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 이후 - 빅터 프랭클이 남긴 인생 강의
빅터 프랭클 지음, 유영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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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미래를 향한 지향성 ─ 미래에 실현해야 할 개인적인 과제나 미래에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 ─ 이 이들을 버티게 한 결정적인 요인이었습니다. 살아남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있어야 했던 것이에요. 무엇을 위해 살아남아야 하는가가 중요했습니다. 살아남고 싶은 이유가 없으면, 무엇인가 혹은 누군가에 대한 개인적인 간절함이 없으면 살아남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p.65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 네 곳을 전전하면서도 끝까지 삶의 품위를 잃지 않고 성자처럼 버티어 나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생환해 온 산증인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수백만 독자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가 강제 수용소에서 한 경험은 이제 개인의 경험이 아닌 인류의 경험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진 것을 모두 잃고, 모든 가치가 파괴되고, 추위와 굶주림, 잔혹함, 시시 각각 다가오는 몰살의 공포에 떨면서 어떻게 삶을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는 만약 삶에 목적이 있다면 시련과 죽음에도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 줄 수 없다고, 각자가 스스로 찾아야 하며, 그 해답이 요구하는 책임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고 말이다. 


그는 수용소 이후 30여 년간, 집필과 함께 로고테라피를 체계화하고 세계 각지를 두루 순회하며 강연 활동을 펼쳤다. 이번에 만난 책은 단행본으로 최초 공개된 그의 미출간 유고작으로 1946년부터 1984년까지 서로 다른 시기에 이뤄진 강의들을 풀어낸 것이다. 마치 그의 육성을 직접 듣는 듯한 네 편의 인생 강의로 만날 수 있는 책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특히 이번 한국어판에는, 독일어판과는 달리, 손자인 알렉산더 베셀리프랭클(영화감독)의 감동적인 특별 서문이 추가로 실려 있다. '나의 할아버지 빅터 프랭클은 쾌활하고 사랑이 넘쳤으며, 평생 의사로서 성실한 삶을 살았다'라고 서문이 시작된다. 긴 서문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할아버지가 말로 가르치지 않고, 대신에 가르침을 몸소 삶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가깝게 지낸 모든 이처럼 자신도 그냥 할아버지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배웠다고 한다. 이보다 더 큰 가르침이 어디있을까. 말로만 떠드는 것은 깊게 와 닿기 힘들지만, 이러한 가르침이야말로 삶의 태도가 되고, 믿음이 될테니 말이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삶이란 그 자체로 끊임없는 죽음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했던 어떤 것 혹은 어떤 사람을 계속해서 잃어가는 과정이지요. 인생은 이별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이런 무상함,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역으로 ─ 따라서 종착점에 이르기 한참 이전에도 ─ 삶을 살아가는 것을 무가치하게 만들어버리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에요. 삶이 무상하다는 사실이 삶의 가치를 박탈하고, 삶의 의미를 없애버리는 건 아닐지, 삶 전체의 의미를 앗아가는 건 아닐지를 묻게 되는 것이지요.               p.146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아우슈비츠가 있다."고 한다. 타인이 바라보는 고통과 각자가 직접 겪는 경험으로서의 고통은 서로 비교할 수도, 객관적인 지표로 측정할 수도 없는 것이니 말이다. 경험뿐이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했던 모든 일, 우리가 했을지도 모르는 훌륭한 생각들, 우리가 겪었던 고통, 이 모든 것들은 비록 과거로 흘러갔지만 결코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고 빅터 프랭클은 말한다. 각자의 과거들과 경험들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존재 방식인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또한 그는 인간의 본질은 ‘자유’에 있으며, 각자가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어떻게 책임지는가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고 확신했다.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하며,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자의 말은 그 자체로 큰 울림을 남겨 준다. 


