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
앨런 레비 지음, 노지양 옮김 / 오팬하우스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테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슬픔은 여러 모습일 수 있지만, 슬픔이 한심한 경우는 드뭅니다. 좋은 슬픔은 언제나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말해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미넷은 그 말을 가져와 천천히 곱씹어 보았다.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이렇게 빠르게 마음을 여는 것이 가능한 일이었나? 순수하게 그림 하나를 주고받으면서, 기대하지 못한 선물 하나가 오가면서, 세대와 배경과 출신지가 다른 두 사람이 마음을 확 열어버릴 수 있나?                  p.63


공인회계사로 일하는 미넷은 이상한 편지를 하나 받는다. 어떤 할아버지가 카페에 걸린 그녀의 연필 초상화를 샀는데, 그 그림을 선물로 주고 싶다며 다음 주 목요일에 분수대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온 것이다. 지방검찰청에서 검사로 일하는 남편 데릭과 함게 이상한 편지가 누군가 장난을 치는 건지, 위험한 일에 휘말리는 건지 의심해보지만 두 사람은 먼저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단정한 필체, 최고급 편지지, 경계심을 풀게 만드는 말투, 이름만 있는 서명, 반송 주소 없음. 묘하지만 어딘가 신뢰가 가는 느낌... 편지를 읽고 두 사람이 느낀 것들이다. 그들읜 경찰서에 가서 그 편지에 대한 조언을 구할 수도 있었지만, 직접 만나러 가보기로 한다. 과연 그들에게 편지를 보낸 수수께끼의 남자는 누구일까. 


노신사 '테오'는 한적한 소도시 '골든'에 도착한다. 이 도시에 그가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럼에도 편안하고 포근해 머물기 좋은 곳이라는 것이 그의 첫 인상이었다. 그는 에스프레소가 근사한 한 카페에서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초상화들을 보게 된다. 흑백 연필화로 그려진 총 92점의 초상화들은 모두 같은 화가의 그림이었다. 그림마다 특별함이 있었다. 화가는 어떻게 이 모든 얼굴을 이렇게나 설득력 있게 그려낸 걸까, 테오는 생각한다. 게다가 이렇게 많은 초상화가 아직도 판매되지 않고 남아 있다는 사실도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이렇게 뛰어난 초상화가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으로 책정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그는 이 92개의 액자가 모두 창문이라면 어떨까 생각하며 그 초상화들을 구매해서 그림 속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로 한다. 그렇게 한 명씩 직접 만나 눈을 맞추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초상화가 주인을 찾아가기 시작하는데, 이  대가 없는 선의와 무용해 보이는 친절로 인해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까. 




테오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종이 한 장에 불과한 것. 편지든, 사진이든, 티켓이든, 스케치든, 그림이든 왜 그 종이 한 장을 네 조각의 나무틀 안에 끼워 유리판 아래에 넣는 순간,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버리는 걸까? 덧없는 순간을 영구적인 경계선으로 두른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가 특정한 기억을 고정시키려고 수고스럽게 노력하고 우리 삶의 ‘아주 사소한 순간들’을 붙잡아 두고 보존하기 위해 적지 않는 에너지를 쓰는 행동이 우리 인간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p.189


이 작품은 한 70대 음악가의 놀라운 데뷔작으로 자비출판으로 시작해 오직 입소문만으로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바로 그 하얀 책(The White Book)”으로 불리며 2025년 전 세계를 뒤흔들었는데, 킨들 조회수 1,300만, 굿리즈 독자 평점 34만 건 돌파하며 엄청난 화제였던 작품이다. 드라마틱한 서사도, 도파민 넘치는 전개도 없는 이 작품이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바라보는 선한 마음과 다정함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작은 기적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대가 없는 친절이나 타인을 향한 온정 어린 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더 이 작품이 주는 울림이 크게 다가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갈수록 사람의 가치가 추락하고 있는 세상 속에서 다정함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도 하고 말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다정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건 나와 다른 타인에게서 나를 발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발견하는 일이며, 그의 처지가 되어 사유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의 잘됨을 위해 움직이는 것 아닐까. 사소하고 작은 그 선택이 어디에서 소멸되지 않고 누군가를 통해 연결되고 확장되어 반드시 다시 내 앞에 나타난다는 것. 그러한 순환이 우리가 말하는 선한 영향력이라는 것 아닐까. 이 작품을 읽으며 누군가는 테오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보게 되었다. 이 다정한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고요한 기적을 놓치지 말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14일
마거릿 애트우드 외 지음, 남명성 옮김 / 비채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유령 얘기였네요." 대로우가 말했다.

