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어스 라이프
맥스 루가비어 지음, 정지현 옮김, 정가영 감수 / 니들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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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어스 라이프>는 건강한 삶을 위한 안내서입니다.

모두 일곱 개로 나누어 뇌를 깨우고 면역력을 키우는 건강 습관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요즘은 누구나 건강에 대해 관심이 많기 때문에 이미 아는 내용일 수도 있지만, 아는 것과 실천은 별개라는 점에서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먼저일 것 같습니다.

읽고 아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읽고 이해하여 실천하는 것이 진짜 아는 것입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알츠하이머와 암으로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고나서 인간의 건강, 특히 뇌 건강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탐구를 했기 때문입니다.

타고난 유전자는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환경은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를 아프게 만드는 환경 요인은 대부분 통제 가능하며, 그 환경을 바꾸면 건강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그것을 '지니어스 라이프'라고 부릅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삶의 과학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일.

이 책은 전략적이고 따라 하기 쉬운 지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바로 여섯 가지 건강 수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 음식, 제대로 알고 먹어라.

둘. 낮에 일하고 밤에는 쉬어라

셋. 몸속 숨은 에너지를 찾아라.

넷. 일어나라, 그 자체가 운동이다.

다섯. 주변의 독소를 치워라.

여섯. 이너피스를 유지하라.


사실 이 수칙을 이해하려면 구체적인 정보가 필요한데, 그 내용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FAQ로 정리한 부분은 궁금증을 풀어줘서 도움이 됩니다.

음식은 가능한 유기농 제품을 먹는 것이 좋지만 여건이 되지 않는다면 가공되지 않은 채소를 먹어야 합니다. 과일과 채소를 씻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물에 소금이나 식초, 베이킹소다를 1작은술 넣으면 표면의 농약 성분을 좀더 깨끗하게 씻을 수 있습니다.1~2분만 담가둬도 효과적이며 아주 바쁘면 흐르는 물에 씻으면 됩니다. 

매일 1회 샐러드를 큰 대접에 가득 담아 먹으면 뇌의 노화를 최고 11년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 케일이나 시금치, 루꼴라 같은 짙은 녹색 채소에 달걀이나 지방이 많은 생선 조각,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1~2큰술 같은 지방 성분을 꼭 추가합니다. 건강에 좋은 몇 가지 식품만 꾸준히 먹어도 충분합니다.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쉬는 일, 매우 간단한 일 같지만 현대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인공조명 때문에 낮은 물론이고 밤까지 너무 밝아져서 우리 몸의 생체리듬이 깨지는 것입니다. 생체 시계를 늦추면 수명도 연장될 수 있습니다. 시간 제한적 섭식, 즉 간헐적 단식은 칼로리를 제한하여 건강을 개선하고 수명을 연장해주는 다양한 효과가 있습니다. 

뇌를 생각한다면 운동은 필수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근육이 튼튼할수록 나이가 들어도 건강합니다. 근력 운동과 뇌의 관계에 관한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지만 노인들의 경우 근력이 강할수록 인지 기능이 양호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유리한 환경이 등장합니다. 바닥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리라는 것, 의자에 앉는 것보다 바닥에 책상다리로 앉는 것이 몸의 다양한 곳을 튼튼하게 해준다고 합니다. 운동만큼 중요한 것이 휴식이므로, 잘 자고 자주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일상에서 조심해야 할 것이 내분비계를 교란시키는 독소들입니다. 비스페놀 A 혹은 BPA는 식품 포장과 재활용 가능한 물병에 흔히 사용되는데 BPA가 들어간 플라스틱에 저장된 식품과 음료수에 합성 에스트로겐 물질이 들어 있습니다. 열에 반응하는 종이영수증의 코팅제로도 쓰여 피부와 손으로 입을 만지는 행위로 우리 몸에 들어옵니다. 내분비교란물질이 일으키는 건강 이상에는 생식기 기형, 자궁내막증, 성조숙증, 천식, 면역질환, 주의력결핍과인행동장애(ADHD) 등이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BPA나 프탈레이트는 안전한 노출 수준이 없다는 겁니다. 최대한 독소에 노출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미 몸 안에 쌓인 독소를 해독하는 법은 강력한 식단과 생활방식이 몇 가지 있습니다.공기 정화 식물 가까이 두기, 땀 흘리기, 과일과 채소 먹기, 영양소 밀도가 높은 식품 먹기, 황을 함유한 식품 먹기 등이 있습니다.

