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없이 나는 그리스도인일 수 없었다
폴 니터 지음, 정경일.이창엽 옮김 / 클리어마인드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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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참 조심스러운 일이다. 
자칫 잘못하여 뜻하지 않게 어떤 종교를 비판하는 목소리로 들릴 수도 있기에 항상 사려깊은 생각을 한 후에 말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종교로 인하여 전쟁이 일어난 경우도 있고, 민족간의 갈등을 겪는 경우도 있다.
지구상에서는 지금도 끝나지 않고 종교로 인한 다툼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에, 미국의 저명한 신학자인 '폴 니터'의 <붓다 없이 나는 그리스도인일 수 없었다>는 책은 신선한 충격을 주는 것이다.



저자는 한평생을 세계 평화와 종교 평화에 헌신한 신학자이다.
그는 독실한 로마 가톨릭 그리스도인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초등학교를 다녔고, 신학 고등학교를 다닌 후에는 사제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면서 사제 서품까지 받았고, 신학연구와 신학 교육한 신학자인 것이다.
그는 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신자들조차도 차마 입 밖에 내어서 말하지 않는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기도 하는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겪는 것처럼 "완전히 저 편에 계신 하느님", " 위에 계신 하느님", "내게로 내려오는 하느님"을 믿는 것은 어렵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그는 "불교에는 신이 없다" 는 것이다. 불교의 붓다는 신이 아닌 깨달은 자이니까.
이렇게 그는 그리스도교와 불교를 비교해 가면서 이 책의 내용을 펼쳐 나가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각 장을 이루는 주제들이 있는데,



 


 
 
 
그것은 첫째로 저자가 그리스도교의 믿음을 긍정하는데 가지고 있는 문제들
두번째 불교로 건너가는 저자의 노력.
세번째 그리스도교의 정체성과 믿음으로 되돌아 올 때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지고 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불교적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교와 불교 등의 종교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보다는 훨씬 더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그리스도교와 불교도 유사점보다 차이점이 많아서 서로의 종교에서 배울 점이 있는 것은 당연한 사실인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그런 점을 그리스도교에 접목시키기 위해서 각 장의 내용을 다음과 같은 순서로 전개한다.
<나의 갈등> 그리스도인으로서 갖는 갈등
< 건너가기> 그가 갖고 있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저자가 사십여년간 공부한 불교의 교리, 불자들의 이야기를 살펴보는 것이다.
< 되돌아 오기> 그는 그리스도인이기에 불교로 건너가서 깨달은 것들을 그리스도교을 통해서 재발견해 보는 것이다.
이런 전개로 책을 구성하다 보니, 이 책은 한 권의 책으로 그리스도교와 불교를 상세하게 살펴 볼 수 있는 장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그는 신학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입장에 있었음에도 우리들이 평소에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으로의 갈등을 저자 자신도 가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하느님이 전지전능하시다면 그의 자녀인 우리가 겪는 고통을 최소한으로 막아 줄 수는 없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종교적으로 그 고통 역시 하느님이 그의 자녀를 사랑하시기에 겪게 하는 것이라는 교리를 펼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 두 번은 울면서 기도하던 것이 아닐까.

" 개인들이 영원한 보상을 받을 거라는 전통적 천국의 이미지를 내가 불편해 하는 것은 그것이 너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이다. " (p164)

" 불자들의 에너지와 관심의 초점은 사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가 아니다. 그것은 심지어 내일에 대한 것도, 이 순간, 다음 순간에 대한 것도 아니라, ' 이 순간', 지금 바로 '여기'에 대한 것이다."  (p166)

"  한 종교 전통에서 자라난 종교인들이 다른 종교 전통과 관계하여 신앙을 기르려 하는 것은 싫든 좋든 결국 자신의 종교 전통에의 헌신을 희석시키거나 변화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 (p388
)


 


저자는 붓다 고타마와 그리스도 예수 사이에서 건너가기와 되돌아 오기를 하면서 붓다와 맺은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을 더 분명하고 깊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교리를 비롯한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게 되는데, 결코 그리스도교 교회나 전통의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반기를 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이 책을 통해서 그동안 자신이 두 종교를 통해서 깨달은 것들을 개인적 체험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두 종교를 비교하면서 접목시키는 그런 아름다움이 함께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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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널 사랑할 거란다 고 녀석 맛있겠다 시리즈 4
미야니시 타츠야 글.그림, 허경실 옮김 / 달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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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녀석 맛있겠다> 시리즈 4번째 그림책이다.