기억상실증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이건 연결에 관한 이야기예요. 우린 서로 분리된 존재라고  착각하며 살지만 밑바닥에서 우린 형이상학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나한테는 너무 심오하네." 비니거가 말했다. "난 대부분 사람과 연결되고 싶지 않거든요. 우리 아이들인 샬럿과 로비면 돼요. 그것도 가끔요."                 p.155~156


이야기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6층짜리 허름하기 그지없는 다세대 주택 건물에서 시작된다. 건물 관리인인 '나'는 몇 주 전 코로나로 도시가 폐쇄될 무렵 일자리를 구해,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치매 요양 시설에 들어간 아버지와는 통화 연결이 되지 않은 지 오래였고, 나는 쓰러져가는 건물 지하실 아파트에서 온갖 이상한 잡동사니와 전혀 알지 못하는 여러 세입자와 함께 갇혀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임자가 남긴 옥상 열쇠와 세입자 정보가 적힌 노트 한 권을 발견하게 된다. 무작위로 흩어진 타인들의 삶의 파편들을 보며 나는 그것에 매료된다. 옥상 문을 연 뒤로 세입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하고, 나는 그들을 관찰하며 사람들 몰래 그들의 이야기를 수집한다. 뉴욕 전체가 봉쇄되고, 매일 수백 명이 사망했던 지옥의 한복판에서 그렇게 잠시나마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된다. 장르도, 주제도 제한이 없는 이야기의 항연은 그들을 어디로 데려가게 될까. 


각각 세입자들의 별명과 특징을 기록하는 방식도 흥미롭다. 6B호, 이 여자는 탱고, 타인의 삶 속에서 춤춘다.. 5E호, 기억상실증, 망각에 대한 보편적 욕망을 지니고 있다.. 3E호, 검은 수염, 피가 흐르는 전쟁의 보랏빛 유언장을 열기 위해 온 자, 4E호, 여왕, 그녀를 왕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녀는 여전히 자기 슬픔이 여왕이다.. 4A호, 랄라, 검은 무한함을 닮은 눈을 가졌다.. 2E호, 프로스페로, NYU 교수로 '비밀스러운 학문에 몰두' 하고 있다.. 3A호, 월리, 눈물이 음표가 되는 사람... 4B호, 시인, 영혼 위에 그라피티를 쓰는 사람... 등 세입자들에 대한 묘사들이 하나하나 모두 시적이다. 이들의 성격과 외양에 대한 묘사가 이후에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지켜보는 것도 굉장히 재미있었다. 각자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매우 다양하다는 점도 이 두툼한 책을 지루할 틈없게 만들어 준다. 극중 건물 관리인인 '나'가 세입자들과는 거의 모르는 사이에서 시작해 그들에게 딱히 관심을 두거나 할 의도가 없었음에도, 이야기를 들으며 일부 세입자들을 거의 좋아하게 되었다는 점도 이야기가 가진 힘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순간 창백한 연녹색 여인이 나나 다른 사람들처럼 분명히 그곳에 있었는데, 바로 다음 순간 그녀의 의자는 비어 있었다. 옥상 구석은 모두 어둡고 안개가 낀 것 같았으니, 어쩌면 그림자 속에 섞여 사라진 것인지도 몰랐다. 우리를 서로를 바라보았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 여자가 진짜 있었나? 누군가 옛날 핼러윈 복장을 차려입고 우리 모임에 끼어들었던 걸까? 우리가 술에 잔뜩 취한 점을 이용해 그냥 웃자고 장난친 건가?