새로운 행동을 지속하려면 행동보다 핵심 믿음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지니어스 라이프는 건강도 중요하지만 삶을 어떤 자세로 살아가는지도 중요합니다. 저자는 알려준 이너피스를 유지하는 법은 어머니에게 배운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좋은 마음으로 바르게 사는 삶의 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니어스 라이프를 위한 4주 플랜은 실천을 위한 지침이라서 정말 유용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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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
다시 로크먼 지음, 정지호 옮김 / 푸른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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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확정되면서 함께 뜬 뉴스가 있어요.

부인 질 바이든이 본업인 교수직을 유지하기로 했다는 것.

231년 미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직업을 가진 퍼스트레이디가 탄생했다는 내용은 의외였어요.

변호사였던 힐러리 클린턴과 미셸 오바마는 백악관 생활을 하며 일을 그만뒀는데, 질 여사는 자신의 본업을 유지하겠다고 공식발표한 거예요.

어찌보면 당연한 건 아닌가요. 남편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부인이 반드시 내조해야 하는 법은 없잖아요.

도대체 왜 영부인으로서 내조하는 게 당연시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것도 21세기 미국에서 말이에요.

호기심에 독일의 메르켈 총리를 검색해보니 남편은 화학자인데 공개 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네요. 이른바 조용한 외조. 오히려 메르켈은 총리직을 수행하면서도 남편의 아침 식탁을 차려주는 일은 손수 하고 있대요. 처음엔 '엄마(Mutti)'라는 별명이 동독의 촌스러운 아줌마를 비꼬는 뜻으로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실용주의 리더십을 인정받으면서 국민을 어머니처럼 포용하고 보호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대요. 여자는 총리직을 수행해도 '엄마'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니네요.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은 미국의 임상심리학자이자 저널리스트 다시 로크먼의 두 번째 책이에요.

"왜 남자들은 일을 더 하지 않는가?" , "평등주의자인 남녀는 왜 가정에서 불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는가?"의 근원을 추적하기 위해 100명의 엄마들을 인터뷰했다고 해요.

그 인터뷰 결과는 놀라웠어요. 나이, 인종, 종교, 사회경제적 지위와 관계없이 엄마들이 털어놓는 얘기가 똑같았대요. 

우선 이 책은 자녀를 둔 기혼여성들이라면  200% 공감하게 될 거예요. '앗,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중요한 건 자신이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을 당하고 있었다는 현실 자각이라고 생각해요.


끝나지 않은 성차별.

성평등을 외치면서 사회에 진출한 여성들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 순간 200년 전으로 돌아가버리는 현실.

왜 그럴까요. 그건 '개인 영역'이었기 때문이에요.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바뀌지 않았던 거에요.

이렇게 말하면 발끈하는 남자들이 있을 거예요. 요즘 세상은 남자들도 집안일 하느라 힘들다고.


'아이가 아프면 누가 휴가를 내는가?' 미국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노동력 변화에 대한 전국 연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여자의 77.7퍼센트, 남자의 26.5퍼센트가 자신들이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고 보고했다.

(부부가 아닌 개인을 대상으로 조사했기 때문에 총합이 100퍼센트보다 크다.)

사회학자 데이비드 몸은 1980년대 후반에 가족 연구자들이 남자는 일을 하지 않을 때 육아의 책임을 "받아들이지만", 

여자는 남편의 일정과 아이들의 필요에 맞춰 일을 "조정"한다고 밝힌 이래로 많이 변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181p)


내가 인터뷰한 엄마들은 대개 배우자가 뜨뜻미지근한 부모임을 자각하는 태도를 보이며 

도우미형, 나누미형, 태만형으로 살아가는 모습에 분노하고, 

인터뷰에 응한 남자들은 대부분 아내의 불만에 영문을 몰라 한다. 

오바마가 미셸의 불만에, 조지가 나의 불만에 대해 느끼는 것처럼.

