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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 할머니가 손자에게
김초혜 지음 / 시공미디어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은 사랑으로 서럽고
사랑으로 기뻐도
흙이 되어 떠날
것을
바람 되어 만날 것을
그대의 어둠보다
더 깊은 어둠이
내게 기대어와도
그리움은 영원인 것을
<사랑굿 124 중에서>
183편의 연작시 <사랑굿>으로 100만 베스트 셀러가 된 시집으로 잘 알려진
시인 김초혜.
김초혜는 대하장편소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의 아내이기도 하다. 조정래의 자전
에세이를 읽어보면 그들의 만남에서 부터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김초혜의 <사랑굿>은 삶에서 우리가 만나고 헤어지는 사랑의 감정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써 내려갔기에 한 편 한 편을 읽으면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준다.
'사랑굿'의 '굿'은 굿판을 의미하는 것이니 사랑은 우리 인생의 한 판 굿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손주는 어떤 의미일까. 내리사랑이란 말이 있듯이 자녀를
키울 때 보다 더 예쁘고 애틋한 마음이 드는 것이 손주 사랑이라 할 수 있으리라.
언젠가 시인은 손자들을 가리켜서 '날로 새롭게 피어나는 꽃이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그
손주 사랑의 마음이 어떤 마음일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 출간된 김초혜의 책은 시집이 아닌 할머니가 손자(재면)에게 매일 매일 일기를 쓰듯이
써서 주는 편지글을 묶은 에세이이다.
편지글은 2008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365일을 손자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썼다.
"네가 가는 인생길에는 꽃밭만이 펼쳐지기를
바라는 할머니의 마음" (p.4)으로.
이 글을 쓸 당시에 손자 재면이는 초등학생이었는데, 중학교에 입학할 때에 입학선물로 주기
위해서 이미 몇 년전에 준비한 선물이 바로 이 책의 내용이다.
어찌 보면 너무 유난스러운 손자 사랑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하루 하루의 편지를
읽어보면 할머니가 손자에게 꼭 남기고 싶은 말들이 담겨 있다.
그 내용 중에는 독서에 관한 이야기가 여러 차례 나오는데, 좋은 습관 중의 첫 번째가 책읽는
일이니 하루 10분씩이라도 밥을 먹듯, 잠을 자듯이 책읽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재면이의 할아버지인 조정래 작가의 소설을 손자가 커서 읽게 된다면 어떤
느낌으로 할아버지를 이해하게 될지 궁금해 하는 내용도 나온다. 할아버지는 아무래도 할머니에 비해서 엄하고 무섭게 느낄 수도 있으나 그런
할아버지를 다정다감한 할아버지로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할머니 자신이 종종 읽으면 음미했던 '칼릴 지브란'의 시를 소개해주기도
한다.
이 편지를 쓸 당시에 재면이는 초등하교 2학년, 9살 이었지만 중학생이 되면 줄 편지였기에
그에 맞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독서의 중요성, 공부의 필요성, 인생설계도나 희망에 관한 이야기, 예의, 습관 등의 행동에
관한 이야기, 건강....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특히 눈여겨 볼 내용은 손자에게 우리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역사의식을 고취시켜주면서 '왜 역사를 알아야 하는가'를
알려준다.
처음에 이 책을 읽을 때에는 하루 하루의 기록이기에 손자와 할머니가 생활하면서 그날 그날
재면이가 했던 행동이나 생각들에 대한 기록인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내용이라기 보다는 손자가 두고 두고 읽으면서 깨우치고 다질 수 있는
훈육내용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할머니가 손자에게 주는 교육 지침서이다.
이 책은 비단 재면이라는 손자에게만 국한되어 일깨워 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아니라 그 누구나
읽어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다.
만약, 이 책의 독자가 할머니라면 자신의 손주들에게 이런 365일 하루 하루의 교육 지침을
담은 편지를 써서 선물로 주어도 좋을 듯하다.
어머니들이라면 자녀에게 이런 글들을 노트에 담아서 주어도 좋을 듯하다.
12월 31일
사랑하는 재면아 !
어느덧 1년이 지나갔다. 처음 할머니가 이 글을 시작할 때는 아주 훌륭하고 좋은 이야기를
써서 우리 재면이 인생의 정다운 안내서가 되게 하려고 했다만, 다 써놓고 보니 미진한 점도 있고, 아쉬운 점도 많이 있구나. 그래도 할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며 날마다 하루씩의 분량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 (...)
사랑하는 재면하 1년만 읽고 꽂아두지 말고 해가 바뀌면 다시 또 읽고, 다시 해가 바뀌면
또 읽으면서 영원한 할머니의 정다운 속삭임이라 여겨다오. (...)

사랑 중에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리라. 할머니의 손자사랑. 그 사랑이 바로
조건없는 사랑, 사랑을 퍼주고 또 퍼줄 수 있는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 아닐까.
누군가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는 편지. 할머니가 생명의 꽃인 재면이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
그것은 단순히 사랑만이 담긴 편지가 아닌 손자를 일깨워주기 위한 편지이기도 하다.
" 진흙이 연꽃을 더럽히지 못하듯이
세상잡사 궂응 일들이 네 옷깃에 스치지도 말게 해달라고 기원한다. "
(p.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