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문학적인 서울 산책 - 근대소설 속 장소를 따라 걷는 도시 인문학
이순자 지음 / 더퀘스트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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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칠칠단의 비밀>을 읽으며 이렇게 길러진 추리력을 제대로 발휘했습니다. 콜롬보 형사가 범인이 남긴 작은 단서도 놓치지 않고 추적하듯, 저는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와 단어들을 샅샅이 찾아내며 읽었지요. 그렇게 따라가다 보니 작품에 심어진 독립 정신과 애국심의 단서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와 단어 하나하나에도 숨은 의도가 담겨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옛 지도와 현재 지도를 꼼꼼히 읽고 나란히 비교하는 과정에서, 범인의 트릭을 알아차릴 때의 짜릿함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답니다.               p.110


우리가 무심코 걸어가는 길이 단순한 도로가 아니라 나라를 빼앗겼던 시절, 일제가 우리의 궁궐을 멋대로 훼손시킨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적 현장이라면 어떨까. 2026년의 서울을 걷다가 문득 백 년 전 경성의 풍경이 겹쳐 보이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면 말이다. 이 책은 한국을 대표하는 근현대 소설 속 장소들을 직접 발로 걷는 시간여행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문화유산 해설 분야에서 20년의 연륜을 쌓아온 저자가 현진건 <운수 좋은 날>,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방정환 <칠칠단의 비밀>, 박태원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염상성 <암야>, 그리고 윤동주 시인의 시와 삶을 따라가며 작품 속 배경을 치밀하게 고증해낸다. 혜화동에서 종로를 지나 남대문 정거장으로 향하는 김첨지의 인력거, 청계천변을 휘적휘적 걸어 다닌 구보 씨의 하루, 윤동주의 하숙집과 일곱 살 박완서가 두리번거렸을 서울역의 풍경 등 소설 속 배경과 현실의 서울을 겹쳐 보여주는 이 책은 도시 인문학이면서 서울 답사 안내서이자 역사 기행서이기도 하다. 기본적인 구성은 작가 소개, 작품 소개, 그리고 작품 따라 걷기로 각각의 장소 별로 현장을 직접 찾아가보는 느낌으로 읽을 수 있다. 




이 소설은 대단한 클라이맥스도 없이 잔잔히 흐릅니다. 하지만 바로 그 '하릴없는 하루', '대단할 것 없는 하루'에는 일제강점기와 불황, 무력감과 허망함, 불확실한 미래가 켜켜이 쌓여 있지요. 어떤 거대한 외침보다 이처럼 낮고 잔잔한 아우성이 오늘 우리에게 더 깊이 파고드는 까닭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 또한 어딘가 모르게 '암야'를 닮았기 때문인 듯합니다. 나아갈 길을 알 수 없지만 계속 걸어야만 하는 이 시대의 독자에게 <암야>는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라. 희미하더라도 걸어라, 너의 희망을 향해."                  p.268~269


지리와 풍수, 공간에 해박한 저자가 국어 교과서에 실린 명작들의 배경을 직접 찾아갈 수 있도록 추천 코스를 구성했다.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가 인력거를 내달린 그날의 서울을 따라 걷는 코스는 동소문에서 시작해 전찻길, 동광학교, 남대문 정거장, 인사동, 창경원 등을 답사해 본다. 전국 어린이들을 밤잠 설치게 한 탐정소설인 방정환의 <칠칠단의 비밀>을 따라 걷는 코스는 진고개, 망원정, 구리개, 탑골공원, 금화산, 경성역 등을, 모던보이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따라 걷는 코스는 광교, 화신백화점, 조선은행, 남대문, 경성역, 제비다방, 조선호텔, 종로 등으로 향한다. 