우리는 대부분 이것이 없으면 잠을 잘 수 없고, 이것 혹은 저것이 있으면 살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며 살아 간다. 빅터 프랭클 역시 강제 수용소 경험 이전에는 자신이 세상에서 정말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람이 일정 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으면 죽는다는 이론도 완전히 틀린 말이었다는 것을 고스란히 경험하고 나면 그런 안일한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오래 전에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꽤 오래 기억되고, 곱씹어 볼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이번에 오랜 만에 그의 강의들을 만나고 보니 그때의 감동과 여운이 고스란히 되살아 났다. 그가 평생에 걸쳐 일반 대중에게 전하고자 했던 통찰이 압축적으로 담겨 있어 더 좋았다. 마음에 와 닿았던 부분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같은 것을 같은 것으로, 악을 악으로 되갚는 것이 아니라 그 사슬을 끊어내는 것으로 악을 극복하라는 말과 우리가 살면서 경험해 온 행복과 노력해서 얻은 것, 과거 속에 저장하고 보관해둔 것들은 누구도 없애버릴 수 없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풍요로운 사회 속에 살고 있지만 삶의 의미를 찾기가 더 어려워진 요즘,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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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퇴마록 신세편 1
이우혁 지음 / 반타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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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바로 그들이 이 사건에 주목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20여 년간 초자연현상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는 데 가장 안도한 것은 사실상 그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 사건이 과학의 견지에서 바라볼 일이 아닌 초자연적인 현상임을 즉시 눈치챘다. 이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으로 그치는 작은 사건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이것은 하나의 '징조'였다. 수십 년의 긴 침묵이 깨진 것을 의미했다. 다시 어둠 속에서 긴 싸움이 벌어질 것을 예고하는, 달갑지 않은 징조였다.                p.35~36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곧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노인이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다 소리를 질러대다 몸 안에서부터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좁은 비행기 안이라 도망치려는 사람들로 기내는 아수라장이 되어갔고, 공포에 질린 승객들이 착륙하는 비행기 바깥으로 마구 떨어져 내렸다. 끔찍한 항공기 참사로 연결될 뻔했지만 다행히 사망자는 신체 발화를 일으킨 한 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 피해자가 이미 7일 전 세상을 떠나 매장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양두는 어릴적부터 태권도장의 관장이었던 아버지에게서 태권도를 배웠다. 소질이 있었던 양두는 장래가 촉망되는 태권소년이었다. 남들은 몇 년씩 수련해서야 흉내라도 낼 수 있는 기술들을 주 단위로 마스터해냈다. 그런데 전국대회 결승 시합에서 갑작스럽게 '그 증상'이 터졌다. 몸이 산산조각 나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시작된 것이다. 아버지는 양두의 증상을 고쳐보려고 모든 힘을 기울였고, 온갖 검사를 다 했지만 통증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어떤 의사도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어머니는 양두가 아직 아기일 때 바람이 나서 도망쳐 버렸고, 아버지는 태권도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자살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괴질이 양두의 몸을 지배한 지도 2년이 넘었고, 더는 버틸 수 없어 그저 죽고만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양두를 찾아온다. 양두는 도망치기 시작했고, 자신을 쫓는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움직임도, 기술도 프로의 그것이었던 거다. 양두는 그들로부터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까. 그들은 왜 양두를 찾아온 것일까. 




"간략하게 보면 악마가 이미 고대부터 꾸미던 음모지만, 실제로는 인간들이 자기 꾀에 빠져 신의 시험을 자초한 겁니다. 그 시험을 못 이겨냈다면 아마도 말세가 올 정도의 큰 징벌이 자동적으로 생겨났겠죠. 분명히 악마가 꾸미기 시작했다곤 해도 그 과정에서조차 악마가 직접적으로 큰 힘을 쓰지는 않았어요. 누군가를 해칠 때도 직접 죽이기보단 사람의 손을 빌렸고요. 그런데 사실 누군가를 죽이는 것보다는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편이 질서에는 더 위배되고 위험한 거죠."

