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신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1~2 세트 - 전2권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현정수 옮김 / arte(아르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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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레이코는 늘 그렇듯이 이 집사의 번뜩이는 착상과 추리력, 그리고 고치려고 해도 고칠 수 없는 고약한 성격에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실제로 그는 리무진의 안에서 레이코에게 사건의 상세한 정보를 들은 직후에 사건의 진상을 꿰뚫어 보았던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차 안에서 그냥 설명하란 말야! 일부러 나를 한밤중에 농막까지 데리고 와서 우스꽝스러운 상황극에 동참하게 만들지 말라고! 그렇게 마음속으로 불만을 폭발시키던 레이코는 이제 곧 자신에게 밀어닥칠 중요한 일을 문득 떠올리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 1권, p.141


대대로 농가인 듯한 넓은 부지에 순수 일본풍 저택에 있는 오래된 창고에서 한 남성의 변사체가 발견된다. 피해자는 72세의 남성으로 몇 년 전 아내와 사별한 뒤로 최근까지 은퇴하기 전에 모아둔 저축과 연금으로 홀로 유유자적하게 살고 있었다. 유일한 취미는 골동품 수집으로 원룸 아파트 정도되는 넓이의 창고에 물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모든 벽에 천장까지 닿을 듯한 선반이 있었고, 그 중앙에 엎드린 자세로 시신이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조금 떨어진 마룻바닥 위에는 피로 쓰인 듯한 검붉은 글자가 있었는데, 과연 그 다잉 메시지가 범인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누군가 창고의 보물을 노리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였지만, 문제는 사건 현장이 밀실이었다는 거다. 과연 밀실과 다잉 메시지는 사건 해결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한 자산가의 저택에서 교살 사건이 벌어진다. 피해자는 가족들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사망했다. 목 주변에 로프에 졸린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교살이었다. 첫 발견자를 비롯해 주변에 수상한 인물들뿐이었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는 상태에 체인 록이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고 있었고, 별관을 드나들 수 있는 통로는 연결 복도밖에 없었다. 이변을 알아차린 가족들이 별관을 향해 달려오고 있을 때, 연결 복도 중간에서 진퇴양난에 빠진 범인은 대체 어떻게 했는가. 실내에 인간이 숨을 수 있는 공간은 없고, 욕실이나 화장실, 벽장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누군가 현관으로 몰래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집 안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내부인의 소행이 분명했다. 범인은 이 '클로즈드 서클' 범죄를 어떻게 가능하게 한 걸까. 




레이코는 옆에 대기하는 집사를 향해 별 생각 없이 - 그렇다기보다 너무 생각 없이, 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경솔하게 - 의견을 구했다.

그러자 가게야마가 태도를 가지런히 하더니 "실례입니다만, 아가씨"라고 공손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런 평범하기 짝이 없는 생각은, 부디 무게 추를 달아서 다마강의 강바닥에 가라앉혀주십시오. 정말이지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추리입니다."                - 2권, p.258~259


재벌 총수의 외동딸이 현직 형사로서 활약하고, 고급 외제차를 타고 등장하는 상사에, 순진하고 엉뚱한 신입까지... 유머 미스터리 수사물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시리즈가 돌아왔다. 이 시리즈는 누적 판매량 444만 부를 돌파했고, 드라마와 영화,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지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12년 세 번째 권을 끝으로 잠정 휴식에 들었던 시리즈가 9년여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손목에 티파니 시계를 찼지만 재벌가 영애라는 신분은 숨긴 형사 호쇼 레이코에게 신입 형사가 생겼다. 풋풋함 만점에 박력 빵점, 어휘력 평균치 이하에 눈치도 없지만 순수하고 성실한 형사 와카미야, 그리고 할리우드 스타로 착각할 만큼 새하얀 정장을 입고 등장하는 가자마쓰리 경부가 다시 팀에 복귀했다. 가자마쓰리 역시 롤렉스를 차고 다니는 재벌가 도련님이다. 


