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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움직이다
기획회의 편집부 엮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7년 9월
평점 :
# 한 권의 책에 스민 보이지 않는 정성을 기억하시나요?
저녁이다. 식탁에 앉았다. 밥이 보인다. 반찬도 보인다. 한 알갱이의 쌀알을 만드기 위해 백 번의 농부의 손길이 거쳐서 쌀이 만들어진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한 알의 볍씨가 땅에 뿌리내려 1년의 세월의 거쳐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쳐 내게로 오는 과정이 눈에 보인다. 밥 한톨도 소중히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밥을 먹은 후, 책상에 앉았다. <책으로 세상을 움직이다>를 읽고 난 후 책 또한 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노고가 배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끔 품질 불량의 쌀처럼, 나오지 않으면 더 좋았을 책도 존재한다. 농부의 정성이 가득 고여있듯이, 많은 책들은 편집자의 수고를 거쳐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진다.
왼편을 바라보았다. 책들이 책장에 꽂혀 있다. <책으로 세상을 움직이다>가 보인다. 좀 더 깊이있게 보기 위해 2년 전에 출간된 <책으로 세상을 편집하다>도 꽂혀있다. 책의 공저자인 편집자가 에피소드를 듣고 다시 찾게 된 <경성기담>, <책문>, <쾌도난마 한국 경제>, <서재 결혼시키기>등도 보인다. 한 권의 책이 여러 권의 책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기획회의에서 나온 기획자 노트 릴레이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 땀과 노력, 아이디어와 기획이 결합되어 책이 만들어 진다.
책과 함께 웃고 울고 깨닫는 그들의 책과 인생 이야기.
저자의 힘만으로 책이 만들어지지 않는 다는 사실과 편집의 중요성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희미한 그림자처럼 잘 보이지 않던 편집자의 존재가, 책을 읽고난 뒤 선이 뚜렸한 큰 존재로 보인다.
잡지인지 월간지인지 모르겠지만, <기획회의>에 연재된 편집자의 이야기가 30편씩 묶일 때마다 한 권의 책이 만들어졌다 한다. 처음 묶인 책이 <책으로 세상을 편집하다>이다. 책 뒤에 스며있는 편집자와 기획자의 노고가 눈에 선하게 드러났다. 각양각색의 개성 넘치는 편집자들이 책과 함께 부대끼며, 때론 출판계를 바라보며 외치는 갖가지 목소리가 담뿍 담겨있었다.
<책으로 세상을 편집하다>에는 61-90회까지 연재본이 담겨있다. 영업자 출신이거나 현직 영업자인 분이 절반이 넘는다고 서문에 적혀있다. <... 편집하다>에서 책의 철학에 대한 부분이 좀 더 많았다면, <... 움직이다>에서는 영업에 관한 이야기가 <.. 편집하다>에 비해서는 더 많았다. 하지만 책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뿍 담겨있다.
학문의 샘물과 같은 '인문학'의 이름을 빌어 책을 팔아먹으려고 하지말고, 샘물은 그냥 내버려 두라는 책에 관한 자신의 철학이 담긴 글도 보였고, 샨티북스라는 소통의 이야기가 넘치는 공존의 꿈을 가진 편집인의 글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책에 얽힌 비하인드 이야기를 담뿍 내놓은 이도 있었고, 출판의 위기에 대해 개탄하며 이야기 하는 편집인도 있었다. 30가지 음식이 담긴 뷔페 식당처럼, 다양한 스타일의 개성넘치는 글들이 자신의 책과 출판세계와 편집에 대해 담겨 있었다.
# 가장 좋았던 건.. <책속의 책> 읽기.
책을 만들며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것을 읽다 보니, 소개된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편집자의 정성이 담뿍 담겨있지만, 독자의 손길을 받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책들은 읽어볼 목록에 담아두었다. <책으로 세상을 움직이다>를 통해 다시 꺼내든 <경성기담>, <쾌도난마 한국경제>, <수의 신비>, <책문>은 에피소드를 통해서 좀 더 책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고,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는 아직 서가에서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베스트셀러를 좋아하지 않기에, <경성기담>이 그렇게 많이 팔렸는지 알지 못했다. 스토리텔링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는데, 내겐 잘 지은 목차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책문>은 읽어 볼 기회가 생겼을 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소개글을 보고, 처음 임숙영의 글을 읽고 대담한 그의 문장에, 끌려 책을 다 읽게 되었다. 또한 같은 시리즈인 <책으로 세상을 편집하다>에서 나온 <서재 결혼 시키기>의 양장본에 추억을 읽고, 헌책방에서 구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린비의 <리라이팅 클래식>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과정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한 권의 책이 다른 책을 읽게 하고, 그 책에서 또 다른 책을 소개받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 책을 사랑하는 이들의 애정을 듬뿍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
기획노트 시리즈를 보며, 많이 팔기위해 끼워팔기와 사재기 등 어두운 출판업계의 현실을 개탄한 글도 볼 수 있었고, 자신의 책을 만들며 겪었던 우여곡절의 이야기와 안타까운 현실을 토로하는 글도 느낄 수 있었다. 베스트셀러의 힘을 전혀 무시하는 내겐 그다지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많이 노출된 책이 사람들의 대화의 소재가 되고, 소재가 되어 다시 그 책이 많이 팔리게 된다면, 거대한 출판사나 자본의 힘이 강하고 조금의 비겁함을 눈감는 이들에 의해 출판계가 욕을 얻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미꾸라지 한 두 마리가 냇물을 어지럽힌다. 한 두명의 비겁한 사람들도 있지만, 묵묵히 자신의 삶의 철학을 더해가며, 정성을 담은 책들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3년, 시기를 놓치거나 출판사 사정에 의해, ISBN을 받지 못하고 사장된 책들도 존재한다. 책으로 밥벌이를 하기에 책을 많이 팔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들 역시 책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많이 팔리지 않을 책이다. 책을 읽는 것만 좋아하거나 책에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에겐 권하고 싶지 않다. '책', 그 자신을, 책의 뒷모습도 좋아하는 이에게 살짝 건네주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