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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 현대예술에 대한 거침없는 풍자
에프라임 키숀 지음, 반성완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에프라임 키숀'의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은 <행운아 54>를 통해서 였다.
그가 거침없는 위트와 풍자를 날리는 작가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작품 중에 흥미로운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은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이다.
책의 분류가 '예술, 대중문화'에 속하니, 키숀이 작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소설이나 에세이로 생각했다면 아마도 잘못된 선택이 될 것이다.
키숀이 어떻게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의아한 생각을 가지고 작가 소개를 들춰 본다면 이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헝가리 출신인데, 금속조각을 공부한 예술가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이미 1986년에 <피카소는 야바위꾼이 아니다>라는 책을 통해서 현대예술에 대한 비판을 가한 바가 있으며, 그 후속작이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이고, 이 책은 1995년에 출간된 것이다.
전작인 <피카소는 야바위꾼이다>를 읽고 많은 독자들이 너무도 통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고, 독자들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수긍이 간다는 내용의 글들을 많이 보내왔었던 것이다. 때론 예술 평론가의 반박의 글도 날라 왔고....
그 글들에 대한 내용과 자신의 생각이 또 한 번 현대예술에 대한 거침없는 풍자와 독설로 이어지는 것이다.
나도 미술관을 가기를 좋아한다. 우리나라의 미술관도 가보았지만, 세계적인 미술관들도 여러 곳을 가보았는데, 그때 현대 예술을 접하면서 느꼈던 그 생각들을 많이 대변해주고 있다.
지나치게 난해한 작품들. 무성의한 것처럼 느껴지는 작품들, 일부러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듯한 작품들을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사례로 들 것처럼 달랑 변기 하나 갖다 놓든가, 고철들을 모아 놓은 쓰레기 더미를 만들어 놓거나, 캔버스에 아무 것도 그려 넣지 않은 채 걸려 있거나, 헝겊 몇 조각을 늘어 놓거나, 유치원생도 그 보다는 잘 그렸을 것같은 몇 개의 낙서같은 줄들을 마구 그어 놓은 작품들 등등....
이런 작품들을 보면서 "왜 이러지 나만 예술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거나, "저런 작품은 나도 그리겠다. 내가 유명 예술가가 아니어서 그렇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술을 모르는 속물이기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정상이고, 비정상적인 작품들을 만들어 내는 작가가 이상한 것일까?

키숀은 이런 작품들에 대하여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현대 미술의 조직원들, 즉 예술가들이 대중을 우중화愚衆化하고 있다" 고.
또한, 이런 작품들이 현대예술이라는 미명하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뒤에는 이런 것들을 동조하는 예술 평론가들과 거대한 예술 시장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저런 작품이 가치가 있을까 하는 작품들이 버젓이 상상할 수 없는 높은 가격에 팔리고 있는 것은 미술의 상업화와 거대한 미술 시장이 있기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물론, 평론가들도 그런 작품에 대해서 거창한 말솜씨로 부추기는 것이는 것이다.
이런 점들은 예술품에 대한 허풍이기도 하고, 사기이기도 한 것이다.
비디오 아트의 대가인 백남준이 한 말 중에 "현대 예술은 사기다."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해준다.


" 예술을 만드는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술가 자신들이 아니라, 좌절한 지식인들로 구성된 작은 마피아 조직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유명하게 된 화가들은 엉터리 궁정 광대가 되거나 아니면 기성 미술 화단의 엉터리 어릿광대가 된다. " (p89)


좀더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자 하는 예술가들의 쓰레기더미와 같은 작품들은 일반 대중들의 예술에 대한 생각과의 괴리감을 차츰 더 가져다 주기도 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관심있게 볼 대목은 세계적인 미술가 피카소가 남긴 놀라운 유언이다.
" 예술이 더 이상 진정한 예술가들의 자양분이 될 수 없었던 뒤부터, 예술가들은 자기 재능을 자신의 환상이 만들어 내는 온갖 변화의 기분을 위해 사용했다. 지적 야바위꾼들에게는 온갖 가능성이 열려 있었으니까.
대중들은 예술 속에서 더 이상 위안도, 즐거움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세련된 사람들, 부자들, 무위도식자, 인기를 쫒는 사람들은 예술 속에서 기발함과 독창성, 과장과 충격을 누렸다. 나는 내게 떠오르는 수많은 익살과 기지로 비평가들을 만족시켰다. (...) 그러나, 홀로 있을 때면, 나는 나 스스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가로 생각하지 않는다. 위대한 화가는 조토와 티치안, 렘브란트와 고야같은 화가들이다. 나는 단지 나의 시대를 이해하고, 동시대의 사람들이 지닌 허영과 어리석음, 욕망으로부터 모든 것을 끄집어 낸 한낱 어릿광대일 뿐이다. " (p40)
우린 피카소의 예술혼을 다 이해는 하지 못하지만, 그만의 독특한 화법에 의한 작품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위대한 화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마저도 이런 생각을 가졌다는 것은 현대예술에 대해 문제점을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난해하면 난해할수록 더 가치있게 보는 현대 예술작품.
그 예술 작품에 대해서 작가의 설명은 장황하고, 철학적이지만, 사실은 허무맹랑한 말장난이기만 한.
평론가들의 작품평는 그럴듯하고, 아니 극찬을 한다.
거대한 미술시장은 이런 작품을 선호하고,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이런 속임수의 고리가 오늘날의 현대 예술을 탄생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에프라임 키숀'은 풍자 소설가라는 이름답게 이런 이야기를 그만의 거침없는 풍자와 독설로 독자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
"나는 그들에게 무모하기 짝이 없는 소규모의 저항 그룹이 한때 존재했었고, 또 그들을 대표해서 그 시대의 뻔뻔스럽고 교활한 자들에 맞서 목소리를 높인 풍자적 기질의 소유자였던 아마추어 이론가가 있었음을 기억하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p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