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와 비주류...

 인간 사회에는 언제나 종교적, 문화적, 경제적인 면에서 주류 계층과 비주류 계층이 존재한다. 그것은 집단이 이루어지면 반드시 그리고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인간 개개인 혹은 집단 욕망의 차이로 인함이다. 어떠한 것에 대한 욕망이 강한 이들은 주류 계층이 되고, 그것에 그들보다 덜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비주류 계층이 된다. 

 비주류 계층은 주류 계층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아왔다. 그럼에도 비주류 계층은 불만을 품되 밖으로 크게 표출하지 않는다. 이미 주류 계층이 모든 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기에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 까닭이다. 가끔 예외가 존재하지만 그건 흔한 일이 아니다.

 나는 주류 계층과 비주류 계층 중 어느 쪽이 될지 항상 고민해 왔다. 역시 내 성격상 나는 후자를 택했다. 그것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끼치는게 싫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그의 개성을 해치는 일이다. 물론 다른 이들의 개성 파괴가 허용되는 경우가 있다. 그들의 개성이 사회의 객관적 가치 및 질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이다.

 여기서 대두되는 문제가 있다. 공공의 기준이 항상 옳은가? 소수의 기준은 무시 되어도 좋은 것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하지만 공공의 기준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끼치는 것이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소수가 희생될 수밖에 없다. 

 어쨌든 나는 개인의 신념에 의거 비주류에 머물러 왔다. 그리고 머물고 있으며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 예상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아니다. 혹시 모르기 때문이다. 나중에 내가 더 큰 사람이 되어 나도 모르게 주류 - 큰 사람이라고 반드시 주류인 것은 아니지만 - 가 되어 있을지, 아니면 다른 이들에게 선한 영향을 보다 크게 끼쳐야 할 필요성을 느껴 스스로 주류가 될지 말이다. 아무래도 비주류 보다는 주류가 더 많은 이들에게 영향략을 끼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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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끊임없이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이유는 고전은 그만큼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이들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이다. 그것은 해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유익하
다는 말이다. 확실히 검증이 되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고전은 - 지역적, 시대적 차이로 인한 이해 부족과 약간의 거리감이 존재하긴 하지만 -
세월이 바뀐 각 시대에 여전히 공감이 된다. 그것이 고전의 매력이고 놀라움이다. 

 심오하지만 어렵다. 그것이 고전의 가장 큰 쥐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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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ing - 기빙 : 우리 각자의 나눔으로 세상을 바꾸는 법
빌 클린턴 지음, 김태훈 옮김 / 물푸레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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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 추산 08년 현재 세계 인구는 66억 명. 계속 증가하고 있는 세계 인구의 대부분은 살기 좋은 일정 지역에 편중되어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 아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역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살기 좋은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기아와 가난 그리고 전쟁 등으로 (주관적인 관점에서)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만드는 인재는 이기심과 탐욕에서 비롯 되었으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바로 우리가 져야 할 우리의 몫이다.

 많은 사람들이 살기 좋은 지역에 몰려 있는 것과는 반대로 (앞에 말과 연관성은 없지만) 세계 부(富)는 극소수에게 편중되어 있다. 

 메릴린치와 캡제미니의 조사에 따르면 04년 기준 전 세계 100만달러 이상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부자들의 자산 총합은 30조 8000억 달러라고 한다. 과장해서 그 중 99%는 자신을 위한 부일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에 손가락질을 할 수 없다. 인간은 누구나 가질 권리와 누릴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의식과 행동 기준이 되는 도덕을 기준으로 생각 했을 때,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부를 - 어떻게 얻었는가는 별개 문제로 -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신의 부(액수에 관계없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자신의 부를 최소한의 삶 조차 누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나누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답은 개개인의 판단과 의지에 달려 있다. 강제화, 법제화 할 수 없는 문제이다. 특히나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도덕을 들먹이는 것이다.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다.

 나눔은 강제할 수 없다. 강제하는 즉시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나눔이 아니게 된다. 

 나눔이 발생한 것은 인간은 그러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동물과는 다른 인간 고유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눌 것인가? 이에 대해 클린턴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시한다.

