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이 학교의 전체 학생인 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웬걸 전교생은 전학생의 일본식 명칭이었다. 그리고 내용도 전혀 예상 밖이었다. 은퇴한 일본 아이돌 이야기라니? 연이은 단편 다섯개가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작품들은 연결되지 않았다. 연작이 아닌 마지막 세 작품이 그래도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어서 더 읽기 수월했다. 작가는 은퇴한 여자 아이돌 이야기가 자신의 오랜 화두였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도 비슷하게 적용되기에 의미깊다는 식의 말을 작가의 말에서 한 것 같은데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으나 전적으로 동의하고 응원하기는 어려웠다. 두 덩어리의 다른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엮여있는 이물감이 느껴지기도 했고 은퇴한 여자 아이돌, 포르노 활동 등은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주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미스 플라이트‘ ‘서독 이모‘에서 익히 봐왔던 박민정 작가의 저널리즘적 특성이 그를 믿고보는 작가로 만들어주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작가가 뭔가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멀리 가버린 느낌이 들어 많이 아쉬웠다. 무엇이 작가로 하여금 이 작품을 쓰도록 이끌었는지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다면 작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드라마나 영화같은 느낌으로 한 번 잡으면 놓을 수 없는 책.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인데 예상을 깨는 전개가 계속 이어진다. 영화로 만들어지는 상상을 하면서 읽게 되고. 쌍둥이 중 한 명이 죽고 나머지 한 명이 죽은 쌍둥이 역할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흔한 설정이라고 생각했으나 얽히고 설킨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소셜 네트워크 생태계에 대한 혜안이 가장 돋보인다. 인플루언서의 삶과 그들의 미래, 우리 사회의 미래를 생각해보게 하는 책. 벽돌책에 가까워 연휴에 읽기 딱 좋다.
믿고보는 단요 작가. 그가 ‘수능 해킹‘에서 보여줬던 한국 교육에 대한 폭넓은 식견과 남다른 분석을 청소년 소설에 어떻게 녹여냈을지 정말 궁금헸다. 읽어보니 기대 이상, 그 이상이었다. 감히 말해보자면 ‘완득이‘ 가 보여줬던 한국 사회의 다문화 양상이 이렇게 단요를 통해 새롭게 한 차원 높게 표현되는구나, 다문화를 다룬 한국 청소년 문학이 또 이렇게 새롭게 탄생하는구나 싶었다. 왜냐하면 이기호 작가의 평처럼 이 소설은 ‘미성년‘의 시선으로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단요 작가 자신의 경험이 많이 녹아 있어서인지 매우 설득력이 있고 구체적이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이 한국 고등학교의 현실이 리얼하게 담긴 작품으로 큰 인기를 끌었었지만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매우 이상적으로 그려진 것처럼 보였고 디테일 면에서는 현 시점이 아닌 5-10년 전의 고등학교 현실이 담겨 있는 것처럼 느꼈었다. 하지만 역시나 이 작품은 내가 읽은 청소년 소설 중에(이러저러한 이유로 꽤 이것저것 읽게 되었다.) 가장 리얼하고도 가장 현실에 가깝게 한국 고등학교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청소년 소설이라는 갈래의 한계 때문인지 보통은 처음 몇 장 읽어보면 결말이 보이는 작품이 대부분인데(작품을 창작하는 것 자체가 워낙 대단한 일이기에 웬만해서는 이렇게 말하지 않지만 사실 그렇게 느껴질 때가 많긴 하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맑고 밝은 이야기이거나.) 이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청소년 문학의 역사가 오래 되어 어른들도 즐겨 읽는 영미권의 청소년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처럼 말이다. 어서어서 이 작품이 유명해져서 ‘완득이‘처럼 영화화되었으면 한다. 정말 수준높은 한국 청소년 소설. 어른들에게도 강추다--+ 단요 작가에게 꽂혔다가 바빠 잊고 있었는데 다시 파봐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이유리작가의 단편모음집이라 재미있게 읽었다.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다. sf 필도 나고 그렇다고 본격적이진 않고 그렇다고 현실과 완전 동떨어진 건 아니고. 현실에 발 딛고 있으면서도 기발한 발상으로 써내려간 글들이 참 풋풋하다. 이 시대 젊은 이들의 삶과 고민과 상상력을 느낄 수 있다. 비참하지만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