"죽음은 항상 일어나지만, 부활은 일어난 적 없었으니까요."              p.221~222


이 작품은 퇴마사 4인방이 목숨 걸고 세상을 지켜냈던 ‘말세의 위기’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시점에서 시작된다.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악마를 탄생시킬 수 있는 마물 ‘그리모어’의 흔적이 발견되고, 전설이 된 선대 퇴마사 4인방은 차세대 퇴마사들을 이끄는 멘토이자 스승으로 등장한다. 다음 권에서부터 차세대 퇴마사로 활약할 양두의 에피소드가 나오는 장면에서, 쫓기던 양두를 도와주러 나타난 현암이 어찌나 반가웠던지.... 나처럼 퇴마록 시리즈를 좋아했던 독자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신 퇴마록>은 <퇴마록> 시리즈의 ‘말세편’ 및 ‘외전 제3권’ 이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전작의 세계관을 계승하고 있지만, 완벽히 독립적인 서사라 배경지식 없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권두와 권말에 작가가 직접 집필한 특별 부록으로 전작과 신작을 아우르는 세계관 및 주요 인물들의 설정을 정리해두었다. 기존 팬들과, 신규 독자들을 위한 완벽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퇴마록> 시리즈는 무려 1,000만 부 누적 판매라는 유례없는 기록을 보유한 K-오컬트의 바이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에 마르고 닳도록 읽고 또 읽었던 시리즈라 정말 설레이는 마음으로 읽었다. 정말 많이 읽고, 좋아했던 시리즈지만 너무 오래 전에 읽었던 터라 권두 부록에 수록된 박 신부, 이현암, 장준후, 현승희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있는 부분부터 추억을 되새기며 읽었다. 하나하나 새록새록 떠오르는 사건들과 캐릭터의 성격, 관계들이 앞으로 새롭게 이어질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어 오르게 만들어 주었다. <신 퇴마록> 시리즈는 이번에 나온 신세편 3권에 이어 마세편 3권, 창세편 4권, 총 10권으로 완결될 예정이다. 원인 불명의 고통에 시달리던 태권 소년을 비롯해 앞으로 나올 차세대 퇴마사들도 궁금하고, 스승으로 활약할 박 신부, 이현암, 장준후, 현승희의 활약도 너무 기대가 된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무조건 다음 이야기를 읽을 수밖에 없는, 누구라도 푹 빠져 밤 새워 읽게 만드는 마성의 서사가 궁금하다면 새롭게 시작하는 <신 퇴마록> 시리즈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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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클래스
이성모.정진.스토리랩 지음, 김래현 그림 / 다산어린이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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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월드컵은 전 세계 사람들이 열광하는 지상 최대의 축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나 이번 2026 북중미 월드컵은 48개국 참가라는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리고 있다. 오늘 오전까지 경우의 수를 헤아리며 다른 팀의 경기들을 챙겨봤지만, 끝내 우리나라는 32강 탈락이 확정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아직도 2022년 광화문에서 다같이 응원했던 대-한-민-국!!의 시간을 잊지 못하고 있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이번 결과는 아쉽기 그지 없다. 


조별리그 일정이 막을 내리면서 우리나라는 탈락했지만, 이번 북중미 월드컵은 내일부터 32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내일 오전 4시 남아공-캐나다의 경기를 시작으로 빅매치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으니 축구를 좋아한다면 놓치지 말아야겠다.  




이 책은 화면 너머로만 전해지던 축구의 뜨거운 열기를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생생하게 담아낸 축구 안내서이자, 2026 북중미 월드컵의 출전 나라와 선수들을 완벽하게 분석한 가이드이다. 월드컵은 4년마다 전 세계를 들썩이게 만드는 축구 축제이다. 이번에 사상 최초 세 나라가 함께 개최하는 월드컵이 되었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가 손을 잡고 역사상 처음으로 3개국 공동 개최를 결정한 것이다. 2030년에도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가 공동 개최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기존에는 본선에 진출하는 국가가 32개국이었는데, 이번 북중미 월드컵부터는 본선 진출국이 48개국으로 늘어났다. 덕분에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아 보는 나라도 생겼으니, 익숙한 강팀말고 첫발을 내디딘 팀들에게도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면 좋을 것 같다. 




멕시코,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한민국, 체코의 A조부터 잉글랜드, 크로아티아, 가나, 파나마가 속한 L조까지 각 조별로 팀들을 정리해 두어 찾아 보기도 매우 좋은 구성이었다. 각 나라별로 FIFA 랭킹과 월드컵 최고 순위, 열대 월드컵 성정과 지난 대회 성적, 주요 선수와 베스트 11, 이번 월드컵에서 주목할 선수들의 프로필까지 담았다. 중간 중간 월드컵 관련 만화도 흥미를 더해 준다. 손흥민 선수의 에피소드를 담은 만화부터 사라진 황금 트로피의 비밀, 단순한 경기 도구를 넘어 진화하는 축구공, 펠레, 마라도나 등 레전드 선수들이 현재로 돌아온다면 어떨지 상상해보는 만화까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다. 




