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인도신화 - 신화부터 설화, 영웅 서사시까지 이야기로 읽는 인도
황천춘 지음, 정주은 옮김 / 불광출판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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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신화?

누군가 되묻더군요. 인도에도 신화가 있냐고.

저 역시 잊고 있었어요. 인도가 4대 문명국 중 하나라는 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도신화와 옛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그것이야말로 찬란했던 고대 문명의 보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신화와 전설은 시대의 사상을 품고 있어요. 베다(Veda), 불교와 자이나교, 힌두교 등 수많은 종교와 사상의 발상지 인도에는 인도인의 숫자보다 더 많은 수의 신이 살고 있다고 해요. 인도인이 하는 말처럼 갠지스 강의 모래알만큼 많은 인도신화 속에서 최고의 신들에 관한 이야기가 이 한 권의 책 속에 담겨 있어요.

가장 대표적인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이야기는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 거예요.


"태초의 세상은 그저 캄캄한 어둠이었다. 아무런 특징도 없고 인식할 수도 없는, 한없이 깊은 잠에 빠진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영혼이 나타났다. 그는 어둠을 몰아내고 우주가 모습을 드러내게 하였다.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는 느낄 수도, 상상할 수도 없지만 분명히 존재했다.

브라흐마는 세상 만물을 창조하고자 하였다."  (17p)


브라흐마는 우주의 왕인 범천으로서 황금알 속에서 태어났다고 해요. 브라흐마는 황금알을 둘로 나눠 반쪽은 하늘을 만들고, 나머지 반쪽은 땅을 만들었어요.

천지창조의 장면이 성경과 흡사하죠? 이럴 때 보면 인간의 언어는 최소한의 표현을 담을 수 있는 도구인 것 같아요.  

우주가 만들어졌는데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이 자신뿐이라는 사실이 외롭고 쓸쓸해서, 여섯 명의 아들이자 위대한 조물주 여섯 명을 낳았다고 해요. 재미있는 건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영혼이 스스로 외롭고 쓸쓸하다는 감정을 느꼈다는 부분이에요. 신의 감정이라기엔 너무 인간적이지 않나요. 

첫째 마리치는 브라흐마의 영혼에서 태어났고, 둘째 아트리는 브라흐마의 눈, 셋째 앙기라스는 브라흐마의 입술, 넷째 풀라스티야는 브라흐마의 오른쪽 귀, 다섯째 플라하는 브라흐마의 왼쪽 귀, 여섯째 크라투는 브라흐마의 콧구멍에서 태어났대요. 또 오른손 엄지손가락에서 일곱 번째 아들인 다크샤를 낳고 왼발 엄지발가락에서 밤이라는 뜻의 딸 비라니를 낳았대요. 훗날 다크샤와 비라니는 부부가 되어 딸 50명을 낳았대요. 다크샤의 첫째 딸 디티와 둘째 딸 다누가 낳은 아들들을 아수라라고 불렀대요. 이들은 아디티의 아들들, 데바들과 우주의 지배권을 두고 팽팽히 맞서며 끊임없이 싸웠어요.

인도의 신화와 전설에 따르면 세상은 사트야 유가부터 칼리 유가까지 네 개의 시기를 거치는데 뒤로 갈수록 타락해요. 현재 사람들은 암흑의 시대인 칼리 유가에 살고 있고, 네 유가가 끝나면 곧 1겁인 셈이며, 세상은 멸망한 다음에 다시 창조된대요. 이 세상은 지금까지 일곱 번의 윤회를 거쳤다고 전해져요. 우주의 최고 주재자는 마치 놀이처럼 세상을 창조하고 멸망시키며 끊임없이 우주를 윤회시켰대요. 인도인은 지금도 여전히 영혼이 카르마(Karma, 전세의 행위로 인한 운명)에 따라 환생한다고 믿고 있어요. 