그림책의 그림은 다소 거칠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것은 공룡들의 이야기이기에 더 실감이 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룡이야기.
중생대 백악기에 살았다는 공룡, 커다란 몸집에 울퉁불퉁한 모습, 날카로운 눈빛.
이런 공룡은 육식공룡도 있고, 초식공룡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초식공룡에게는 육식공룡이 무서운 존재이고, 육식공룡에게 초식공룡은 먹잇감에 불과한 먹이사슬로 얽혀 있는 것인데....
초식공룡과 육식공룡의 만남은 어느 폭풍우가 몰아친 다음날 아침에 이루어진다.



      

 
 
초식공룡 마이아사우라는 길 위에서 가엾은 공룡알을 한 개 주워서 자신의 알과 함께 품어준다.
알은 "빠직 빠지직" 깨어서 엄마 공룡이 낳은 알은 라이트, 길에서 주워 온 알은 하트가 된다.
초식동물의 먹이는 산에서 있는 빨간 열매.
하트는 빨간 열매를 구하러 가서 만난 육식공룡에 의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된다.



엄마는 초식공룡인 마이아사우라이지만, 자신은 육식공룡인 티라노 사우루스임을.
엄마와 하트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이야기는 가슴이 찡~~ 하도록 감동적이다.
어쩌면 이 책을 엄마와 함께 읽던 아이는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서로 다른 공룡임을 알지만, 엄마 마이아사우라는 길에 그냥 버려지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을 해칠 수도 있는 티라노 사우루스를 주워 오는 것이고,
나중에 자신이 육식공룡인 것을 하트도 자신의 엄마를 해치기는 커녕 한 아름의 빨간 열매를 따다 놓고 길을 떠나는 것이다.

요즘처럼 자신의 이해관계와 얽혀서 경쟁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회에서 자라야 할 어린이들에게 이 이야기는 서로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말해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자신이 티라노 사우루스라는 것을 알게 된 하트에게 마이아 사우라인 엄마의 말은 그 의미가 특별하다.
" 하트야, 내 아기...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거니?
네가 어디에 있든지 언제까지고 영원히 영원히 널 사랑할 거란다. "  ( 책 속의 글 중에서)



가슴 속에 깊은 여울이 만들어진다.

자신을 해칠 수도 있지만 끝까지 보살펴준 엄마의 마음과
그런 엄마의 마음에 보답하는 하트의 마음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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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엄마 찬양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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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2010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데, 열여섯 살에 문단에 데뷔를 했다. 그의 작품은 이번에 처음 읽게 되는데, <새엄마 찬양>이란 제목이 성장소설이나 가정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첫 페이지에 실린 의붓아들 알폰소의 편지.
" 생일 축하해요, 새엄마 !
돈이 없어서 선물은 준비 못했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꼭 일등할께요. 그게 내 선물이 될 거예요. 새엄마는 이 세상에서 최고예요, 가장 예쁜 사람이고요. 나는 매일 밤 새엄마 꿈을 꿔요. 다시 한 번 생일 축하해요! 알폰소 " (p13)
마흔 살 새 엄마의 생일에 보내는 사춘기 의붓아들의 편지.
새엄마 루크레시아가 리고 베르토와 결혼을 할 당시에 친구들의 우려는 알폰소때문에 힘들거라는 말을 하곤했는데, 이런 편지를 받게 된 새엄마는 세상을 다 얻은 것같았으리라....
이것이 치밀하게 계획된 작전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 한채.

그런데, 여기까지는 좋았다. 몇 페이지를 더 읽게 되자 황당해지기 시작한다.
이 소설이 에로티시즘 문학일 줄이야.....
낯 뜨거워서 읽기 불편할 정도의 묘사들이 이어진다.
그렇게 1장  (루크레시아 부인의 생일)이 끝나면서 2장 (리디아의 왕, 칸다울레스)로 넘어가면서 한 장의 사진이 나온다.



'야코프 요르단스'의 <심복 기게스에게 리디아의 아내를 보여주는 리디아의 왕 칸다울레스>라는 작품이 실려 있고, 다음 이야기가 전개된다.
리디아 왕 칸다울레스가 자신의 신하 기게스에게 왕비 루크레시아와의 관계를 몰래 지켜 보게 하는 이야기이다.
갑작스럽게 루크레시아부인의 이야기와 똑같은 이름의 왕비 루크레시아의 이야기가 전개되니, 한참은 1장의 이야기와 2장의 이야기의 상관 관계에 대해 의문을 품으면서 에로틱한 이야기를 읽어내야만 한다.

