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워진 세계
아사쿠라 히로카게 지음, 이구름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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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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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는 이제야 사노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쓸모없다며 버려지고, 아무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쓰레기들이 어쩐지 가엾고 안쓰러웠다. 그래서 아사히는 처음부터 불필요한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 애쓰며, 물건을 최소한으로 줄여 생활해 왔다. 아사히는 생각했다. 사노와 자신은 네거티브 필름과 포지티브 필름처럼 겉으로만 반대일 뿐, 결국 뿌리는 같은 존재가 아닐까.                p.121~122


아사히는 학교를 졸업하고 교육계 출판사에 지원했다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지만, 부모님께는 붙었다고 거짓말을 한 뒤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을 하고 있다. 집안 구석구석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깨끗하게 관리해야 마음이 편한 아사히가 가장 싫어하는 일을 하고 있는 이유는 아버지로부터 멀리 달아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거의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작은 얼룩 한 점, 먼지 한 톨까지 놓치지 않는 사람이었고, 덕분에 어머니는 늘 어딘가를 청소하며 집을 무균실처럼 유지했다. 그게 싫어 독립한 뒤로는 자신을 바꾸고자 아버지가 절대 거들떠보지도 않을 일을 시작하게 된 거다. 하지만 집은 쾌적하며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을 중요시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이렇다 할 취미도, 수집벽도 없었기에 불필요한 물건은 아예 사지 않았고, 미니멀리스트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옆집에 사는 사노라는 여자를 우연히 마주하게 된다. 잡담을 나눌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라 인사만 하고 지나쳐 가려는데, 쓰레기를 잔뜩 들고 있는 걸 보게 된다. 그런데 쓰레기라면 집 안에 들여놓을 게 아니라 분리수거장에 내놓아야 하는 게 아닌가. 무거운 카트를 들이는 데 애를 먹는 것 같아 무심코 문을 잡아 주다, 그녀의 집 안 상태를 목격하게 된다. 하얀 비닐봉지가 산처럼 쌓여 있고, 온갖 잡동사니가 가득한 처참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쓰레기집에서 살고 있었던 거다. 여자 혼자 사는 집이, 어떻게 폐기물 처리장처럼 되어 버린 걸까. 아사히는 더러운 옆집의 위생 상태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놓고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강박적으로 깔끔한 환경을 유지하려는 아버지를 증오했지만, 부정하고 싶어도 아사히 역시 아버지의 성격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이다.  지독한 결벽증을 가진 청소회사 직원 남자와 버리지 못한 물건들로 집안을 가득 채운 여자, 정반대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두 사람은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난 그런 줄거리를 전혀 모르는 드라마를 중간부터 보는 걸 좋아해."

"왜? 난 금방 채널 돌리는데."

"등장인물의 사정도 모르고 배경도 모르니까 나랑 전혀 상관없는, 지나가는 사람의 인생을 조금 엿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그런 사람들이 울고, 웃고, 화내는 걸 보고 있으면 다들 저마다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구나 싶고, 왠지 마음이 따뜻해지고 안도감이 든다고 해야 할까."               p.324


남자는 지나치게 깨끗한 일상 속에 자신을 가둔 채 살고 있다. 처음부터 불필요한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 애쓰며, 물건을 최소한으로 줄여 생활한다. 문제는 결벽증을 혐오하지만 좀처럼 바꾸지 못한다는 거다. 자신을 싫어했고, 자신감이 없었다. 괴롭힘을 당한 적은 없지만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도 거의 없었고, 취직 문제는 허울 좋은 거짓말로 얼버무리고 아버지와 마주치는 것도 계속 피하고 있었다. 지저분한 환경에 불안과 분노를 느꼈고, 자신의 공간 만은 철두철미하게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사는 게 전혀 즐겁지가 않았다는 거다. 


