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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여년 : 오래된 신세계 - 상1 - 시간을 넘어온 손님
묘니 지음, 이기용 옮김 / 이연 / 2020년 10월
평점 :
<경여년>은 무협 판타지 소설이에요.
중국 화제의 드라마 <경여년>의 원작소설이라고 하네요.
우와, 어쩐지 '오래된 신세계' 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네요.
타임머신, 타임슬립 등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판타지가 워낙 많다보니, 주인공처럼 시간여행자가 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어요.
상상 자체는 재미있지만 딱히 주인공이 되고 싶은 마음은 안 들더라고요. 그 이유는 시공간만 달라졌을 뿐 '나'라는 존재는 똑같기 때문이에요.
그냥 평범한 '나'로 살 것 같으면 어떤 시공간이든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아서.
만약 갑자기 특별한 능력이 생겨난다면, 이건 좀 끌릴 것 같아요.
바로 <경여년>의 주인공 판시엔처럼 말이죠.
주인공 판시엔(范愼 , 범신)은 중증근무력증을 앓고 있는 환자예요. 이제 눈꺼풀조차 겨우 뜰 정도로 온몸이 야윈 상태예요.
어느 날, 적막한 밤에 판시엔은 자기 목구멍 속 근육이 조금씩 힘을 잃어가고, 모든 근육에 붙어 있는 탄력이 차례로 사라져가는 걸 느꼈어요.
이렇게 죽는구나, 라는 순간에 눈이 번쩍 뜨이더니 시야가 넓어졌어요. 좋아진 시력으로 바라보니 가로 무늬 대나무 살 사이로 무시무시한 잠연들이 보였어요. 검은 옷을 입은 살수들이 뾰족한 무기를 들고 그의 앞으로 달려오고 있었어요. 뭐지, 이건 꿈인가 싶었는데 축축해진 얼굴을 손으로 닦아내니 손에 시뻘건 피가 묻어났어요.
헉, 피라니 누가 흘린 피냐고? 더욱 놀라운 건 피를 닦아낸 자신의 손이었어요. 그 손은 유난히도 뽀얗고 부드러우며 심지어 앙증맞았어요. 누가 봐도 이건 갓난아기의 손!
세상에 이럴 수가!
현실에서 죽어가던 판시엔의 영혼이 다른 세계로 넘어온 거예요. 현실 세계의 모든 기억을 간직한 어른의 영혼이 어린 아이의 몸속으로 들어왔어요.
도대체 왜 죽어가던 그가 이곳에 새로 태어난 걸까요?
경국(慶國) 57년, 황제가 친히 이끄는 군대의 서만족 정벌이 아직 진행 중인 상태예요.
스난 백작은 군에 묶여 있고, 경국의 수도 징두(京都, 경도)는 임시로 태후의 지배 하에 놓여 있어요.
눈이 먼 청년 무사가 대나무 광주리에 두 달 된 신생아를 메고 도망가고 있는데, 그 아기가 바로 판시엔이에요.
절름발이 중년 남자가 흑기병을 동원하여 살수들을 모조리 처단하더니 청년 무사에게 아기가 무사한지를 물었어요. 그 아기의 정체는 스난 백작 판씨 대인의 사생아였던 것.
청년 무사에게 중년 남자는 딴저우(澹州, 담주)에 주인(스난 백작)의 유모가 살고 있으니 그곳에 머물라고 제안했어요.
그리하여 판시엔은 딴저우 저택에서 살게 됐어요.
판시엔이 아주 어릴 때 우쥬(五竹, 오죽)라는 이름의 맹인 청년이 책 한권을 주었는데, 판시엔은 이미 이 세상 글자를 아는 상태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에 한 살 때부터 이 책으로 수행을 시작했어요. 이 책은 전설로만 내려오는 진기 수행을 담은 귀한 비밀의 책으로, 판시엔은 자신의 진기가 이미 책에 묘사된 선과 동일하게 흐르고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다만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것이 최고급의 심오한 내공 비법이라는 것은 모르고 있었어요. 이 수련의 가장 위험한 점은 처음 만들어진 진기가 단전에 들어갈 때, 수행자의 신체와 의식의 반응 속도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거예요. 그 막대한 차이로 인해 반신불구가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예전 세계에서 중증근무력증 환자였던 판시엔은 아기의 몸이 불편하지 않았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한 살 이후부터는 자유롭게 거동하며 아무도 모르게 수행하며 진기를 쌓아가고 있었어요.
천맥자(天脈者), 하늘에서 내린 사람. 천맥은 하늘의 핏줄을 뜻하며, 천맥자는 자신의 피 속에 하늘을 품은 자를 일컫는다고 해요.
전해 내려오는 말에 따르면 몇 백 년에 한 번씩 이런 사람이 태어난다고 해요. 하늘의 핏줄은 도저히 무찌를 수 없는 전투력뿐 아니라 예술이나 지혜에 있어 천부적 자질을 지녔어요. 천맥자들의 마지막은 매우 특별한데 그들의 끝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고 해요. 어느 날 왔다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지는 존재라서 비밀 문서를 제외하면 그들의 흔적을 증명할 만한 것이 남지 않는대요. 이유는 알 수 없어도, 판시엔이 죽은 뒤 그의 영혼이 들어간 아이의 몸은 뭔가 특별했어요. 아마도 아이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신비롭고도 예측할 수 없는 천맥자였던 것 같아요.
어른의 영혼이 아이의 몸속에 들어가 환생한 설정이 이 소설의 묘미인 것 같아요. 귀엽고 순진한 얼굴의 소년이 진기를 수련한 어마무시한 능력자라는 것이 흥미롭고 재미있어요. 징두의 권력자 스난 백작의 사생아라는 점이 논란과 갈등의 요소라서 그로 인한 위기를 대처하는 장면들이 관전 포인트예요. 어린 판시엔이 점점 성장해가며 그의 내공 또한 커져가는 모습이 놀라워요. 과연 판시엔은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요.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어요. 시간을 넘어 온 손님, 밝혀진 손님의 비밀, 양손에 놓여진 권력, 어둠에 가려진 비밀, 천하를 바라본 전쟁, 진실을 감당할 용기까지 모두 6권으로 출간 예정이네요. 이 책을 읽고나니 드라마 <경여년>이 궁금하네요. 주인공 판시엔뿐 아니라 우쥬는 어떤 인물로 나올지, 부디 무협 판타지 히어로에 어울리는 인물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