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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1월
평점 :
<다정한 매일매일>은 백수린 작가님의 산문집이에요.
소설가 백수린의 소설은 아직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궁금해졌어요.
소설은 어떤 느낌일지, 작가님의 만든 빵은 어떤 맛일지...
이 책에 실린 글 대부분은 '책 굽는 오븐'이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연재했던 짧은 원고들을 매만진 것이라고 해요.
제목에서 짐작하듯이 저자는 빵 굽는 파티셰가 되어 다양한 빵과 어울리는 책을 우리에게 건네주고 있어요.
"나에게 베이킹이란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 과정이 즐거운 일이다.
내가 베이킹을 전문가에게 배워볼 생각이나 자격증 같은 걸 딸 생각을 결코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는지 그 방법을 제대로 배운 적 없이 그저 사랑과 동경만으로 시작한 일.
나의 한계를 알지 못한 채 하고 싶은 마음이 흘러넘쳐 시작했으나 남들이 능숙해지도록
혼자 여전히 서툴고 쩔쩔매는 일.
남들 앞에 선보여야 할 때면 늘 자신감이 없지만 결과물이 어떻든 그만둘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내게 소설 쓰기와 베이킹은 어쩌면 똑 닮은 작업." (18p)
이 책을 읽다가 알게 된 건 제가 빵 종류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이에요. 먹을 줄만 알았지, 빵 종류는
식빵, 단팥빵, 슈크림빵, 곰보빵, 모카빵, 치즈빵... 우리 동네 빵집에서 볼 수 있는 흔한 빵들.
캉파뉴, 판 콘 토마테, 트로페지엔, 파스트라미 샌드위치, 바움쿠헨, 오페라, 자허토르테, 구겔호프, 아마레티, 콜롬바, 슈톨렌... 모두 빵 이름이래요.
이름마저 생경한 외국 빵이지만 그 빵과 함께 들려주는 책 이야기는 좋았어요. 빵 이름을 몰라도 얼마든지 빵을 맛보고 즐길 수 있듯이, 책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빵과 읽어본 적 없는 책에 관한 이야기가 꽤 흥미로워서 군침이 돌았어요. 어쩌면 저자의 '책과 빵'에 대한 애정이 저한테까지 옮아온 게 아닐까 싶어요. 빵 종류도 모르고, 빵을 만들 줄도 모르지만 제가 좋아하는 냄새 중 하나가 빵 굽는 냄새거든요. 신기하게도 이 책을 읽는 내내 빵 굽는 냄새와 오븐의 온기를 느꼈어요.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 근래 제 마음 속에 들어온 단어가 '다정함'이었거든요. 좀더 다정해지자고, 다정하게 살아보자고.
책에 등장한 빵들 중에서 끌린 건 호빵이에요.
역시 겨울에는 호빵!
저자에게 호빵이 조금 더 특별해진 건 몇 년 전의 기억 때문이래요. 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할머니가 병세가 심해지셔서 입맛을 잃으셨던 터라 평소 좋아하시던 호빵을 구하러 돌아다녔대요. 그때가 봄이라서 호빵을 구할 수 없었대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호빵을 보면 그 봄이 생각난다고 해요. 2013년 봄, 병원이 할머니와 마주볼 수 있던 장소였다면, 『내 이름은 루시 바턴』속 뉴욕의 병원은 오랜 기간 연락을 끊고 지내던 모녀가 상봉하는 장소래요. 이 소설의 화자인 루시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게 된 1980년대 어느 시기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래요. 루시는 간병을 위해 찾아온 어머니와 닷새간의 시간을 보내는데, 두 사람의 갈등이 해소되지는 않는대요. 루시의 어린 딸이 엄마에게 말한 것처럼 삶은 소설과 달리 다시 쓸 수 없고, 그래서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거나 받는 거라고 이야기하네요.
"모든 생이 감동을 준다는 루시 바턴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인간이 끝끝내 그토록 서툰 존재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서툴고 서툴렀던 당신들.
경이로운 생生의 주인인 당신들의 이름을
나는 나직이 불러본다." (122p)
- 서툴러 경이로운 당신, 호빵,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내 이름은 루시 바턴』
겨울에는 흔하디 흔한 호빵도, 그 계절이 아니면 구하기 힘든 것처럼.
우리가 서로에게 전해줄 수 있는 사랑도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요. 인간은 서툰 존재라는 걸 알려준 루시 바턴, 그 소설의 주인공을 소개해준 저자에게 호빵 하나를 받은 기분이네요. 서툴러 경이로운 당신,이라는 이 말이 진심으로 위로가 되는 밤이네요. 참으로 다정하네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