인도의 카스트는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이 네 가지로 나뉘는데, 신분 계급제를 뜻해요. 브라만은 사제로 처음에 지식을 독점하는 계층이자 사회적 지위가 가장 높은 자들이고, 크샤트리아는 무사 계급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전쟁을 치르는 역할이며, 바이샤는 농업, 상업, 축산업 등의 노동 계층이자 인도 사회의 서민에 해당해요. 수드라는 최하위 계층으로 대개 사람들이 꺼리는 육체노동에 종사해요. 이밖에 불가촉천민인 달리트가 있는데, 이들은 지위라고 할 만한 것이 없고, 가장 비천한 직업에 종사하며 도시와 농장 밖으로 내쫓겨 살아가요. 솔직히 이해할 수가 없어요. 인도의 카스트는 종교와 결합하여 21세기 민주 사회에서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 같아요.

근래 해외뉴스에서 인도 달리트 계급의 19세 소녀가 상위 계급 남성에게 잔혹하게 폭행당해 숨지는 사건이 보도된 적이 있어요. 현재 인도는 카스트 차별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차별과 편견이 존재한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에요. 

인도신화에서 락샤사는 대표적인 사악한 세력이에요. 아수라와는 달리 락샤사는 천계의 데바들뿐 아니라 인간들도 공격해요. 락샤사의 왕, 라바나는 수차례 전투를 벌여 데바들을 자신의 노예로 삼았어요. 라바나는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를 비롯한 모든 데바에게 자신의 궁에서 비천한 잡일을 시켰어요. 데바들은 간신히 노역에서 벗어났으나 곧바로 라바를 쓰러뜨리지 못하고, 대신 비슈누의 화신인 라마를 통해 라바나를 벌할 수 있었어요. 

물론 인도신화가 끔찍하고 추악한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에요. 아름답고 감동적인 붓다의 이야기와 라마의 모험기, 영웅 서사시도 있어요. 그 모든 이야기들이 말하고자 하는 건 무엇일까요. 종교와 사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이 책은 우리에게 더 많은 질문과 답을 찾도록 이끄는 게 아닌가 싶네요.


"바람보다 빠른 것은 무엇이냐?"

"생각이다."

 (47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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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바다로
나카가미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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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가미 겐지의 소설 <18세, 바다로>는, 저한테는 서핑 같은 재즈 이야기였어요. 

신나게 즐기는 서핑이 아니라 난생 처음 바다로 나가 거칠게 몰려오는 파도에 올라타야만 하는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올랐어요.

불안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은데, 때론 흥분되고 미칠 것 같은 심정.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자신도 왜 그런 감정들이 솟구치는지 모른 채 마구 질주하는 것 같아요. 그 모습이 저한테는 불안한 파도 타기처럼 보였어요.

사랑, 사랑 같은 욕망이 어설프게 성장한 육체를 자극하고 있어요. 젊은 육체는 쾌락을 원하지만 불안하고 혼란스러워요.

실제로 저자 나카가미 겐지는 열여덟 살에서 스물세 살 때까지 <18세, 바다로>를 썼다고 해요.

이 소설집에는 <18세>, <JAZZ>, <다카오와 미쓰코>, <사랑 같은>, <불만족>, <잠의 나날>, <바다로>라는 여섯 편의 작품이 실려 있어요. 

그 중 <다카오와 미쓰코>는 1979년 <18세, 바다로>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고 하네요.

과연 젊음, 청춘은 뭘까요.


"우리들, 아무리 착하게 굴어도 소용없어. 또 세찬 바람이 불었다.

흙먼지와 종이 쓰레기가 휘날리고 내 모자까지 날아갔다.

빙글빙글 돌다, 흙 위에서 구르다, 배구 코트 쪽으로 날아가는 모자를 눈으로 좇으며,

나는 배 속에 그득하게 고여 있던 웃음을 한꺼번에 토해내려 했다.

그 소리는 웃음소리가 아니라 매머드의 외침 같았다.

...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무슨 짓을 해도 소용없다.