 "어떤 일에 시간을 나눌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가능한 시간, 가지고 있는 지식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야가 무엇인가에 따라 결정된다."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정해졌다면 나눌 방법을 정해야 한다. 이 책은 그것을 가르쳐 준다. 누가 그리고 어떠한 단체가 어떻게 나누는지 보여줌으로써 나누고자 하지만 그 방법을 모르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동참할 수 있도록 돕는다. 책의 가장 말미에 있는 참고자료를 통해 많은 자선 단체를 소개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미국을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동참하기에는 쉽지 않다. 때문에 개개인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아야 한다.

 이 책에서는 특별한 것(어쩌면 인간미가 사라져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특별한 것일지 모른다.)을 보여주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지 비극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다. 함께 나눠 달라고 호소하지 않는다. 단지 어떤 이들이 누구에게 어떻게 나누고 있는지 보여줄 뿐이다. 그들은 왜 나누고 있는지 알려준다. 우리가 나누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매우 간략히 언급한다. 때문에 관련 책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반면 그렇기에 객관적이고 현실적이다. 이 책을 읽는 각자가 감정에 휘둘리게 하지 않게 한다. - 그러한 충동적인 마음은 지속력이 떨어진다. - 대신 개인의 의지와 판단에 따라 행동하게 한다. 결과는 철저히 각자에게 맡긴다.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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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탄생 (반양장) - 대학 2.0 시대, 내 젊음 업그레이드 프로젝트
이어령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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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문화부 장관 이어령의 신간이다. 진작부터 출간된다고 광고하던 '디지로그' 실전편은 나오지 않고 다른 책이 먼저 나와서 엉뚱하다는 생각이 든다. 

 

 '젊음의 탄생'.
 제목이 나의 젊음을 무척 자극한다.

 이 책의 주 타깃은 젊은이들이다. 9가지 매직 카드를 모토로하여 이 땅의 젊음들에게 진솔하면서 깊은 메시지를 던진다.

 '카니자 삼각형', '물음느낌표', '개미의 동선', '오리-토끼', '매시 업', '연필의 단면도', '빈칸 메우기', '지(知)의 피라미드', '둥근 별 뿔난 별'이라는 총 9가지의 매직 카드를 하나로 보자면 연관성은 없다. 이름만 봤을 때는 무엇을 얘기하려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각각의 카드가 뜻하는 바를 알고 나면 '아하' 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여기서는 한 가지 카드만 살펴보고자 한다.
 
 

 '물음느낌표', 영어로는 'Interrobang', 사전적 정의로는 '감탄 의문 부호'이다. 유니코드 U+203에 해당(한글 2007에서 찾아본 결과 정확하게 U + 203 D 다.)한다는 이 부호는 감탄 부호와 의문 부호를 하나로 합친 모양이다. 

 이것으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싶겠지만 이 카드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을 한 마디로 하면 지적 호기심을 자신 안에 가두지 말고 '행동하라', '모험하라'이다. 행동할 떄에 의문이 풀려 감탄이 나올거라는 얘기다. 행동할 떄에 창조성이 발휘 된다는 뜻이다.

 공부란 무엇인가? 의문(?)을 풀어 감탄(!)을 하게 되는 과정 혹은 그러한 여정이다. 하지만 이 땅의 젊음들은 그러한 지적 여정을 잃은지 오래다.

 고등학교에서는 입시에, 대학교에서는 취업에 억매여 젊음의 상징인 지적 호기심으로 인한 행동, 도전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오직 경쟁과 낙오만이 존재하는 그야말로 지옥을 경험하고 있다.

 젊음은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에서 매일 죽고 태어난다고 말한다. 젊은은 그렇게 탄생한다고 말한다. 회색 지대로 뛰어드는 최초의 펭귄이 되라고 말한다. 저자는 젊은이들의 행동을 촉구한다.

  

 표지에 '대학 2.0 시대'라는 문구가 실려 있다. 그것만 보고 책 내용을 짐작한다면 대학생활에 대한 충고가 나올 것 같다. 내용에도 대학에 대한 얘기가 잠깐 언급된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얘기는 몇번으로 그칠 뿐 많이 나오지 않는다. 때문에 그 광고 문구을 왜 삽입 했나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용은 젊은이들을 향한 충고라는 일관성을 유지한다. 그렇지만 대학생활에 대한 충고를 하려면 끝까지 하고, 그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을 향한 충고라면 문구를 뺴는 것이 더 낫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의 삽입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내용과 정확히 매치가 되지 않는 문구는 없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용이 상당히 장황하다는 생각이 든다. 몇 마디만으로도 충분 할 논지에 대한 설명을 상당히 멀리 돌아다니면서 한다. 그것의 유익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로 인해 약간 지치기도 한다.   