그 외에도 흥미진진한 월드컵 만화와 상식 퀴즈, 두뇌를 자극하는 가로세로 퀴즈 등 어린이들의 몰입도를 높이는 콘텐츠가 다양하게 수록되어 있고,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인기 축구 크리에이터 ‘고알레’가 알려 주는 축구 팁과, 전국 유소년 축구 대회 ‘고다지컵’에서 활약한 또래 유망주의 인터뷰도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 유일 영국 축구기자협회 소속 이성모 기자의 특별 칼럼을 통해 최신 정보들을 만날 수 있어 월드컵을 더욱 깊이 있게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별책 부록으로 비밀 전술 노트를 받을 수 있는데, 실제 경기들을 기록하거나 스코어를 적고 작전을 짜볼 수 있는 노트이다. 국가별 전력 분석, 경기 결과, 명장면, 전술 분석실, 경기 최우수 선수 등을 기록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매 장마다 재미있는 축구 용어 풀이가 더해져 재미를 더해준다. 축구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즐기는 데 큰 지식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잡한 규칙과 전술을 모르더라도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이니 말이다. 하지만 뭐든 알고 보면 훨씬 더 재미있어 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과 함께 남은 월드컵 기간 동안 축구를 더 신나게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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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박쥐 - 진화가 빚어낸 가장 다재다능한 생명의 비밀
요시 요벨 지음, 조은영 옮김 / 어크로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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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곧이어 발견된 또 다른 사실은 인간이 자연의 사회성을 바라보는 방식을 뒤흔들어 놓았다. 군락 내에서 먹이를 공유하는 네트워크를 상세히 분석했더니, 흡혈박쥐 암컷은 아무하고나 음식을 나누지 않으며, 단순히 서로 알고 지낸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보다는 예전에 자기에게 피를 준 적이 있는 동료 뱀파이어에게 우선 피를 나눠주고 싶어 했다. 즉 두 개체는 혈맹을 형성한 사이였다. 일방적 이타성이 아닌, 상호 이타주의라는 말이다... 상호 호혜가 가능할 만큼 신뢰의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고, 또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p.33


하늘을 날 수 있는 유일한 포유류이자, 전 세계 포유류 종의 2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박쥐에 대해서는 대체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박쥐는 그저 무서운 날짐승, 피에 굶주린 병균 덩어리, 혹은 바이러스를 매개하는 동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그래서인지 각종 공포, 호러 영화에서 불길함을 상징하는 존재로 항상 등장하는 존재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사실 박쥐는 아주 특별한 동물이다. 지금까지 식별된 1,500종 중에 다른 동물의 피를 마시면서 사는 종은 세 종에 불과하고, 일부는 시력이 아주 좋으며, 몸무게에 비해 그 어떤 포유류보다 장수한다. 그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인간이 미처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인류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감각의 영역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룬 존재이기도 하다. 


박쥐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요시 요벨은 열대우림의 진흙탕과 한낮 기온이 섭씨 40도까지 치솟는 아프리카 대륙을 비롯해 별이 쏟아지는 사막의 밤을 오가며 20년 넘게 박쥐를 연구해왔다. 1,000개가 넘는 GPS 추적 데이터와 수십 편의 논문을 바탕으로 10년에 걸쳐 집필된 이 책은 웬만한 다큐멘터리보다 더 생생하고, 한 편의 소설처럼 흥미진진한 박쥐의 세계를 보여준다. 인간이 미처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인간이 도달하지 못한 영역에서 탁월한 존재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굶주린 동료에게 자신의 끼니를 내어주고, 피 한 모금으로 쌓은 신뢰를 수십 년 동안 기억하며, 같은 크기의 생쥐보다 20배 이상 오래 살며, 바이러스의 공격에 아주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면역계를 가지고 있어 전 세계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연구 대상이다. 이렇듯 인간의 잣대로는 번역되지 않는 천재성이 박쥐의 생명현상 안에, 그리고 박쥐의 사회 안에 가득하다. 이제 이 책의 제목이 왜 <The Genius Bat>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박쥐에게는 특히 먹이를 씹으며 듣는 능력이 아주 중요하다. 대부분의 박쥐는 공중을 날며 먹이를 먹는다. 그러면서 주변 물체에 부딪히지 않게 반향정위 신호를 계속 발사하고 그 반사음을 들어야 한다. "먹고 말하는 모든 순간에 계속 생각한다네. 그게 과학에 깊이 몰두했을 때 일어나는 일이지. 샤워할 때는 털에 대해서 생각하고, 씹을 때는 청각에 대해서 생각하고." 펜턴이 웃으면서 말했다.