여자는 직장에서 따돌림을 당해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풀기 시작했다. 옷이나 신발 같은 걸 인터넷으로 잔뜩 사들이다가 돈이 점점 부족해지면서 어느 날부턴가 쓰레기를 모으게 된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남들한테 민폐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어릴 때 엄마가 쌓아 올린 쓰레기산에서 발견돼 구조되었던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엄마는 유부남과 사귀다 쓰레기처럼 버려졌고, 자신들처럼 버려진 쓸모없는 쓰레기를 모아 그걸 성벽 삼아 자신들만의 왕국을 만들었다. 그곳에서라면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고 안심하고 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구출되어 아동보호시설에서 자란 여자도 어쩌다 보니 자신의 엄마처럼 살게 된 것이다. 어쩌면 '나도 사회의 쓰레기구나'라는 생각이 그녀를 쓰레기 왕국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완전히 정반대의 방식으로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삶을 조금씩 변하게 만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아버지가 만든 규칙 속에서 살아오며 사람들과의 관계를 스스로 끊어낸 채 살아온 남자와 자신의 인생이 중간부터 보기 시작한 드라마 같다고, 삶을 티브이 속 이야기 보듯 멀리서 바라보며 살아온 여자는 서로가 친구가 되어 주며 스스로의 삶을 다시 되돌아 본다. 오랜 시간 외면해 온 자신의 상처가 마주하며, 쌓아둔 벽을 허물고 세상 속으로 걸어 나간다. 이 작품을 읽으며 '누군가의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이해할 수 없어 보이는 모습 뒤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쓸모없다며 버려진 곳에서 피어난 따뜻하고, 다정한 세계를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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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의 가장자리 - 부서진 유년의 파편에서 출현한 신경과학자 이야기
데이비드 수실로 지음, 이충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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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새로운 이해에 감탄하고 있던 그 순간에도, 정작 과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내 삶과 맞닿아 있는 근본적인 질문들과 씨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물질에서 어떻게 마음이 생겨날까? 정신 질환이란 무엇인가? 왜 어떤 아이들은 잘 성장하는 반면, 어떤 아이들은 어려움을 겪는가? 이것들은 과학의 기반 자체를 뒤흔드는 질문들이기 때문에, 과학의 기반을 간략하게 살펴보는 것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p.57~58


뇌는 의심이 여지 없이 인류가 알고 있는 것 중 가장 복잡한 물질이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이해하고, 해석하고, 창조하고, 느끼는 모든 것들은 수십억 년에 걸친 진화 끝에 이루어진 것이니 말이다. 잠시 멈춰 서서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면, 그것은 그야말로 기적에 가깝다. 신경과학자들은 이러한 인간의 뇌를 이해하려고 오랜 시간 연구해 왔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 머릿속의 물리적 물질과 전기 신호로부터 생각과 감정이 나타나는가에 대한 수수께끼는 여전히 거의 밝혀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오랫동안 인공신경망과 인간의 뇌가 어떻게 정보를 처리하고 행동을 만들어내는지를 연구해온 과학자다. 그는 부모님이 마약 중독자였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고아원에서 자랐다. 청년이 될 때까지 10년 동안 그 시스템에 갇혀 살았다. 두 곳의 보호시설, 고모 부부와 삼촌 부부 집에서도 잠깐 살았다. 가족은 가난했고, 제대로 된 돌봄을 받을 수 없었다. 그는 똑똑한 아이였지만, 쇠로 만든 로봇도, 다른 행성에서 온 영웅도 아니었기에, 심오한 것과 아름다운 것, 끔찍한 것, 그 모든 것들이 깊이 각인되었다. 정상 경로에서 이탈하며 시작되었던 그는 어떻게 구글 x 메타에서 마음을 연구하는 신경과학계 거물이 될 수 있었을까. 왜 어떤 아이들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살아남는 반면, 어떤 아이들은 그러지 못할까? 물질에서 어떻게 마음이 생겨날까? 저자는 그에 대한 답을 인간의 뇌와 자신의 삶에서 찾아낸다. 




