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정원에서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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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정원에서

크리스티앙 보뱅

1984북스

우리는 그리움 속에서 시들어가고, 그 안에서 켜켜이 쌓이는 삶을 깨닫기도 한다.


사랑한다. 수백년동안 언급되어도 모자란 가장 신비스러운 이 말. 입술을 달싹여 내뱉을 때 느껴지는 감미로움. '사랑해'라고 말할 때 들릴 듯 말 듯 한 마지막 음절은 날개를 치며 날아 오른다.

너는 계속해서 네 갈길을 가고 나는 너를 꾸준히 뒤따른다.



누군가의 가슴속에 자리잡고 있는 '사랑한다는' 혹은 '사랑 했다던' 사람.

벌써 떠나버렸다면, 이미 놓쳐버렸다면.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기억들. 아련한 기억만 남아있고 모든것 떠나버린 지금에는

나는, 이제

그만큼 애절하지도 애통하지도 않다.

이젠, 그저

그냥 떠다니는듯 기억의 조각들을 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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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 팡세 클래식
알퐁스 도데 지음 / 팡세미니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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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

알퐁스 도데

팡세미니


프랑스 남부 님므에서 출생한 알퐁스 도데는 만30세에 보불전쟁을 겪는다. 당시 유럽의 여느나라도 마찬가지로 그리하였겠지만 프랑스는 특히 정치적 부침이 많았다. 1789년 혁명이후 프랑스는 스스로 자리를 찾아가기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었다. 공화정, 왕정복귀, 제1제정, 제2공화정, 제2제정.. 그의나이 만 서른째 되던해에 그들의 황제 나폴레옹3세는 준비되지 않은 전쟁을 선포한다. 상대는 유럽의 최강자로 급부상한 통일 독일을 이륙하려는 <프로이센>이었다. 나폴레옹 3세는 프로이센에게 선적포고를 하고, 지접 전장으로 달려 나갔다.

개전초기 스당전투에서 대패하고, 황제가 프로이센군에게 포로가 되는 굴욕을 당한다.

프랑스의 굴욕은 이어진다.

결국, 패전의 책임을 물어 거액의 전쟁배상금은 차지하고서라도 베스트팔렌조약이후 프랑스영토로 귀속시켰던 <알자스-로렌>지역을 프로이센에게 할양하게 된다.

[알자스-로렌 지역


오늘은, 마지막 수업이라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을 조금은 다른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내용이 불편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독자들 께서는 불편할 수도 었으니 미리 글을 덮어 주시기를 바란다.

전쟁이든 여하한 이유로 인하여 영토의 영유권이 움직이게 되면, 그곳에 주거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자손들에 까지 일상생활과 국가소속개념에 있어서 치명적인 혼란을 주게 된다. 그들은 그냥 그곳에서 농사를 짓고, 장사를 하고 그냥 살고 있었을 뿐인데, 그들의 의지와 전혀 관계없이 그들은 애국자가 되기도 하고 매국노가 되기도 한다. 왜? 왜? 그래야만 하는지? 그들이 왜? 아름다운 혹은 추악한 동화 또는 소설, 영화 따위의 잡류 선정선동물의 조역이 되어야 하는가? 그냥 땅을 파먹고 살며 내라는 세금 꼬박꼬박 잘내고(뜯기고)수십대에 걸쳐 그냥그냥 살아가던 그들이 왜 하루아침에 애국자 아니면 매국노가 되어야만 하는가?

왜 우리는, 그냥 간단히 프랑스의 어리버리 황제 나폴레옹3세와 프로이센의 재상 비스무르크 둘만을 불러내어 알자스-로렌 가장 확트인 들판에다가 그 둘을 묶어놓고, 따발총으로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버리고 남은 수천만의 인민들은 그냥, 평화롭게 살면 되질 않는 것인가? 왜 그 둘을 영웅을 만들기 위하여 수백만, 수천만의 시민들과 그들 대대자손들까지 고통스럽고, 선 혹은 악 이라는 구획지에 피선택적인 소속에 따른 역사적 평가까지 받아야 하는가?

언제부터 였을까? 아마 예술이라는 개념이 시작 되면서 함께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

문학을 포함한 예술의 프로파간다식 역할에 대하여는 궂이 말을 꺼내지 않아도 될것 같다. 하지만, 동심을 이용한 가장 비열하고 악랄한 정치적 선전.선동은 어느나라나 특정 비열한 정치세력들에 의해 자행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던 귀신, 국민영웅 이승복 어린이. 사실이라고 가정하자. 8살짜리 애기다. 그런 애기가 천재중의 천재일까? 반백의 나도 경제개념의 '공산주의'와 정치개념의 '사회주의'를 이해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하물며 8살짜리 아기가, communitism이 싫다한다. socialism이 싫다 한다. 그것도, 한번도 직접 만나보지도 않은.. 그들이.