아니면 혹시...... 절대 그럴 리가 없다.             p.382


이 작품은 마거릿 애트우드의 설계로 실현된 대형 문학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테스 게리첸, 존 그리샴, 에리카 종, 설레스트 잉 등 서른 여성 명의 소설과 논픽션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함께 이야기를 완성했기 때문이다. 첫째 날부터 시작해 열넷째 날까지 이어지는 이야기에는 각각 누가 썼는지 표시되어 있지 않아 더 흥미로웠다. 모든 이야기가 끝난 뒤 책 뒤쪽에 수록된 목록을 찾아보며 내가 예상한 작가가 맞는지 확인하는 재미도 있다. 서평단으로 이 책을 읽으며 각자 파트를 정해주고, 작가가 누구인지 상상해보는 미션이 있었는데, 나에게 주어진 파트는 '넷째 날'이었다. 아기를 입양하려 애쓰는 한 커플의 이야기, 크리스마스를 둘러싼 가족의 이야기, 환자가 죽는 걸 미리 알아차리는 간호사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었다. 엠마 도노휴와 존 그리샴은 맞히지 못했지만, 테스 게리첸의 작품은 예상 적중이었는데, 아무래도 전직 의사였던 작가인데다 메디컬 서스펜스 장르를 많이 써왔기에 익숙한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다들 이 작품을 읽게 된다면 작가를 모르는 채로 쭉 읽어 나가면서 누가 이 글을 썼을지 상상하며 읽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피렌체 사람들 절반이 흑사병으로 죽어가는 사이 도시를 벗어나 이야기를 주고받는 내용의 <데카메론>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우리 모두 실제 팬데믹의 시간을 겪었기에 더 공감하며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데카메론 프로젝트>라는 작품에도 참여한 적이 있다. 《뉴욕타임스》의 편집자들은 700여 년 전 《데카메론》이 공포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하고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처럼, 당대 최고의 작가들이 집필한 단편소설들을 한데 모으는 기획했고, 그렇게 29편의 단편들을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했었다. 이 작품은 팬데믹이 한참 진행중이던 시기에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로부터 몇 년 후 팬데믹이 모두 종료되고 나서 읽은 <14일>이라는 작품은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아마 그 시기의 기억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이제는 그 지옥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에서 조금 더 거리를 두고 서사를 즐길 수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자, 서른 여섯 명의 목소리로 완성된 거대한 문학적 사건이자 단 한 권의 서사, 유례없이 독특한 경험을 하게 해 주는 이 놀라운 작품을 놓치지 말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별빛 마을 꾹꾹이 식당 1 : 꼬마 북극 여우 손님 ㅣ 별빛 마을 꾹꾹이 식당 1
김오냥 지음, 루체 그림, 고양이와 스프 원작 / 다산어린이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전 세계 6,000만 랜선 집사의 사랑을 받은 힐링 모바일 게임 <고양이와 스프>의 세계관을 담은 스토리 만화 <별이 빛나는 고양이 마을> 시리즈가 신작 동화로 출간되었다. 새롭게 시작되는 시리즈는 <별빛 마을 꾹꾹이 식당>으로 마음의 허기를 채워 주는 요리사 ‘맛냥’과 다양한 고양이들이 만들어 내는 힐링 판타지이다. 만화는 네 번째 이야기까지 나왔는데, 동화로는 몇 번째 이야기까지 만들어 질지도 기대가 된다. 




원작인 <고양이와 스프>가 게임 속에서 고양이들이 스프와 주스, 볶음 등 여러 음식을 만드는 것인데, 그 아기자기한 설정들이 고스란히 동화의 무대가 되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맛냥 요리사의 초대장으로 시작된다. '별이 빛나는 고양이 마을'에서 꾹꾹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맛냥은 식당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눈이 번쩍 뜨이는 특별한 요리를 대접하고 싶어서, 밤낮으로 요리를 연구하고 있다. 가끔 영감이 필요할 때면 조수 오냥에게 식당을 부탁하고, '여행자 고양이'가 되어 여행지를 누비기도 한다. 푸른색 고양이 발바닥 스티커가 다섯 개나 붙어 있는 최고의 맛집, 꾹꾹이 식당에서는 어떤 요리를 선보여 줄까? 




