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명작 속의 문장을 근거로 하여 한 편의 짧은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명작을 근거로 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발췌해서 인용된 문장의 뒷 이야기, 숨은 이야기 같은 이야기이지만 그런 이야기는 황경신이 만들어 낸 이야기일뿐이다.
작가, 소설가, 음악 등의 이야기의 밑바탕이 되는 그런 이야기와 사랑과 이별, 남자와 여자, 그런 주제를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이야기로
만들어 놓았으니, 황경신의 글쓰기의 독특함을 알지 못한다면 꽤나 혼란스러운 이야기일 수도 있다.
작가의 상상력과 창의성은 때로는 동화나 우화와 같은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읽다보면 허무맹랑하게 생각되기도 하고, 때론 사랑과 이별에 대한
심리를 잘 파악하고 있기도 하다.
생의 마지막 날에 악마가 찾아오고, 뒤이어 천사가 찾아온다면...
셰익스피어와 슈베르트가 시공간을 무시하고 찾아온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를 재조명해 본다면...
마음을 파는 가게가 있다면....
작가에게 상상력은 얼마든지 시공간을 뛰어 넘을 수도 있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으니 그 이야기들을 읽어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류의 이야기들에는 별로 공감을 받지 않기에 책을 읽으면서도 뭔가 불편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황경신의 글은 작가의 책을
많이 읽지 않은 독자들의 성향에는 좀 맞지 않는 감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 본다.
이렇게 '황경신'의 책은 평범하지는 않다. 특이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어떤 책은 깊은 공감을 갖게 하고, 어떤 책은 뭔가 평범하지 않은 책의 내용에 어리둥절하게
하기도 했었다.
여기까지는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황경신'의 책들에 대한 간단한 소견이다. 어쨌든 '황경신'의 필력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가의 책들이 모두 마음에 남는 것은 아니다. 어떤 책은 '나의 독서 취향과는 잘 안 맞는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모두에게 해피엔딩>은 2003년에 출간된 황경신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장편소설이라고 해서 내용이 그리
길지는 않다.
200 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인데, 내용도 간결해서 그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한 황경신의 연애소설이라고 하니 그냥 심심할
때에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읽어내려 갔다.
책 속에는 나와 에이, 비의 사랑이야기 (?), 연애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 어젯밤, 나는 문득 별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던 그 여름밤이 떠올랐고 사랑이란 바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어. 기다리고 기다릴 때는 오지 않다가 방심하고 있을 때 문득 떨어지는.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 떨어졌구나, 라고
밖에." (p. 32)
제 1부 : 덜 사랑하는 자 는 나와 에이의 만남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진도 찍고 출판 관계 일을 하는 여자 주인공인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에 조교로 일하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학교에 갔다가 에이에게 길을 묻게
되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서 만나게 된다. 서른 살인 나 보다 10살이나 어린 대학생 에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운명인지 아니면 나를 마음에 둔 에이의 의도된 계획인지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한 만남. 나에게는 비라는 소꼽친구이자
마음에 담아 둔 사람이 있기에 에이는 선배와 후배, 누나와 동생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만났지만 에이는 나와의 첫 만남부터 사랑의 마음을 갖게
된다.
비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자상함과 편안함.
제 2부 : 더 사랑하는 자 에서는 나와 비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비는 오빠의 친구 동생으로 7살에 소꼽친구로 만난다. 초중고등학교를 거쳐서 대학 그리고 사회생활을 할 때까지 서로의 만남을
계속된다. 사랑인지 아니면 우정인지 때론 헷갈리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서로 사랑하기는 하지만 너무 어려서부터 만나서인지 오랜 친구이면서도 만나면 어색하고, 뭔가 빠진 듯한 그런 만남의 연속.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다가가지 않기에 자신들의 마음을 전하고 싶지만 전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다가 다시 수평선을 긋게 되는 그런 만남.
물론 제 1부와 제 2부에서 나와 에이, 나와 비의 이야기는 교차적으로 이야기되지만 '덜 사랑하는 자'에서는 에이와의 이야기가, ' 더
사랑하는 자'에서는 비와의 이야기가 비중적으로 다루어진다.