사건이 벌어지면 가자마쓰리 경부가 너무나 평범하기 짝이 없는 빤한 추리를 선보이고, 그의 견해를 들으며 레이코는 속으로 불만이다.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매번 레이코의 집사인 가게야마이다. 집사이면서도 우수한 탐정으로서의 자질도 갖춘 번뜩이는 착상과 추리력으로 매번 사건의 진상을 꿰뚫어 본다. 문제는 방약무인한 태도와 아주 심술궂은 말씨와 고약한 성격이다. "아가씨, 부디 부탁드립니다. 잠꼬대는 주무시고 계실 때 해주시겠습니까?" "아아, 아가씨, 혹시 한눈을 팔고 계셨습니까?" ""실례입니다만, 아가씨. 혹시 뱃멀미를 하고 계십니까? 하시는 말씀이 주정뱅이처럼 지리멸렬하십니다." 등 정중한 태도와 공손한 어조로 말을 건네지만, 지적인 안경 아래에서 불쌍한 것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모시는 아가씨에게 폭언을 퍼붓는다. 그 말을 들으며 레이코는 매번 버럭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추리력에 도움을 많아 수많은 사건을 해결로 이끌어온 것도 사실이다. 1권, 2권 모두 다섯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있는데, 살인과 트릭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 나가는 방식도, 개성 넘치는 캐릭터의 매력도, 시트콤처럼 펼쳐지는 인물들의 티키타카도 너무 재미있었다. 일본 열도에 ‘수수께끼 열풍’을 일으킨 메가히트 수사물의 진수가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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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을 읽은 척할 수 있는 책
사라시나 이사오 지음, 이진원 옮김 / 까치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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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종의 기원>이 읽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다윈이 예상되는 반론에 일일이 답하면서 논증을 전개하는 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6장의 "이론의 어려운 문제들"부터 제8장의 "잡종 형성"까지는 이런 반론에 집중적으로 답하는 장이지만, 다른 장에서도 이 방법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제3장의 이 부분 역시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므로, 논리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분명 읽기에는 다소 까다롭지만, 이렇듯 어려운 서술 방식이야말로 <종의 기원>의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이다.              p.104~105


인류를 뒤흔든 과학적 발견이야 많지만 다윈의 진화론만큼 심하게 세상을 흔든 것도 없을 것이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생물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문헌 중 하나이지만, 방대한 분량과 복잡한 구성 때문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사실 진화론은 교과 과정에서 적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전공자가 아닌 이상에야 접하기 어렵다. 그저 '진화론'을 다루고 있는 교양 과학서를 통해서 만날 수 있을 뿐이다.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생물학 이론을 다루고 있지만, 관련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 읽으면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판단할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종의 기원>이니 말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유명세만큼이나 읽기 어렵다는 악명이 높은 <종의 기원>을 직접 읽지 않고도, 읽은 것과 같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다. 


1859년, 모든 생물은 완벽하게 창조되었기에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던 시대였다. 신이 이 자연을 설계했다고 주장하는 자연신학이 주류였지만 찰스 다윈은 그러한 믿음에 의심을 품었다. 그는 남미와 대서양·태평양·인도양을 넘나들며 수많은 동물·식물을 채집하여 연구한 것을 바탕으로 20여 년 동안, 진화론을 입증할 방대한 증거와 자료들을 수집했다. 그리고 그가 발표한 <종의 기원>은 당시 사회의 시대사조를 뒤집어엎는 혁명적인 사건이 된다. 사실 <종의 기원>은 다윈 시대의 생명과학 지식과 용어에 대한 이해 부족, 엄청나게 다양하고 또 매우 생소한 생물들에 대한 관찰 결과와 수많은 인물들의 조사 결과가 인용되어 있으나 이들을 거의 알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본문에 소제목이 없어 읽어 내려가기가 매우 힘들게 구성되어 있다는 점 등으로 두터운 진입 장벽을 가지고 있는 책이다. 생물학 전공자들도 어렵게 느낀다고 하니,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이 읽고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진화생물학자로서 과학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저자 사라시나 이사오는 바로 그 불가능을 가능하게끔 만들어 준다. 




