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게임 1
박상우 지음 / 해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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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게임>은 종잡을 수 없는 소설이에요.

불교적 관점에서 시작하지만 결코 종교 이야기가 아닌 범우주적 이야기가 펼쳐져요.

액자식 구조는 들어봤지만 아바타식 구조는 처음이에요.

소설 속에 주인공을 창조한 소설가 자신이 등장해요. 소설가는 소설 전체 시공간을 만들어낸 창조주라면서, 물론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이러한 관계가 매우 심각하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어요. 

첫 장면은 주인공 이보리가 자신의 원룸 방 한가운데 이부자리를 펴고 자고 있어요.

원룸의 천장으로부터 눈부신 원통형의 광선이 밀려 내려와 그를 비추고 있어요. 무대 위 조명처럼.

곧이어 빛기둥 속에서 예리한 탐침봉 같은 것이 내려와 잠을 자고 있는 이보리의 심장을 향해 그대로 삽입돼요. 거의 동시에 심장 부위로부터 미세한 색상이 바늘을 타고 위로 상승하더니 붉은 기운이 점차 푸른 기운에서 백광의 상태가 되어 바늘과 함께 원통형의 빛기둥에서 사라져버려요.

와, 이건 미드 <엑스 파일>에 나올 법한 장면이네요.


이보리의 원룸에 조필규라는 남자가 찾아와 자신이 모시는 어르신과의 면담을 요청해요.

그건 이보리가 쓴 『인간 문제의 궁극에 대한 답』이라는 책 때문이었고, 어르신이 원한 건 바로 책 제목과 동일한 것이에요.

어르신이라는 인물은 철저하게 얼굴을 숨긴 채 이보리로부터 그 답을 얻고자, 면담을 위한 종신 계약을 체결해요. 어르신이 죽을 때까지 유효한 계약.


이보리 : 잘 들어보세요.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는 가르침을 제가 하나의 단어만 바꿔서 읽어보겠습니다.

잘 들어보세요. 


참자아는 나의 것이 아니다.

참자아는 내가 아니다.

참자아는 나의 자아가 아니다.


어르신 : 흠, '이것'이라는 말을 참자아로 바꾸니 그 말이 그 말이 되는군.

정말 신기하군. 자넨 이걸 어떻게 알았지?

(더욱 믿어지지 않는다는 어조.)


이보리 : 이 지구상에 샤카무니의 무아와 힌두교의 참자아가 같은 내용의 다른 표현이라는 걸 밝힌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이보리뿐!

(못을 치듯 단정적인 어조.)

   (122p)


어르신과 면담을 한 뒤 원룸으로 돌아오던 중 이보리는 납치를 당해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는 다짜고짜 이보리의 정체를 털어놓으라며 폭력을 가하고...

다행히 정신을 잃은 이보리를 조필규가 발견하여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해주고, 새로운 거처를 마련해줘요.

소설가는 자신의 창조물 이보리의 무의식과 접속할뿐 아니라 상위자아의 존재와도 소통할 수 있어요. 이보리는 자신의 원룸과 어르신과의 면담이 있는 세상을 거대한 프로그램 속 게임이라고 이야기해요. 명상을 통해 의식이 우주적으로 확장될 때 비로소 실재계와 접속하는 것이라고 해요. 그러니 이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운명 게임'의 참관자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재미있는 건 소설가 자신 역시 이 게임의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다는 거예요. 자신이 만든 캐릭터가 애초에 구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변형되는데도 속수무책이에요. 소설가는 상위자아가 이런 정황을 완전히 간파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러나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기는 어려워요. 왜냐하면 이 게임은 '나'라는 인간의 존재에서 시작하여 인생, 그리고 지구와 우주의 근원을 파헤쳐가는 여정이기 때문이에요. 소설가는 이 소설 속에서 자신의 입장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어요.

"나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지구에 태어났다!"라고. (51p)

저 멀리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표현했듯이, 우리는 운명 게임이라는 거대한 세상 속 하나의 점인지도 모르겠네요. 

이보리와 소설가 그리고 상위자아... 그 너머 우주적 존재까지 모든 것은 운명의 프로그램 속 설정값이라면, 과연 인간 문제의 궁극의 답은 무엇일까요.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묻고 있어요. 당신은 무엇을 위해 지구에 태어났는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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