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 없는 소녀‘의 원작. 영화가 소설을 잘 표현한 듯하다. 소녀의 삶에 있어서 킨셀라 씨 집에서 머물렀던 ‘그 해 여름‘의 경험이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 궁금하다. 보석같은 시절로 기억될 것 같다. 그러니 가시적인 결과를 내지 못 했더라도 괜찮겠지. 마음 속에 보석같은 시절이 영원히 간직될 테니 말이다.
키건 작품을 이 책으로 처음 접했는데 ‘초원의 집‘ 의 현대판인 것 같았다. 우리 나라 고전문학 작품같았다. 궁핍과 아버지의 상추행을 벗어나 미국으로 떠나는 딸, 목사 신분을 버릴 수 없어 결혼을 포기한 여자의 결혼식을 주재하게 된 목사, 속아서 시골 사람과 결혼해 만족스럽지 못한 결혼 생활을 하면서 이야기를 지어내 말하는 것에만 유일하게 흥미를 느끼는 여자 등등 다양한 인물 군상을 그리고 있는데 키건은 이들을 통해 무엇을 나타내고자 한 것일까. 아일랜드 시골 사람들의 삶을 다루었는데 상당히 마술적이고 몽환적이다. 보통 감추고자 하는 것들을 가감없이 서슴없이 드러낸다.
제목과 반대로 절대로 사소하지 않은 이야기. 짧아서 더 주목받는 듯도. 변화가 휘몰아치는 현 시점에서 올리버 트위스트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맡겨진 소녀‘가 더 감동적인 것 같기도 하지만 비슷한 울림이다. 미번역된 단편모음집(walk the blue fields) 키건 특유의 마법과도 같은 마력을 느낄 수 있다.
임진아의 그림이 더 좋지만 그 덕분인지 신간이 나오면 꼭 사보게 된다. 글이 잔잔하고 고요해서 읽는데 오래 걸리는 편이지만 그것이 임진아 글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팥 음식 이야기는 붕어빵에서 시작해 무한대로 확장된다. 겨울에 읽기 딱 좋은 에세이.
‘김민정의 1월‘이라는 열두 명 시인의 릴레이 책 중 첫 책. 기획력이 뛰어난 책이다. 시, 에세이부터 편지, 인터뷰 등 글의 형식이 참으로 다양하다. 날짜는 오늘 날짜이기도 하고 특별한 사람의 기일이기도 하고 생일이기도 하다. 고 박지선부터 김화영, 고 허수경, 최승자, 고아성, 고 황병기까지 그 인물들도 참 다양하다. 김화영 번역가 인터뷰 중 요즘은 독자가 다 저자가 된 듯 하다고, 그럼 독자 역할은 누가 하냐는 그의 지적이 와닿았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에 독자로서의 위치가 매우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지적이었다. 모두 저자가 될 필요는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들을 골라서 꾸준히 읽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깊으니까. 새해에 읽기에 맞춤인, 표지도 정갈하고 고운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