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의 탐스러움 픽셔너리 2
정기현 지음 / 북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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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게 바로 삶이라는 것이로구나. 일터에 나가고. 집으로 돌아오고. 하루치의 봉급을 받고. 먹는 데 다 써버리는. 집에 돌아가고 싶어. 넓은 방. 실내 계단. 조도를 열세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 스마트 조명. 일주일에 매양 한 번씩 세탁되는 보송한 카펫. 묵직한 원목 문. 맞춤 책꽂이. 두 번째 거실 그리고 세 번째 거실. 초대를 거절하는 법이 없는 손님들. 그들의 바깥세상 이야기. 그들에겐 우리가 바깥이었겠지만. 안과 밖의 경계가 너무나 뚜렷했던 아늑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p.60


기현은 본가에서 독립해 서울 외곽의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온다.아버지와 어머니가 취득한 신축 아파트 분양권을 양도받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수시로 집에 사람들을 초대해 대접하곤 했다. 그 탓에 처음 보는 어른들과 아이들이 달에만 몇 번씩 집을 드나들곤 했다. 요리와 상차림은 전문가에게 맡겼고, 기현은 식사 예절만 지키면 되었다. 물론 이러한 집안의 문화는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영 동떨어진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처음 보는 이들과의 대화가 즐거운 일이라는 것, 대화를 통해 우리는 몰랐던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는 것을 기현은 알게 되었다. 


이사를 온 뒤 기현은 우연한 계기로 옆집 부부 기은, 준영과 가까워진다. 그들은 청약에 당첨되어 급하게 대출을 받고 아파트에 들어오느라 가구를 살 여력이 없었고, 그래서 사람들이 버린 가구들로 집을 채우기 시작했는데, 기현이 버린 가구들을 다 가져가게 된 것이다. 지나가다 안부를 묻고, 저녁을 같이 먹는 일이 거의 매일이 되어 가다 보니 어느 새 동네 축제에서 함께 연극 공연을 하게 된다. 옆집 부부의 집에는 손잡이가 파란색인 아름다운 서랍장이 있었는데, 그것은 2년 전에 벌어진 동장 납치 및 살해 사건의 중요한 단서와 굉장히 흡사한 가구였다. 그들은 그 서랍장을 소재로 동장 살인 사건을 연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리기로 하는데, 축제 날 연극 무대에서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다. 




밥은 혼자 먹기보단 이웃과 함께해야 맛도 더 좋은 법이니...... 매일같이 그 집엘 갔다. 내가 음식 준비를 곧잘 해두는 덕분일지 기은과 준영도 오지 말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사람과 함께해야 밥이 잘 넘어가는 습관, 때때로 이것 역시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성향일까 싶기도 하였으나 나는 어머니 아버지와 달리 남의 이야기에 탐욕을 부리지 않는다. 대신 나는 상대와 관계라는 것을 맺는다. 기은과 준영과 나. 우리는 이웃이다. 그리고 나는 이웃 그다음이 있다고 자꾸만 믿게 되는 것이다.                p.149


상상력으로 펼쳐지는 새로운 형식의 중편소설 시리즈인 '픽셔너리' 그 두 번째 작품이다. 정기현 작가는 어딘가 엉뚱하고 귀엽게 풀어나가는 이야기 속에 소박하게 진심을 담아 보여준다. '관계는 말로 정의 내리거나 포착할 수 없는 부분이 많기에 그에 대해 생각하고 상상하기에 참 좋은 것 같'다고 작가는 말한다. 수많은 관계 중에서도 '이웃'이라 말할 수 있는 관계는 더 그런 것 같다. 어린 시절만 해도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흔하게 쓰이곤 했다. 사촌처럼 가까운 이웃이라니... 요즘같은 시대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말이다. 어릴 때는 옆집뿐만 아니라, 아래층까지 같은 라인에 사는 이웃들과는 모두 소통을 하고 지냈었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나눠 먹고, 서로의 집에 가서 친분을 쌓고, 같이 놀러 가기도 했었다. 지금은 오가다 마주하는 이웃이 몇층에 사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시대가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작가는 '옆집 초인종을 누르는 일이 이토록 어려워진 지금, 이웃사이가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다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을 읽으며 왜 우리는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소한 일조차 왜 어려워진 것일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작가와 이름이 같은 주인공을 내세워 옆집 부부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방식으로 쓰인 구성도 흥미로웠고, 이웃이라는 존재에서 시작된 타인과 가까워진다는 것의 의미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무엇보다 삶과 이야기의 거리,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장면으로 엮어 하나의 소설로 만들어내는 과정, 우리가 이야기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작가는 이 책을 펼치는 독자들을 가본 적 없는 어딘가로 데려다 준다. 그 경쾌하고 천연덕스러운 이야기의 세계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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