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남당 사건수첩
정재한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8년 4월
평점 :
정장이 잘 어울리는 차갑고 도시적인 남자,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단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던 전무후무한 스타일리시한 무당! 그가 바로 연남동의 명물 남한준이다. 나이는 청춘과 성숙이 동시에 무르익어 아음다움이 더욱 빛을 발한다는 서른넷. 키는 행운의 숫자인 백 칩십칠인 데다 눈도 똘망똘망하고 신수도 훤하다. 좋아하는 건 인테리어 분위기 죽이는 레스토랑에서 비싸고 고급 지고 양 적은 음식 먹기, 달달한 디저트, 예쁜 아가씨, 신사임당이 그려진 현찰. 특히 '현찰'부분은 고딕 이탤릭체로 진하게 표기 후 밑줄을 쳐둘 것.
주인공 남한준을 소개하는 한 대목입니다. <미남당 살인사건>은 유쾌하고 읽을수록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많은 소설입니다. 처음 표지를 봤을 때는 왠지 싼 티 나고 유치할 것 같은 그런 소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출판사가 캐비넷이기에 믿고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오래전 제가 어렸을 때 말도 안 되는 아주 짧은 단편소설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몇몇 친한 지인들에게 보여줬는데 대부분 좋았다는 인사치레 정도의 말을 듣다가 어느 한 친구가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영상으로 만들면 괜찮겠다. 이미지의 연속이네'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는 영화에 미쳐 살았을 때라 나도 모르게 그런 이미지 글이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이후에 책들을 읽다 보면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쓴건지하는 생각이 드는 글이나 제가 읽으면서 영상으로 봤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소설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 <미남당>은 그런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미남당>은 가볍고 즐거운 소설이며 문체 자체도 톡톡 튀면서 위트가 넘치는 읽는 내내 시간 가는 줄 모르면서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 남한준은 박수무당입니다. 아마 주인공이 무당인 캐릭터는 처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남한준은 진짜 신내림을 받은 무당은 아닙니다. 전직 프로파일러로 점을 보러 오는 손님들을 뒷조사해서 신이 알려주는 것처럼 위장해서 점을 쳐줍니다. 엄밀히 말하면 사기꾼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걸 악용해서 이용하게는 아니라 점을 보러 온 사람들의 진짜 고민들을 해결해주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거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남한준 곁에는 손님들의 뒷조사를 하고 때로는 보디가드 같은 역할도 해주는 수철과 남한준의 동생 천재 해커 혜준이 한 팀을 이루어 사건 아닌 사건들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프로파일러였던 남한준이 왜 그만두고 무당을 하게 되었는지는 소설 속에서는 자세히 소개하지는 않지만 과거에 뭔가 안 좋은 사건에 휘말려서 그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과 여전히 과거의 사건을 쫓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보지만 평소의 남한준의 돈과 명품에 대한 집착을 보면 그런 것도 아닌 듯 합니다. <미남당>은 몇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처음 캐릭터를 소개하는 작품에서는 장편보다는 이런 단편이 좋다고 생각이 듭니다. 장편일 경우 생소한 캐릭터라면 이해하기 위해 앞의 내용을 다시 돌아보고 찾아보고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단편일 경우 캐릭터의 특징이나 성격들을 한편 한 편마다 간략하게나마 설명해주는 부분들이 있기에 주인공이나 다른 주변 캐릭터들을 이해하는데 단편들이 적당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초반 <미남당>은 다소 산만한 감도 있고 작가님의 문체에 익숙해지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는데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작가님의 필력이 상승한 것인지 책을 놓을 틈을 주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지금까지 후속작이 나오기를 고대하는 국내 작품이 최혁곤작가님의 <탐정이 아닌 두 남자의 밤>이었는데 여기에 이 <미남당>도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후속작이 나올 것처럼 끝이 나기도 했고 아직까지 남한준의 비밀도 안 나왔으니 꼭 후속작이 나와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편집자분이 팟캐스트에 나와서 우리나라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팬이 한 2,000명 정도 될 거라고 말씀하신 게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장르소설을 전문으로 내는 출판사 책들은 작은 보탬이나마 도움이 될까 하고 구매를 해서 읽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앞으로도 이런 재미있는 국내 장르 소설이 꾸준히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람과 꾸준하게 국내 장르소설을 내고 있는 캐비넷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