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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로 읽는 슬픔과 기쁨 - 예술가의 육필 편지 49편, 노천명 시인에서 백남준 아티스트까지
강인숙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2월
평점 :
편지!!
이 책의 저자인 '강인숙'은
라고 말한다.
학창시절에는 친한 친구와 사소한 말다툼 끝에 서먹한 마음을 예쁜 편지지에 담아 친구의 가방속에 몰래 넣기도 했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에는 방학동안에 보내오는 학생들의 편지에 일일이 답장을 써 보내기도 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기 위해서는 사랑의 마음을 편지지 위에 썼다 지웠다 하면서 밤에는 쓰고 아침에는 차마 붙이지 못하기도 했던 기억들이 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곁에서 편지는 사라지고 있다.
손쉽게 보낼 수 있는 핸드폰 문자보내기와 이메일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편지는 무엇과도 그 자리를 바꿀 수 없는 마음의 표현이자 정(情)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소중한 편지, 그것도 예술가들의 육필 편지 49편을 묶어서 <편지로 읽는 슬픔과 기쁨>이란 책을 펴냈으니, 이 책을 읽는 재미는 그 어떤 책을 읽는 재미보다 더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강인숙'은 영인문학관 관장이다. 영인문학관에는 문인들의 원고, 초상화, 편지 등과 문인과 화가의 부채, 서화, 애장품, 문방사우, 사진 등 2만 5천 여점의 자료를 보관하고 있으니, 이 책에 실린 편지들은 그 중의 작은 일부분에 해당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평소에 문학가들의 작품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소설, 시, 시조 등의 장르에 따라서 그들의 글들을 읽고 있지만 그것들은 잘 다듬어진 글들인 것이다.
그런데 비하여 편지는 작가의 내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보냈거나 또는 누군가에게 받은 편지글들.
편지 속에는 친숙한 사람들과의 교감이 담겨 있기에 그들의 내면의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편지들은 우리의 문학을 이해하는데에도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이다.
편지의 주인공들은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의 문화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분들이다.
박범신, 조정래, 김남조, 박완서, 이광수, 강소천, 주요한, 김상옥, 박두진, 유치환, 서정주, 전혜린, 이어령..... 그리고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
그들이 연인에게, 배우자에게, 친구에게, 자식에게, 친지에게, 문인에게 보낸 사적인 편지들이다.
또한, 육필 편지이기에 빛바랜 편지지에 그들의 글씨체가 또렷하게 남아있는 것이 예스러움을 더한다.
때론, 편지글 속에는 틀린 글자를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쓴 그대로의 편지지가 소개되기도 한다.
그래서, 빛바랜 편지 속에는 편지를 쓸 당시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따뜻하고 정겨운 마음을 함께 느끼게 해 준다.

그런데, 편지의 주인공들이 젊은 독자들에게는 교과서에서만 읽었던 글들의 문인들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세대의 인물들이라기 보다는 한 세대를 건너간 인물들도 다수 있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독자들의 마음을 미리 읽은 '강인숙'은 편지 원본을 싣고, 그 내용을 다시 적은 후에 편지마다 <편지를 말하다>란 글을 덧붙인다.
그러니, 그 편지를 왜 쓰게 되었는지, 그 편지를 쓰게 된 동기와 함께 편지 주인공들과 작가와의 인연, 만남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대하소설의 대가인 조정래의 인터뷰 기사 중에 "내가 가장 잘 한 일은 아내 김초혜를 만난 것이다." 이런 글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 역시 조정래의 김초혜에 대한 사랑은 여기에서도 나타난다.
결혼한 지 23 년, 이런 편지를 보낼 수 있는 작가의 마음은 문인의 편지를 떠나서 남편이 아내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이니,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귀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주요한은 아들들에게 가브리엘 히터의 <부모의 기도>를 편지글로 써서 보냈는데, 어찌 이상하다. <부모의 기도>란 이 좋은 글귀를 쓰다 오자가 나오면 찍찍 긋고 썼다니...
얼마전 세상을 떠난 박완서가 이해인 수녀에게 보낸 편지.
내 생각과는 너무도 다른 박완서의 글씨체가 어색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 편지는 이해인 수녀의 <민들레의 영토> 출간 30 년을 기념해서 보낸 편지이니, 악필의 글씨체와는 달리, 그 얼마나 정다운 편지인가 !
내가 고등학교 때에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고 전혜린의 삶이 평범하지 않은 것에 충격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었는데,
전혜린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도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장영주가 당시 장관이었던 이어령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소녀적인 재치가 엿보인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1968 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당시에 소설가 한무숙이 보낸 축하의 편지에 대한 답신도 다른 지면을 통해서는 접할 수 없는 소중한 자료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점점 잊혀져 가는 편지글들을 통해서 그당시의 문화계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고, 예술가들이 직접 쓴 육필 서한을 통해서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엿 볼 수 있다는 것이 그동안 잊고 지냈던 옛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처럼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또한, 이 모든 편지들은 우리의 문화계의 산 역사이자, 귀중한 자료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 크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