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독서, 광녀의 춤 - 여자의 내장에 대해 말하기
김경연 외 지음 / 오월의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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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현실에 대한 비평가들의 실존적 목소리를 한꺼번에 만날 수 만날 수 있는 의미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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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는 어떻게 나를 바꾸는가 - 정신과 의사가 알려주는 스트레스의 모든 것
하지현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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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스트레스가 전혀 없이 산다면 그야말로 운이 좋은 것일 텐데, 사실 그런 상태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작은 스트레스에도 바로 무너져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온실 속의 화초를 밖에 내놓으면 하룻밤 사이에 바로 시들거나 얼어버리는 것같이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스트레스는 면역력과도 유사하다. 백신을 맞고 나면 본 질환에 감염될 위험에 대항해 몸이 방어할 능력이 생기듯이, 적당한 스트레스는 그런 면에서 필요하다.                 p.43


현대인들은 치열하게 경쟁하고 갈등하며 바쁘게 사느라 항상 스트레스를 받는다. 일에 떠밀려 정신없이 살다보니 가족을 챙기는 일은 늘 뒷전으로 밀리고, 방은 언제나 지저분하고, 책장 정리는커녕 책들은 바닥에 마구 나뒹굴고, 살면서 맺는 인간관계들은 항상 뜻대로 안되며, 아무리 노력해도 티가 안나는 인생은 초라하기만 하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각종 대사증후군을 비롯해 우울증, 무기력 등 부정적 감정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스트레스가 없는 세상에서 살 수는 없는 걸까. 


그런데, 여기 스트레스가 없는 게 더 위험하다고 말하는 책이 있다. 스트레스가 없는 것은 면역력이 없는 것과 같다는 거다. 그러니 스트레스는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관리해야 하는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보고 다루느냐에 따라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발상의 전환이 아닌가 싶다. 스트레스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니,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는 필요한 것이라고 하니 말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스트레스에 대해 부정적인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스트레스는 안 좋은 것, 어떻게든 해소해야 하는 것, 가능한 줄여야 하는 것이라고 여기며 살았을 테니 말이다. 30여 년 경력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하지현 교수는 스트레스에 대한 기초 개념부터 시작해, 과학, 심리학, 건강, 인간관계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스트레스 대응법에 대해 알려 준다. 




스트레스 상황에 빠져서 고통스러울 때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가 아닐까... 지금 자신이 처한 곤경이 누군가 일부러 짜서 만든 것 같은 피해의식이 생기기도 한다. 감정은 요동치고, 해결책은 떠오르지 않으며, 분노가 현재의 사건에 기름을 부어서 나중에 후회할 행동을 해버리기도 한다. 같은 사건을 맞닥뜨려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스트레스를 느끼는 정도가 달라진다. 결국 자신이 보는 관점이 스트레스의 강도나 함량, 지속시간,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 모두를 좌우한다.                  p.332


2년째 취업 준비 중인 사람이 있다.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수백장 제출했지만 매번 서류 전형에서 탈락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고 나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올까 봐 내심 겁나기도 한다. 면접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버린 것이다. 또 시험 날만 되면 배가 아파서 어김없이 시험을 망치는 사람도 있다. 여러 번 반복되고 나니 미리 약을 먹고 시험장에 들어가지만, 그럼에도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리듬이 깨져버리곤 한다.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배가 더 아파오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회사에서 실적 문제로 압박을 받고 있는 사람도 있다. 종일 거래처와 전화통화를 하고, 미팅을 하며 돌아다니다 저녁이 되면 몸이 마치 물에 젖은 솜 뭉치 같다. 하지만 막상 자려고 누우면 잠이 안 온다. 스트레스 상황에 처하면 잠드는 것조차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렇게 30여 년 동안 환자들을 만나온 하지현 교수는 진료실을 찾아온 환자들이 불안, 대인관계 문제, 적응장애, 번아웃 등을 겪으며 그 원인으로 ‘스트레스’를 지목하는 경우를 꾸준히 목격해왔다. 하지만 대부분 스트레스의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문제를 회피하는 방편으로 삼는 것이 늘 안타까웠고, 그것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단 한 번의 스트레스가 삶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 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주저앉았다가도 다시 일어나 흔들리면서도 다음으로 넘어간다. 이는 스트레스 반응이 '상황 그 자체'보다, 내가 그 상황을 어떻게 판단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 스트레스를 잘 조절해 삶을 보다 나은 쪽으로 변화시키고 싶다면 이 책이 매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이 되어줄 것 같다. 일상에서 각종 스트레스와 마주하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작은 일에도 걱정이 많아진다면, 스트레스 상황에서 회피하거나 미루는 일이 많다면, 일이 조금만 계획과 달라져도 불안해진다면, 이 책을 통해 스트레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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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씽킹 - 제멋대로 이어지는 생각의 루프에서 벗어나는 법
벳시 홈버그 지음, 윤효원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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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핵심은 이것이다. ‘당신이 곧 당신의 생각은 아니다.’ ‘난 실패자야’ 또는 ‘난 할 수 없어’라는 생각이 든다고 해서 그 생각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이 생각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DMN이 작동한 결과물에 불과하다.              p.28


