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스토킹 ㅣ 율리아 스타르크 시리즈 2
알렉스 안도릴 지음, 백주연 옮김 / 필름(Feelm)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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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제 생각에 스토커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당신의 관심을 끌려고 과장하는 거라면 차라리 좋겠지만, 그 스토커는 제 약혼자예요. 니콜라스요."

비앙카의 말끝이 흐려졌고, 율리아는 그녀가 무언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메일에는 그가 사망했다고 하셨는데요." 잠깐 침묵을 지키던 율리아가 입을 뗐다.               p.17


알렉스 안도릴의 '율리아 스타르크'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이다. 첫 번째 작품 <아이가 없는 집>도 매우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이번 작품도 기대가 되었다. 특히나 전작의 마지막 장면에서 다음편 예고가 나와서 더 궁금했는데, 두 번째 이야기가 무려 이 년 만에 나와 반가운 마음으로 읽어 보았다. 


<아이가 없는 집>에서는 유서 깊은 목재 재벌가의 비밀을 숲속 저택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풀어냈었다. 사건과 관계된 인물 여섯 명을 모두 한 자리에 모아서 범인을 찾아내고 가문의 비밀을 밝혀내는 이야기가 매우 흥미진진했었다. 이번 신작 <죽은 자의 스토킹>에서는 연극 무대를 배경으로 죽은 약혼자가 자신을 스토킹한다고 믿는 유명 여배우의 의뢰를 받아 이야기가 진행된다. 




연극 배우 비앙카의 약혼자는 3년 전에 죽었다. 그런데 공연장 객석에서, 자신의 집 침실에서 그를 목격한다. 어젯밤에는 자신의 커프스단추를 가져가면서 손가락을 들고 목을 긋는 듯한 동작을 하기도 했다. 지난 목요일에는 누가 대기실에 있던 드레스에 불을 질러 큰 화재로 번질뻔 하기도 했다. 약혼자인 니콜라스는 헬싱키로 출장을 갔다가 호텔 방에서 홀로 숨진 채로 발견됐는데, 가족들이 그녀를 장례식에 초대하지도 않아 마지막을 보지도 못했다. 사망 소식조차 그의 어머니가 보낸 이메일을 통해 알게 되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비앙카의 입장에서는 니콜라스가 사실 살아 있고 3년을 기다린 끝에 자신을 스토킹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니콜라스는 정말 살아 있었던 걸까. 죽지 않았다면 왜 이제와서 비앙카를 스토킹하는 걸까. 니콜라스가 아니라면, 대체 누가 그의 행세를 하며 비앙카를 스토킹하는 걸까.


율리아는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비앙카가 공연을 하는 극장으로 향한다. 흥미로운 것은 무대 위 배우들 모두가 의심스러웠다는 거다. 각자 알리바이는 없는데, 비앙카를 해칠 이유를 숨기고 있었다. 모든 인물이 수상해 보이기 시작하면서, 율리아의 활약이 더욱 돋보이는데.... 과연 죽은 약혼자가 돌아온 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 게 누군가 치밀하게 설계한 연극이었던 걸까.




비앙카는 눈물을 훔쳤다.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번진 마스카라가 뺨에 검은 자국처럼 남아 있었다.

우르술라는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린 채 꼿꼿이 앉아 멍한 눈으로 허공만 바라볼 뿐이었다.

"세상에..." 토미가 중얼거렸다.

"미친 이야기잖아." 라몬이 말했다.

"네. 엄청난 반전이고, 완벽한 비극이죠." 율리아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p.294~295


이 작품을 쓴 알렉스 안도릴은 라르스 케플레르로 활동하는 스웨덴의 작가 부부 알렉산드라 코엘료 안도릴과 알렉산데르 안도릴의 새로운 필명이다. 국내에도 소개되었던 '요나 린나 시리즈'는 스웨덴에서 가장 많이 팔린 범죄 소설 중 하나로 꼽힌다. 기존의 어둡고 강렬한 분위기의 작품들에 비해 이번에는 고전 후더닛 미스터리를 현대에 맞게 재해석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연상케하는 고전 추리소설로서의 재미와 평범하지 않은 탐정 캐릭터의 매력이 더해져 만들어지는 색다른 미스터리가 탄생했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여성 사립 탐정 율리아 스타르크는 어린 시절 사고로 인해 부모님을 잃었고, 한쪽 얼굴에는 큰 흉터가 생겼으며, 다리가 불편해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신체 접촉이 어려워졌고, 타인과 몸이 닿는 것만으로 공황 장애가 일어날 정도로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경찰인 남편과는 이혼했지만, 여전히 친구처럼 지내며 탐정 사무소를 운영 중이다. 율리아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약자임에 분명하지만, 논리적 사고력과 극도의 집중력으로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부분을 캐치해낸다.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신체적인 불편함 때문인지, 항상 특정 장소를 배경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서사가 펼쳐진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재벌가의 숲속 저택이었다면,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연극 공연이 펼쳐지는 극장이다. 전편에서도 사람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아놓고 "00를 죽인 범인은 이 자리에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사건을 해결했었다면, 이번에도 율리아는 무대 위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여기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살인자입니다."라고 진실을 밝혀낸다. 연극 무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라 이러한 구성이 더 잘 어울렸던 것 같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율리아가 또 어떤 활약을 하게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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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스토킹 ㅣ 율리아 스타르크 시리즈 2
알렉스 안도릴 지음, 백주연 옮김 / 필름(Feelm)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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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와 산 자, 모두가 용의자다. 끝까지 모든 것을 의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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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위선자
메리 쿠비카 지음, 신솔잎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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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으려 했다. 나와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거다. 나도 엄마인 만큼 베킷 부인과 나름의 유대감이 있었다. 그게 전부다.