저는 아내를 사랑해요. 도와준다고요. 뭘 어쩌라고요?   (219p)


저자는 엄마들의 인터뷰뿐 아니라 생물학, 신경과학의 최신 연구 사례를 통해 성차별주의를 지속시킨 편견과 과학적 오류를 짚어내고 있어요.

왜 남자들은 이런 식으로 행동할까?  왜 여자들은 이런 행동을 봐주는 걸까?

성별에 따른 사회화, 즉 사회화는 성별 행동 차이를 낳는 데 영향을 줘요. 한 가지 예로 평등한 가정에서 자란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와 똑같이 아기에게 관심을 보이는 반면, 전통적인 가정에서 자란 남자아이는 아기에게 관심을 덜 보인다고 해요. 타고난 생물학적 성향과 문화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분석하기란 불가능하며 결국 이 둘은 상호작용한다고 볼 수 있어요. 현대적이고 가정적인 아빠 시대에도 생계비를 버는 일과 돌보는 일에 균형을 찾기 위해 벌이는 공적 토론은 남자가 아닌 여자에게 집중되어 있어요. 콕 집어서 여자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어요. 현대 엄마 역할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여자는 본능적으로 즐겁게 양육해야 하고, 모든 개인성을 버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어요. 우리는 모두 성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어요. 여성 희생 숭배는 문화적 하위 집단마다 다양한 형태를 띠지만 그 속내에는 가부장적인 질서를 유지하려는 목적을 띠고 있어요. 여자들이 처한 위치는 정확히 여자들의 책임이 아닌데, 성 불평등이 내재된 역할을 강요받고 있어요. 사회규범은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고정관념은 역으로 사회규범을 강화하고 있어요. 

사회학자들은 수십 년에 걸쳐 성 고정관념의 변화를 추적해왔어요. 연구에 따르면 가정 일로 직장에서 휴가를 내는 남자들은 덜 좋게 보고, 연봉을 더 적게 받는 사람으로 인식된다고 해요. 즉 남자는 여자처럼 되어서 득볼 게 하나도 없다는 식의 편견이 문제라는 거예요.

온정적 차별은 남성 지배를 애정이 담긴 기사도 정신으로 표현하면서 여자는 성공한 남자 뒤에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조장해요. 공동체적 특성의 규범을 어기는 여자, 마땅히 여자답게 행동하지 않는 여자는 벌을 받는다는 인식인 거예요. 뉴욕대학교에서 실시한 2005년 연구를 보면, 남을 돕는 행위를 하겠다고 응답할 때 남자의 호감도는 올라가는 반면, 여자의 호감도는 변화가 없었어요. 이는 온정적 성차별의 적대적인 면모예요. 여자들은 부정적인 평가를 피하기 위해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일제히 틀에 박힌 행동을 하면서 모순을 느끼는 거죠. 적대적 성차별에 대해서는 싸울 수 있지만 애정 넘치는 다정한 사람으로 칭송받는 엄마는 여기에 저항하지 못하니까. 그래서 온정적 성차별이 훨씬 더 교활한 거예요. 불평등에 익숙해지면 불평등도 마치 평등처럼 보인다고 해요.

이제는 적응을 멈출 때가 왔어요. 우리가 모든 성차별주의를 노골적으로 적대시하고 저항해야 불평등한 가정을 정당화하는 일을 종식시킬 수 있어요. 평등의 과정에 대한 책임은 똑같이 분담해야 하되 엄마 혼자 주도해야 할 일은 아니라는 거예요. 여기서 우리는 여자만이 아니라 남자들도 포함하고 있어요. 불평등을 끝내는 것은 우리 남자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엄마 역할과 아빠 역할을 구분할 수 없게, 다같이 부모 역할을 하자는 거예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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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 N번방 추적기와 우리의 이야기
추적단 불꽃 지음 / 이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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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N번방의 실체를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은 그야말로 공포와 분노 그 자체였어요.

2020년 3월 25일, '텔레그램 박사방'의 조주빈 신상이 공개됐어요. 그의 표정에는 일말의 반성이나 죄책감이 보이지 않았어요.