그 천재아기는 공산당이란, 협동농장에서 옷을 기워입은 불쌍한 농민들이 곡괭이질을 하는 옆에서 인민복을 걸쳐입고 따발총을 둘러메고 그들을 감시하는 주둥이가 길게 튀어나온 늑대라고 배웠고, 그러한 그림들을 수도없이 보았을 뿐이다. 8살짜리 아기를 정신병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것이 아름다운가? 8살짜리 꼬마도 싫다는 '공산당'을 저주하기 위하여 전국 수많은 초등학교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천재꼬마'의 동상을 세워놓고, 쳐다보며 묵도하고, '공산당'을 쳐부실것을 '다짐'하고.

작품 권말에 '프랑스 만세'라는 감동어린 에필로그가 가슴깊이 울려 퍼진다.

알자스-로렌, 베스트팔렌조약으로 프랑스영토로 귀속되기 이전에는, 주민의 대부분이 독일어를 쓰는 신성로마제국령 영토였다. 나는, 프랑스版 '마지막 수업'을 읽었을 뿐이다. 우리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독일版 '마지막 수업'들은 어떡할 것이며, 또 그것들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일까?

우리는 문학의 실체를 인식하고 문학을 문학 자체로 사랑하는 독서인 들인가? 정치적 편향성을 지닌 프로파간다에 녹아나는 글을 읽을줄 아는 초기 지성적 '꼭두각시'인가?

중국 당태종 이세민(唐太宗 李世民)의 치적을 기록한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나오는 말이다.

"가장 훌륭한 정치란 어떤 것입니까?"

"가장 훌륭한 정치란, 세금을 내는 백성들이 정치란 무었인지 관심도 없고, 누가 다스리는지 의식도 하지 않는 정치이다." 라는 중국의 위대한 정치가의 정치목표가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나는, 나 스스로가 아직도 이러한 위대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지성적 성숙이 미천함을 한탄 할 따름이다."


[알퐁스 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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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퐁스 도데 지음 / 팡세미니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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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

알퐁스 도데

팡세미니


"저 구두를 사다 주면 좋아할거야."

아가씨가 죽었다는 사실도 잊고 미소 지으며 중얼거렸습니다. 그리고는 마지막 금 조각을 떼어내고 상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나이가 구두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마지막 금 조각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거면 충분하겠죠?"

[분문 p.148]

사랑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사랑이 그대를 고통스럽게 할 지라도,

사랑이 그대를 병들게 할 지라도,

사랑이 그대의 목숨을 조금씩 갉아 낼 지라도,

마침내

사랑이 그대를 떠날 지라도.

사랑이었으므로

진정으로 행복 하였노라고 노래 할 것이다.

'사랑'과 '슬픔'은 항상 함께 하는 것이므로.

그러하므로...


[알퐁스 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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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퐁스 도데 지음 / 팡세미니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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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

알퐁스 도데

팡세미니


블랑케트는 얼마 가지 않아 지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곳에 가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 날, 염소 블랑케트는 산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목살이 벗겨지는 지겨운 밧줄 없이 수풀을 마음껏 뛰어다니면 좋을 텐데......'

[본문 p.112/113]

그렇게 블랑케트처럼 떠나고 싶었다, 뛰쳐 나가고 싶었다.

울타리를, 창문을 뛰어넘어 저 아름다워 보이는 들녘으로 달려 나가고만 싶었다. 비록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 마음속에 탈출을 꿈꾸고 살았을 지도. 그리고 어느날 스스로가 가엽고 초라한 모습이라는것을 깨달을 즈음엔 떠나온 그곳이 다시 그리워 질 수도.

[알퐁스 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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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7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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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포도르 도스토옙스키

문학동네


하지만 나스텐카, 내가 모욕당한 일을 언제까지고 가슴에 품고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내가 그대의 밝고 평온한 행복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리라 믿는가. 쓰라린 말로 그대를 비난하여 그대의 심장에 슬픔을 심어주고 남모를 가책으로 고통받도록 만들, 그런 사람 같은가.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제단을 향해 걸어갈 때 그대의 까만 곱슬머리에 꽃힌 부드러운 꽃송이들 중 단 한송이라도 짓뭉개버릴 것 같은가....

오 사랑스러운 미소가 언제까지나 밝고 평화롭기를, 기쁨과 행복의 순간에 그대 위에 축복이 넘치기를! 그대는 감사함으로 가득찬 어떤이의 외로운 가슴에 기쁨과 행복의 순간을 안겨주였으므로,

오, 세상에! 지극한 기쁨의 완전한 순간이여.. 한 사람의 일생이 이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본문 p.204]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그의 사랑에 대한 명쾌한 정의다. 사랑은 어떠하여야 하며, 사랑은 어떠하지 않아야 하며.