"두 사람, 좀 이상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

이후 이어진 루크의 말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베킷이 그 음성 메시지를 들려준 날, 내게 했던 말이 떠올라 더욱 소름이 끼쳤다.                  p.101


중환자실 간호사인 메건은 온갖 튜브와 기계에 연결된 채 침대에 누워있는 여자를 본다. 6미터 높이의 육교에서 뛰어내려 혼수상태에 빠진 케이틀린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겨우 서른두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는데 다시 깨어날지도, 생존한다고 해도 정상적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없어 보였으니 말이다. 사실 메건이 그녀에게 마음이 쓰였던 이유는, 자신의 동생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순한 자살 시도로 보였던 사건이 목격자가 나타나면서 범죄 수사로 전환된다. 육교에 분명 두 명이 있었다는 증언으로 그녀가 뛰어내린게 아니라 누군가 밀었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한편 병원 안에도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가족 외에 면회가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수상한 남자가 병실에 앉아 있기도 하고, 친구라는 여자가 와서 케이틀린이 자기 부모를 증오했다며, 쇼에 속지 말라고, 그들이 간호를 하고 있는 모습이 모두 가식이라고 말한다. 이혼자 지원 모임에서 우연히 재회한 고등학교 동창 냇은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지만, 뭔가 수상한 부분들이 있었다. 동료 간호사인 루크는 케이틀린의 부모들에게 좀 이상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집에서도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데, 수상한 편지가 오고, 지하실에 내려갔다가 문이 잠겨 갇히기도 한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매사에 조심하지만 메건의 주변을 에워싼 의심스러운 징후들은 계속 된다. 과연 그날 육교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메건은 왜 그토록 이 사건에 신경을 쓰는 것일까. 




그렇다면 시에나는 왜 내게 거짓말을 했을까? 왜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했을까?

온갖 시나리오가 머릿속을 헤집었다. 다른 생각이 이어지기도 전에 시에나 방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시에나의 방으로 향했다. 문 앞에 서서 문을 한 번 두드리고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었다. 안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 각오한 상태였다. 

하지만 예상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p.399


<굿걸>, <디 아더 미세스>, <사라진 여자들>, <밤은 눈을 감지 않는다>로 만나왔던 메리 쿠비카의 신작이다. 실정과 유괴라는 흔한 소재를 독특한구성과 설정으로 흡입력 있는 이야기로 재탄생시켰던 <굿걸>, 전체 이야기의 구조 자체를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한 방이 인상적이었던 <디 아더 미세스>, 여성들의 심리 묘사를 섬세하게 잘 그려내며 놀랍도록 현실적인 심리 스릴러를 보여주었던 <사라진 여자들>, 남편의 실종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며 점점 더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두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 <밤은 눈을 감지 않는다>까지 모두 흥미롭게 읽었기에 이번 작품 역시 기대하며 만나보았다. 꼼꼼하게 설계된 복선들이 구석구석 포진하고 있는데다, 섬세한 심리묘사와 치밀한 구성, 임팩트 있는 반전까지 스릴러라는 장르가 보여줄 수 있는 탄탄한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다. 무더운 여름 밤을 견디게 해 줄 페이지터너를 찾고 있다면 이 작품을 만나보길 권해주고 싶다. 