여기까지 읽게 되면 많은 독자들은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외설로 치부하고 그만 읽어야 할 지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2010년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작품이 맞는지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 소설은 1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6장에는 각 장의 첫 부분에 그림이 제시된다.

      

 
     

   
  

그리고, 관련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니까 ,새엄마 찬양>이 다른 소설들과 판이하게 다른 특색은 3개의 서술층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첫번째는 이 소설의 바탕이 되는 리고베르토, 그리고 그의 새 아내 루크레시아, 아들 알폰소, 하녀 후스티니아나, 4명의 등장인물의 이야기.
두번째는 6장의 첫 부분에 실린 그림.
세번째는 그림과 관련된 이야기 이다.
중심 이야기는 그림 속 이야기인 전설 등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이지만 또 다른 소설 속의 이야기로 펼쳐지는 것이다.

출판사 리뷰를 인용하면
"그림은 중심 이야기와 그림을 토대로 묘사하는 장과 함께 각각 하나의 서사 층위를 이루고, 그 세 층위는 작품 속에서 입체적으로 작용해 역사, 신화, 종교 등의 담론까지 끌어오면서 작품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전통 서사 형식을 모범적으로 지키면서도 거기에 그림, 그리고 그림과 관련된 독립적인 이야기를 삽입해 탈장르적인 구성을 이룬 점, 문자예술과 그림예술이 서로 상호텍스트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은 이 작품의 포스트모던적인 성격을 잘 드러낸다."(출판사 리뷰 중에서)

그러니까 <새엄마 찬양>은 문학과 미술의 전통적 장르 경계를 무너트리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존의 소설들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장르의 개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에로티스즘 소설로 그 시도를 한 것이다.
새엄마와 아들의 사랑을 나누다는 표현을 쓴 이야기의 전개는 독자들에게는 불편한 책읽기를 하게 해준다.
그런데, 기가 막힌 막판 반전이 일어난다.
사춘기 아들이 새엄마에게 했던 말과 행동.
응석받이, 애교덩어리 어린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마음 속의 알 수 없는 그 어떤 존재가 그 반전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새엄마를 향한 사랑한다는 자연스럽고 순진한듯한 모습뒤에 감추어진 악마의 얼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끔찍한 아이의 모습인 것이다.
마치 스릴러 공포영화 속의 <오멘>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이 책은 많이 조심스러운 소설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작품이라는 것만으로 읽게 된다면 황당함을 감출 수 없는 그런 이야기의 전개와 묘사들이 난무하기에 학생들이 자칫 이 책을 선택하여 읽게 된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나타내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 소설은 성인들이 읽어도 불편한 이야기이기에, 성장기 학생들에게는 그 나이에 맞는 독서지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탈장르적 구성이라는 시도는 새로운 소설의 움직임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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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 현대예술에 대한 거침없는 풍자
에프라임 키숀 지음, 반성완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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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프라임 키숀'의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은 <행운아 54>를 통해서 였다.
그가 거침없는 위트와 풍자를 날리는 작가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작품 중에 흥미로운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은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이다.



책의 분류가 '예술, 대중문화'에 속하니, 키숀이 작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소설이나 에세이로 생각했다면 아마도 잘못된 선택이 될 것이다.
키숀이 어떻게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의아한 생각을 가지고 작가 소개를 들춰 본다면 이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헝가리 출신인데, 금속조각을 공부한 예술가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이미 1986년에 <피카소는 야바위꾼이 아니다>라는 책을 통해서 현대예술에 대한 비판을 가한 바가 있으며, 그 후속작이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이고, 이 책은 1995년에 출간된 것이다.
전작인 <피카소는 야바위꾼이다>를 읽고 많은 독자들이 너무도 통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고, 독자들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수긍이 간다는 내용의 글들을 많이 보내왔었던 것이다. 때론 예술 평론가의 반박의 글도 날라 왔고....
그 글들에 대한 내용과 자신의 생각이 또 한 번 현대예술에 대한 거침없는 풍자와 독설로 이어지는 것이다.