현대의 우리에게 익숙한 남대문시장, 망원 등의 숨은 유래도 흥미로웠고, 명동과 을지로의 과거, 청년 윤동주가 시집을 사 모으던 헌책방의 위치, 우리나라 도서관의 역사 등 근현대 서울의 생생한 비화들이 가득한 책이었다. 저자는 소설 속으로 들어가 그 시대의 장소들을 찾아 다니며 현재의 변화를 즐기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고 말한다. 주인공이 배회했던 그 시절 경성을 상상하며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장소를 걷는 즐거움이 너무 궁금해서, 언젠가 책을 들고 소설 속 장소를 천천히 걸어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소설과 역사, 그리고 장소가 하나로 이어지는 경험은 그 어디서도 할 수 없는 특별한 산택이 될 테니 말이다. 게다가 이 책에는 작품 속 장소를 생생히 만날 수 있도록 지도와 사진이 200여 점이나 수록되어 있고, 교과서에 실린 근현대 명작들을 다시 읽어볼 수 있도록 인용문도 풍부하다. 소설 속 주인공과 나란히 걷는 경험, 한 세기 전 경성과 오늘의 서울을 한꺼번에 통과하는 기분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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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드라큘라 +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 프랑켄슈타인 - 전3권 ㅣ 열린책들 테마 컬렉션 : 호러
메리 W. 셸리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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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계문학의 서로 다른 작품들을 하나의 테마로 엮어 새롭게 선보이는 시리즈, <열린책들 테마 컬렉션>이 새롭게 출간되었다. 여름의 한가운데 처음 선보이는 〈테마 컬렉션〉의 첫 번째 테마는 〈호러〉이다. 고딕 호러의 대표작인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추리 소설의 기틀을 마련한 에드거 앨런 포의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그리고 최초의 SF 소설인 메리 W.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한자리에 모았는데, 표지 디자인이 너무 너무 예쁘게 나왔다. 실물을 받아보면,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이다. 바코드 스티커까지 근사한, 올해 출간된 책 중에서 단연코 가장 아름다운 장정이다.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목숨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만일 패한다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에만 그치는 게 아닙니다. 지는 날에는 우리도 그자처럼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뒤로는 그자처럼 더러운 밤의 자식들이 되어 감정도 양심도 없이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의 몸과 영혼을 덮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으로 가는 문은 영원히 닫히고, 우리에게 그 문을 다시 열어 줄 이는 아무도 없겠지요..."               p.411


‘흡혈귀 문학의 원조’라고 일컬어질 만큼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트란실바니아에 위치한 음산한 고성을 배경으로 고딕 소설 특유의 공포심을 한껏 자아낸다. 과학적인 합리성이 중요시되는 현대적인 런던과 미신이 난무하는 트란실바니아가 교차로 보여지는데 600페이지를 훌쩍 넘는 분량이지만 가독성도 뛰어나다. 대부분 원작을 읽어 보지 않았더라도 수차례 영화, 뮤지컬 등으로 접했던 작품이라 내용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시대를 앞서간 상상력으로 빚어낸 세심한 묘사들과 ‘죽지 않는 자’로 살고 있는 드라큘라 백작의 압도적인 존재감은 소설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매력이다. 




에드거 앨런 포의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이 문장을 다 읽었을 때 나는 흠칫 놀라서 잠시 낭독을 멈추었다. 저택의 아주 먼 곳에서 랜슬롯 경이 그렇게 자세히 묘사한 바로 그 나무 쪼개지는 소리와 아주 비슷한 소리(하지만 분명히 둔탁하고 희미한 소리)의 메아리가 내 귀에 어렴풋이 들려온 것 같았다(물론 흥분한 내 상상력이 나를 속인 거라고 결론짓기는 했지만)..."                p.53


폭풍우와 비바람이 거세지는 밤에 창틀이 덜커덩거리는 소리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읽으면 딱 좋을 만한 작품이다. 에드거 앨런 포의 대표작을 비롯해 섬뜩하고 기괴한 분위기의 단편 열두 편이 수록되어 있다. 포의 작품들은 어둡고 그로테스크하지만, 그럼에도 놀랍도록 시적인 문장들로 인해 섬세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그의 어두운 상상력으로 빚어낸 초현실적인 이야기들은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와 생생한 공포를 선사한다. 펜과 잉크를 사용한 아름다운 삽화들이 수록되어 있어 강렬한 포의 작품 분위기를 고스란히 체감할 수 있게 해준다. 공포와 미스터리를 넘나드는 추리 문학의 원형이 궁금하다면 놓치지 말아야 하는 작품이다. 