 어쨌든 사소한 것으로부터 특별함을 도출해내는 저자의 사고력과 문화에 대한 이해력 그리고 표현력이 다시 한번 잘 드러나는 책이다.

 이 나라 젊은이들의 죽은 도전 의식과 열정에 작은 불씨를 던져 주는 저자는 젊음은 누리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꿈과 희망이 사라진 젊은이들을 생각하는 저자의 마음이 한 가득 느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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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의 망상 - 만들어진 신이 외면한 진리
알리스터 맥그라스 외 지음, 전성민 옮김 / 살림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유신론을 비판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다시 비판한 책입니다. 저는 만들어진 신을 읽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우선 그러한 관점에서 이 책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맥그라스 부부(이하 맥그라스로 칭하겠습니다.) 공저의 이 책은 조용하면서도 품위 있게, 동시에 날카롭게 만들어진 신을 반박합니다. 도킨스의 문제점을 세세하게 조목조목 잘 파고들어 그를 꼼짝 못하게 만듭니다. 덕분에 솔직한 심정으로 도킨스의 비판 대상인 유신론자 입장에서 통쾌함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도킨스가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웃음이 생기기까지 했습니다. 맥그라스가 제시하는 도킨스의 허점이 얼마나 많은지 이 사람이 과연 유명한 그 사람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반면 만들어진 신을 읽지 않았기에 맥그라스의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지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었습니다. 맥그라스의 주장만을 놓고 보면 만들어진 신은 허점 투성이고 반박의 여지가 넘쳐나는 책으로 느껴집니다. - 물론 그것은 도킨스와 동등한 혹은 비슷한 지적 논리를 가진 자에 한해서겠지요. - 맥그라스의 주장이 매우 탁월하게 느껴집니다. 그의 주장은 반박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한쪽 논리에서 봤을 때 해당될 뿐입니다. 때문에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이 책만 읽을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신도 반드시 읽어야 균형잡힌 사고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이 책으로 돌아가서...
 이 책을 읽으면 맥그라스의 지적 논리가 얼마나 뛰어난지 C. S. 루이스의 글을 읽을 때와 같이 그 논리를 따라가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모든 분들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저의 경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만들어진 신의 내용 전부를 비판하지 않습니다. 맥그라스에게 필요한 부분만 비판하였습니다. 물론 왜 그랬는지 처음에 밝히긴 하였지만 그래도 전부를 비판하길 기대했었기에(?)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부분 비판의 의도를 알았음에도 그로 인해 이것이 과연 합당한 비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부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부분만 비판 했다는 것은 비판하지 않은 나머지 부분은 인정한다고 해석이 가능한, 그런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도킨스는 최소한 아직까지 맥그라스의 비판을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맥그라스의 비판에 꼼짝 못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럴 가치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비판은 비판을 낳고 다시 비판을 낳기 때문에 지루한 논쟁을 피하고 싶어서 그런 것인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도킨스가 다시 비판을 준비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건전하고 깊은 논쟁을 접하게 되어 그들의 문화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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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neit 2008-05-20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킨스의 글을 읽어보셔야 할 듯 하군요. 그렇지 않고서 '건전하고 깊은 논쟁'을 접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님의 주장엔 그 어떤 설득력도 없을 듯 하군요. 특히 맥그라스 부부가 '진화론'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은 과거 다윈이 그렇게 목청 높이 외치며 제대로 이해좀 했으면 하는 그런 기본 지식조차 겸비하지 못하고 오해로 바라보는 위인들인 만큼 제대로 된 비판서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우물에서 숭융찾기지요. 소위 광신자들이라 부르는 미국내의 극소수 신도들의 움직임과 왜 도킨스의 글이 나올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지식도 갖춘다면 금상첨화구요. 그리고 아마 도킨스는 이런 쓸데없는 논쟁에 휘말려 들지 않을 것 같군요. 그가 염두해 둔 독자층은 소위 무신론자라 부르는 침묵의 군중들에 대한 글이니까요. ...과학자인 그로써 종교적 논쟁에 뛰어들 이유가 없죠. 어자피 없는 토대에서 만들어진 헛된 공상에 대해 무슨 과학적 논쟁이 있겠습니까.