나도 미술관을 가기를 좋아한다. 우리나라의 미술관도 가보았지만, 세계적인 미술관들도 여러 곳을 가보았는데, 그때 현대 예술을 접하면서 느꼈던 그 생각들을 많이 대변해주고 있다.
지나치게 난해한 작품들. 무성의한 것처럼 느껴지는 작품들, 일부러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듯한 작품들을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사례로 들 것처럼 달랑 변기 하나 갖다 놓든가, 고철들을 모아 놓은 쓰레기 더미를 만들어 놓거나, 캔버스에 아무 것도 그려 넣지 않은 채 걸려 있거나, 헝겊 몇 조각을 늘어 놓거나, 유치원생도 그 보다는 잘 그렸을 것같은 몇 개의 낙서같은 줄들을 마구 그어 놓은 작품들 등등....
이런 작품들을 보면서 "왜 이러지 나만 예술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거나, "저런 작품은 나도 그리겠다. 내가 유명 예술가가 아니어서 그렇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술을 모르는 속물이기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정상이고, 비정상적인 작품들을 만들어 내는 작가가 이상한 것일까?

   
 
  

    



키숀은 이런 작품들에 대하여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현대 미술의 조직원들, 즉 예술가들이 대중을 우중화愚衆化하고 있다" 고.
또한, 이런 작품들이 현대예술이라는 미명하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뒤에는 이런 것들을 동조하는 예술 평론가들과 거대한 예술 시장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저런 작품이 가치가 있을까 하는 작품들이 버젓이 상상할 수 없는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는 것은 미술의 상업화와 거대한 미술 시장이 있기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물론, 평론가들도 그런 작품에 대해서 거창한 말솜씨로 부추기는 것이는 것이다.
이런 점들은 예술품에 대한 허풍이기도 하고, 사기이기도 한 것이다.
비디오 아트의 대가인 백남준이 한 말 중에 "현대 예술은 사기다."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해준다.

   

    



" 예술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술가 자신들이 아니라, 좌절한 지식인들로 구성된 작은 마피아 조직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유명하게 된 화가들은 엉터리 궁정 광대가 되거나 아니면 기성 미술 화단의 엉터리 어릿광대가 된다. " (p89)





좀더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자 하는 예술가들의 쓰레기더미와 같은 작품들은 일반 대중들의 예술에 대한 생각과의 괴리감을 차츰 더 가져다 주기도 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관심있게 볼 대목은 세계적인 미술가 피카소가 남긴 놀라운 유언이다.

 


" 예술이 더 이상 진정한 예술가들의 자양분이 될 수 없었던 뒤부터, 예술가들은 자기 재능을 자신의 환상이 만들어 내는 온갖 변화의 기분을 위해 사용했다. 지적 야바위꾼들에게는 온갖 가능성이 열려 있었으니까.
대중들은 예술 속에서 더 이상 위안도, 즐거움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세련된 사람들, 부자들, 무위도식자, 인기를 쫒는 사람들은 예술 속에서 기발함과 독창성, 과장과 충격을 누렸다. 나는 내게 떠오르는 수많은 익살과 기지로 비평가들을 만족시켰다.   (...) 그러나, 홀로 있을  때면, 나는 나 스스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가로 생각하지 않는다. 위대한 화가는 조토와 티치안, 렘브란트와 고야같은 화가들이다. 나는 단지 나의 시대를 이해하고, 동시대의 사람들이 지닌 허영과 어리석음, 욕망으로부터 모든 것을 끄집어 낸 한낱 어릿광대일  뿐이다. " (p40)

우린 피카소의 예술혼을 다 이해는 하지 못하지만, 그만의 독특한 화법에 의한 작품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위대한 화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마저도 이런 생각을 가졌다는 것은 현대예술에 대해 문제점을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난해하면 난해할수록 더 가치있게 보는 현대 예술작품.
그 예술 작품에 대해서 작가의 설명은 장황하고, 철학적이지만, 사실은 허무맹랑한 말장난이기만 한.
평론가들의  작품평는 그럴듯하고, 아니 극찬을 한다.
거대한 미술시장은 이런 작품을 선호하고,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이런 속임수의 고리가 오늘날의 현대 예술을 탄생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에프라임 키숀'은 풍자 소설가라는 이름답게 이런 이야기를 그만의 거침없는 풍자와 독설로  독자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나는 그들에게 무모하기 짝이 없는 소규모의 저항 그룹이 한때 존재했었고, 또 그들을 대표해서 그 시대의 뻔뻔스럽고 교활한 자들에 맞서 목소리를 높인 풍자적 기질의 소유자였던 아마추어 이론가가 있었음을 기억하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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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관계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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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은 국내에 3권이 소개되어 있다.
<빅 픽처>, <위험한 관계>, < 모멘트>이다.