모자를 잡아 푹 눌러쓰고 정렬을 끝낸 반 아이들 쪽으로 뛰어가는데,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내 몸을 덮쳤다."   (47p)




정말 이상한 것 같아요. 열여덟 살.

세찬 바람에 날라간 모자처럼, 언제 날라갈지 모르는 모자를 잡아 푹 눌러쓰는 모습에서 그냥 모든 감정이 느껴져요. 

이것이 소설의 존재 이유인 것 같아요. 젊음, 청춘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게 아니라 보여주고 느끼게 만드는 것.

분명 나는, 주인공과 같은 삶을 살지 않지만 그가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있어요. 아니, 안다고 생각해요. 그걸 증명할 수는 없지만.

재즈, 재즈에 대해 모르지만 가끔 듣고 싶을 때가 있어요. 주인공이 재즈를 들으면서 그저 몸속에서 솟구치는 선율을 좇는 것처럼. 

재즈의 미친 리듬은 청춘을 닮아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나에게 청춘은 재즈 - 재즈를 들으며, 그 리듬에 몸을 들썩이면서도 정작 나는 재즈를 모른다고 생각해요. 재즈의 리듬을 느끼는 것과 아는 건 다르니까. 

멈추지 않는 세찬 바람과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나에게 청춘은 지나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지나가는 중인 것 같아요. 

열여덟 살의 젊은 작가는 우리에게 들려주네요. 젊음은 너무도 잔혹하다고.


"어디로 가는데?"

"바다로."

"거기 가서 뭐 하려고. 어디로 가든 아무것도 없는데."

아주 나쁜 감정이, 나의 검은 때가 낀 발가락 끝에서 길게 자란 머리칼 끝까지 파먹고 있었다. (1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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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 : 오래된 신세계 - 상1 - 시간을 넘어온 손님
묘니 지음, 이기용 옮김 / 이연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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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은 무협 판타지 소설이에요.

중국 화제의 드라마 <경여년>의 원작소설이라고 하네요.

우와, 어쩐지 '오래된 신세계' 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네요. 

타임머신, 타임슬립 등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판타지가 워낙 많다보니, 주인공처럼 시간여행자가 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어요.

상상 자체는 재미있지만 딱히 주인공이 되고 싶은 마음은 안 들더라고요. 그 이유는 시공간만 달라졌을 뿐 '나'라는 존재는 똑같기 때문이에요.

그냥 평범한 '나'로 살 것 같으면 어떤 시공간이든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아서.

만약 갑자기 특별한 능력이 생겨난다면, 이건 좀 끌릴 것 같아요.

바로 <경여년>의 주인공 판시엔처럼 말이죠.


주인공 판시엔(范愼 , 범신)은 중증근무력증을 앓고 있는 환자예요. 이제 눈꺼풀조차 겨우 뜰 정도로 온몸이 야윈 상태예요. 

어느 날, 적막한 밤에 판시엔은 자기 목구멍 속 근육이 조금씩 힘을 잃어가고, 모든 근육에 붙어 있는 탄력이 차례로 사라져가는 걸 느꼈어요.

이렇게 죽는구나, 라는 순간에 눈이 번쩍 뜨이더니 시야가 넓어졌어요. 좋아진 시력으로 바라보니 가로 무늬 대나무 살 사이로 무시무시한 잠연들이 보였어요. 검은 옷을 입은 살수들이 뾰족한 무기를 들고 그의 앞으로 달려오고 있었어요. 뭐지, 이건 꿈인가 싶었는데 축축해진 얼굴을 손으로 닦아내니 손에 시뻘건 피가 묻어났어요. 

헉, 피라니 누가 흘린 피냐고?  더욱 놀라운 건 피를 닦아낸 자신의 손이었어요. 그 손은 유난히도 뽀얗고 부드러우며 심지어 앙증맞았어요. 누가 봐도 이건 갓난아기의 손!

세상에 이럴 수가!