그리고 2020년 4월, 국민청원 사이트에 '미국 송환은 가혹하다'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왔어요. 내용인즉슨 미국 법무부가 손정우에 대한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한 것에 대해 그의 아버지가 막아달라는 청원을 올린 거예요. 손정우는 다크웹에 '웰컴 투 비디오'(W2V)'의 운영자로 아동 성착취 영상을 판매·유포한 범죄자예요. 미국 법원은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자에게 징역 600년을 선고했는데, 한국 법원은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불허했을뿐 아니라 징역 18개월의 솜방망이 처벌만 했어요. 또한 웰컴 투 비디오 이용자 다수는 집행유예로 풀려나거나 솜방망이 처벌조차 받지 않았어요. 겉보기에는 평범한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자들이 우리 주변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게 대한민국의 현주소예요. 웰컴 투 비디오 이용자들이 흘러들어간 곳이 바로 텔레그램 N번방과 다크웹의 □□□, ○○○같은 사이트였어요.


텔레그램 N번방이 세상에 알려지고, 범죄자들이 체포되기까지 그 뒤에는 '추적단 불꽃'이 있었어요.

정식 기자도 아니고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두 여성이 어떻게 최초 보도자이자 최초 신고자가 되었을까요.

바로 그 피, 땀, 눈물의 이야기가 이 책 속에 담겨 있어요.


"2020년, 지긋지긋한 여성혐오 범죄에 지친 이들에게 이 책이 '이제 우리 함께 걸을까요?'라는 인사로 다가가면 좋겠습니다.

... 살아온 환경, 살아온 방법, 살아온 시간이 달라도,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연대'는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7-8p)


1년 전, 두 사람은 기자를 꿈꾸는 대학생으로 신문사 인턴 생활을 같이 했던 인연으로 뉴스통신진흥회의 '탐사 심층 르포 취재물' 공모전도 함께 준비하고 있었대요. 기사 주제는 '불법촬영'으로 잡았고, 불법촬영물이 유포되는 소굴을 찾으려고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너무나 쉽게 발견했다고 해요. 그때 '와치맨'이라는 운영자의 공지를 통해 '고담방'이라는 텔레그램 대화방을 알게 되었고, 수십 개의 파생방을 통해 'N번방'으로 연결된다는 걸 알게 되었대요. 

텔레그램에 가입한 지 다섯 시간 만에 링크를 받아 N번방 중 하나인 1번방에 입장할 수 있었고, 눈앞에 펼쳐진 영상은 어린아이들의 나체였다고 해요. 고담방과 파생방 회원들이 수없이 말하던 '노예'란 초등학생 혹은 중학생 아이들이었고, 그 아이들은 N번방 회원들의 지시에 따라 영상을 직접 촬영해 보냈던 거예요. '갓갓'이라는 자는 아이들을 협박하여 받은 불법촬영물을 텔레그램 대화방에 유포·공유했던 거예요. 이 끔찍한 범죄 현장을 목격한 두 사람이 한 일은 '신고'였어요.

어쩌면 그냥 모르는 척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신고했고 적극적으로 경찰에 협조했어요.


만약 우리나라가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법률과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었더라면 '추적단 불꽃'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추적단 불꽃' 덕분에 N번방의 조주빈을 비롯한 공범들을 잡을 수 있었지만, 바꿔 말하면 그들의 피, 땀, 눈물이라는 희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N번방 사건이 공론화되기 전, B는 2018년 피해가 발생했을 당시 해당 지역 경찰서에 신고했더니 해당 경찰서에서 해외기반 SNS는 수사가 어렵다며 사실상 수사를 종결해버렸다고 해요. 이때까지만 해도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성폭력을 수사하는 전담 팀이 없었대요. 더군다나 수사기관은 디지털 성범죄가 심각한 범죄라고 여기지 않을 정도로 몰랐던 거예요. 이후 B는 2년간 홀로 고통 속에 지내다가 2020년 5월, 대대적으로 N번방 사건의 갓갓이 잡힌 후에야 비로소 피해자 지원을 받을 수 있었대요.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였던 손정우의 솜방이 처벌은 법관들이 디지털 성범죄를 가볍게 여긴 탓이에요. 그건 법관들뿐 아니라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텔레그램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이 국회 접수 요건인 동의자 수 10만 명을 달성하여, 20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는 3월 5일에 관련 법안 네 건을 처리했다고 해요. 그런데 처리 직후 법사위 참석자 대부분이 'N번방 사건'과 '딥페이크'를 제대로 구분하지도 못해서, 어느 국회의원은 "나 혼자 즐기는 것까지 처벌할 것이냐?", "생각하는 것까지 처발할 수는 없지 않느냐?", "청원한다고 다 법 만듭니까?", "예술작품이라 생각하고 만들 수 있지 않냐" 같은 발언을 했다고 해요. 

