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가
신재민 지음 / 북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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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버님한테 복수하고...... 싶으신 거 아니었어요?"

아버지가 멋대로 죽어 버린 이상 영영 물 건너간 복수였다. 하지만 100년, 1,000년도 이르다던 그 해답이 생가 아래에 있었다.

"하고 있잖아요, 지금."

재헌은 그가 앗아간 지난 세월과, 그가 선사한 모든 불행을 떠올렸다. 전부 다 아버지 잘못이었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되갚아 줘야 했다.                 p.115


2017년 정유년, 해가 바뀐 지 보름이 채 안 된 어느 날 이운암 전대통령 생가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경찰은 방화로 추정하고 있었다. 이운암 생가는 그가 퇴임 후 민간에게 개방해 그의 일생을 전시하는 일종의 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한옥을 복원하는 것은 단순히 건물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모로 까다로운 부분이 많았다. 도편수는 불에 탄 생가를 절대 복원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고, 도편수의 후계자가 되지 못했던 아들 재헌은 그에 반발이라도 하듯 생가를 복원해달라는 전대통령 손자의 의뢰를 받아들인다. 


재헌은 아버지를 가장 닮았으면서도 가장 증오했던 아들이다. 다시 지어선 안된다는 생가를 굳이 복원하려는 재헌은 지하실에서 기묘한 공간을 발견한다. 집이란 것이 위치부터 각 건물의 조화, 균형, 동선까지 모든 게 아귀가 맞아야 하는 건데, 그곳은 아무래도 이상했다. 집 전체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대체 전 대통령 일가와 아버지 도편수는 대체 뭘 숨겨온 것일까. 한편 대형 트럭 기사 시록은 어머니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통화한, 평생 만난 적 없던 아빠의 존재를 찾다가 이운암 생가까지 가게 되고, 그곳에서 재헌과 맞닥뜨린다. 국내 최고 도편수였던 범근의 영향력으로 업계 전체가 복원을 반대한 가운데, 재헌은 한배를 탄 시록과 함께 점차 작업을 진전시켜 가는데... 과연 생가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진심일지도 몰랐다. 우리가 겪는 모든 시련은, 그들 나름의 우주적인 사랑일지도 몰랐다. 아득히 커서 인간이 견뎌 낼 수 없는 사랑. 신이 인간에게, 이운암이 국민에게, 지범근이 재헌에게 그래 왔다. 그리고 재헌 또한 그 사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서로를 이해 못 해 반복되어 온 영원한 사슬이었다.

"그럼 당신도 이해해 줘요. 아버지니까."

이제 사슬을 끊어야 했다.                 p.377


이 작품은 영화 <커미션>을 만든 감독 신재민이 시나리오를 소설로 발전시킨 것이다. '제13회 교보문고 스토리 대상' 대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수목 신앙과 한옥 건축 등의 전통적 요소, 대한민국의 어두운 현대사를 결합한 오컬트 호러로 서늘하고 오싹한 서스펜스를 선사한다. 무더운 여름 날씨를 한방에 날려 버릴 만한 긴장감이 페이지마다 가득하고, 호러와 미스터리를 넘나들며 암울한 역사와 저주를 엮어내는 솜씨 또한 탁월하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공간적으로도 다양한 장소를 교차시켜가며 보여주고 있어 지루할 틈없이 읽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 건축물인 한옥을 색다른 방식으로 묘사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화재가 난 이후의 생가 모습을 '지붕이 무너지고 기둥이 뚝 부러져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거대한 괴물의 머리가 아가리를 떡 벌리고 있는 것 같았다.'라는 식으로 그려내고 있어 마치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공포 영화 배경처럼 느껴지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역사가 오래된 관습이 미신처럼 전승되며 어느새 신앙으로 변모하게 된 것과 불타 버린 생가를 다시 원래대로 회복시키려는 '복원'이라는 개념이 그 속에 잠들어 있던 건드리면 안되는 존재를 다시 깨우는 일이 된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앗아간 지난 세월과 그가 선사한 모든 불행에 대해 영혼을 팔아서라도 되갚아 줘야 한다고 복수를 다짐하는 아들의 서사 또한 서사에 긴장감을 더해준다. 자, 저주를 품은 집을 복원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긴 세월 동안 잠들어 있던 생가의 비밀은 무엇일지 궁금하지 않은가. 요즘같은 계절에 읽으면 공간의 온도가 서늘해 질만한, 한국적 요소가 담긴 오컬트 호러의 정수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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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 최신개정판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북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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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 힘은 언뜻 나쁘게 느껴지지. 하지만 사실은 바로 그 기운이 자아의 신화를 실현하도록 도와준다네. 자네의 정신과 의지를 단련해주기 때문이지.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온 마음을 다해 무언가를 원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것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이 땅에서 자네가 맡은 임무라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p.55~56