현실에서 죽어가던 판시엔의 영혼이 다른 세계로 넘어온 거예요. 현실 세계의 모든 기억을 간직한 어른의 영혼이 어린 아이의 몸속으로 들어왔어요.

도대체 왜 죽어가던 그가 이곳에 새로 태어난 걸까요?


경국(慶國) 57년, 황제가 친히 이끄는 군대의 서만족 정벌이 아직 진행 중인 상태예요.

스난 백작은 군에 묶여 있고, 경국의 수도 징두(京都, 경도)는 임시로 태후의 지배 하에 놓여 있어요. 

눈이 먼 청년 무사가 대나무 광주리에 두 달 된 신생아를 메고 도망가고 있는데, 그 아기가 바로 판시엔이에요. 

절름발이 중년 남자가 흑기병을 동원하여 살수들을 모조리 처단하더니 청년 무사에게 아기가 무사한지를 물었어요. 그 아기의 정체는 스난 백작 판씨 대인의 사생아였던 것.

청년 무사에게 중년 남자는 딴저우(澹州, 담주)에 주인(스난 백작)의 유모가 살고 있으니 그곳에 머물라고 제안했어요.

그리하여 판시엔은 딴저우 저택에서 살게 됐어요. 

판시엔이 아주 어릴 때 우쥬(五竹, 오죽)라는 이름의 맹인 청년이 책 한권을 주었는데, 판시엔은 이미 이 세상 글자를 아는 상태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에 한 살 때부터 이 책으로 수행을 시작했어요. 이 책은 전설로만 내려오는 진기 수행을 담은 귀한 비밀의 책으로, 판시엔은 자신의 진기가 이미 책에 묘사된 선과 동일하게 흐르고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다만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것이 최고급의 심오한 내공 비법이라는 것은 모르고 있었어요. 이 수련의 가장 위험한 점은 처음 만들어진 진기가 단전에 들어갈 때, 수행자의 신체와 의식의 반응 속도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거예요. 그 막대한 차이로 인해 반신불구가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예전 세계에서 중증근무력증 환자였던 판시엔은 아기의 몸이 불편하지 않았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한 살 이후부터는 자유롭게 거동하며 아무도 모르게 수행하며 진기를 쌓아가고 있었어요. 


천맥자(天脈者), 하늘에서 내린 사람. 천맥은 하늘의 핏줄을 뜻하며, 천맥자는 자신의 피 속에 하늘을 품은 자를 일컫는다고 해요.

전해 내려오는 말에 따르면 몇 백 년에 한 번씩 이런 사람이 태어난다고 해요. 하늘의 핏줄은 도저히 무찌를 수 없는 전투력뿐 아니라 예술이나 지혜에 있어 천부적 자질을 지녔어요. 천맥자들의 마지막은 매우 특별한데 그들의 끝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고 해요. 어느 날 왔다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지는 존재라서 비밀 문서를 제외하면 그들의 흔적을 증명할 만한 것이 남지 않는대요. 이유는 알 수 없어도, 판시엔이 죽은 뒤 그의 영혼이 들어간 아이의 몸은 뭔가 특별했어요. 아마도 아이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신비롭고도 예측할 수 없는 천맥자였던 것 같아요. 


어른의 영혼이 아이의 몸속에 들어가 환생한 설정이 이 소설의 묘미인 것 같아요. 귀엽고 순진한 얼굴의 소년이 진기를 수련한 어마무시한 능력자라는 것이 흥미롭고 재미있어요. 징두의 권력자 스난 백작의 사생아라는 점이 논란과 갈등의 요소라서 그로 인한 위기를 대처하는 장면들이 관전 포인트예요. 어린 판시엔이 점점 성장해가며 그의 내공 또한 커져가는 모습이 놀라워요. 과연 판시엔은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요.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어요. 시간을 넘어 온 손님, 밝혀진 손님의 비밀, 양손에 놓여진 권력, 어둠에 가려진 비밀, 천하를 바라본 전쟁, 진실을 감당할 용기까지 모두 6권으로 출간 예정이네요. 이 책을 읽고나니 드라마 <경여년>이 궁금하네요. 주인공 판시엔뿐 아니라 우쥬는 어떤 인물로 나올지, 부디 무협 판타지 히어로에 어울리는 인물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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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클래식 잡학사전 1
정은주 지음 / 42미디어콘텐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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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하면 강렬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있어요.

