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좀비 연대기 : 클래식 호러
로버트 E. 하워드 외 지음, 정진영 엮고 옮김 / 책세상 / 2020년 2월
평점 :
판매중지


사실 좀비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흡혈귀의 구시대적 귀족성은 좋아하지만, 마찬가지로 구시대적인 '죽은 노예'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실 한 제도를 지탱하는 폭력의 앞뒷면일 것인데도. 


하지만 <더 좀비스>는 재미있게 읽었다. 생각과 자유의지가 없는 '유기체 로봇' 같은 좀비부터, 인간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좀비까지 작가들의 상상력은 발랄하게 작동했고, 여전히 좀비는 매력이 없었지만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그 후 <나는 좀비를 만났다>를 보았다. 좀비라는 존재보다, 그런 존재를 가능하게 만드는 아이티라는 국가가 매혹적이었다. <나는 좀비를 만났다>를 읽고 나니 <더 좀비스>의 좀비들이 현대적이지만 얄팍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 다음 이 책 <좀비 연대기>를 읽었다.


매우 만족스럽다. '호러의 고전' 시대에 속하는 작가들이 쓴 '고전적인' 단편 모음이다. 부두교 주술사들이 위력을 발휘하고, 비밀 조직이 모든 골목을 장악하고 있는 아이티에 온 기분이었다. 고전적인 호러 소설들이 흔히 그렇듯이, 이야기의 진행 속도는 더디고 엄청나게 끔찍한 유혈 현장도 나오지 않는다. 호러 소설이라기보다 백 년쯤 전 아프리카의 어느 주술사 집에 초대받아 비밀스러운 의식을 겪고 온 인류학자의 기록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있다. 화려한 상상력과 현대적인 사건들을 보고 싶으면 <더 좀비스>를 추천하겠지만, 황토길을 배경으로 드문드문 지어진 이국의 움막 사이에 숨은 비밀스러운 존재를 보고 싶다면 <좀비 연대기>를 권하고 싶다. 둘 다 읽는다면 더 좋고. 


아마도 다음과 같은 한 문단으로 갈음할 수 있을 것 같다.
마티외 투셀은 결혼기념일을 맞아 6인용 만찬을 준비했고, 그의 아내는 손님으로 온 네 남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미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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