만약 진화가 일부 종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면, 오랫동안 거의 변화하지 않는 종이 존재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기온이나 강수량과 같은 물리적 환경이 안정된 지역에서는 굳이 변화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왜 모든 종이 교체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다윈의 답은 "생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물리적 환경이 아니라 생물 간의 상호 작용"이라는 것이다. 설령 물리적 환경이 변하지 않더라도, 같은 지역에 사는 단 한 종이 변화하면 그 영향은 다른 종들에게 연쇄적으로 미친다.               p.289


이 책은 먼저 <종의 기원>의 전체 구조를 큰 틀에서 설명하고, 같은 구성으로 원전의 일부를 인용한 뒤 그 내용을 해설하는 방식으로 풀어 나간다. 시대적 한계로 인한 오류를 꼼꼼하게 바로잡고, 원전에 나오는 다양한 사례들이 어떤 맥락에서 등장하는지 해설해주며 일반 독자들도 이해하기 쉽게 잘 가이드 해준다. 19세기에 쓰인 방대한 분량의 책을 오늘날 독자들의 눈높이에서 핵심만 콕콕 짚어주니 진화론에 대한 일타 강사의 강의를 듣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렇다고 원전을 단순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진화생물학이 밝혀낸 새로운 지식을 더해 <종의 기원>을 더욱 업그레이드해준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종의 기원>이 출간된 이후에도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받아들인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확실히 큰 반향을 일으켰고 높이 평가한 이들도 많았지만,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제시된 자연선택설 자체가 폭넓은 지지를 받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개체가 더 많이 살아남는다는 생각이 너무도 당연하게 보이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변이가 축적되어도 종의 경계를 넘을 수 없다고 믿었던 사람들, 즉 변종은 결코 종이 될 수 없다고 보았던 이들을 향해 다윈은 변종과 종이 연속적인 관계에 있으며, 그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변이가 축적되면 종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말이다. 다윈은 그렇게 개별창조설을 명확히 부정함으로써 진화론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이 책은 <종의 기원>이 발표 당시에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그 시대적 배경과 과학자들을 소개하고, 오늘날의 진화생물학적 시선으로 해설해준다. 독자들이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말이다. 자, 원전을 펼쳐놓고 함께 읽는 듯한 진짜 “읽은 척” 가이드가 궁금하다면, 진화생물학을 탄생시킨 고전 중의 고전 <종의 기원>을 읽는 가장 쉬운 방법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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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 사랑을 쓰려거든 콩으로 쓰세요 ㅣ 띵 시리즈 29
봉태규 지음 / 세미콜론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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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사랑을,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나 눈앞에 차려진 따뜻한 밥상 같은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의 사랑을 자주 놓쳤다. 그것은 내가 깨어 있는 시간에 오지 않았고, 내가 알아볼 수 있는 표정으로 놓이지도 않았다. 대개는 모두가 잠든 뒤에 시작되어 냄새로만 남았다. 콩이 익어 가는 냄새, 메주가 마르는 냄새, 장독대 주변에 오래 머무는 짭짤하고 쿰쿰한 냄새. 어릴 때는 그 냄새가 싫기도 했지만, 지금은 안다. 어떤 사랑은 향기롭지 않고, 조금 투박하고, 오래 발표된 냄새를 풍긴다는 것을.                p.41~42


어린 시절부터 콩밥을 좋아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밥에 콩을 넣어야 하는지 늘 불만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밥에 넣는 콩은 좋아하지 않는다. 콩이 맛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포케라는 음식을 자주 먹게 되면서부터이다. 샐러드를 이루는 여러 가지 재료 중에는 병아리콩이나 렌틸콩, 가끔은 완두콩이나 강낭콩도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먹을 때는 콩을 골라낸 적이 없다. 콩은 이런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가지고 있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밥에 들어간 콩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유를 잘 모르겠다.


인생의 모든 '띵'하는 순간, 식탁 위에서 만나는 나만의 작은 세상을 그리며 각자가 좋아하는 음식이나 식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는 '띵 시리즈' 스물아홉 번째 책의 주제가 바로 그 애증의 '콩'이다. '음식 에세이' '띵' 시리즈는 각 권마다 하나의 음식이나 식재료, 혹은 여러 음식을 하나로 아우르는 데 모두가 납득할 만한 주제를 선정해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데 이번 책은 영화배우 봉태규가 주자로 나섰다. 아내 하시시박 작가와 시하, 본비 두 아이들과 꾸려가는 단란한 가족들의 일상 속에서 온갖 콩과 관련된 음식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을 알아간다는 건 꼭 거창한 고백을 들어야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냉장고에 어떤 재료를 늘 두는지, 빵은 얼마나 굽는지, 양파의 아린 맛을 얼마나 빼는지, 올리브유를 어느 정도 둘러야 맛있다고 느끼는지. 그런 사소한 선택들이 모여 한 사람의 지도가 되었다. 나는 원지가 만들어준 샌드위치를 먹으며 그 지도를 조금씩 읽었다. 가본 적 없는 도시의 이름보다, 그곳에서 혼자 차려 먹었을 아침의 맛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후무스는 낯선 나라의 음식이 아니라, 내가 아직 다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가닿는 부드러운 길 같았다.               p.173