국내 독자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파울로 코엘료의 베스트셀러 <연금술사>가 한국어판 출간 25년 만에 새로운 번역으로 개정판이 나왔다. 전 세계 1억 2천만 독자들을 만나온 작품이라 거의 현대의 고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 이번에 다시 읽어 보니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금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인 우리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는 책 속에서 만나니 여전히 참 좋다. 


우리가 무언가를 바라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만큼 간절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던가. 간절히 원한다면, 나의 온 존재를 다 바쳐 그것이 자신의 전부가 되어야 한다는 걸 새삼 상기시켜주는 문장이었다. 그렇게 ‘온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은’ 시간은 누구에게나 분명 찾아올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바로 지금, 현재에 존재해야만 한다는 얘기이다. 아무런 노력 없이 허황된 꿈만 쫓거나, 현실 도피적인 환상만 꿈꾸는 것은 아직 현실에 발을 딛고 제대로 서 있다고 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세상이 진정으로 살아 움직이게 되는 순간은, 그러니까 자기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다. 이 작품 속 자신의 보물을 찾아 헤매는 양치기 청년처럼 말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들을 꽤 많이 읽어보았지만, 단연코 최고는 역시 <연금술사>인 것 같다는 생각이 새삼 드는 시간이었다. 




연금술사는 말의 고삐를 당겼다.

"무슨 일을 하는가는 중요치 않네. 이 땅 위의 모든 사람이 세상의 역사에서 저마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 대개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지."

연금술사의 이야기에 산티아고는 미소로 답했다. 한낱 양치기에게도 삶에 대한 질문이 그토록 중요할 수 있다는 걸 예전에는 결코 상상하지 못했다.                p.281


파울로 코엘료는 실제로 청년 시절에 11년 동안 연금술을 연구했다고 한다. 쇠를 금으로 변하게 하고 불로장생의 묘약을 발견할 수 있다니, 젊은 영혼을 매혹하기에 충분한 세계였으니 말이다. 그 중에서도 마음을 끌었던 것은 '불로장생의 묘약'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를 오래도록 연장해줄 액체를 손에 넣을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그 물질을 얻는 데 몸과 마음을 바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연금술의 비밀을 알아내, 원하던 것을 얻어낼 수 있었을까. 그 결과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 보면 된다. 이 책 곳곳에서 그가 연금술에 대해 배운 모든 것을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종종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대로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대로 보'곤 한다. 그래서 보물을 눈앞에 두고도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꿈을 향해 가다 넘어지면 모든 게 다 끝나버린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극중 연금술사가 양치기 청년 산티아고에게 "그대의 마음이 있는 곳에 그대의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가 걷는 길에서 발견한 모든 것이 의미를 지니려면 먼저 내 마음부터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각자의 보물은 자신의 마음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양치기 산티아고의 파란만장한 여정을 통해서 내가 이루고 싶은 소중한 꿈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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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북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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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떠났다. 가까운 곳에서 저 먼 곳까지 커다란 검은 점들이 뜨거운 햇볕 아래 먼지 속으로 서서히 사라졌다. 셴 할아버지는 자기 집 밭머리에 섰다. 공허한 눈빛이 천천히 가라앉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마음속으로 떨어졌다. 그 순간 그는 온몸을 떨면서 마을을 통틀어, 산맥 전체를 통틀어 일흔두 살 노인 하나만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마음은 한없이 공허해졌다. 죽음 같은 적막과 황량함이 깊은 가을처럼 그의 온몸 위로 내려앉았다.                    p.21