우리는 이 모든 것─존재, 언어, 생각 자체─을 당연하게 여긴다.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배우자에게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가 슈퍼마켓에 들르겠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도 평범한 일이라서 굳이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하지만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곰곰이 생각해보라. 원자들로 이루어진 분자들, 분자들을 자르는 화학 반응들, 그리고 세대 간에 유전되는 부호화 능력인 DNA. 네트워크 위에 네트워크가 있고, 또 그 위에 네트워크가 계속 이어지는데, 이 모든 것은 수십억 년에 걸친 진화 끝에 마침내 우리를 이렇게 평범한 잡일을 계획하고 소통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p.366


이 책이 특별한 것은 고단한 인생사를 역경을 극복한 성공담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처는 성공으로 아물어지지 않는다. 성취가 과거를 지워주지도 않는다. 살아남았다는 사실도 삶을 구원해주진 못한다. 그럼에도 약물 중독 부모에게서 태어나 폭력과 방임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보호시설을 전전하던 소년은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었다. 보육원의 낡은 컴퓨터 앞에서 프로그래밍 책을 붙들고 끙끙대던 아이는 어떻게 지금의 자신이 될 수 있었을까. 그는 자신의 삶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살아 있다는 것일까, 생각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여기서 신경과학의 ‘창발emergence’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창발'은 여러 요소가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개별 요소만으로는 예상하기 어려운 새로운 특성이나 패턴이 나타나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는 단순히 자극에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며, 뇌의 활동 역시 복잡한 왈츠와 같다. 복잡한 의식과 지능이 단순한 신경세포들의 상호작용에서 창발하듯, 한 사람의 삶 역시도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너무도 복잡한 리듬에 맞춰 돌아가기 때문에, 아주 작은 진동조차도 예측 불가능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일견 사소해 보이는 한 가지가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결국 예상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에 이르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현실세계가 결코 단순하지 않은 것처럼, 읽고 성찰하는 능력을 가진 마음이 있는 인간 또한 마찬가지다. 이 책이 흥미로웠던 이유 중 하나는 개인적인 것과 과학적인 것, 감정적인 것과 분석적인 것이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색다른 방식으로 과학을 이야기하는 책이라니 매우 신선했고, 또 감동적이었다. 게다가 이 책은 산산조각 난 인생에서 현재의 위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자서전처럼 가볍게 풀어 내고 있지만, 그 모든 이야기의 배경에 과학적 통찰이 담겨 있다. 그래서 과학자의 에세이처럼 읽히지만, 탁월한 신경과학책이기도 하다. '카오스'라는 수학적 현상을 통해 우리 세계의 본질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놀라운 작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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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지도
우케쓰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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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쩐지 가슴속에 위화감이 쌓였다.

이 마을은 뭔가 이상하다. 하지만 좀처럼 위화감의 정체에 다다를 수 없었다.

어느 집에 들어가니 방 한구석에 책이 놓여 있었다. 소설, 학술서, 도감 등 다양한 종류의 책이 줄지었다. 그 모양새에 머릿속 한구석이 움찔 반응했다.

비슷하다. 외할머니 방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근거는 없지만 그런 직감이 찾아왔다.              p.163~164


곧 졸업을 앞둔 대학생 구리하라는 입사 지원을 한 회사마다 불합격 통지서를 받는 중이다. 건축학과인 구리하라는 성적도 좋고, 자격증도 있었다. 다만 면접에 요령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무뚝뚝하고 솔직한 성격이라 생각을 숨김없이 꺼내 놓는 탓에 번번히 불합격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섯 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는 건축공학 부교수였다. '알고 싶은 마음은 말릴 수가 없다며' 자신이 연구에 집중하는 이유를 말해준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몰두했던 학문에 대해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구리하라도 건축학을 전공하게 된 것이다. 유일하게 1차에 합격한 한 회사의 2차 면접이 열흘 뒤로 남은 어느 날, 아버지가 어머니의 본가를 처분하는 문제로 그를 부른다. 집을 처분하기 전에 살펴보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찾은 그곳에서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그리고 할머니가 한 장의 고지도를 손에 쥔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외할머니가 자살한 이유를 찾기 위해 애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죽기 직전까지 조사를 계속했지만 진상을 알아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해 생각하고, 구리하라는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홀로 조사를 시작한다. 대체 외할머니는 뭘 조사했고, 뭘 발견한 걸까. 그것이 무엇이길래 죽음을 선택해야 했을까. 구리하라는 외할머니의 노트와 기묘한 그림이 있는 으스스한 지도 한장을 토대로 조사를 계속했고, 고지도에 표시된 장소에 직접 찾아가 보기로 한다. 2차 면접이 있기 전까지만 조사해보기로 기한을 정해두고, 한적한 시골 마을로 향한다. 이 지도는 언제, 누가, 뭘 위해 만든 걸까. 외할머니는 왜 이것을 갖고 있었는가. 산에 그려진 요괴는 뭘 의미하는가. 조사는 난항을 예고하고 있었고,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과연 구리하라는 할머니의 죽음에 감춰진 비밀의 실체를 알아낼 수 있을까.