진화의 문제가 늘 우리를 사로잡는 이유는, 아마도 그것을 규명하기가 너무도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소리를 사용해 곤충을 사냥한 최초의 박쥐가 내보냈던 반향정위 신호를 기록할 수만 있다면 나는 백만 달러라도 기꺼이 지불할 생각이다.                  p.302~303


솔로몬왕에서 닥터 두리틀까지 동물과의 대화는 항상 인간을 매료시켜 왔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동물에게 언어 능력이 없다고 주장한다. 대신 동물이 내는 소리를 '의사소통'이라고 표현한다. 인간의 언어는 단어라고 부르는 단위로 구성되어 유한한 단어를 나열해 의미가 다른 무한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연구자들은 동물에게는 이런 능력이 없다고 말한다. 박쥐는 대단히 넓은 범위의 신호를 사용해 소통한다. 박쥐가 주변을 감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반향정위 신호는 짧고 정형화되었지만, 다른 박쥐와 소통하기 위한 신호는 길거나 짧고, 휘파람 같기도 지저귀는 소리 같기도 하고, 초음파일 때도 있고,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일 때도 있다. 어릴 때부터 언제나 동물을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에, 마당에서 지저귀는 직박구리의 소리를 듣고 새들의 대화를 상상하곤 했다는 저자가 성인이 되어 연구실을 꾸리고 박쥐의 말을 이해하려고 실험을 하며 이런 놀라운 책을 펼쳐내게 되었다는 서사 자체가 과학의 아름다운 측면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은 박쥐의 뇌와 감각 그리고 놀랍도록 복잡한 사회적 네트워크, 언어와 소통, 진화 순서의 논쟁 등 박쥐의 다양한 천재성을 차근차근 살펴본다. 사회성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박쥐 군락의 이타주의에 대해 실험하는 장도 매우 흥미로웠고, 박쥐의 의사소통을 형성하는 학습 과정, 다감각 방어 메커니즘을 확인하는 실험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뼈와 화석, 유전자라는 서로 다른 단서를 통해 수천만 년 전 최초의 박쥐가 하늘로 날아오른 극적인 진화의 순간을 재구성해 보려는 과정 또한 매우 놀라웠다. 저자는 말한다. 감히 자신의 빈약한 상상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진화는 아주 창조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이 책을 읽다 보면 누구나 그의 의견에 동의할 것이다. 인간은 다른 생물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절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과학 논픽션을 읽다 보면, 간접적으로나마 그 경이로운 세상을 체감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과학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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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강은 그녀를 끌어내린다
윤지현 지음, 박지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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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가 들려." 수진이 말했다.

"무슨 목소리?"

"생명을 되살릴 때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우리 가문 여자들의 목소리야."

"뭐야, 귀신 같은 거야? 말도 걸 수 있어?" 마크가 물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뭐랄까......" 수진은 적당한 말을 생각했다. "기억의 콜라주 같아. 여자애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 내가 듣는 걸 통제할 수는 없어. 옆방에 서 누가 라디오 채널 돌리는 걸 엿듣는 것 같아."                    p.48~49