사랑은 충분히 이론적이지가 않다. 또한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도리어 이성은 정념의 노예라 하지 않았던가? 이성이란 사실을 분석하고 계산적 추론을 함으로써 정념의 실현을 위해 봉사할 뿐이라고. 이러한 논지에서 바라본다면 사랑은 정념의 지배를 받는다고 할 수 있겠다.

이르자면, 이성적사랑의 존재 보다는 정념적 사랑의 존재가 더 사실적 일 것이다.

사랑을 분석하고자 하는것이 아니다. 다만, 각각 모두의 가슴속에서 사랑이라는 일종의 정념적 감정은 한때 맹렬히 불타오르다가도 또한 차갑게 식어버리는 가변적 속성. 그 변화와 더불어 가끔 파괴적 성향을 표현할 수도 있으며 파괴적성향을 띌때엔 충분히 가학적일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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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여러모로 참으로 맺힌것이 많았을 것이다. 위기에 처한 여자를 구해주어 그것이 인연이 되었으나, 그 인연이란 것이 실연에 기인한 것이었고 또 그 실연으로 인하여 이들 둘이 이어지는 듯 하였으나 여인의 실연이 부활을 하게 되고. 가슴 두근거리며 사랑을 키워온 그는 닭쫒던 '개'신세가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그러함에도 '멋있게' 보내주는 '진정한 사나이'의 모습을 보였던 도스토옙스키가 본전생각이 간절했던 모양이다. 이어지는 <온순한 여인>에서의 그는 끝까지 가볼 요량으로 비친다.

사랑은 남몰래 하는 것이다. 아무도 보지않는 곳에서 단 둘이서만 나누는 禁斷의 과실인 것이다. 보는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은 무한한 용기를 부여한다. 궂이 역사따위를 뒤적일 필요도 없다. 자고로 여자의 치마는 어두운 곳에서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는곳에서 들추어 지고 또 그들의 가랑이는 벌려지지 않았던가.

전직 대령출신의 '그'는 지금 전당포를 운영하고 있다. 가끔 손때묻은 잡동사니들을 들고와 급전을 빌려가던 꼬마숙녀와 어떻게 어떻게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고, 그는 16세의 어린신부와 매일 전쟁아닌 전쟁을 치른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그녀를 사랑한다고, 이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당신 옷자락에 입맞추게 해줘요... 그렇게 평생 당신을 숭배하며 살도록...."이라고 말이다.

[본문 p.384]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일말의 자존적 권위를 몽땅 양도하는 것이다. 밑바닥 한조각의 염치도 불구하게 된다. 오로지 은혜처럼 내려질 실낱같은 따스함을 바랄 뿐이다. <온순한 여인>에서의 사랑은 '전쟁'이다. 이기는자와 지는자가 나뉘어져야 하는 '싸움'인 것이다. 모든 싸움에서 그러하듯이 '먼저 덤비는 자', '아쉬운 놈'이 결국 고개를 숙이게 되어있지 않던가. 잡아먹을 듯 하던 싸움판에서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모가지를 쭉 빼고 생사여탈을 상대방에게 맡겨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절대 사랑에 빠지면 안되는 것이다. 적어도 상대방이 먼저 나를 향한 사랑에 빠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더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겠소, 아무것도."

"굳이 내게 대답할 필요도 없고, 나 같은 건 신경도 쓰지 말아요. 다만 한쪽 구석에서라도 당신을 바라볼 수 있게만 해주오. 나를 당신의 물건이라고 생각해요. 애완견이라고...."

도스토옙스키의 단편집 <백야>에서 그는 그의 사랑에 대한 기준을 확실하게 밝힌다. 이성은, 절대 사랑을 굴복시킬 수 없으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되며, 또한 그러지 않을 것임을. 만약, 이성적인 사랑이 있다면?

그에게, 그것은 사랑이 아닐 따름이다.

그의 작품속에는 메세지가 있다. 그 메세지는 간결하며 간절하다. 작품속 중편 <백야>와 <온순한 여인>에서 직설적이나 촌스럽지 않고, 간절하나 통속적이지 않은 그의 안타까운 마음이 그대로 전해온다. 그래서 독자들은 마치 스스로의 사랑이야기를 남의 입을 통하여 듣는듯하는 묘한 同類意識을 선사 받는다. 그래서 작가가 고마운 것이다. 상처받았으나 위로받을 곳 없이 스스로 쓰라린 상처를 핧아가며 지냈던 세월에 대한 두둑한 보상을 받으니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의 사랑과 나의 사랑이 비슷한 軌跡을 지닌 까닭이며 또 많은 상처를 입었고 많은 상처를 안겨보았음 이리라.

다시한번, 유리알처럼 맑은 영혼을 지닌 그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할 줄 아는 그에게 무한한 경의를 바칠 따름이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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