삐삐뽀뽀, 삐삐뽀뽀, 하고 엇박자로...... 아무래도 두 개의 사이렌 소리가 서로 겹친 듯했다. 어째선지 가슴속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사태는 해결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텐데도,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왜일까.

문득 안주인을 보았다. 그 순간 등골이 얼어붙었다.

겉모습은 무엇 하나 변하지 않았는데, 방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그곳에 서 있었다.                p.369


<이상한 집>, <이상한 그림>, <이상한 집 2>를 잇는 우케쓰의 '이상한 시리즈' 그 네 번째 작품이다. '우케쓰'는 전신에 검은 타이즈를 입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가오나시’를 연상시키는 흰 가면을 쓴 정체불명의 유튜버로 주로 호러?오컬트에 관련된 영상을 올리는 콘텐츠 크리에이터이다. 나이도 성별도 거주지도 밝혀지지 않은, 그야말로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이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주택 평면도에 숨겨져 있는 ‘위화감’을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찾아내는 내용이었던 ‘부동산 미스터리 일본의 이상한 집'이라는 컨텐츠가 조회수 1,000만 뷰를 돌파하며 큰 인기를 누렸는데, 그 영상을 보고 먼저 출판사에서 연락을 했고, <이상한 집>이라는 책으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현재는 시리즈 누계 750만부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며, 호러, 미스터리의 지형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집과 그림에 이어 이번에는 지도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상한 시리즈'는 집의 도면과 그림, 지도 등 글 외에 다양한 방식으로 서사를 풀어낸다. 추리 과정을 도식화하여 정리하고, 그림을 보여주며 독자들도 함께 그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줘 재미를 더해준다. 다양한 이미지와 도표를 통해 마치 텍스트가 아니라 영상을 보는 것처럼 가독성 넘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일곱 마리 요괴가 그려진 그림, 스산한 폐촌과 사당, 여자의 뒷모습, 돌아선 석탑 방향… 남겨진 단서라고는, 한 장의 지도뿐... 실제로 이 책에는 특대 사이즈 3단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지도와 표식, 각종 자료들을 따라가다 보면 기묘한 경로 속에서 극중 구리하라와 함께 진실을 추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생생하게 든다. 마치 눈앞에 영상이 재생되는 것 같은 입체적인 독서 경험을 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 동안 출간되었던 '이상한 시리즈' 세 권을 모두 읽었는데, 그 중에서도 이번 <이상한 지도>가 가장 재미있었고, 가장 탄탄하게 잘 쓰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작품 전체가 정교하게 설계된 거대한 지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페이지를 넘기기가 아까울 정도로 정말 재미있는,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놀라운 이야기를 경험해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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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ㅣ 지식산문 O 10
존 비게닛 지음, 김명남 옮김 / 복복서가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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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침묵의 성소가 줄어드는 세상에서 우리는 더 조용한 세계에 대한 향수를 느끼지 않는가? 쩌렁거리는 라디오, 재잘거리는 텔레비전, 지지직거리는 스피커, 삑삑거리는 자동차 경보, 따르릉대는 전화, 끽끽거리는 모터, 털털거리는 에어컨, 웅웅거리는 냉장고, 부르릉대는 상공의 비행기, 그리고 그 밖에도 기계시대가 우리 삶에 가져온 갖가지 침입적 소음이 일찍이 1888년에도 예이츠가 그리워했던 "꿀벌 소리 울리는" 고독을 삼켜버리지 않았던 세계를?                p.7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갖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자동차의 경적 소리, 사람들의 대화 소리와 발걸음, 카트를 끄는 소리, 공사장의 드릴 소리... 밖에 있던 집에 있던 마찬가지다.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보면 집에서도 각종 전자음과 사물의 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가끔 소음에 지칠 때면 물 속에 머리를 가만히 담그고 있는 상상을 해본다. 물 속에서는 소리가 희미해지거나 왜곡되어 잘 들리지 않는 경험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욕조에 머리를 담그거나, 수영장에서 물 속에 들어갔을 때 소란스러운 세상의 소리들로부터 벗어나 잠시 침묵의 세계에 온 듯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물 속에서 소리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귀가 수중에서 작동하도록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물 속에서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평소에 워낙 소리에 예민한 편이고, 소음에 유난히 잘 지치곤 한다. 그래서 이번에 지식산문 O 시리즈의 주제가 '침묵'이라고 해서 매우 궁금했다. 지식산문 O 시리즈는 들고 다니기에 딱 좋은 판형과 부담없는 분량으로 우리를 둘러싼 일상 속 사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시리즈는 영국 블룸즈버리 출판사의 대표적인 스테디셀러 ‘Object Lessons(오브젝트 레슨스)’ 시리즈 가운데 특히 흥미로운 책들을 선별해 나오고 있다. 이 시리즈에서 조명하는 사물의 종류에는 한계가 없다. 작가들은 사물이 겪어온 다양한 변화들을, 어떻게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풀어낸다. 형식에도 제한이 없다. 그래서 갖가지 주제와 형식의 다채로운 책들을 만날 수 있어 신간이 나올 때마다 챙겨보고 있다. 현재까지 열 권이 출간되었는데, 그 중에서 여섯 권을 읽었다. 그 동안 여행가방, 트렌치코트, 퍼스널 스테레오, 청바지 등 사물을 주제로 해왔던 것과 달리 형체도 질량도 없는 '상태'에 가까운 침묵이라는 주제가 등장해서 굉장히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로런스 스턴의 백지가 독자에게 잠시 멈추라고, 침묵의 공간처럼 보이는 것 속에서 화자의 언어로부터 피신하라고 권했던 것처럼 종이에 적힌 글 속의 빈 공간은 모두 저자의 목소리로부터 벗어날 기회, 심지어 탈출할 기회를 제공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읽기를 멈출 때 침묵 속으로 피신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의 늘 주절거리는 의식을 끊고 끼어들어 재잘거리는 화자의 목소리를 음 소거하는 것뿐이다.            p.115