메리 쿠비카는 여성들의 심리 묘사를 섬세하게 잘 그려내는 '스릴러의 여왕' 답게 이번 작품에서도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만드는 불안과 공포를 디테일하게 그려내고 있다. 여성들을 노리는 범죄 사건보도가 이어지고 있어 이혼 후 딸과 단둘이 사는 엄마 입장에서의 불안과 안타까운 환자를 대하는 간호사로서의 연민, 가정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친구에 대한 걱정 등이 겹겹이 더해져 메건의 일상은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 메건의 일인칭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에 거의 불안장애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끊임없이 안전에 대해 의심하는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 입장에서 다소 피로해지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서사가 중반부를 훌쩍 넘어서면 그제야 비로소 드러나는 충격적인 반전이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강렬한 여운을 남겨 준다.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저 나쁜 짓을 저질렀을 뿐이다." 라는 문장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아닐까 싶다. 평범한 사람도 한순간 범죄를 저지를 수 있고,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선의가 순식간에 타인을 향한 악의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일상 가장 가까운 곳에 도사린 공포를 그려내는 심리 스릴러를 좋아한다면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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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회화 X 원리 도감 - 외우지 않는 편안함
이정훈 지음 / 길벗이지톡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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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억지로 외우지 않아도 되는 '영어 도감' 시리즈 세 번째 책이다. <동사 X 전치사 도감>, <영단어 X 원리 도감> 편 모두 재미있게 읽었기에, 이번에 나온 <영어회화 X 원리 도감>도 매우 기대가 되었다. 기존의 영어 도감 시리즈에 비해 이번 책은 분량이 많지 않아 더 좋다. 매일 한 유닛씩 재미있게 읽으면 딱 30일에 완성할 수 있는 분량이다. 


이 책은 '비교 영어'에 기초한 종합 영어 교재이다. 말하기를 1차 목표로 하고 있지만, 리스닝, 리딩, 라이팅 등 영어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원리를 담고 있다. 일상 회화에도 도움이 되는 표현 위주로 예문이 수록되어 있어 실제 회화실력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책은 영어를 관통하는 6가지 핵심 원리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사물이 살아 움직여야 영어다, 공간 전치사를 잘 활용해야 진짜 영어다, 영어는 명사로 웬만한 건 다한다, 영어는 시간을 구체적으로 쪼개 쓴다, 영어는 조동사로 문장의 느낌을 살린다, 영어는 긴 절보다 짧은 구를 선호한다, 는 각각의 원리를 중심으로 정리가 되어 있다. 400컷 이상의 일러스트를 통해 추상적인 영어 개념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 이 시리즈만의 가장 큰 매력이다.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일러스트를 통해서 상황에 맞는 회화 표현을 시각적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억이 된다면, 더 이상 원어민과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두렵지 않아 질 것이다. 




교통 표지판에 '멈춤'이라고 적혀 있다.는 말을 우리는 보통 "The traffic sign displays the word 'STOP'.이라고 한다. 반면 원어민은 "The traffic sign says 'STOP'. 이라고 말한다. '교통 표지판이 말을 한다'니 이게 무슨 소리일까 싶지만, 영어에서는 사물이 말을 하고 글을 쓰고 무언가를 가지기도 하고 보기도 하는 등 마치 사람처럼 움직이는 게 아주 흔하고 자연스러운 표현 방식이다. '사물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 모든 영어식 사고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이다.


수잔은 사과를 두 번 깨물어 먹었어요, 라는 문장을 표현할 때 한국인은 "Susan bit into the apple twice."라고 하는데, 원어민은 "Susan took two bites of the apple."라는 표현도 함께 사용한다. 우리말은 동사 중심, 영어는 명사 중심이기에, 우리말은 동사를 꾸며주는 부사가 발달했고, 영어는 명사를 꾸며주는 형용사가 발달해왔기 때문이다. 영어는 사람과 사물이 대등한 언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영어 표현들이 꽤나 달라질 것이다. 




이 책은 우리말과 영어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서 알려주고 있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우리말은 동양화처럼 생략이 미덕, 영어는 서양화처럼 덧칠이 미덕이라 우리가 보통 주어와 목적어를 생략하고 말하는데 비해 영어로는 주어와 목적어를 말하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식이다. 지구는 슈퍼맨이 지키고, 영어는 슈퍼동사 have가 지킨다, 동상에 방향감과 느낌을 더해주는 것은 공간 전치사, 동사 중심 우리말은 '부사' 사랑, 명사 중심 영어는 '형용사' 사랑, 영어 명사는 콩 심은 데 콩과 팥이 모두 나지.... 이런 식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정말 재미있게 영어를 공부할 수 있도록 개념들이 정리가 되어 있어 참 좋았다. 