메리 W.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나한테는 한 가지 비밀이, 아주 무서운 비밀이 있어. 내가 그걸 털어놓는다면 네 몸은 공포로 오싹해질 거야. 그런 다음에 너는 내 불행을 놀라워하기는커녕 그걸 견디고 살아온 것이 신기하기만 하겠지. 그 참담하고 끔찍한 이야기는 우리가 결혼한 다음 날 해줄 생각이야. 우리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서로를 믿어야 가능한 이야기니까. 하지만 그때까지는 그 얘기를 꺼내지도 말고 떠보지도 말아 주었으면 해..."                p.257~258


영화로 여러 번 각색되었을 뿐 아니라 이후에 등장한 여러 과학소설과 공포영화에 큰 영향을 끼친, 최초의 과학소설이다. 극중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창조해냈고, 프랑켄슈타인을 창조한 메리 셸리는 그야말로 괴물 같은 소설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생명 과학과 생명 복제 기술이 발달한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프랑켄슈타인은 단순히 공포를 불러오는 괴물로만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보기 흉한 모습 때문에,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인간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핍박 받으며 고립되어 살게 만든 사회가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을 진짜 괴물로 만들어 낸 것이니 말이다.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두려움을 건드리는 오싹한 작품이다. 




고전을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수많은 작품 중에서 어떤 작품부터 읽어야 할지 고민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지루하지 않고, 현대적인 감성으로 공감이 되며, 내 취향에 잘 맞는 재미있는 고전 찾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누군가 내 대신 골라 주는 것이다. 거기다 보는 즐거움과 소장하는 즐거움까지 더해주는 작품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표지 디자인 잘 뽑기로 유명한 열린책들에서 이번에 나온 <테마 컬렉션>은 방대한 고전 서가에서 지금 읽기 딱 좋은 작품들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고전이 왜 끊임없이 다시 책으로 출간되고, 왜 여러 매체를 통해서 계속 변주되는 것인지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들을 골라 만듦새에 각별히 공을 들여 장정과 표지를 새롭게 만들었다. 


오래도록 곁에 두고 꺼내 보는 것이 '고전'이라면, 이 시리즈만큼 그에 잘 어울리는 작품도 없을 것이다. 3백 권에 달하는 열린책들의 세계문학 전집 중에서 '호러'라는 테마 아래 모인 세 작품은 전면도, 측면도 너무 아름답게 만들어져 읽는 동안에도, 서재에 나란히 세워 두어도 근사하다. 독서를 하면서 가장 설레는 것은 하나의 책이 계속 다른 작품을 불러 오는 순간이 아닐까. 그렇게 연결해서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든든한 나만의 서재가 구축되어 있을 것이다. 그 시작을 이 아름다운 시리즈로 해보길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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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하루는 뇌에서 시작된다
벤트 프라이발트 지음, 곽지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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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빛의 파장이 전기화학적 신호로 변환되고, 신호가 전달되고, 사물과 사람이 인식된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 만세!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보고, 있는 그대로를 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뇌에 도달한 신호로부터 '객관적 진실'이 만들어지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뇌는 신호를 해석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주 많은 일이 어긋날 수 있다.              p.77~78


새벽 3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너 시간 째 침대에 누워 자고 있는 상태일 것이다. 몸은 완전히 이완되어 있고, 가슴은 느린 리듬에 따라 오르내리고, 근육에는 힘이 풀려 있다. 잠이 들면 심장박동 조차 분당 40~60회까지 떨어지며 조용한 리듬을 유지한다. 그럴 때, 뇌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얼핏 종일 바쁘게 일한 우리의 뇌도 수면을 취하며 쉬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우리가 잠든 동안 뇌는 조용해지기는커녕, 그 고유의 전기적 리듬을 드러내며 완전히 다른 세계를 펼치고 있다. 결코 '쉬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자는 동안에도 뇌가 높은 수준으로 활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시작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야기한다.


독일의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뇌과학 연구 성과를 매주 소개하는 뉴스레터 <뇌의 삶>을 창간했다. 이 뉴스레터는 이후 동명의 팟캐스트로도 발전해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이 책은 바로 그 뉴스레터를 바탕으로 탄생했다.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업무 집중력을 높이는 방법엔 무엇이 있을까? 자기 전 스마트폰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규칙적으로 운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침에 눈을 뜨고 잠들어 꿈꿀 때까지 우리의 감정, 습관, 행동을 좌우하는 뇌의 메커니즘을 친근한 사례와 함께 쉽게 풀어내는 책이라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뉴스레터와 팟캐스트를 통해 최신 뇌과학 연구를 소개해 온 저자는 방대한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설명해준다. 