꼬마 북극 여우 설이는 엄마와 함께 북극 마을의 가장 자리 '포근포근 수선집'에 살고 있다. 설이는 북극 마을에서 몸집이 가장 작고 조용한 꼬마 여우였는데, 사소한 오해로 단짝인 붉은 여우 놀이와 멀어지게 된다. 놀이만큼은 자신을 이해해 줄 거라 믿었는데,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사소한 일에만 신경 쓰는 소심한 아이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거다. 


"필요 없어. 친구 따위는 없어도 돼." 설이의 마음은 메울 수 없는 구멍이 뚫린 것처럼 허전했다. 그러다 우연히 황금빛 고양이 수염을 주운 뒤 별빛 마을로 초대를 받게 된다. 꾹꾹이 식당에서 특별한 디저트 재료를 찾아 모험을 하게 되면서, 서로 돕고 베푸는 마음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데, 과연 설이는 다시 돌아와 단짝 친구와 화해를 할 수 있을까. 




골골송 달걀 이불 오므라이스, 냥냥 펀치 미트볼, 꾹꾹이 가지 덮밥, 구름 토마토 파스타, 별빛사르르 호박 수프 등 이름만 들어도 너무 사랑스러운 요리들이 가득해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다. 초등 저학년 어린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인데, 학교와 친구 관계 속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을 다정하게 어루만져주고, 위로해줄 것 같다. 네컷만화, 숨은그림찾기 등 다양한 재미있는 페이지들이 구성되어 있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초판 한정 부록으로 <고양이와 스프> 게임의 보석 500개와 천문대 특별티켓 5장 쿠폰도 받을 수 있으니, 해당 게임을 할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자, 먹는 것만으로 따뜻한 마음이 차오르고, 걱정은 사르르 녹는 신비한 요리가 있는 곳, 별빛 마을 꾹꾹이 식당으로 떠나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일 안 하기의 기술 - 꼭 해야 할 일만 하는 과학적 업무 습관
나카무라 가즈야 지음, 김수빈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이것이 큰 문제라고 본다. 사소한 일에 정신을 빼앗겨 정작 중요한 업무는 뒷전으로 미루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중요한 일을 뒤로 미루는 함정에 빠져 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이 업무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중요한 일을 뒤로 미루기 때문일 것이다. 당장 눈앞의 일만으로도 벅차다며,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중요한 일을 시작할 수 없다는 이유를 대는 사람이 많다. 결국 이들은 만족할 만한 업무 성과를 내지 못한다.                  p.34~35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시대는 끝났다. 일은 당연히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고, 취미 생활과 집안일, 휴식까지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정말 가치가 있는 것은 '시간'이다. 유능하고 업무 처리 속도가 빠르면 일을 여유롭게 끝내고 개인 시간을 늘릴 수 있을까. 죽어라 일하지 않아도 유능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정시 퇴근해서 시간을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데이터 과학자이자 생산성 향상 전문가인 나카무라 가즈야는 이 책에서 '일을 줄여서 개인의 자유 시간을 늘리는 것과 관련해 과학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다양한 지식과 습관을 소개해준다.




저자는 말한다. '당신을 바쁘게 하는 건 당신 자신'이라고. 여유 시간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상태라는 잘 알고 있음에도, 자신도 모르게 일정이 조금이라도 비어 있으면 무엇인가로 자꾸 채워버리는 것이다. 특별히 의식하지 않으면 빈 일정을 할 일로 빽빽이 채워버리고 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정을 가득 채우는 것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무의식적으로 공백을 두려워해 일정을 채워 넣는 행동부터 고쳐야 한다. 일정에 여유가 있어야 생산성이 올라간다. 업무의 우선 순위를 정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며, 일의 가치는 긴급도가 아니라 중요도로 정해야 한다. 