영화 <쇼생크탈출>에서 감옥에 갇힌 주인공이 우연히 LP판을 발견하여 교도소 오디오 전축에 트는 장면.

그때 LP판에서 나오는 음악이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편지 이중창'으로 불리는 '산들바람은 부드럽게' 였는데,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교도소 전체에 노랫소리가 퍼지자, 죄수들 모두가 음악에 홀린 듯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귀기울여 들었고, 주인공은 온몸으로 황홀하게 음악을 느꼈어요.

음악과 하나가 되는 순간,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주인공이 자유로워 보였어요. 

그리고 그 장면을 보는 저 역시 음악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어요. 그건 아마도 음악의 힘?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은 딱 저한테 알맞은 책인 것 같아요. 클래식 정통사전이었다면 살짝 부담스러웠을 거예요.

저자는 느긋한 오후에 차 한 잔을 즐기듯이 우리에게 클래식 음악 한 잔을 건네고 있어요. 풍요롭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이 책은 클래식 음악에 관한 지식보다는 서양 음악사를 빛낸 음악가들의 숨겨진 이야기와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정보와 영화 같은 음악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1830년대 프랑스 파리 사교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화제의 스캔들을 아시나요?

가정이 있는 한 여자와 핵인싸 총각이 불같은 사랑에 빠진 이야기인데요.

막장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불륜의 사랑에 빠진 주인공은 바로 프란츠 리스트와 마리 다구 백작 부인입니다.

당시 그들의 밀회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 그들은 파리를 떠나 '사랑의 불시착'을 감행했습니다. 무려 10년간 스위스와 이탈리아 곳곳을 여행하며 살았어요.

세 명의 자녀도 낳았고요. 작곡가이자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활약한 프란츠 리스트는 이 기간의 추억을 바탕으로 대단한 작품을 지었습니다.

바로 피아노 모음곡집인 <순례의 해>인데요. 3부로 구성된 이 피아노 모음곡은 총 26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74-75p)


실제로 각각의 이야기마다 QR코드를 찍으면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음악 감상을 할 수 있어요. <하루 5분 오페라 수다>에서 맑고 고운 저자의 목소리로 클래식 음악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좀더 쉽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어요. 내 삶 속에 클래식 음악이 살며시 스며드는 느낌이랄까. 암튼 좋아서 여러 번 들었네요. 그런데 설명 없이 음악만 나오는 클립도 있으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음악 감상을 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슈바이처와 아인슈타인은 몇 가지 공통분모가 있다고 해요. 우선 두 분이 이름이 알베르트(Albert)로 똑같아요.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활동했고, 가장 유명한 노벨상 수상자라는 점. 그리고 흥미로운 공통분모는 바로 클래식 음악이에요. 실제로 슈바이처는 오르간, 아인슈타인은 바이올린에 있어서 전문 음악가로 불릴 만큼 권위자였다고 하네요. 세계 최초로 뉴욕필을 지휘했던 여성 지휘자 안토니아 브리코가 슈바이처를 만나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난 것도, 그가 바흐 음악의 권위자였기 때문이래요. 그가 음악가로 칭송받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흐에 대한 해석 때문인데, 악보에 표시된 템포보다 조금 느리게 연주하는 것이 그의 바흐 해석법 중 하나였다네요. 아인슈타인도 전 세계 곳곳을 다니며 강연과 연구를 하면서 반드시 챙겨 갔던 것이 바로 바이올린이었대요. 그는 자신이 음악 안에서 꿈꾸며 사는 사람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어요.