열일곱 수진에게 죽음은 낯설지 않은 것이었다. 7년 전 어머니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고, 작년 가을에 언니 미래가 강에 빠져 죽었기 때문이다. 언니 미래는 고작 한 살 많았는데도 무엇이든 담담히 견디는 대범한 성격이었고, 엄마처럼 수진을 챙겨주는 존재였다. 갈등이 있을 때마다 따뜻한 차를 내밀고 다정한 말을 건네며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언제나 미래였다. 수진은 언니의 죽음 이후 엉뚱한 딸이 살아남은 게 아닐까, 언니가 살아 남았다면 아버지의 삶은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어머니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메꿔 주던 존재이자 아버지에게 든든한 장녀였던 미래가 사라지고 열 달이 지났지만, 수진은 여전히 슬픔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해안가 작은 마을 ‘제이드 에이커’는 백인이 득세한 곳이었고, 이곳에서 한국인 자매와 가족은 소수자에 속했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수진의 집안에는 여성들에게만 전해 내려오는 마법이 있었다. 가문의 여성 혈통을 타고 전해지는 가보는 먼 옛날 참혹한 폐허와 굶주림에 허덕이던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 굶주리던 저주받은 해의 저주받은 계절, 그들 가족은 닭 뼈를 땅에 묻고 그 흙에서 살아 있는 암탉을 꺼낸다. 가족의 비밀 암탉은 백 번의 죽음을 맞이하며 가족들을 살려냈다. 지금 수진은 반려 생쥐인 밀키스를 그런 식으로 십여 번 되살려냈다. 잘린 꼬리를 땅에 묻고 죽은 생명을 되살려 낼 때면 오래 전 가문의 여자들 목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소녀에서 소녀에게 전해 내려온 무형의 가보. 기적과도 같은, 생명을 불어넣는 여자들로 가득한 집이었지만, 정작 그들 자신은 구하지 못했다. 재능에는 대가가 따랐고, 작은 동물만 되살리기로, 그것도 자주 하지 않아야했다. 엄마와 언니가 죽었으니, 이제 수진은 재능을 가진 유일하게 남은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귀신이 되는 걸 너무 거창하게 생각해. 물에 빠져 죽은 아이의 엄마는 귀신의 부름 때문에 그리된 게 아니야. 아이를 보내지 못하는 자신의 간절한 마음 때문에 그렇게 됐지. 그 마음 때문에 죽고 만 거야. 마크, 그게 전부란다. 귀신이 되는 건 단 하나, 놓지 못하는 마음 때문이야. 우리를 괴롭히는 건 우리가 놓아줘야 떠나는 거야.”

... 그건 어떤 기분일까? 어떤 대상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자기 삶을 완전히 버린 채 바다로 헤치고 들어가는 마음이란?             p.284~285


수진은 물에 빠져 죽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았다. 언니의 시신이 발견되고 첫 한 달 동안에 같은 꿈만 꾸었기 때문이다. 잠들 때마다 물에 빠졌고, 숨을 헐떡이며 물 밖으로 올라가려고 몸부림치다 잠에서 깨곤 했다. 그 감각은 이름 없는 유령이 되어 자지 않을 때도 예고 없이 수진을 덮치곤 했다. 목구멍이 꽉 막히는 느낌에 주변 시야가 축축하게 젖어들며 어두워졌다. 수진은 너무도 외로웠고, 언니가 그리웠다. 결국 수진은 축축한 구덩이에 언니의 젖니를 넣고 흙을 덮은 다음 무릎을 꿇는다. 밀키스를 되살리던 것과는 달랐다. 수진은 자신이 없었고 성공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끝내 금기를 어기고 죽은 언니를 되살려낸다.  언니는 원래 모습 그대로 다시 돌아왔다. 특유의 습관도 달라지지 않았고, 기억력도 완벽했으며, 눈에 띄는 부분은 거의 모든 게 그대로였다. 하지만 미래는 수진이 알던 그 언니가 맞는 것일까. 금기를 어긴 수진은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까. 


이 작품은 한국계 미국 작가 윤지현의 첫 장편소설이다. ‘장화 홍련’ 설화를 감각적이고 현대적인 스릴러로 재해석한 작품이라고 해서 매우 기대하며 읽었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가 창가 화분에 심은 대파 뿌리가 다시 살겠다는 의지로 빛을 향해 힘겹게 솟아오르듯, 땅에 묻힌 뼈도 되살아날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비옥한 흙 사이로 흰 깃털이 어렴풋이 보이기를 기다리며 마당에 닭 뼈를 묻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경험이 이 작품의 토대가 되었다. 슬픔에 잠긴 소녀가 죽은 언니의 치아를 땅에 묻어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죽음과 협상해 이겼다고 가정해 본다면 말이다. 죽은 이를 되살렸다고 해서 죽기 전과 같아질 수 있을까. 그렇게 하는 것이 되살아난 사람에게, 공동체에게 정말 더 나은 일인 걸까, 생각해 본 것이다. 작가의 결론은 '슬픔을 묻어두기보다는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장화 홍련’처럼 불온한 운명에 빠진 여성들의 설화를 음울하고도 아름답게, 우아하고도 기이하게 그려내고 있다. 강렬한 표지 이미지만큼이나 압도적인 몰입감을 주는 매혹적인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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