독서는 뇌 안에서 터지는 '불꽃놀이'와 같다. 이 상태에 도달하면 우리가 기억하는 수많은 것들이 호출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연결망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연결망은 새로운 사고, 진정한 이해, 그리고 창의성의 근간이 된다. 문제는 나조차도 이런 깊이 있는 독서 상태에 진입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매일 몇 시간씩 디지털 기기로 글을 읽다 보니 읽는 방식 자체가 변해버렸다.                 p.343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구성이다. 뇌의 하루를 시간대 별로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차부터 새벽 3시 당신이 잠든 사이에, 아침 6시 30 커피 한 잔으로 깨우는 하루, 아침 8시 뇌가 원하는 아침 식사, 아침 9시 집중이 필요한 업무 시간, 낮 1시 30분 짧은 낮잠과 아쉬운 회의, 저녁 6시 퇴근 후 운동하는 뇌, 저녁 8시 친구와 함께하는 맥주 한잔, 밤 9시 떠오르는 첫사랑의 기억, 밤 10시 잠들기 전, 스마트폰 대신 책 한 권, 밤 11시 이제는 잠에 들 시간으로 완벽한 하루를 경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우리가 잠든 한밤중에서 시작되어 꿈을 꾸고, 잠에서 깨어 커피를 마시고, 아침 식사를 하고, 직장으로 걸어서 출근하고, 회의에 참석하며, 퇴근 후에는 운동을 하고, 친구와 맥주 한잔을 곁들이며 추억에 잠기기도 하는 누구나의 평범한 하루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하루를 살아내는 우리의 뇌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다. 커피를 완전히 끊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왜 아침에는 어김없이 뜨거운 커피 한 잔이 당기는 것인지, 꿈을 꾸고 있는 그 현장에서 꿈의 진행 방향을 바꾸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왜 우리는 아이스크림은 좋아하면서 브로콜리는 싫어하는 것일지 말이다. 우리가 이성적으로는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게 될 때 흔히 그렇듯,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관여하기 때문에, 건강한 식단을 실천하는 일을 생각보다 더 어렵게 느끼는 거라고 저자는 말한다. 뇌가 신체 신호를 바탕으로 비로소 하나의 '감정'을 빚어내는 과정, 운동이 우리를 더 똑똑하게 만드는 원리, 자제력은 무엇에 좌우되는지, 의지력도 훈련으로 가능한 것인지, 술을 많이 마시면 왜 필름이 끊기는 것인지 등등 당신이 궁금해 하는 일상 속 모든 것들이 다 이 책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우리의 감정, 습관, 행동을 좌우하는 뇌의 메커니즘을 정말 쉬운 언어와 다양한 예시를 통해 파헤치고 있다. 우리의 24시간을 전지적 뇌의 시점으로 구성한 방식 또한 유쾌하게 뇌과학의 세계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더 나은 하루를 만드는 쓸모 있는 뇌과학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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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 ㅣ 창비교육 성장소설 17
연여름 지음 / 창비교육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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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상에 이처럼 고요한 안트로는 존재할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는 순간, 두 눈동자가 짙은 보랏빛으로 번뜩였다. 까마득히 오랜만에 맞닥뜨리는 밤의 헤마였다.

이런. 안 돼. 왜 하필 지금.

자책과 후회가 동시에 밀려왔다. 나쁜 일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걸 알면서도 방심하고 말았다. 그게 지금은 아닐 거라는 희망에 기대어서. 마음이 평소보다 들떠 있던 탓이었다. 경솔하고 어리석었다.                p.86~87


열여덟 살의 겉모습을 하고 있는 소녀 영소의 나이는 실제보다 꽤 많다. 무려 274년간 가족을 잃은 외톨이였다가, 침략자들의 노예이기도 했고, 도망자, 방랑자, 누군가의 피를 훔치는 괴물이자 도둑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이런 존재를 흡혈귀, 또는 뱀파이어라고 불렀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헤마'라고 칭했다. 낮의 헤마인 영소는 유달리 예민한 청각 때문에 인간이 내는 모든 소음이 괴롭다. 웬만한 소리는 철분제를 먹으면 볼륨을 낮춘 오디오처럼 아주 잘게 들리게 되었다. 철분제가 헤마의 갈증과 공격성을 달래 주면서 청각의 예민함까지 누그러지게 돕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채기만은 예외였다. 안트로(인간)과 섞여 사는 한 재채기를 완벽히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게 더 문제였다. 


