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일년 반만에 원서를 다시 읽었나 싶은데 그런데 또다시 말콤 글래드웰이었다. 싸게? 사다놓은 책이 있었기에. 이사를 하고 책장을 사서 책을 꽂으면서 발견한 김에 읽기 시작했다. 읽어 내려가면서 이래서 한국인들이 글래드웰을 좋아하는가 싶었던 지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 정도의 어휘와 문장으로 이 정도의 내용을 말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어휘는 쉽고 문장은 명쾌하고 그러면서도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가볍지 않고 종횡무진한다는 점. 다 읽고 나면 역시나 글래드웰이 정교하게 만들어 놓은 미로를 무사히 통과한 느낌이 든다.
이 책의 내용을 결국 인생사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는 것으로 줄인다면 너무 거친 요약일까.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introduction. 그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 그런데 그 속에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사연들이 있다. 결국 이 논조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챕터별로 펼쳐지는데, 전체 세 부분 중 첫번째 부분이 가장 재미있고 두번째 부분에서 공감을 잃고 헤매다가 다시 세번째 부분에서 정신을 차리고 읽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책에도 inverted-U theory가 있는데 이 책의 내용도 약간 그런 느낌이었다.
Underdogs, misfits, and the art of battling giants가 부제로 되어 있는데 결국 언더독들이 어떻게 뭐든지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인들(혹은 거인들로 가득차 보이는 세상)에 맞서 싸우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치명적인 단점도 역으로 그것이 자신의 강점이 될 수 있고, 적어도 그 단점을 가리기 위해 다른 역량들을 키우려 노력하게 되므로 그 단점이 도움이 된다는 흔한 이야기로 치부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모든 것은 '태도'에 달려있다는 이야기와 통하므로 우리네 인생살이의 가장 핵심일 수 있다.
아웃라이어, 티핑 포인트, 블링크가 가장 한국에서 많이 팔렸던 것 같고 최근의 '타인의 해석'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다(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롭게 읽었으나 뭔가 궤변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었는데 현지 평론가도 비슷한 평가-그의 논리가 효과적인지는 잘 모르겠다는-를 해서 놀랐었다).

최근 대담집 '코로나 이후의 세상'에서 그가 한 '약한 고리' 이야기는 꽤 흥미롭다. 그가 코로나 세상에서 또 어떤 책을 집필하고 있는지 매우 기대된다. 결국 나는 글래드웰이 한국에서 지나치게 주목받고 있는 것 아니냐 욕하면서도 일단 신간을 내면 빠지지 않고 읽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 것인가. 하지만 심각한 이야기를 심각하지 않으면서도 재미있는 영어로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글래드웰이라면 어느 정도 보장된 작가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는 해도 베스트셀러만 저렴하게 파는 한국의 원서 가격도 그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