옌롄커의 대표작 <연월일>이 새롭게 양장본으로 나왔다. 이 작품은 옌롄커가 가장 애착을 느끼는 작품이자, “영감을 얻어 쓴 유일한 소설”이기도 하다. 기존에 국내 출간 당시에는 다른 중단편 소설과 묶어서 나왔으나, 이번 개정판에서는 작품을 온전히 만날 수 있도록 한 권의 단행본으로 선보인다. 이 작품은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는 중국 농촌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그 속에서 살아 남고자 악전고투하는 한 노인과 눈먼 개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천고 이래 최악의 가뭄이 덮친 그해 세상 전체가 온통 말라 죽은 빛깔이었고 농가들은 세월 속에서 기다림에 지쳐갔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지독한 가뭄을 피해 떠나기 시작했고, 셴 할아버지와 눈먼 개는 남았다. 자신의 나이 일흔둘이라 사흘쯤 걷다가 지칠 거라고, 어차피 죽을 거라면 마을에서 죽고 싶다고 말이다. 그렇게 모두들 떠나고 척박한 땅에 하나 남은 옥수수 이삭을 지키며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사실 개가 눈이 멀게 된 것에는 사연이 있었다. 어느 해든 간에 극심한 가뭄이 들면 마을 사람들은 마을 어귀에 제단을 설치하고 공양물 세 접시와 용왕의 형상으로 그려 넣은 물 항아리 두 개를 올려놓는다. 물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고, 개 한 마리를 두 항아리 사이에 묶어놓고 머리가 하늘을 향하게 한다. 보통은 길면 이레, 짧으면 사흘 만에 해는 개의 울부짖음에 질려 물러가고 바람이 불면서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 이어지곤 했다. 그런데 올해는 개가 보름을 울부짖었지만 해가 여전히 작열했던 것이다. 그렇게 열엿새째 되던 날 셴 할아버지가 물을 다 마셔버리고, 목에서 더 이상 소리가 나지 않는 개를 발견하고 풀어준다. 그리고 개의 두 눈동자가 작열하는 해에 말라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개를 거둬들이기로 마음먹고, 그때부터 마을에 홀로 남은 지금까지 함께 했던 것이다. 햇빛은 그칠 줄 모르는데 우물물이 말라가고 있었고, 그나마 있던 양식도 떨어질 날이 곧 오고야 말 것이다. 과연 셴 할아버지와 눈먼 개는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장님아,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 해. 누가 살든지 먼저 죽는 쪽이 이 구덩이에 묻히는 거야, 알았지? ... 죽고 사는 건 운명에 맡기자꾸나. 내가 이 동전을 하늘에 던지마. 동전이 땅에 떨어졌을 때 글자가 있는 거친 면이 나오면 네가 나를 이 무덤에 묻어 거름이 되게 하고 그림이 있는 면이 나오면 내가 널 이 무덤에 묻어 거름이 되게 하는 걸로 하자꾸나.”                   p.165


