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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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와 노인 그리고 바다, 또 쿠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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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 정착민 식민주의와 저항의 역사, 1917-2017
라시드 할리디 지음,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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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라시드 할리디

열린책들


역사는 관주(貫珠)와 같은 것이다, 꿰어진 구슬 목걸이 같다는 말이다.

어느 하나의 사건도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앞뒤로 구슬이 엮여있듯 주렁주렁 엮여있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접한 나에게 왜 11세기의 십자군전쟁이 떠올랐을까? 지역적으로 팔레스타인은 중근동(中近东)에 속하며 역사적으로 부침이 많았던 지역이다.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로마제국령의 세력권과 파르티아(고대 이란제국)제국의 영향권이 맞부딛히는 지역이었고, 이후 중세, 근세로 오면서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과 사산조페르시아, 그리고 뒤를이은 아랍 이슬람, 투르크에까지 온갖 민족의 왕래와 정치/종교 권력이 교차하던 지역이었다.

11세기,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던 시기는 동로마제국이 중근동과 이집트를 포함한 북부 아프리카지역등 비교적 비옥한 지역을 오스만 투르크에게 빼앗기고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과 그리스를 포함한 발칸반도와 에게해정도로 줄어들어 있었던 상황이었다. 특히 중근동이 오스만 투르크에게 넘어갔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제1성지로 여기는 기독교권 내에서는 충분한 정치적 이슈를 항상 내포하고 있었다.

11세기 교황은 교권을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종교적 대 이벤트를 벌인다. 바로 '성전(聖殿)탈환'이다. 기독교 제1의 성지인 이스라엘이 이슬람세력권에 넘어가 있어서 이를 찾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성전(聖戰)에 참여한 자들은 모두 이승에서의 죄를 사하여 준다는 약속과 함께. 그런데, 동로마로부터의 군사원조 혹은 지원에 대한 간곡한 요청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소아시아가 몽땅 넘어가고 북부아프리카의 비옥한 영역을 모두 잃을때까지 수없이 군사적 지원 요청을 하였으나, 서로마 제국은 모른척 했었다.

이슬람과 기독교 그리고 유대교까지 이 말많은 세 영향력이 막강한 종교는 바로 아브라함 계통의 '모세 유니버스'로 묶인 동일한 혈통을 지닌 종교들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교'라는 표현보다는 '이단'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당시 이슬람권의 팔레스타인에는 기독교인들과 유대교인들이 적지않게 살고 있었다. 물론 그들의 종교까지 지켜가며 말이다. 그들은 유럽전역과 발칸반도를 포함하는 기독교권에서의 성지순례자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며 생업을 지켜 나가고 있었다. 당시, 지중해의 해양 패권을 나누가지고 있던 베네치아에서는 성지순례 패키지까지 있었다고 하니 기독교에서 탈환을 한다느데 조금 의아한 느낌이 드는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슬람치하의 기독교 제1성지, 예루살렘은 항상 성지순례자들로 북적 거렸고, 그들을 상대로 하는 아파, 하이파 등 해안도시가 생겨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생업을 이어나가고, 무엇보다 이슬람 치하에서 일부 차별을 받기는 했으나 기독교와 유대교는 각자의 종교를 지켜나갈수 있었다.

예루살렘을 탈환하겠다는 십자군은 장장 200년에 걸쳐 10차의 원정을 벌인다. 요즘같으면 전유럽을 아우르는 다국적 연합군인 셈이다. 그들은 1차와 6차 두번을 제외하고는 변변한 전과가 없었으며, 도리어 기독교 도시를 침략하는등 특히 4차원정때는 동로마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침공하여 처참하고 무자비하게 도시를 유린하고 수많은 문화재와 보물을 약탈하고 파괴했다. 이후 그들이 유럽으로 돌아가서 정식으로 재판또는 책임을 진 이는 한사람도 없었다는 것은 종교에 대한 믿음과 신의 능력과 역할, 그리고 종교를 빙자한 모든 선동들이 얼마나 사악한 짓인지 명백히 할 뿐이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팔레스타인'땅의 작은 도시 '예루살렘'이 기독교와 이슬람 두 종교모두의 성지(聖地)인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중요한 점은 이슬람 점령하의 예루살렘에는 전 유럽에서 성지순례자들이 줄을 잇고, 그들을 상대로하는 도시가 번창하였을 정도이고, 기독교의 성지 탈환 이후에는 전 도시에 대한 살육과 그후 기독교치하에서의 이교적 종교활동은 절대 금지되었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배타적이며 이기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입으로는 포용하고 용서하며 사랑하는 종교라고 한다. 하지만 포용과 용서, 그리고 사랑은 그들, 기독교인 끼리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었고 이교에 대하여서는 철저하게, 그리고 잔인하게 응징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믿는 신 '그리스도'의 뜻인지 아니면 그리스도의 뜻을 거역하는 개 망나니 같은 대다수 신도들의 뜻인지.

