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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 - K-pop 스크린 광장 ㅣ 여이연문화 5
김은하 외 지음, 조혜영 엮음 /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여이연) / 2017년 9월
평점 :
일단 재미있다. 이 책에 나오는 문화예술작품들을 거의 다 모르는 나도 재미있게 읽었으니 아는 사람은 더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생각해보니 나의 10대, 20대 때는 소녀라는 말을 낯간지러워서 쓴 적이 없었다. '소녀'라고 하면 만화에 나올 법한 폣병 걸린 귀족 소녀, 세상 물정 모르고 시집 끼고 다니는 여자애, 이런 비현실적인 이미지만 생각났고, 나나 우리 세대가 10대 여성으로서 자신을 정체화했던 건 오히려 '여중생'이나 '여고생'에 가깝다. 대중매체에서 '소녀'가 호명된 것은 역시 소녀시대의 데뷔 이후가 아닐까.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부터 K-팝에서 소녀가 차지하는 위상까지 종횡무진으로 달리는 논문집이라 뚜렷이 결론을 내린다든가 하는 것은 없지만, 저자들은 모두 '소녀문화'가 새로운 저항문화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 같지만 '과연?' 싶다. 왜냐하면 스크린에, 화면에 재현된 소녀들 말고 한국의 10대 소녀들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보고서가 아직 안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녀'를 아직 다 모른다.
마지막이 '촛불소녀' 이야기라서 두근대며 읽었지만 홍승은 씨가 글을 잘 쓰는 것과 별개로 촛불소녀가 2008년의 촛불소녀 분석이 아니어서 좀 아쉬웠다. 2016년 참여한 여성들은 역시 '촛불소녀'가 아니라 헬페미가 맞지 않을까. 2008년 촛불소녀들의 이야기를 '촛불시위를 이끌어낸 발화점'이나 '광장의 마스코트' 정도로만 의미를 부여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계급적 구성(강남촛불소녀들이 빠지기 시작할 때 '하층' 촛불소녀들이 충원되기 시작했다든가), 그들이 촛불시위 중 겪은 성추행/강간, 그들이 돌아간 공간 등에 대해 따로 서술한 책이 하나쯤은 나왔으면 좋겠다. 2008년 촛불소녀들을 '진보저씨'들이 추행한 사건도 꽤 있었지만 그때야말로 적아대립의식으로 다들 가득차서 입다물고 넘어갔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절대 그럴 리 없다고 부정할 수 없다).
'소녀'가 더 많이, 더 깊이, 더 전체적으로 탐구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