. 


'도깨비 소굴'을 만들어 사는 산적들. 


산적에게 납치된 여자들.


한 번의 경솔한 장난으로 검에 대한 뜻을 꺾어버린 무사의 자식. 


이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각들이 '금색'님을 둘러싸고 천천히 엮여가는데, 적당히 속도감이 있으면서도 사건이나 내면 묘사에 소홀하지 않다. 판타지와 SF의 영토 사이 어딘가에 있는 섬에 다녀온 기분이다. 어떤 틀에 들어맞지는 않지만 좋은 장르소설을 읽었다. 

비뢰시는 투구와 갑옷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번개를 바늘 모양으로 만든 듯한 탄알은 어마어마하게 먼 거리를 직선으로 날아갑니다. 마음만 먹으면 조카마치의 건물 지붕에서 성의 천수각에 얼굴을 드러낸 영주를 손쉽게 맞힐 수도 있습니다.

해골은 아무 말도 없습니다.
해골은 제 마음에 가만히 들어와 자리를 잡습니다.

죽은 사람은 주군이 될 수 있을까요?
죽은 사람의 바람을 헤아려 유지를 잇는다.
이런 고민을 할 때마다 생각은 성의 해자에 빠진 것처럼 갈 곳을 잃고 제자리를 뱅글뱅글 맴돕니다.

...

제 마음속에 자리를 잡은 해골이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그러면 됩니다. 금색님이여.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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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한 아이가 위험하다 - 사춘기 전에 키워야 하는 7가지 내적 능력
에일린 케네디 무어 외 지음, 박미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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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영리한 아이‘라는 제목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모든 아이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대처법. 어른이 읽어도 유용할 만한 책이다. 모든 심리학/교육 책이 그렇듯이 읽기는 쉽고 실천은 어렵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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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들 속에서
조 월튼 지음, 김민혜 옮김 / 아작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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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웨일즈 요정, SF와 판타지, 사춘기 연애.


작품성을 떠나 블로그를 책으로 펴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책에 대한 감상을 계속 섞어놓는 것은 확실히 호불호가 갈릴만 하다. 하지만 머리아프고 숨가쁠 때 읽기엔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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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좀비 연대기 : 클래식 호러
로버트 E. 하워드 외 지음, 정진영 엮고 옮김 / 책세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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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좀비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흡혈귀의 구시대적 귀족성은 좋아하지만, 마찬가지로 구시대적인 '죽은 노예'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실 한 제도를 지탱하는 폭력의 앞뒷면일 것인데도. 


하지만 <더 좀비스>는 재미있게 읽었다. 생각과 자유의지가 없는 '유기체 로봇' 같은 좀비부터, 인간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좀비까지 작가들의 상상력은 발랄하게 작동했고, 여전히 좀비는 매력이 없었지만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그 후 <나는 좀비를 만났다>를 보았다. 좀비라는 존재보다, 그런 존재를 가능하게 만드는 아이티라는 국가가 매혹적이었다. <나는 좀비를 만났다>를 읽고 나니 <더 좀비스>의 좀비들이 현대적이지만 얄팍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 다음 이 책 <좀비 연대기>를 읽었다.


매우 만족스럽다. '호러의 고전' 시대에 속하는 작가들이 쓴 '고전적인' 단편 모음이다. 부두교 주술사들이 위력을 발휘하고, 비밀 조직이 모든 골목을 장악하고 있는 아이티에 온 기분이었다. 고전적인 호러 소설들이 흔히 그렇듯이, 이야기의 진행 속도는 더디고 엄청나게 끔찍한 유혈 현장도 나오지 않는다. 호러 소설이라기보다 백 년쯤 전 아프리카의 어느 주술사 집에 초대받아 비밀스러운 의식을 겪고 온 인류학자의 기록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있다. 화려한 상상력과 현대적인 사건들을 보고 싶으면 <더 좀비스>를 추천하겠지만, 황토길을 배경으로 드문드문 지어진 이국의 움막 사이에 숨은 비밀스러운 존재를 보고 싶다면 <좀비 연대기>를 권하고 싶다. 둘 다 읽는다면 더 좋고. 


아마도 다음과 같은 한 문단으로 갈음할 수 있을 것 같다.
마티외 투셀은 결혼기념일을 맞아 6인용 만찬을 준비했고, 그의 아내는 손님으로 온 네 남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미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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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이상한 정상가족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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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 대한 문제의식이 구체화된 것이 나한테는 십오 년쯤 전일 것이다. 행복한 가족이라는 걸 주변에서 보고 자라지 못했고, 친구들은 다들 이를 갈며 십대와 이십 대를 보냈다. 친구들 가정이 딱히 폭력가정이 아닌데도 그랬다. 


모든 일이 터지는 때가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 '때'가 너무 늦게 오면 씁쓸하다. 여자가 여자라는 이유로 살해당한 강남역 살인사건도 그렇고, 00 내 성폭력도 그렇고, <이상한 정상 가족> 같은 책이 이제서야 주목을 끄는 것도 그렇다. 


이 책에 그다지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어린이집의 폭력보다 가정폭력이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 특히 계부모보다 친부모가 더했으면 더했지 덜할 것 없다는 얘기, 세계 최대의 고아 수출국, '정상'을 벗어난 가족 형태를 온갖 제도 밖으로 배제해 버리는 모습, 이른바 '다문화 가정'이 받는 취급...다들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 아닌가. 이미 어느 편에 설 것인가 결정한 문제들을 일목요연하게 엮어놓았다는 장점은 있지만, (적어도 내게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책은 아니었다. 


다만 아쉽다. 이 책이 십 년, 십오 년 전에 쓰여 사회에 받아들여지고 파문을 일으킬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지금쯤 얼마나 많은 것이 바뀌었을까. 왜 이 책의 내용들은 십 년 전쯤 상식이 되지 않았을까. 이 책이 제기하는 문제들은, 가장 새로운 문제인 '다문화가정 2세'만 해도 벌써 십오 년이 넘은 문제인데. 때로 생각의 속도는 너무나 느리다. 

이제 우리 사회는 적어도 여성에 대한 그런 폭력을 애정이라는 이름으로 은폐하려고 애쓰지 않는 정도까지는 왔다. 그런데 아이에 대해서만은 그렇지 않다. 애정, 훈육 등 통념의 미명하에 관계의 폭력이 용인되는 최후의 식민지, 거기에 아이들이 있다.

한국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주민의 아이들은 학대를 당해도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갈 곳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시설에도 가지 못한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주민의 아이들이 단지 국적과 체류 자격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정상적 한국인‘들은 그들에게 너무 가혹하게 군다. 교육, 의료 서비스를 받을 권리, 폭력에서 보호받을 권리를 제도적으로 봉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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