[딥페이크 처벌법 만든 고위 공직자들의 안이한 현실 인식 - 경향신문 2020년 3월 18일자, 심윤지 기자] (70p)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시키겠다던 입법부 국회의원들이 이토록 한심한 발언을 했다는 것이 처참한 현실인 거죠.


두 사람은 N번방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과정에서 일부 언론의 태도에 절망했다고 해요.

언론이 텔레그램 성착취 문제를 보도할 때 피해 사실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은 기사가 자극적으로 흐를 수 있고, 이로 인한 2차 피해를 유발할 수 있으니 주의해달라고 호소했건만 피해자의 안위는 뒷전이었다고 해요. 사람들이 알아야 할 내용은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인 것이지, 자극적인 피해 사실이 아니에요.


그동안 몰랐던 디지털 성범죄의 현실을 '추적단 불꽃'이 취재했고, 그 참혹한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났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불'과 '단', 두 사람의 열정과 용기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용감한 행동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는 걸 두 사람이 보여줬어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해낸 거예요. 이제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기 위해서 정부가 나서야 하고, 우리 모두가 함께 가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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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해서 - 소란과 홀로 사이
배은비 지음 / 하모니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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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얼썩 철썩~

밀려오는 파도처럼

산다는 건 그런 것 같아요.

매일 반복되는 일상 같지만 하루도 똑같은 날이 없듯이.

사는 동안 저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왔다 갈 텐데, 그 파도를 두려워한다면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요.


<어쩌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해서>는 배은비님의 에세이예요.

제목을 읽으면서 짐작했어요. 이토록 조심스럽게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라면 안심할 수 있겠구나.

역시나 저자는, 솔직해지고 싶어서 위로받고 싶어서 이 글을 썼다고 이야기해요. 어설프게 너를 위로한다고 생색내지 않고, 그냥 나를 위로한 것이 네게도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면 좋겠다는 그 마음이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위로는 말이 아닌 마음을 전하는 일이니까.

마음, 보이지도 않는 마음 때문에 사는 게 힘든 것 같아요.

남과 비교하는 마음, 지나간 것들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마음, 시작하기도 전에 두려워하는 마음... 약해진 마음을 제때 다독여주면 될 걸, 그 마음이 싫어서 아닌 척 덮어버린 건 아닌지. 


나는 혼나지 않으려 매번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내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이때부터였던 것도 같다. 혼자 끌어안고 말하지 않는 버릇이 든 게.

"너는 비밀이 많은 것 같아. 난 너한테 숨기는 거 하나 없이 다 말해주는데 넌 항상 듣기만 하잖아.

정작 너에 대한 얘기는 아무것도 안 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친구들에게서 자주 듣던 말이었다. 

사실 나는 말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거였는데. 언제나 말하고 싶은 쪽에 속했던 건 나였는데, 

하고 싶은 말들은 왜 입 끝에서 맴돌기만 하는지 알고 싶다고, 할 수만 있다면 속을 발라당 꺼내 보여주고 싶었다.  (54p)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아요.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거라는 걸 누가 알아주겠어요. 

그러니 너는 솔직하지 못해, 라고 비난하는 건 아픈 상처를 또 한 번 찌르는 말이에요. 순수하게 자기 마음을 드러냈다가 크게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었다면 잔뜩 움츠러들 수밖에 없어요. 말하지 않으면 남들은 그 마음을 알 수 없으니, 말할 용기가 없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오해가 쌓여서 더욱 마음을 닫아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겁 많은 거북이.

다행히 세상에는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마법이 있었으니, 그건 사랑이 아닐까 싶어요.