어찌보면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 음악과 함께 했던 환경이 두 위인을 탄생시킨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꼭 훌륭한 업적을 이루는 위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음악 안에서 행복할 수 있다는 점이 음악이 가진 위대한 힘인 것 같아요. 


평소에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듣는 편은 아닌데, 이 책 덕분에 서양 음악사를 대표하는 훌륭한 명곡들을 들으면서 즐거웠어요. 듣다보니 좋아서, 저절로 또 듣게 되더라고요. 가장 편안한 시간에 조용히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올 때, 오직 음악으로만 꽉 찬 공간이 주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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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낙 형사 카낙 시리즈 1
모 말로 지음, 이수진 옮김 / 도도(도서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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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인 것 같아요. 그린란드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니.

더군다나 그린란드, 녹색의 땅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얼음의 나라에서 들려줄 이야기가 살인 사건이라니.

<카낙 QAANAQ>을 읽으면서 새삼 그린란드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주인공 카낙 아드리엔슨 형사는 코펜하겐경찰청 소속이에요. 그린란드는 덴마크 속령이며, 수도는 누크예요. 카낙은 그린란드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 이름이기도 해요.

아드리엔슨 가문에 입양된 카낙은 지금 사십이 년만에 선조의 땅을 다시 밟게 되었어요. 누크에서 발생한 끔찍한 살인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누크 폴리티가든 수사팀에 파견된 거예요. 도착하자마자 그린란드 경찰서장 리케 에넬뿐 아니라 모두에게 미운털 박힌 존재가 된 카낙. 대놓고 카낙이 알아들을 수 없는 농담을 하며 웃는 상황이 달가울 리 없지만 개의치 않아요. 2009년 그린란드 자치법이 확대되면서 덴마크에 의존하고 있는 사법기관과 경찰의 행정 언어는 덴마크어가 여전히 통용됐지만 정식으론 칼라히수트, 즉 그린란드어가 국가 공용어가 되었대요. 평생 이국적인 외모 때문에 타인들의 시선을 받아야 했던 그가 그린란드에서 이방인 취급을 당하는 상황이 너무나 아이러니해요.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 대해 배타적인 짐승이다."   (31p)


세 명의 피해자는 중국인 용접공, 캐나다인 작업반장, 아이슬란드인 요리사예요.

이들은 모두 후두 윗부분이 잘려나갔고, 그 다음은 복부가 파헤쳐져 다량의 출혈이 발생했어요. 에넬 서장은 범인의 살해 방식이 북극곰의 공격 패턴과 매우 흡사하다고 말했지만 범인이 북극곰이라면 숙소의 잠금장치는 어떻게 풀었을까요. 그밖에 의문점들이 범인이 북극곰일 거라는 리케의 가설을 무너뜨리지만 더 이상한 건 아무도 리케 서장에게 반박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뭐지, 이 수상한 분위기는...


카낙의 코펜하겐 동료들은 대부분 체계적이지만 많은 노동을 필요로 하는 수사 방식을 고집했어요. 물질적인 증거를 하나둘씩 수집하다 보면, 새로운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 반면 그들보다 나이가 더 많은 소수의 동료들은 오로지 자신의 직감만을 믿었어요. 카낙은 자신이 두 성향의 중간쯤에 속한다고 생각했어요. 수사 초반에 직감이 샘솟으면, 그것이 자유롭게 머릿속을 떠돌게 내버려두다가 적당한 때가 되면 냉혹한 취조를 통해 사실과 자료, 숫자의 칼날로 첫인상을 과감히 베어내는 거예요. 카낙의 내면에는 두 성향의 형사가 공존하고 있고, 둘 중 어느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역시나 카낙의 수사력은 탁월했어요.

끝까지 읽고나서야 밝혀진 사건의 전말.

처음부터 확실한 건 모든 게 아이러니, 라는 느낌이었는데,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되니 소름끼쳤어요. 아이러니 그 자체라서.

카낙의 직감처럼 결국 모든 사건의 퍼즐이 완성되었지만 일부는 어둠 속에 남겨줘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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