영소가 열여덟 소년 은수를 우연히 만나게 된 것도 라이브 공연장에서 예고 없이 터져나온 재채기 덕분이었다. 스캣에서 공연을 즐기기 위해 음료 한 잔을 주문하고 앉아 태인의 부드럽고 깊은 목소리를 듣던 중이었다. 유난히 무대를 뚱하게 응시하는 한 사람이 눈에 띄었는데, 짧은 머리에 후드 티셔츠 차림으로 이런데 음악을 즐기러 찾아올 타입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디선가 풍겨 온 희미한 후추 냄새에 누군가 재채기를 터뜨렸고, 동시에 날카로운 통증이 영소의 귀를 관통한다. 반사적으로 소음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바로 그 애였던 것이다. 은수는 유일한 혈육이었던 할머니를 여의고 완전히 혼자가 되어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고 있는 학교 밖 청소년이다. 두 사람은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조금씩 가까워진다.

 



"영소라는 이름을 얻기 전에 나는 100년이 넘도록 이름을 불린 일이 없었어요. 원래 나를 알았던 안트로는 모두 세상을 떠났고, 머무는 데 없이 혼자 떠돌아다니다 보면...... 사실 이름 같은 거야 아무래도 상관없는 게 되잖아요?"

키엔이었던 나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 주는 누군가 존재한다는 건, 나에게 기적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p.260


닷새 전 아르헨티나 한 지역에 운석이 추락했다. 직경 20미터 크기의 소행성이 지구 대기권에서 폭발하며 운석우로 쏟아진 것이었다. 다행히 추락 지점은 작은 시골 마을로, 숲이 일부 불탔으나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사건이었기에,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비현실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얼마 뒤, 영소와 은수가 살고 있는 운경시 일대에도 운석우가 쏟아지며 도시 전체가 잿빛 어둠에 잠기게 된다. 운석 하나가 운경시 상공에서 폭발했고, 그때 생긴 충격파가 엄청나게 커서 건물도 뭄너지고, 나무 같은 건 다 타 버린다. 재와 먼지로 인해 낮인데도 사방이 캄캄했다. 바깥은 거대한 후추통과도 같았고, 하늘에 재가 걷힐 때까지는 일주일은 더 걸리는 상황이라 다들 대피소에 머무르고 있었다. 병원에는 부상자들이 끊임없이 밀려들었고, 하늘은 캄캄하고 혼탁했다. 태양이 사라진 아수라장 속에서 영소와 은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손을 맞잡는다. 


우리 일상은 생각보다 수많은 소음들로 가득 차 있다. 나도 소리에 예민한 편이라 시끄러운 걸 잘 견디지 못하는데, 음악만큼은 예외다. 그래서인지 극중 영소에 대한 설정이 너무도 공감이 되었다. 이 작품은 이러한 독특한 설정으로 시작해 타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경청'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해준다. 영소와 은수의 특별한 우정은 다정한 선의와 경청이 만들어 낸 것이니 말이다. 이 박자에 참견하고 저 박자에 끼어들고, 도움은 필요 없다고 하는데도 기어코 웃는 얼굴을 들이밀고, 때로는 기다린 적 없는 노크처럼 요란하고 시끄러운. 어쩌면 그것이 '내가 여기에 있다고 알려 주는 신호이기도 할 것이다. 혹은 나를 도와 달라고, 아니면 내가 도와줄 수 있다고 말이다. 요란하고 시끄러운 재채기 소리처럼. 타인의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 어떻게 한 사람을 구하는지 보여 주는 이 작품을 통해 세상과 관계 맺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좋을 것 같다. 운석우로 무너진 도시를 배경으로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작품이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야기였다. 연여름 작가의 첫 청소년 소설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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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진화의 세계 - 가장 혹독한 환경에서 발견한 생존의 법칙
이정모 지음 / 다산초당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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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어둠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다. 그것은 조건이다. 빛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감각의 방향을 바꾸고 구조를 바꾸며 결국 존재의 방식을 바꾼다. 나는 더 많이 보기 위해 변한 것이 아니라 이 정도의 빛으로도 볼 수 있도록 변했다. 나는 넓게 보는 대신 필요한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의 위치와 방향을 바꾼다. 환경은 감각을 만들고 감각은 행동을 만들며 행동은 형태를 만든다. 그 과정에서 나는 형성되었다.            p.29