저자는 이십 대를 지나 서른을 넘기고서 부모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대요. 상처받은 것들만 기억하느라 수없이 받은 것들은 까맣게 잊고 있었노라고. 마치 혼자서 다 이뤄낸 것 마냥 혼자서만 잘났다며 자기만 챙겼는데, 돌아보니 자신을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부모님이 계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미운 마음을 내려놓고서 주변을 둘러보니 나를 믿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자신을 지켜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예요. 살아간다는 건 사랑하고 이해하는 일인 것 같다고, 네, 거기에 또 하나를 추가해야 할 것 같아요. 미처 몰랐던 것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일. 

어쩌면 이 책이 뭔가 놓쳤던 마음을 알아채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저한테는 이 책이 위로보다는 공감이었어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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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의 힘 - 연결의 시대, 우리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세계 경제
프레드 P. 혹버그 지음, 최지희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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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의 힘>은 우리가 알아야할 최소한의 세계 경제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미국은 강대국으로서 무역을 통한 압박을 해왔습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보호무역주의로의 회귀는 세계 경제의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뉴스를 통해서 접하는 세계 경제와 무역정책, 어디까지 이해하는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뭔가 더 알고 싶은 내용들이 많았던 터라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무역에 관한 역사적 이야기뿐 아니라 무역에 관한 오해, 무역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바꾸었는지 여섯 가지 물건을 통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무역에 관한 최근 여론조사를 통해 왜 무역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었는지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세금, 이민 등 다른 시사 문제와 달리 무역에 관한 여론은 왜 변화의 폭이 클까요. 그건 미국인들이 무역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누가 대통령이 되든 간에 일시적인 논쟁이나 감정에 의해 쉽게 휘둘리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설문 결과를 살펴보면 무역이 미국인의 삶에 미치는 구체적인 영향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이 상당했습니다. 그건 미국이 기본적으로 외국 제품을 선호하는 것을 반미행위처럼 느끼도록 대중을 세뇌해왔고, 저렴한 수입품이 미국 내 일자리와 미국산 제품이 설 자리를 뺏는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미국의 일자리 문제와 수출 문제를 동일시한다고 합니다. 무역이 일자리와 임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태도가 혼란스러운 것은 당연하지만 한편으로는 정치인들의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수출 분야의 일자리가 다른 일자리보다 평균적으로 임금이 더 많다는 것은 알지만, 무역이 일자리와 임금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견해는 개인적으로 이익을 보았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인들이 무역에 쏟는 관심 대부분은 수출을 향하지만 오늘날 미국인이 살아가는 모습에 진정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나나를 선두로 한 무서운 수입품 군단이라고 합니다. 토마토, 레몬, 바나나... 아이폰, 하버드와 미키마우스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수출품까지 일상 속 무역은 다양합니다. 

저자는 미국 관점에서 국제표준을 강화하고 긴밀한 조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더 빠르고 복잡해진 변혁의 물결 속에서 무역협정은 아직 없는 상품에 관한 것이며 무역의 미래는 승자 없는 게임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정치도 그 변화에 한몫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경제적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미국인의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앞으로 발생하는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일하기 위한 준비를 제대로 못한다면 미국은 경제적으로 뒤처지거나 글로벌 리더로서의 지위를 내놓게 될 것입니다. 새롭게 바뀐 정부에서 어떤 정책을 펼치느냐를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미국이 이데올로기 싸움을 계속 벌이거나 자금을 쏟아부어 음해를 하는 등 이런 교착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밀려오는 거대한 경제 변화의 물결에 맞서 일어설 기회는 사라질 것입니다. 저자는 중국과 협력하여 전 세계가 모두 따를 만한 책임감 있고 시행가능한 규칙을 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무역협정을 어떻게 체결해야 하는지, 그로 인한 결과가 무엇인지 모두가 정확하게 보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자는 필수적인 리더십의 부재라는 미국의 상황을 인식하면서도 무역의 미래를 낙관하고 있습니다. 미래 경제를 만들어갈 가치는 모두가 만들어가는 것이므로. 결론적으로 무역은, 골치 아픈 말이 아니라 우리를 하나로 묶는 힘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무역의 힘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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