현대사회에서 '침묵'이란 사치품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자동차도, 냉장고도, 각종 전자제품들은 어떻게든 소리를 내지 않게 만들기 위해 애쓰고, 공항의 라운지라던가 노이즈캔슬링 헤드폰 등 침묵과 부를 연관 짓게 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일상적 소음에 시달리는 것은 주로 가난한 이들이며, 부자들은 값비싼 비용을 치르며 침묵을 구매하고 있으니 말이다. 침묵이 일종의 사치재가 된 오늘날, 침묵은 사고파는 고가의 상품이 되었다. 소음과 침묵의 분리는 사회계층의 분리를 실현하기도 한다. 침묵이 부자의 사치품이라면 소음은 가난한 자의 질병이며 불평등을 드러내는 계급장인 셈이다. 이 밖에도 강자 집단이 약자들에게 침묵을 강제하는 경우를 비롯해 일상적 차별의 예시와 사회와 기존 권력 유지에 어떻게 기여하는지에 대한 사유도 만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침묵의 읽기' 파트를 재미있게 읽었다. 독서란 침묵의 토론이 아니겠냐는 저자의 의견도 흥미로웠다. 누구나 설득력 있는 내러티브와 잘 쓰인 문장에 휩쓸려 자신을 잊고 상대의 의식 속에 빠져들었다가 전화벨 소리 같은 것이 방해하는 바람에 퍼뜩 정신 차린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독서란 어느 한 시점에 저자의 목소리와 독자의 의식의 목소리 둘 중 하나가 침묵되어야만 가능한 행위이기도 할 것이다. 독서란 우리가 자신의 목소리를 침묵시킴으로써 상대의 의식의 목소리를 존중하고, 그것이 우리의 목소리와 번갈아 발화하며 대화하도록 허락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최근의 신경학 연구에서 묵독이 실제로 침묵인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정보도 흥미로웠다. 뇌가 '말없이' 읽기를 청각 현상으로 해석한다는 증거가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다층적인 시선으로 침묵을 탐구하고 있다. 번잡한 세상 속에서 어딘가에 침묵의 지대를 설정해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 어느 날, 이 책을 만나보길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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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편해지는 갱년기 상담소 - 산부인과 전문의가 알려 주는 내 몸의 변화와 신호 80가지
카트린 샤우디히.카트린 지몬센 지음, 김현정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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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년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일찍 시작되고 더 오래 지속된다. 그리고 엄청난 고통과 스트레스를 동반하기도 한다. 우리는 풍부한 정보를 가득 담은 이 책을 통해 여성들에게 힘을 실어 주고 응원하고자 한다. 우리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면 신체적, 정신적 어려움을 훨씬 더 잘 헤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 갱년기를 겪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안이 된다.              p.6