영어는 암기가 아니라, 원리를 깨닫는 과정이다. 언어는 사용자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반영하므로, 그 차이를 이해하면 학습이 훨씬 수월해진다. 영어와 한국어 역시 구조적 차이가 크기 때문에, 단순 암기를 넘어 언어 간 사고와 표현 방식의 차이를 깨닫는 학습 방식이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을 통해 단순한 단어의 일대일 대응이나 문장 암기를 넘어, 서로 다른 언어의 개념과 표현 방식을 깨닫고 그 원리를 배우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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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의 탐스러움 ㅣ 픽셔너리 2
정기현 지음 / 북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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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게 바로 삶이라는 것이로구나. 일터에 나가고. 집으로 돌아오고. 하루치의 봉급을 받고. 먹는 데 다 써버리는. 집에 돌아가고 싶어. 넓은 방. 실내 계단. 조도를 열세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 스마트 조명. 일주일에 매양 한 번씩 세탁되는 보송한 카펫. 묵직한 원목 문. 맞춤 책꽂이. 두 번째 거실 그리고 세 번째 거실. 초대를 거절하는 법이 없는 손님들. 그들의 바깥세상 이야기. 그들에겐 우리가 바깥이었겠지만. 안과 밖의 경계가 너무나 뚜렷했던 아늑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p.60


기현은 본가에서 독립해 서울 외곽의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온다.아버지와 어머니가 취득한 신축 아파트 분양권을 양도받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수시로 집에 사람들을 초대해 대접하곤 했다. 그 탓에 처음 보는 어른들과 아이들이 달에만 몇 번씩 집을 드나들곤 했다. 요리와 상차림은 전문가에게 맡겼고, 기현은 식사 예절만 지키면 되었다. 물론 이러한 집안의 문화는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영 동떨어진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처음 보는 이들과의 대화가 즐거운 일이라는 것, 대화를 통해 우리는 몰랐던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는 것을 기현은 알게 되었다. 


이사를 온 뒤 기현은 우연한 계기로 옆집 부부 기은, 준영과 가까워진다. 그들은 청약에 당첨되어 급하게 대출을 받고 아파트에 들어오느라 가구를 살 여력이 없었고, 그래서 사람들이 버린 가구들로 집을 채우기 시작했는데, 기현이 버린 가구들을 다 가져가게 된 것이다. 지나가다 안부를 묻고, 저녁을 같이 먹는 일이 거의 매일이 되어 가다 보니 어느 새 동네 축제에서 함께 연극 공연을 하게 된다. 옆집 부부의 집에는 손잡이가 파란색인 아름다운 서랍장이 있었는데, 그것은 2년 전에 벌어진 동장 납치 및 살해 사건의 중요한 단서와 굉장히 흡사한 가구였다. 그들은 그 서랍장을 소재로 동장 살인 사건을 연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리기로 하는데, 축제 날 연극 무대에서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다. 




밥은 혼자 먹기보단 이웃과 함께해야 맛도 더 좋은 법이니...... 매일같이 그 집엘 갔다. 내가 음식 준비를 곧잘 해두는 덕분일지 기은과 준영도 오지 말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사람과 함께해야 밥이 잘 넘어가는 습관, 때때로 이것 역시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성향일까 싶기도 하였으나 나는 어머니 아버지와 달리 남의 이야기에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 대신 나는 상대와 관계라는 것을 맺는다. 기은과 준영과 나. 우리는 이웃이다. 그리고 나는 이웃 그다음이 있다고 자꾸만 믿게 되는 것이다.                p.149


상상력으로 펼쳐지는 새로운 형식의 중편소설 시리즈인 '픽셔너리' 그 두 번째 작품이다. 정기현 작가는 어딘가 엉뚱하고 귀엽게 풀어나가는 이야기 속에 소박하게 진심을 담아 보여준다. '관계는 말로 정의 내리거나 포착할 수 없는 부분이 많기에 그에 대해 생각하고 상상하기에 참 좋은 것 같'다고 작가는 말한다. 수많은 관계 중에서도 '이웃'이라 말할 수 있는 관계는 더 그런 것 같다. 어린 시절만 해도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흔하게 쓰이곤 했다. 사촌처럼 가까운 이웃이라니... 요즘같은 시대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말이다. 어릴 때는 옆집뿐만 아니라, 아래층까지 같은 라인에 사는 이웃들과는 모두 소통을 하고 지냈었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나눠 먹고, 서로의 집에 가서 친분을 쌓고, 같이 놀러 가기도 했었다. 지금은 오가다 마주하는 이웃이 몇층에 사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시대가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작가는 '옆집 초인종을 누르는 일이 이토록 어려워진 지금, 이웃사이가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다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을 읽으며 왜 우리는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소한 일조차 왜 어려워진 것일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작가와 이름이 같은 주인공을 내세워 옆집 부부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방식으로 쓰인 구성도 흥미로웠고, 이웃이라는 존재에서 시작된 타인과 가까워진다는 것의 의미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무엇보다 삶과 이야기의 거리,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장면으로 엮어 하나의 소설로 만들어내는 과정, 우리가 이야기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작가는 이 책을 펼치는 독자들을 가본 적 없는 어딘가로 데려다 준다. 그 경쾌하고 천연덕스러운 이야기의 세계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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