옌롄커는 집필하는 작품마다 판매나 홍보가 금지되면서도 중국 평단과 대중은 물론, 세계 문학계의 뜨거운 호응을 얻어온 문제적 작가이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사서>, <딩씨 마을의 꿈>들은 국가의 명예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중국 정부로부터 판매 금지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옌롄커는 가혹한 현실에서 인간성을 되찾으려는 몸부림을 섬세한 필치와 회화적인 시어로 묘사하는 데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단한 삶의 굴레 앞에선 인간들의 모습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어느 순간 초현실적인 상상력이 결합되어 거대한 서사가 완성된다. 시처럼 아름답고 감각적인 묘사, 그리고 리얼리즘과 판타지의 만남은 끝내 먹먹한 감동을 남긴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단순한 생존을 넘어 인간다움의 본질을 묻는 이 작품은 가슴 먹먹한 여운을 남겨 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자연이 만들어낸 재난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은 허먼 멜빌의 <모비 딕>,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와도 그 맥락을 같이 한다. 두 고전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를 보여주는 느낌이라면, 옌롄커의 작품에서는 인간과 자연과의 투쟁 결과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센 할아버지는 죽으면 죽는 것, 사는 날까지 살아보겠다는 식으로 버텼고, 결국은 죽고 사는 건 운명에 맡기겠다는 식의 태도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연못가에서 하룻밤을 꼬박 늑대 무리와 대치하던 장면과 죽고 사는 건 운명에 맡기자고 눈먼 개에게 말하며 동전을 던지는 장면은 특히나 감동적이었다. '생명의 고갈 속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처럼 아름다운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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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의과학사 - 그림으로 읽는 의과학 혁명의 순간들
유임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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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하비의 위대함은발견보다 방법의 혁명에 있었다. 그는 권위자의 글이 아닌 자연의 증거를 따랐고, 추론보다 실험을, 사색보다 계산을 선택했다. 그의 연구는 데카르트, 갈릴레오, 뉴턴으로 이어지는 근대 과학의 기초 위에 놓였다. 하비는 생리학의 토대를 바꿔놓은 뒤 이렇게 말했다. “나는 책이 아니라, 자연을 해부했다.” 그의 가설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가설에서 출발한 추론은 훌륭한 실험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과학이 발전하는 방식이자, 하비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이다.                  p.53


우리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을 얼마나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있을까? 의학의 진보는 천재의 섬광이 아니라, 평범한 관찰을 끝까지 설명하려는 끈질긴 사고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은 '비타민'이라는 말을 너무도 익숙하게 사용하지만, 인류가 이 물질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불과 100년 전이다. 비타민의 발견은 왜 어떤 병은 무언가가 들어와서가 아니라 무언가가 부족해서 생기는 걸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모든 의과학사적 성과와 의미가 큰 혁명의 순간의 출발점에는 하나의 과학적 질문이 있었다. 이 책은 그렇게 과학과 의학의 위대한 발상과 눈부신 성취들을 담았다.


인체를 복부, 흉부, 두부 순으로 해부하는 절차를 제시하며, 해부의 순서와 방법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유럽 최초의 해부 실습 교재 <인체 해부학>은 르네상스의 예술가와 과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예술가이자 과학자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이 책을 참고해 자신의 인체 연구를 체계화했다고 하니 말이다. 16세기 중엽에는 젊은 해부학자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가 등장하는데, 그는 해부를 다시 종교적 의식이 아니라 과학적 관찰의 행위로 되돌린 인물이다. 혈액의 순환 이론을 통해 생리학의 토대를 바꿔 놓은 윌리엄 하비, 생명을 수학으로 해석했던 데카르트, 17세기 초에 열을 재는 도구로 만들어진 온도계 등 의학사에서 중요한 발견과 발명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생명의 신비와 의학의 난제를 밝히는 경이로운 과정들이 있었기에, 현대 의학의 덕을 우리가 보고 있는 거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한 학생이 발견한 작은 섬, 전쟁을 겪은 의사의 새벽 메모, 그리고 허름한 실험실에서 뚝심 있게 밀어붙인 아이디어. 의과학의 전환은 종종 더 많은 데이터가 아니라 문제를 다시 배치하는 순간에서 시작된다. 인슐린은 당뇨병을 정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도 다르게 배치하면 풀릴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의학의 역사는 종종 한 순간의 기적으로 기억된다. 침대에 누워 있던 환자가 다시 일어서는 장면, 불치로 여겨졌던 병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잡은 순간. 그 장면이 시작되기 전에 작은 기적의 씨앗은 언제나 훨씬 앞쪽에 있다.                     p.333~334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았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대표작인 <키스>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었다. 수없이 봐온 그림인데도, 그림 속 패턴들이 적혈구의 전형적인 형태와 닮았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기 때문이다. 황금빛 장식 사이로 작은 붉은 원형들이 반복해 나타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원형들은 중심이 옅고 가장자리가 진한 도넛 모양을 하고 있다. 그것을 클림트가 활동하던 시기에 출판된 백과사전에 실린 혈액의 컬러 도판과 비교해보면, 매우 그럴듯한데 덕분에 20세기 초 빈에서는 예술과 의학이 긴밀히 교류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클림트의 그림에 숨겨진 생물학적 도상, 이른바클림트 코드를 해석한 저자의 연구는 세계 3대 의학저널인 《JAMA》에 소개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과학 교양서 《클림트를 해부하다》를 펴내기도 했다고 하니 찾아서 읽어 봐야겠다.