갱년기란 우리 몸에 지속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복합적인 생물학적 과정이다. 누구나 겪게 되는 것이지만, 누구도 같은 증상을 겪지는 않는 다는 것이 문제이기도 하다. 개인마다 느끼는 정도가 천차만별이고, 증상도 너무나 다양해서 각자가 겪게 되는 갱년기라는 것은 누구에게도 같은 모습일 수가 없다. 푹 자고 일어나도 여전히 피곤하고, 매사에 우울하고 무기력하며,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내 몸이 좀처럼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우리는 대부분 갱년기의 신호가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 책은 '호르몬의 변화로 몸과 마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풀어낸 건강 안내서이다. 산부인과 전문의로 수많은 여성을 진료하고 팟캐스트를 통해 갱년기 이후의 삶을 이야기해 온 저자는 이 책에서 갱년기의 생물학적 원리부터 다양한 변화와 증상들, 그리고 이럴 때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도 차근차근 알려준다. '제2의 사춘기'라고 불리는 갱년기에 대한 탄탄한 지식을 통해 모두가 스스로 결정하며 두려움 없이 이 격동의 인생 단계를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폐경 전후기와 폐경 후기를 구분하고 수면 장애, 우울감, 홍조, 방광염, 복부 지방, 탈모, 장 문제 등 다양한 증상을 다루고 있어, 상식으로 알고 있으면 너무나 좋을 의학 정보들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아직 갱년기를 겪지 못했지만, 보통 몸이 확 달아오르는 열성 홍조 증상에 대해서만 티비를 통해 들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알려진 갱년기 증상만 해도 30가지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아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갱년기를 '제2의 사춘기'라고 한다. 이는 절대적으로 맞는 말이다. 갱년기에도 호르몬이 다시 한번 요동치며, 그 후 우리 몸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여성들은 폐경 전후기에 비하면 오히려 사춘기 때가 훨씬 수월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금 갱년기를 겪는 우리가 사춘기 시절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인가?               p.282


보통 폐경 전후에 시작되는 갱년기를 통해 여성의 몸은 수년에 걸쳐 호르몬 변화를 겪게 된다. 갱년기를 거치면서 가임기가 서서히 끝나고 마침내 비가임기에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갱년기에 접어들었는지 알아차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산부인과에서 혈액 검사를 통해 호르몬 수치를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폐경 전후기의 호르몬 수치는 충분히 신뢰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 많은 여성에게 나타나는 갱년기 초기 증상은 불명증으로, 한밤중에 깨어나면 다시 잠들기가 어렵다. 호르몬 변화로 두통이나 어지럼증을 겪기도 하고, 집중력 저하, 건망증, 피로감, 감정 기복, 눈에 띄는 예민함 등이 전형적인 증상이다. 모든 증상을 겪을 수도 있지만, 몇 가지 증상만 경험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개인차가 큰 증상이다. 그러니 갱년기 동안 호르몬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그 과정을 알게 된다면, 자신에게 닥쳐온 증상들을 보다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대처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 사회가 사춘기 청소년을 배려하듯이, 갱년기를 겪는 여성에게도 자연스럽게 이해와 배려를 보여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사회적인 배려를 정착시키는 것이 단기간에 이루어질 일이 아니라면, 우리부터 스스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일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갱년기라는 것이 단순히 여성호르몬이 감소하는 시기가 아니라 심혈관 건강과 골밀도, 근육량, 대사 기능, 인지 기능 등 전신의 변화가 시작되는 중요한 생애 전환기라면, 정확한 지식을 통해 적절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80가지 질문 형식으로 구성되어 현실적으로 필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어 든든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갱년기를 앞두었거나 현재 이 시기를 지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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