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말로만 아니 글로만 무성히 듣던 그 이슬아를 만났다. 물론 책으로. 우리의일상 모든 것이 글감이 될 수 있고 책이, 글이 부름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서비스가 아닌 먼저 찾아가는 서비스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으로 이슈가 되었던 바로 그 작가.
처음에는 그냥 아이들 글쓰기 가르치는 이야기인가 보다 했다. 초중반부에 아이들 이야기가 많아서 처음에는 새롭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지만 좀 늘어진다 싶을 때 이슬아의 글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주변을 세밀하게 관찰해서 글로 옮기는 능력을 갈고 닦은 느낌이었다.
다년간 경험한 초등학생 글쓰기 교사로서의 관록도 묻어났다. 학생들 다루는 솜씨가 좋고 그러면서도 귀여워서 소위 선생님같지 않은 선생님이었다. 최대한 아이를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려는 자세가 돋보였다. 글감도 좋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주는 것도 좋았다. 공교육 제도교육에도 이런 선생님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이슬아 선생님에게 글쓰기를 배운 학생들은 참으로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이슬아선생님에게도 초등학교 3학년 때 은선생님과 어딘 선생님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런 존재여야 하는데 요즘은 그게 참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특히나 '코로나 시대의 글방 꼭지'가 의미심장했다. 줌으로 하는 글쓰기 수업. 올 한 해도 아무래도 계속 이 상황이 지속될 테니 더 시사점이 크다고 하겠다. '나의 유년과 어딘 글방' 꼭지도 좋고.
에세이는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면서 교묘히 뺄 것은 빼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었다. 소위 드러내고 싶은 부분만을 드러낸다는 이야기인데. 그럼에도 우리는 어느 부분에선가 작가가 솔직한지 솔직하지 않은지 느끼게 된다. 그렇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튼 이슬아는 모든 것을 드러낸 것은 아니겠지만 대체로 솔직했고 그의 성장을 계속 해서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물론 그가 거쳐온 길도. 부지런히 그의 전작들을 찾아봐야 겠다. 간만에 포근하면서도 톡톡 튀는 글들을 읽은 것 같다. 요즘 참 재주많은 사람들이 많다.
어쨌든 우울은 평생 자주 보는 친구 같은 것이다. 10대 후반의 아이들이 감당중인 우울은 20대 후반인 나에게도 종종 찾아온다. 아마 30대 후반이나 50대 후반에도 비슷할 거라고 우리는 예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