'덜 사랑하는 자'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에이와의 사랑은 별로 마음에 다가오지 않았다.
요즘이야 사랑에는 나이가 없지만, 나의 젊은 시절에는 사랑에도 나이가 있었다. 연애나 결혼에 있어서 남자가 여자보다 2~3살 많은 것이
보편적인 시절이었기에 지금처럼 열 살이 훌쩍 넘는 남녀간의 나이 차이, 그것도 남자가 연하일 경우에는 기이하게 여겨졌었다.
그래서인지 나와 에이와의 연애는 별로 달갑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의 마음 속에는 비가 있기에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면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제 3부 : 모두에게 해피엔딩'을 읽으면서 차츰 사랑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과 함께, 나의 젊은 날의 추억 내지는 기억들이 살포시
다가오는 것이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풋사랑, 첫사랑, 짝사랑 등등 사랑의 명칭도 많지만, 사랑이란 그 보다도 더 다양한 것 같다.
시작도 못하고 끝난 사랑,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런 사랑, 잊혀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문득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사랑....
나는 소설 속에서 에이와의 사랑 보다는 비와의 사랑에 더 마음이 간다. 나와 비, 친구인 듯, 연인인 듯...
우정으로 시작했기에 사랑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그 사랑이 못내 가슴이 아프다. 서로 마음은 있으나 자존심에서 였을까 아니면 서로의 마음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을까. 서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 못한 그 사랑이 안타깝다.
사랑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덜 사랑하면 어떻고, 더 사랑하면 어떨까....
비를 더 사랑하면서, 덜 사랑하는 에이를 사랑을 받아주지도 못하는 나.
" 내 마음이 집착과 소유에 대한 갈망으로 어지러울 때 사람들은 그대로 내버려 두라고
충고해.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나도 곧 알게 되었지. 집착과 갈망이 사라진 자리에는 텅 비어 아름다운 마음이 들어앉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됐어. 욕심도 없고 질투도 없는 마음. 나는 서투르게 그걸 배웠고 그건 아주 어려운 일이었어. " (p.
126)

비가 나를 떠나기 위해서 결혼을 결심하지만 어쩌면 그건 가장 비겁하고 가장 잘못된 선택이 아닐까.
사랑한다면 그 사랑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비가 결혼을 한 후에 나는 그런 이야기를 소설로 남기고, 출판사 일로 인터뷰를 하게 된 예술가를 통해서 비의 소식을 듣게
되는데...
에이에게서도, 비에게서도 진정한 사랑을 얻지 못한 나는 새로운 사랑을 위해 예술가를 선택하는데, 그것 역시 무모한 선택이 아닐까.
그것이 모두가 해피엔딩이 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리라.
" 내 인생은 너무 많이 읽어서 그 내용을 다 외워버린 한 권의 책과 같다. 한 발은
에이, 다른 한 발은 비에 담근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지지부진하게 세월을 낭비하고 있는, 죽어가는 나무와 같다. 수 년 동안 그 모든
것들이 되풀이 되어 왔다. 나는 비를 사랑하지만 비로부터 벗어나야 하고, 에이는 나를 사랑하지만 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두 사람을 끊어내는
일이 가능하지 않다면 내가 사라져야 한다는 것도 수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망설였고, 몇 번이나 같은 자리로 돌아왔으며,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 (p. p. 183~184)
사랑한다면 망설이지 말자 !! 사랑하는 사람을 놓치지 말자 !!
" 아주 사소한 어긋남, 아주 작은 실수, 알아 차리지 못한 미미한 오해들이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던 거야 " (p. 197)
<모두에게 해피엔딩>은 나의 사랑이야기, 우리들의 사랑이야기라는 생각이 들기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는 내 인생에 있어서 어떤
순간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책 속의 문장처럼, 사랑이란 '만나서 기뻤고, 슬펐고, 울었고, 웃었고, 기억하고 또 잊었잖아. 그런데 눈물이 나올 것 같아!' 그런 것이
아닐까....
덜 주었다고 사랑이 아니고, 더 주었다고 사랑일까? 이루어진 사랑만이 사랑일까. 잊혀진 사랑도 사랑이라 생각된다.
인생이란 훗날을 알 수 없기에 더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