나는 나이가 들수록 성공 확률보다 도전 횟수가 성공에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텔레비전 같은 매체를 봐도 '어떻게 저렇게 평범한 사람이 나오지?'라고 생각한 적이 있지 않나? 어쩌면 그 사람은 도전 횟수로 성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도전 횟수는 '행동력'으로 바꿔 말할 수 있다. 요컨대 어떤 일을 하려면 행동력, 즉 실행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을 머리에만 넣지 말고 꼭 행동으로 옮겨보길 바란다. 그러면 그 행동이 당신의 '습관'으로 거듭날 것이다.              p.222


우리는 어질러진 방 정리를 미루고, 시험 공부를 미루다 벼락치기로 준비하고, 집안일을 조금 이따 하기로 하고, 중요한 업무를 나중으로 미루고, 절약을 미루고, 건강을 미룬다. 물론 우리는 모두 게으르게 행동할 권리가 있고, 해야 할 일을 잠깐 미룬다고 해서 무슨 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힘들지만 중요한 일을 미루고는 더 쉽고, 더 재미있고, 덜 중요한 일을 선택하는 일이 반복이 되고, 습관이 된다면 결국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왜 우리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초조하고, 불안해하며 일을 해치우는 것일까. 힘든 일을 미루는 습관은 환상에서 시작된다. 내가 미루고 있는 바로 그 일이 나중에 어떻게든 될 것이라는 환상 말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미루지 않고 중요도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 해야 할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을 구분해 불필요한 사고를 덜어내고, 쓸데없는 작업을 줄이는 방법에 대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누구나 당장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일을 뒤로 미루거나, 시간을 질질 끄는 행동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쳐 버리거나, 언제나 막판에 가서야 급하게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을 알려 준다. 뿐만 아니라 사서 일을 늘리는 사람, 남이 준 일을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 안 해도 될 연락을 여러 번 주고받거나, 의미를 찾으며 골머리 앓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못 하는 사람과 할 일이 너무 많은 사람에게도 '일 안 하기의 기술'이 필요하다.


책을 덮자마자 바로 실행에 옮겨볼 수 있는, 내 일에 적용해 볼 수 있는 스킬들을 알려준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AI가 생산성 높이기를 위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한 요즘이기에, '일 줄이는 습관'은 더욱 중요해졌다. 이 책은 AI가 대신해줄 수 없는 인간의 선택을 다루고 있다. 언제까지 일에 치여 살아야 하는가 막막해 본 적이 있다면, 번아웃으로 인해 바닥으로 떨어진 듯한 기분이라면, 일의 성과를 높이는 비결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지상의 밤
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싱크홀 속 어둠만큼이나 내가 좋아하는 것은 싱크홀이 생겨났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인생을 뒤바꿀 만한 엄청난 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다. 싱크홀은 나에게 그 점을 암시해주었고,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중 싱크홀 저 아래에서 파바밧, 하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내려다보았지만 어둠뿐이었다.            - '만두 가게 앞에는 싱크홀이 있다', p.130