이 책이 특히나 흥미로웠던 것은 150여 장의 도판 등 다채로운 시각 자료들이었다. 최고의 명화부터 잡지 표지와 삽화, 사진과 냅킨에 그린 스케치까지 수록해 이미지로 의과학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해준다. 베살리우스가 기획한 근육편 삽화, 하비의 혈액순환 도해, 레이우엔훅이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미세 생명체의 스케치, 런던 콜레라 환자 분포 지도, 뇌와 인체의 관계를 다룬 호문쿨루스 모형, ‘구원자페니실린을 담은 전쟁 포스터, 왓슨과 크릭이 세운 DNA 이중나선 모형 등 굉장히 자료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좋았다. 그리고 단순히 의학사를 연대기적으로 정리한 것이 아니라 의과학자들의 질문과 사고 과정에 주목해 수많은 혁신의 순간들 뒤에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풀어내고 있어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결과보다 질문에, 정답보다 그에 이르는 경로를 추적하고 있어 발견과 발명에 이르게 한 사고 과정, 아이디어의 씨앗, 연구자의 태도까지 함께 만날 수 있었다. 의학은 어렵고 차갑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면, 과학사를 색다른 방식으로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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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간 호모 사피엔스 - 다행성 문명에서 살아갈 새로운 인류에 대한 지적 탐사
조황희.곽지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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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가 SF 영화를 통해 접하는 우주는 종종 낭만적인 모험의 무대이거나 무한한 기회가 잠든 공간으로 묘사되곤 한다. 창밖으로 푸른 지구가 보이고 은하수가 흐르는 그곳은 시각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지만, 물리학과 의생명공학의 냉철한 시각으로 바라본 우주는 본질적으로 가혹한 죽음의 공간에 불과하다. 인간이라는 종은 수천년 동안 지구라는 거대하고 완벽한 생명유지장치에 최적화되어 진화해 왔기 대문이다. 대기권이라는 보호막을 벗어나는 순간, 인류는 상상 이상으로 가혹한 물리적 장벽과 마주한다.               p.55