쩐디닥 2008-05-20 17:33   좋아요 0 | URL
님의 말씀이 맞아요. '건전하고 깊은 논쟁'이라고 표현하기 위해서는 제가 도킨스의 글도 읽었다는 전제가 필요하죠. ^^ 하지만 그럼에도 한 쪽의 주장만으로 그러한 표현을 한 이유는 우리나라 정치판을 떠올리고 한거예요. ^^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눈이 뒤집혀 막말과 몸싸움도 서슴지 않는 그들의 볼썽사나운 모습과 비교하여 쓴 글이에요. ^^


우리 정치인들에 비하면 책에서 나타난 도킨스와 맥그라스의 모습(도킨스는 맥그라스에게 반응도 없지만... 그리고 실제의 그들이 아니라, 이것저것 제하고 단순히 책 대 책으로써의 모습만요. ^^)은 신사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얌전(제가 가장 처음에 저질렀던 표현의 오류를 이 문단에서만도 두번이나 범했는데 이해해 주세요. ^^) 하잖아요. ^^ 물론 그것을 설명하지 않은 저의 실수죠. ^^

말을 이을 수 있을 정도로 그들에 대한 저의 지식이 풍부하지 못하기에 나머지 말씀에 대한 답은 거둡니다. ^^

아무튼 말씀 감사 드립니다. ^^

마법의활 2013-05-24 16:33   좋아요 0 | URL
님이야말로 도킨스 글을 제대로 읽지 않았습니다. 맥그라스 부부가 진화론에 대한 편견을 내비치는 부분은 그리고 없고, 굳이 있다면 도킨스처럼 진화론을 믿으면 종교는 설 자리가 없다는 종교 말살론 정도인데 거기서 무슨 설득력을 운운하는지....

오히려 한국에선 이런 반기독 빠돌이들이 정말 사회 문제입니다. 사실 이런 독해 능력이면 도킨스는 또 제대로 읽었을지 의심이 됩니다.

어차피 없는 토대에서 만들어진 헛된 공상은 누가 하고 있는 지원...어이가 없다.

지나가는 2008-10-17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음... 구지 이런 댓글을 달 이유가 별로 없긴 하지만 안타까워서 한마디 남기고 갑니다. 만들어진 신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둘 다 읽어본 저로서는 이 책이 딱할 뿐입니다... 최소한 둘 다 읽어보시고 이런 글을 쓰시길... 만들어진 신을 읽어보신 후에는 이 서평에 부끄러움이 일어나실지도 모릅니다... 더불어 이기적 유전자도 읽어보신다면 더욱 명확한 답이 나오겠죠.

쩐디닥 2008-10-24 17:3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 귀한 말씀 감사드려요. ^^

도킨스의 망상 서평 후에 만들어진 신을 읽어보았어요. - 이기적 유전자는 집에 있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했네요. ^^ - 그런데 저는 만들어진 신을 읽고 이 서평이 전혀 부끄럽지 않던걸요! ^^ 왜냐하면 저는 기독교인이기에, 기독교와 비기독교의 세계관과 가치관은 철저히 다르다는걸 알고 이해하기 때문이죠. ^^ 오히려 제 믿음과 서평에 대한 확신이 커졌네요. ^^

제가 하나님을 믿은게 불과 6년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저도 그 전에는 철저한 불신론자였기에 도킨스의 말을 충분히 이해해요. - 물론 그의 학문적 깊이나 지적 능력을 완전히 따라잡아서 이해한다는 말이 아니에요. 단지 그의 논지를 이해한다는 거에요. - 그렇지만 이제는 철저한 신자 - 신학 공부를 하고 있어요. - 이기에 저는 반대로 도킨스가 딱하게 느껴지네요. ^^

님의 말씀에도 어폐가 있네요. ^^ 제게 말씀하신 것처럼 님도 두 상황에 모두 처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님의 말씀대로 님도 철저한 - 시시껄렁한 신자가 아닙니다. - 신자가 되어 보시면 지금의 댓글에 부끄러움이 일어나실지 몰라요.

말씀하신대로 이기적 유전자도 읽어봐야 겠네요. ^^

다시 한번 말씀 감사드려요. ^^

마루와다솜 2009-03-28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있는 신도 읽어 보셨나요? ^^

쩐디닥 2009-03-29 21:59   좋아요 0 | URL
아뇨. 읽어보지 않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