촉수에 닿으면 인간이고 동물이고 전부 해파리로 변하게 만들어 버리는 변종 해파리가 발견된다. 호주에서 처음 발견되었던 이 해파리는 빠르게 바다를 점령해 한 달 만에 전 세계 해양에서 발견된다. 한국 정부는 전국에 있는 해수욕장을 폐쇄하고 해안 경비를 강화했으며, 선박들은 예외 없이 출항이 금지되었다. 제아무리 변종 해파리라고 해도 물 밖에서 이동할 수는 없었으니, 그렇게 사람들은 육지에서 일상을 유지해나갔다. 그리고 한쪽에선 위기를 기회로 삼아 해파리가 되길 원하는 인간을 안전하게 변신시켜 바다로 보내주는 사업을 시작한다. 삶에서 미끄러져 나와 바다로 흘러가려는 사람들은 왜 자진해서 해파리가 되려고 하는 것일까.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온 열세 살의 영국코커스패니얼인 하지는 얼마 전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언니가 자신이 입양한 개를 나에게 떠넘겨 버린 거라 의도적으로 정을 붙이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그 늙고 커다란 개가 조금은 그리워졌다. 하지가 떠난 뒤는 한동안 밖에 나가 걸을 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은 지 한 달 만에 하지가 집에 돌아왔다. 희뿌연 유령 개가 되어서. 유령 개가 되어 돌아온 하지는 가만히 앉아 있거나, 느릿느릿 걷거나, 데굴데굴 굴러다니기만 했다. 하지에게 뭘 해줘야 할지를 고민하다가, 나는 우선 산책부터 시도해 보기로 한다. 그렇게 나는 유령 개와 산책을 시작했고, 그렇게 느릿느릿 걷다가 때때로 멈춰 서며 목적지 없이 동네를 돌아다닌다. 오랜만에 하는 산책은 예상외로 무척 좋았지만, 문제는 하지가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탓에 내가 수상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 민망하지만 뭐 어때 싶은 마음으로 하지와의 산책을 여유롭게 즐긴다. 그런데 하지는 왜 유령 개가 되어 나를 찾아온 것일까. 유령 개와 나의 산책은 계속 될 수 있을까. 




저는 어렸을 때 눈사람을 만들면 그 당시 싫어하던 사람 이름을 붙여줬어요. 힘들게 만들어놓고 왜 그랬대요. 유자가 말했다. 눈사람이 다 녹고 나면 미움도 녹아버리라고요. 저만의 미신 같은 거였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도 못하겠어요. 겨울 다 갈 때까지 눈덩이만 굴려야 할걸요. 가만히 듣고 있던 희재가 소리 내어 웃었다. 세 사람은 눈사람이 볕에 조금 더 녹을 때까지 도란거리다가 오후 네시에 가게 문을 닫고 각자의 길로 향했다.                 - '한겨울 따뜻한 실내에서', p.184~185


<유령의 마음으로>, <초록은 어디에나>, <0000>등의 작품으로 만나온 임선우 작가의 신작이다. 이 작품에는 바다 속에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환하고 아름다운 빛을 내는 해파리로 변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이별 후 연인이 물이나 사물로 변해버리기도 하며, 나무를 접붙이듯 신체 일부를 타인과 교환해 성격, 기억 등을 공유하는 접인 수술이 성행하기도 한다. 직장내 괴롭힘으로 방안에 틀어박혀 있다 새로운 존재가 되기로 결심하며 안도하는 사람도 있고, 갑작스럽게 생긴 싱크홀의 어둠을 들여다보며 위로를 받기도 하고, 짝사랑하던 동네 친구를 떠나 보내기 힘들어 그의 물건을 훔치기로 마음먹기도 한다. 열세 살 늙은 개가 죽은 지 한 달 만에 유령 개가 되어 돌아와 주인과 다시 산책을 시작하기도 한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프랑스식 냄비 요리>였다. 권태기를 겪는 커플이 등장하는데, 함께 수영장에 다니던 어느 날 남자친구가 눈앞에서 녹아내린 것이다.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녹아버린 남자친구를 텀블러에 담았고, 푸딩 같은 질감이 찰랑거리는 액체가 되고, 완전히 말라붙어 사라지기 전에 그를 섭취하기로 한다. 남자친구는 자신을 빵으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고, 나는 오랫동안 저장해두고 먹을 수 있는 빵인 슈톨렌으로 만들기로 한다. 연인이 물로 변해버렸다는 설정부터, 영원히 한 몸이 되기 위해 그걸 음식으로 만들어 먹는다니... 설정만 두고 보면 어쩐지 엽기적이거나 오싹하게 느껴지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방식은 또 전혀 그렇지가 않다. 임선우 작가의 상상력은 늘 파격적인데, 그것을 소재로 다루는 방식은 이상하게 귀엽고 다정해서 늘 마음이 가곤 했다. 이번 작품에서도 슬픔을 극복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며 상실의 빈자리를 사랑스럽게 채워준다. '영원히 따뜻하고도 한없이 다정해서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이 작품을 만나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