아주 먼 옛날부터 인류에게 우주란 낭만적인 모험과 끝없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두꺼운 대기층과 강력한 자기장이라는 이중 보호막을 통해 안전했던 지구를 벗어나는 순간, 인류는 상상 이상으로 가혹한 물리적 장벽과 마주하게 된다. 기압이 존재하지 않는 진공, 영화 100도씨와 영상 120도씨를 오가는 극단적인 온도 차, DNA를 파괴하는 우주방사선, 그리고 신체의 생리적 균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미세중력때문이다. 특히 우주방사선은 온몸의 건강한 세포를 무차별적으로 노출시키는 광범위한 포화나 마찬가지라고 하니, 생명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되는 존재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인류가 지구의 중력을 뿌리치고 미지의 우주 공간으로 나아간 지 어느새 반세기가 넘었다. 사실 인류가 지구라는 중력의 요람을 벗어나 광활한 우주로 나아가는 여정은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 인간의 상상력이 과학적 실체로 거듭나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기도 했다. 인류가 중력이라는 사슬을 끊고 미지의 궤도를 향해 발을 내딛기 시작한 이래, 우주 개발은 늘 경이로운 과학적 성취인 동시에 막대한 자원 투입에 따른 효용성 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다. 하지만 우주 탐사의 여정에서 잉태된 수많은 기술 유산은 오늘날 정밀 의료장비부터 고성능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 깊숙이 스며들어 일상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 책은 공상과학 콘텐츠의 막연한 구상이 아닌,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우주 개발의 미래를 담고 있어 흥미로웠다.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 초대 센터장을 지낸 조황희 박사와 우주생리학·우주의학을 연구하는 생리학자 곽지연 교수가 우주 개발의 현실성과 우주에서의 생존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류의 우주 거주 역사는 '잠깐의 방문'에서 '장기간의 상주'로, 나아가 '다행성 종'을 향한 거대한 진화의 길을 걷고 있다. 1960년대 초창기의 달 탐사선들이 단 몇 시간 동안 발자국 내지는 깃발 정도에 불과한 짧은 기록만을 남기고 돌아왔다면, 이후 스카이랩과 국제우주정거장 운영을 통해 폐쇄된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기술적 역량을 꾸준히 축적해 왔다. 이제 인류는 이러한 경험을 자양분 삼아 달 궤도의 '루나 게이트웨이'와 달 표면의 영구기지를 구축함으로써, 화성과 그 너머의 심우주를 향한 역사상 가장 장대한 항해를 시작하려 한다.                  p.364~365


20세기 중반까지 우주는 인류에게 단지 신화의 영역이거나 천문학적 탐구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주는 단순한 탐험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도달 가능한 공간, 인간이 거주 가능한 공간까지 확장되어 가고 있다. 우주개발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고, 지구를 넘어 달과 화성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가 차원을 넘어 민간이 우주를 향할 정도로 기술이 고도화된 시대가 된 것이다. 1960년대 초창기의 달 탐사선들이 단 몇 시간 동안 발자국 내지는 깃발 정도에 불과한 짧은 기록만을 남기고 돌아왔다면, 이후 스카이랩과 국제우주정거장 운영을 통해 폐쇄된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기술적 역량을 꾸준히 축적해 왔다. 이제 우주는 미지의 탐사지를 넘어 인류에게 필수적인 자원을 공급하는 에너지 기지이자 거대한 서비스 플랫폼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이 책은 우주로 간 인간을 지칭하는 말로 '호모 스페이시언스'라는 단어를 제시한다. 기술적으로 진보한 인간에서 한 단계 도약한 새로운 인류라는 뜻으로, 지구에서 터ㅐ어나서 자라는 지금의 인류와 다르게 우주에서 태어나고 자랄 새로운 인류를 말한다. 언젠가 정말 화성에도 인간이 거주하게 된다면, 혹은 다른 외계 행성에서 인류가 생활하게 된다면 가능한 세계 속에서 말이다. 우주 개발의 궁극적인 목적이 정교한 기계를 행성의 궤도에 올리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로켓이라는 수단을 통해 인간이 우주에서 생존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고, 인류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데 있다는 것은 여러 모로 설레는 일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우주 개발의 히스토리와 미래까지 모두 아우르고 있으면서도, 그 속에서 실제 '우주에서 생존하는 법'을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어 더 와닿았다. 우주선에서는 인간이 장기간 거주해야 하는 초소형 생태계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먹고 숨 쉬는 기본적인 행위조차 거대한 공학적 과제가 된다는 것, 우주비행사 양성 과정은 철저히 데이터와 매뉴얼, 기계적 제어에 의해 통제되는 냉철한 과학의 영역이라는 것 등 매우 전문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풀어내고 있어 좋았다. 인류는 정말 지구를 떠나 달과 화성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상상해 본 적이 있다면,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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