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7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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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백야

포도르 도스토옙스키

문학동네


하지만 나스텐카, 내가 모욕당한 일을 언제까지고 가슴에 품고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내가 그대의 밝고 평온한 행복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리라 믿는가. 쓰라린 말로 그대를 비난하여 그대의 심장에 슬픔을 심어주고 남모를 가책으로 고통받도록 만들, 그런 사람 같은가.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제단을 향해 걸어갈 때 그대의 까만 곱슬머리에 꽃힌 부드러운 꽃송이들 중 단 한송이라도 짓뭉개버릴 것 같은가....

오 사랑스러운 미소가 언제까지나 밝고 평화롭기를, 기쁨과 행복의 순간에 그대 위에 축복이 넘치기를! 그대는 감사함으로 가득찬 어떤이의 외로운 가슴에 기쁨과 행복의 순간을 안겨주였으므로,

오, 세상에! 지극한 기쁨의 완전한 순간이여.. 한 사람의 일생이 이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본문 p.204]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그의 사랑에 대한 명쾌한 정의다. 사랑은 어떠하여야 하며, 사랑은 어떠하지 않아야 하며.

사랑은 충분히 이론적이지가 않다. 또한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도리어 이성은 정념의 노예라 하지 않았던가? 이성이란 사실을 분석하고 계산적 추론을 함으로써 정념의 실현을 위해 봉사할 뿐이라고. 이러한 논지에서 바라본다면 사랑은 정념의 지배를 받는다고 할 수 있겠다.

이르자면, 이성적사랑의 존재 보다는 정념적 사랑의 존재가 더 사실적 일 것이다.

사랑을 분석하고자 하는것이 아니다. 다만, 각각 모두의 가슴속에서 사랑이라는 일종의 정념적 감정은 한때 맹렬히 불타오르다가도 또한 차갑게 식어버리는 가변적 속성. 그 변화와 더불어 가끔 파괴적 성향을 표현할 수도 있으며 파괴적성향을 띌때엔 충분히 가학적일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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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여러모로 참으로 맺힌것이 많았을 것이다. 위기에 처한 여자를 구해주어 그것이 인연이 되었으나, 그 인연이란 것이 실연에 기인한 것이었고 또 그 실연으로 인하여 이들 둘이 이어지는 듯 하였으나 여인의 실연이 부활을 하게 되고. 가슴 두근거리며 사랑을 키워온 그는 닭쫒던 '개'신세가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그러함에도 '멋있게' 보내주는 '진정한 사나이'의 모습을 보였던 도스토옙스키가 본전생각이 간절했던 모양이다. 이어지는 <온순한 여인>에서의 그는 끝까지 가볼 요량으로 비친다.

사랑은 남몰래 하는 것이다. 아무도 보지않는 곳에서 단 둘이서만 나누는 禁斷의 과실인 것이다. 보는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은 무한한 용기를 부여한다. 궂이 역사따위를 뒤적일 필요도 없다. 자고로 여자의 치마는 어두운 곳에서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는곳에서 들추어 지고 또 그들의 가랑이는 벌려지지 않았던가.

전직 대령출신의 '그'는 지금 전당포를 운영하고 있다. 가끔 손때묻은 잡동사니들을 들고와 급전을 빌려가던 꼬마숙녀와 어떻게 어떻게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고, 그는 16세의 어린신부와 매일 전쟁아닌 전쟁을 치른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그녀를 사랑한다고, 이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그리고 "당신 옷자락에 입맞추게 해줘요... 그렇게 평생 당신을 숭배하며 살도록...."이라고 말이다.

[본문 p.384]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일말의 자존적 권위를 몽땅 양도하는 것이다. 밑바닥 한조각의 염치도 불구하게 된다. 오로지 은혜처럼 내려질 실낱같은 따스함을 바랄 뿐이다. <온순한 여인>에서의 사랑은 '전쟁'이다. 이기는자와 지는자가 나뉘어져야 하는 '싸움'인 것이다. 모든 싸움에서 그러하듯이 '먼저 덤비는 자', '아쉬운 놈'이 결국 고개를 숙이게 되어있지 않던가. 잡아먹을 듯 하던 싸움판에서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모가지를 쭉 빼고 생사여탈을 상대방에게 맡겨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절대 사랑에 빠지면 안되는 것이다. 적어도 상대방이 먼저 나를 향한 사랑에 빠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더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겠소, 아무것도."

"굳이 내게 대답할 필요도 없고, 나 같은 건 신경도 쓰지 말아요. 다만 한쪽 구석에서라도 당신을 바라볼 수 있게만 해주오. 나를 당신의 물건이라고 생각해요. 애완견이라고...."

도스토옙스키의 단편집 <백야>에서 그는 그의 사랑에 대한 기준을 확실하게 밝힌다. 이성은, 절대 사랑을 굴복시킬 수 없으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되며, 또한 그러지 않을 것임을. 만약, 이성적인 사랑이 있다면?

그에게, 그것은 사랑이 아닐 따름이다.

그의 작품속에는 메세지가 있다. 그 메세지는 간결하며 간절하다. 작품속 중편 <백야>와 <온순한 여인>에서 직설적이나 촌스럽지 않고, 간절하나 통속적이지 않은 그의 안타까운 마음이 그대로 전해온다. 그래서 독자들은 마치 스스로의 사랑이야기를 남의 입을 통하여 듣는듯하는 묘한 同類意識을 선사 받는다. 그래서 작가가 고마운 것이다. 상처받았으나 위로받을 곳 없이 스스로 쓰라린 상처를 핧아가며 지냈던 세월에 대한 두둑한 보상을 받으니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의 사랑과 나의 사랑이 비슷한 軌跡을 지닌 까닭이며 또 많은 상처를 입었고 많은 상처를 안겨보았음 이리라.

다시한번, 유리알처럼 맑은 영혼을 지닌 그에게, 지고지순한 사랑을 할 줄 아는 그에게 무한한 경의를 바칠 따름이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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