어떤 음식은 맛보다 먼저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에겐 두유가 그렇다고 한다. 콩을 불리고 삶고 갈아낸 시간보다, 그것을 해내겠다고 마음먹은 한 사람이 먼저 생각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두유를 마실 때면 어린 시절의 그 여름이 떠오르고, 차갑고 고소하고 달콤한 맛과 콩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혼자 맷돌을 옮기고, 아무 말 없이 이불을 덮어주던 오른손이 떠오른다고 말이다. 젓가락질을 못하면 복이 달아난다고 아버지께 혼이 나던 어린이는 자라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어떻게든 건강한 채소를 먹이려 갖은 노력을 다하는 아빠가 되었다. 콩이 싫어서 콩밥에서 콩을 하나씩 골라내던 어린이는 엄마가 되었지만, 아이에게 콩을 먹이려고 애쓰는 대신 콩을 빼버리고 밥을 한다. 콩 대신 각종 잡곡들을 가득 넣어서 말이다. 달라진 건 어른이 된 나는 콩을 그렇게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아이도 언젠가는 콩을 가리지 않고 먹게 되지 않을까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부, 콩자반, 콩밥, 된장, 두유 등 콩은 늘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지만, 그럼에도 그 본질은 항상 같다. "그러니깐 콩이 달라졌는데, 그게 결국 콩이라는 거네."라는 극중 문장처럼 말이다. 무슨 과정을 거쳤다고 해도 콩이라는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닌 것처럼, 가끔은 단순하고 명확한 진리를 우리는 잊고 사는 것 같다. 주인공이 아니어도 괜찮은 순간이 있고, 살고 싶다는 마음이 된장찌개 한 그릇으로 오기도 하며, 작고 하찮은 자숙콩을 보며 위안을 얻기도 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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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으로 옳다는 착각 - 누가 왜 가짜 과학을 만들고 퍼뜨리고 악용하는가
지바 사토시 지음, 김종현 옮김 / 부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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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자연계 현상이나 과정의 진리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을 기초과학이라 한다. 그리고 사회 문제나 기술 과제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을 응용과학이라 한다. 이 두 과학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자동차의 양쪽 바퀴처럼 어느 한쪽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과학과 비과학(예를 들어 유사과학 등)은 연속된 존재다. 사실 이 둘 사이 경계는 애매하다.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경계가 바뀌기도 한다.               p.38


백신은 나쁜 것이고 코로나는 그리 무서운 병도 아니다, 폭력과 범죄를 유발하는 유전자가 존재한다, 우리는 지금 여섯 번째 대멸종의 한가운데에 있다, 인간도 품종 개량이 가능하다, 생물 다양성은 선이다... 이 중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틀린 주장일까. 혈액형으로 성격을 판단하거나 특정 물질이 건강에 특별한 효과를 준다는 이야기 다들 한번쯤 믿어본 적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진짜'로 위장한 '가짜'들의 전성시대를 살고 있다. SNS와 영상 미디어를 중심으로 유사과학, 음모론, 회의론 등 과학의 가면을 쓴 거짓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다. 과학적인 전문 용어, 이미지, 데이터를 구사하며 과학적 객관성을 교묘히 가상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어 무엇이 옳은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이 책은 이러한 '과학적 옳음에 대한 위협'의 역사적 경위를 살펴보며, 원인을 규명하고, 예방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해 준다. 진화학, 유전학, 생태학을 둘러싼 주제를 중심으로 캄브리아기 대폭발, 여섯 번째 대멸종, 생물 다양성 보전처럼 과학자와 시민이 선의로 받아들이는 개념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고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언뜻 과학적으로 옳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신뢰할 수 없는 주장, 잘못된 주장, 유해한 주장, 아예 과학이 아닌 주장” 등 우리가 잘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는 현재와 과거 역사의 충격적이고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조작되고 왜곡된 주장은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 심지어 정치와 국가 기관에까지 침투해 과학을 망치고 세상을 위태롭게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20세기 전반에 맹위를 떨친 우생학이나 인종차별에 대한 반성은 20세기 후반 이후 인문 사회 계열 학문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상당히 이른 단계부터 "옳다"라는 개념 자체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학자들도 있었다. 사실이나 사실 설명의 "과학적 옳음"은 실험 데이터를 통한 검증이나 실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관찰만으로 또는 객관적인 사실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제기였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옳음"을 다루어야 할까?               p.169