뼈를 깎는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극지,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심해, 굳은 용암으로 뒤덮인 화산섬, 물 한방울 찾아보기 힘든 메마른 사막 등 인간의 상상력을 아득히 뛰어넘는 '극한'의 풍경 속에서도 생명이 존재한다. 400도로 펄펄 끓는 물 옆에 사는 폼페이웜, 수직에 가까운 절벽을 가로지르는 알파인 아이벡스, 진공 상태의 우주에서도 생존하는 물곰 등 무수히 많은 생명이 극한 환경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진화해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찬란한 멸종>으로 46억 년 지구의 역사를 정말 재미있게 들려주었던 이정모 관장의 신작이다. 이번에는 가장 혹독한 환경에서 진화한 지구 생명체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상식을 넘어서는 진화의 비밀을 들려준다. 인간이라면 단 몇 초에서 몇 분 만에 죽고 말 상상 불가능한 극한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생명체들을 다루는 책은 한번 읽어본 적이 있는데, 확실히 이번에 나온 <극한 진화의 세계>가 더 재미있게 잘 읽힌다. 왜냐하면 이 책은 잠시 인간의 자리에서 벗어나 극한 환경에서 사는 생물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의 빌 브라이슨'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 것이 이정모 관장 특유의 유쾌한 입담이 과학 이야기를 마치 소설처럼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으로 만들어낸다. 또한 가장 혹독한 환경에서 놀라운 모습으로 진화한 26종의 동식물들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도록 110여 컷의 고화질 사진들도 알차게 수록되어 있다.




생명이 반드시 복잡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단순할수록 더 빠르게 작동할 수 있다. 구조가 줄어들수록 에너지는 다른 곳에 사용되고, 그 에너지는 속도로 전환된다. 그리고 그 속도는 결국 규모를 만든다. 인간은 결과로써의 크기를 보지만 그 시작은 언제나 반복과 축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너무 작아서 의미 없다고 여겼던 것들이 실제로는 가장 큰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언제나 거대한 것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것들이다.                p.282


달에는 공기가 없다. 공기가 없다는 것은 생명을 감싸 줄 막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태양에서 날아온 빛은 대기에 걸러지지 않은 채 그대로 쏟아지고, 낮에는 섭씨 120도, 밤에는 영하 170도를 오가는 생명이 허락되지 않은 장소라는 뜻이다. 달은 고요하지만, 그 고요는 온화함이 아니라 무방비의 폭력이다. 그런데 이런 환경에서도 살아남은 존재가 있었으니, 길이가 0.5밀리미터 정도에 불과한 작은 완보동물인 물곰이다. 2007년 9월 14일, 이 생명체를 작은 용기 안에 담아 위성에 실었다. 물곰을 우주에 노출해 생명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 알아보려는 실험이다. 물곰은 생존하기 어려운 극한 환경에 맞닥뜨리면 몸을 오므리고 휴면에 돌입한다.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죽음이 아니라 단지 멈추었을 뿐이다. 그렇게 물곰은 12일간의 우주 체류를 끝내고 지구로 무사히 돌아왔다. 진공과 방사선을 지나, 멈춤을 통과해 다시 흐름 속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 책에는 이러한 생명체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어떻게 이런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고,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생명체들을 보며 그저 감탄하게 된다. 영화 80도까지 내려가는 극지,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심해, 굳은 용암으로 뒤덮인 화산섬에서도 생명이 존재한다. 지구 생명체의 90퍼센트는 인간이 절대 살 수 없는 곳에서 살아간다고 하니, 새삼 생명의 위대함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진화는 영웅적인 결단이 아니라 통계적으로 조금 더 유리한 형질이 세대를 통과하는 과정이라는 것, 그러니 완벽한 생물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그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물을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진화'에 대해서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는 책이 또 있을까 싶다. 내가 세계를 보고 살아가는 방식이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 낸다. 지구 곳곳에서 환경에 맞춰 눈을 없애고, 호흡을 멈추고, 먹이를 포기하는 등 각자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뜨거운 생명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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