그중에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가장 먼저 소개되었던 <빅 픽처>를 읽은 이들은 어느새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선뜻 책을 구입할 정도가 되었다.
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역시 <빅 픽처>의 반전이나 세밀한 심리 묘사는 그 어떤 책에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위험한 관계>는?
이미 유럽 독자들에게는 널리 사랑받는 작품인데, 이 책의 주인공은 여성인데도 불구하고, 책 속에서 보여주는 심리묘사는 남자 작가로서는 표현하기 힘든 산후 우울증, 그에 따른 감정의 기복까지도 리얼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특히, 샐리(여자 주인공)가 결혼과 임신, 출산에서 겪는 우울증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야기는 <보스턴 포스트>의 중동 동아프리카 전역 담당 기자인 샐리가 겪게 되는 결혼과 출산후의 남편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샐리는 소말리아 홍수를 취재가던 중에 영국 <크로니클> 카이로 특파원 토니를 만나게 되면서 급속히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들은 생각지도 않았던 임신에 의해서 결혼을 하게 되고, 토니가 <크로니클> 외신담당을 하게 되면서 영국으로 함께 가게 된다.
샐리는 유능한 워킹우먼이지만, 영국 <보스턴 포스트>에서의 입지가 흔들리게 되고, 여기에 임신 중독증까지 걸리게 되면서 휴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난산에 의한 제왕절개를 하게 되면서 아들이 인큐베이터에 들어가게 되면서 극심한 우울증에 걸리게 된다.
이런 와중에 잠깐 형부의 죽음으로 미국에 간 사이에 토니의 잘 꾸며진 계략에 의해서 아들을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한 법정공방전이 있게 되고, 샐리는 어디에선가 토니의 헛점을 찾아야만 재판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이며, 아들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의 초반적에는 샐리의 남편에 대한 행동이나 출산 후의 행동이 너무 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샐리와 토니는 30대 후반까지 독립적으로 살아오면서 자신의 직장에서 탄탄한 위치를 가지고 있었기에 갑작스러운 결혼이 행복을 가져 오기는 힘든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토니는 너무도 무심한 남편으로 자기중심적이며, 아내에 대한 배려가 없는 인물이다.
샐리 역시 오래전의 부모의 교통사고에 대한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자신의 아들이 태어나자 마자 혹시라도 잘 못 될 수도 있다는 자책감에 산후 우울증을 앓게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준비되지 않은 부부, 부모 역할에 대한 우려와 함께 위기감이 감돈다.
그러나 더글라스 케네디가 어떤 작가이던가?
이야기는 이렇게 단순한 이야기로 끝을 맺지 않는다.
소설이 중반이후에 접어 들면서 아연실색할 정도의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남편 토니의 배신, 배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재력가 애인과의 계략으로 아들을 빼앗아가는 이야기는 여기서 부터는 법정 소설 못지 않은 법정 공방전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부부란 과연  "등돌리면 남남이다"라는 말을 뛰어 넘는 무서운 배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순간 토니에 대한 분노가 치솟게 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샐리와 토니의 사랑은 한 눈에 반한 운명적인 사랑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대책없는 바람둥이의 순간적인 사랑이었고, 순간적인 결혼 합의 였던 것이다.
임신 역시 예기치 않은 임신이었고, 그것은 깊은 생각을 가질 수 없는 결혼의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이 더 흥미로운 것은
샐리는 미국인으로서 결혼으로 인하여 영국에 거주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오는 영국과 미국 사이의 문화적 차이가 상당히 크다는 것이다.
그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언어, 관습, 인간관계, 법적인 부분 들에서 뛰어 넘을 수 없는 문화 차이를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영국인 대 미국인", "영국 사회 대 미국사회"의 대결구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에 토니와 샐리의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 여자 대 남자 ", " 진실 대 거짓"이라는 상반된 대결구도까지 겹쳐지게 되는 것이다.

작가인 더글라스 케네디가 여행을 좋아하여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경험을 하기도 했고, 그가 미국인이기는 하지만, 영국에서 주로 살았으며, 그의 소설이 프랑스인들에게 각광을 받기에 그런 모든 점들이 그의 소설 속에는 녹아 있는 것이다.

특히, 그의 소설들은  분량이 상당히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흐름이 스피디하게 전개되고, 흥미롭기에 읽는 부담감이 없다는 것이다.



결혼의 진실된 모습, 임신과 육아에 대한 부담감, 츨산후의 여성의 직장생활.
이런 모든 것들은 우리의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들인데, 그런 문제들을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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