2020년 2월 16일, SNS에 올라온 한 코멘트가 인터넷상에서 큰 소동을 불러일으켰다. 작성자는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영국의 진화학자 리처드 도킨스로 '우생학'에 대한 글이었다. 이 글이 공개되자 수많은 누리꾼들은 도킨스를 우생학을 지지하는 차별주의자라고 받아들이고, 분노와 혐오의 목소리가 빗발치기도 했다.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확립된 우생학은 우월한 성질을 가진 인간들을 선별하거나 열등한 성질을 가진 인간들을 배제하면서 진화적으로 개량하려는 학문이다. 사실 나치 독일이 선량한 사람들을 대량 학살하는 참극을 초래한 것 또한 우생학이다. '과학적으로 옳다'라는 명목 아래 차별과 박해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악용된 것이다. 그럼에도 도킨스는 어째서 이러한 발언을 했던 것일까. 이 소동에 대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저자는 '애초에 과학적 사실이라고 여기는 설명이 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을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썼다. 가장 위험한 것이 자신은 언제나 객관적으로 모든 사물과 현상을 보고 사실만을 분석할 수 있다고 믿는 태도라고 말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과학적으로 옳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백신은 애초에 필요 없으며 오히려 위험하다, 온갖 종류의 작물에서 고품질, 고수확을 거둘 수 있는 기술이 있다, 왼손잡이는 단명하며 우뇌형이어서 창의적인 대신 논리적 사고가 약하다, 친족선택이나 성선택 같은 적응 원리를 통해 인간의 문화, 도덕, 행동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등 '과학적 옳음에 대한 위협'을 둘러싼 다양한 주장과 논쟁, 이와 관련된 인물과 사건 사례들이 워낙 많아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현실'에 대해 더욱 직시하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과학적 사실과 가치/가치 판단이 밀접하게 얽혀 있음을 알고 둘을 혼동하지 않는 것, 자신이 가치 중립적이라고 착각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여섯 번째 대멸종'을 다루는 과학책을 꽤 읽어본 편이라, 그것이 얼마나 사실인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대목은 꽤나 충격적이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과학과 세상을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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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하루도 사랑
서고운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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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찌는 자기가 또 한번 버려졌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정말 좋은 가족을 만났다고 생각할까. 내가 잠든 사이 선주가 입양 신청서를 고쳐썼듯이, 사력을 다해 사랑을 하고 서로를 구원하고자 하는 고군분투가 어떤 경계 앞에서는 너무나 쉽게 흐려지곤 했다... 구원은 필요 없어. 우리는 살아남을 거야. 살아남는다는 건 어제로 가지 않는다는 뜻이야. 집으로 돌아가면 선주에게 그런 말을 꼭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예감은 때로 결심에 가깝기 때문에.             - '위드걸스' 중에서, p.65


베이비시터 일을 하는 순지는 프리랜서 방송 작가인 신혜와 함께 살고 있다. 돈 받고 비행기 타는 게 꿈이었던 신혜는 알래스카에 방송 촬영을 갔다가 다치는 바람에 결국 모아둔 돈을 다 털어 귀국해야만 했다. 돌아와 한 달을 누워 있던 신혜는 앉을 수 있게 된 무렵부터 블로그에 여행기를 올리기 시작했고, 방문자는 금세 늘어났다. 그러다 작은 출판사에서 블로그 원고를 모아 출판하고 싶다고 연락을 해오고, 미팅을 하러 간 참이었다. 순지는 일을 끝내고 장을 보러 갔다가 아이 엄마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고 지아라는 아이를 집에 데려와 돌본다. 지아는 이상하게도 물건 찾기를 잘했는데, 누군가 찾고 있는 물건은 분홍색으로 빛이 난다고 말한다. 그렇게 찾기 놀이가 시작되는데, 순지가 잃어버린 것들을 지아는 다 찾아줄 수 있을까.