10세기가 훨씬 지난 옛날옛날 이야기를 들먹이는 이유가 이것이다. 같은지역 같은 도시를 두고 다시금 양 진영이 피를 흘리고 있기 때문이며, 그 모습이 천년전의 그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것이다.

근대의 비극은 오스만의 몰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2차 발칸전쟁을 거치면서 600년을 지배하던 오스만 투르크가 발칸반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오스만이 빠져나간 발칸은 그야말로 무주공산, 야욕과 탐욕이 집중되던 발칸에서 결국은 제1차대전의 불씨가 되는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 저격사건이 발발하게 되고, 기다리고 있던 주변 이해국들은 모두 덤벼들게 되는, 인류 최대의 비극과 더불어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에게는 비극, 유대인들에게는 기회가 시작 되었다.

1차대전을 치르며 유대인자금이 필요했던 영국은 벨푸어 선언(1917)을 통하여 팔레스타인에 유대국가 설립에 대한 지원을 하겠노라고 하였고, 그 2년전인 1915년에는 뒤늦게 주축국측에 가담한 오스만을 상대로 싸워주는 댓가로 팔레스타인에 아랍국가 설립을 약속하는 후세인-맥마흔 선언을 하는 2중거래, 3중거래를 하는 더러운 실체를 드러내게 된다. 물론, 전후의 중근동을 포함한 아프리카지역은 영국과 프랑스가 분할통치 하기로 그들은 책상에 앉아 지도와 자, 그리고 펜을 놓고 선을 그어대기 시작하였고, 그것이 국경이 되고 있었다.

독서하는 내내 유대인이란 어떤 민족인가에 대하여 궁금증이 폭발 하였다.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팔레스타인 아랍인에 대한 적지않은 관심을 가졌었으나, 정작 문제의 발단 즉 불씨를 품고있는 유대인에 대한 공부는 게을리 하지 않았던가.

-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죄로 이천년을 유랑하게 되는 민족.

- 중세를 거치면서 토지를 소유하지 못하여 어쩔수 없이 금융 고리대업에 매달리게 되었던 민족.

- 근대1,2차 대전을 거치면서 거의 멸종단계까지 핍박을 받았던 민족.

- 미국의 이민러쉬를 타고, 핍박을 피하여 도미하여 미국이라는 나라의 경제를 쥐어틀고 있는 민족.

- 옆집아저씨, 옆자리 친구와 같이 같은 외양, 같은 말을 쓰는 숨겨진 민족.

- 젖과 꿀이 흐른다는, 그들의 신이 허락하였다는 곳에 모여드는 민족.

독서에 임할때는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이 피해자라는 마음가짐이 있었고 유대인들이 가장 치밀하고 계산된 악한 가해자라는 생각. 그러나, 독서기간 내내 그들에 대한 동정심 역시 감출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의 불행에 대한 진정한 가해자는 누구일까?

영국일까? 프랑스일까? 미국일까?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독일일까? 물론, 관련된 모든 국가들이 저마다의 책임이 있고, 지금도 책임을 감당하기는 커녕 뻔뻔스러운 오리발을 내밀고 있는 현실을 차지하고서라도 근본적인 문제의 발단을 쥐고 있는 나라 혹은 사건이 분명히 있기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불행의 책임도 가려내야 겠지만, 목전의 본질적 문제는 현재 이렇게 기형적으로 엉켜있는 불행스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세계의 묵직한 위정자들이 그들의 뛰어난 머리를 발휘해야 하는 순간 이지만, 나는 무엇보다 그들 각자의 신(神)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것이 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가 탄생한 이천년전의 고대 로마제국통치하에서도 제국은 절대 배타적이지 않았다.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신을 믿고 숭배할 자유를 주었다.

그리스도 역시 포용과 사랑, 용서와 이해의 거울이다.

이슬람 역시 지난 이천년동안 그들의 통치지역에서의 종교의 자유를 허락 하였다.

그랬던 것이, 이천년이라는 세월을 겪어오면서 각기 지극적으로 배타적, 폭력적으로 변질되었다.

우리가 풀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여호와와 알라가 담판을 지어야 하는 문제이다.

그들이 믿는바대로 그들의 신들이 정말 살아서 역사한다면 말이다.

이제는 마음을 열고 그들 각자의 신들이 매 순간 우리에게 눈물로 호소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각자의 신들이 정말로 화를 낼것이다.

'샬롬! 샬롬!' '앗살람 알라이쿰!' '평화가 그대와 함께!'


[라시드 할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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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 몸을 던지는, 그것이 불륜의 결말일까? 우리에 인생자체가 불륜덩어리 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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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 몸을 던지는, 그것이 불륜의 결말일까? 우리에 인생자체가 불륜덩어리 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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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은연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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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 몸을 던지는, 그것이 불륜의 결말일까? 우리에 인생자체가 불륜덩어리 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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