아울렛에서 근무하는 희지는 주말에도 숨쉴 틈 없이 일하는 중이다. 하지만 오늘은 유난히 활력이 돌았는데, 다가오는 월요일 휴무날에 강릉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직전 친구와 다녀왔던 뉴욕이 마지막 여행이었던 터라 오랜만에 겨울 바다를 보러 갈 생각을 하니 감격스러운 기분이었다. 여행을 가게 된 계기는 아무 기대 없이 응모한 이벤트에 당첨되었기 때문인데, 행운보다는 불운이 익숙한 사람으로서 희지는 벅찬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환갑을 앞두고 운전면허를 땄던 엄마가 사고를 내서 합의금이 필요하게 되는데, 갑작스럽게 목돈을 어디서 구해야 할까. 마침 강릉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삼촌이 갚지 않은 돈이 떠오른다. 희지는 강릉으로 여행가는 길에 삼촌을 찾아가 보기로 하는데, 과연 오래전의 빚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게 될까. 




나는 도리질을 했다. 세상은 망하지 않아요. 망하는 사람들만 있지. 끝은 언제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역사는 끝의 연속이다. 의미는 인간이 부여하는 것일 뿐이다. 지구의 시간은 언제나 멸종의 멸종을 거듭하며 이어져오지 않았는가. 인류는 어차피 언젠가 멸종할 거라는 식의 냉소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는 모든 의미가 사라져버린 세계에 대해 언제나 깊은 두려움을 안고 살아왔으니까.               - '내일의 날씨' 중에서, p.222


등단 4년 만에 나온 서고운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그간 다양한 매체에 활발하게 발표한 여러 작품 중 아홉 편을 선별해 묶었다. 이 소설집에는 엄마와 딸, 이모와 조카, 아르바이트 동료, 자매, 레즈비언 연인 등 다양한 여성들 간의 관계가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같은 집에 거주하거나 일시적으로 함께 머물고 있다. 대부분 원룸 혹은 투룸 빌라 정도로 좁은 공간이라는 조건 안에서만 가능한 친밀성의 형태를 보여주는 이야기들은 현실적이면서도 동화적이고, 낭만적이면서도 구원 대신 생존을 다짐하는 결연함이 있다. 극중 "구원은 필요 없어. 우리는 살아남을 거야. 살아남는다는 건 어제로 가지 않는다는 뜻이야."라는 문장이 꿈이 아닌 현실에 더 집중하려 하는 인물들의 마음가짐을 보여준다. 


집안에서 잃어버린 물건들을 색깔을 통해서 찾아내는 아이, 집안 대대로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하는 사람을 귀신으로 볼 수 있는 능력 등 상상력이 빛나는 이야기도 있었고, 육 개월 만난 남자친구를 잊지 못해 매일 같이 술을 마시고 속을 게워내는 사람과 노동자의 죽음을 인정 받기 위해 본사와 투쟁하는 노조 등 고개만 돌리면 만날 수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들도 있었다. 묵직한 소재 조차 지나치게 무겁게만 다루지 않아 더 좋았는데, 작가는 시종일관 누군가를 돌보고, 함께 살아가는 인물들을 통해 다정하고 선한 마음을 잊지 않도록 해준다. 그렇게 현실의 절박함과 환상적 상상력이 조화를 이루는 아홉 편의 이야기들은 섣부른 구원이나 완전한 행복 대신 함께 내일로 건너갈 수 있도록 발걸음을 내딛게 만들어 주었다. '살다보면, 그냥 견디면서 살 수밖에 없는 것도 있'기에, 우리는 꽤 많은 것들을 그저 견디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으며 왜 그렇게 견디면서 사는 것인지 처음으로 그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견디지 않고도 살아가는 삶에 대해 그려보게 되었다. 표지 이미지인 젤리처럼 말랑하고, 달콤하고, 착 달라붙는 이야기의 맛이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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