우리는 대부분 자신과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끊임없이 관찰하며 생각한다. 학교에서, 모임에서, 직장에서, 낯선 사람 앞에서, SNS를 보며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 또한 바로 그 생각 때문이다. 우리의 생각은 즐거울 수 있는 경험 조차 마음 졸이게 하는 시련으로 바꿔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눈에 거슬리거나 두드러질까봐 불안하고, 엉뚱한 말을 하거나 어색한 행동을 해서, 그로 인해 이상한 소문이 나거나 험담을 듣게 될까 봐 걱정한다. 모두 실제로 벌어지지 않은 일이다. 이렇듯 우리의 머릿속에는 해야 할 일부터 자기비판, 실존적 두려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하다.


우리가 일을 그르치는 이유 또한 대부분 생각이 너무 과도해서인 경우가 많다. 왜 우리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에, 부정적인 생각부터 떠올리는 걸까? 이는 불확실하고 이해할 수 없는 외부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DMN이 작동한 결과물이다. DMN의 가장 강력한 힘은 자동성이다. 그래서 마치 생각이 우리 안에서 생겨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생각이 아니라, 실제로는 복잡한 현대 생활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인 원시적 안전망의 목소리일 뿐인 것이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두뇌 속 사고 네트워크 중 하나인 ‘기본 모드 네트워크(DMN)의 작동 원리이다. 안전과 생존을 위해 진화한 두뇌 속 주요 사고 회로는 주변 환경을 적극적으로 살피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스스로를 비판하는 사고회로로 활성화되는 것이다. 




소외감을 느끼면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불안하고 예민해지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사람들이 생각만큼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닐까? 나는 괜찮은 사람일까? 나는 충분히 예쁘고, 흥미롭고, 성공적인 사람일까?' 다른 사람은 모두 인생의 해답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즉흥적으로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DMN이 쏟아내는 생각과 감정은 결국 슬픔, 불안정함, 불안, 외로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p.195


과잉사고 및 뇌과학적 인지 메커니즘 전문가인 심리학자 벳시 홈버그 박사는 우리가 ‘나’라고 믿어온 머릿속 비판적 목소리가 사실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뇌의 사고 회로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두뇌 작동 원리에 대한 심리학적, 뇌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학습, 인간관계, 일, 건강, 미래까지 일상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왜 생각이 멈추지 않는지를 분석한다. 과잉사고, 자기 검열, 가짜 불안, 만성 스트레스… 우리의 인생을 망치는 생각들을 차단하고, 진짜 나를 깨울 수 있도록 말이다. 저자는 이혼이 확정되고 3년이 지나도록 자기 의심에 시달렸다고 한다. 불안감이 극도에 달했고, 자존감은 바닥을 쳤으며, 다시는 안정과 행복을 느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절박한 마음으로 과학 서적을 뒤적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발견한 내용이 자신의 관점을 송두리째 바꿔놓게 된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DMN은 인류 진화와 함께해온 아주 오래된 사고 회로인 탓에 강력한 자동성을 지니고, 우리는 종종 생각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고 착각하곤 한다. DMN이 과활성화되면 우리는 스스로 부정적인 생각을 멈출 수 없다고 착각해 생각의 루프에 갇히데 되는데, 사실 그것을 켜고 끄는 스위치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이 책은 생각 스위치를 전환하는 가장 즉각적이고 실천적인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알려 준다. '행동 가이드'를 통해 부정적 생각의 고리를 끊는 방법을 직접 실천해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기본 모드 네트워크를 인지하고, 나의 DMN 스위치는 뭔지 파악하고, 나만의 부정적 생각 차단 전략을 세워볼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자, 남의 눈치를 보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면, 최악을 상상하느라 시작하기도 전에 무기력해 진다면, 사소한 실패도 곱씹으며 자신을 가혹하게 비판하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 보자. 부정적인 생각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변화의 계기가 되어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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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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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 말을 주의해서 들어야 한다. 내 말들은 언제나 가면을 쓴 채로 나아갈 것이다. 이 글을 전체적으로 하나의 고백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이 글에는 일기가 들어 있지 않다. 되도록 솔직하게 그린 내면 풍경도 없고, 거짓말도 없다. 나에게 속한 나만의 공간은 행간에 있지 않고, 행 자체에도 있지 않으며, 그 어디에도 없고, 오로지 내 안에만 존재한다.               p.66


나보코프의 <롤리타>는 그 나름대로 하나의 사랑 이야기라고, 금기를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교활한 사랑이고 유죄 판결을 받아 마땅한 사랑이지만, 어쨌거나 사랑이긴 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저자는 미국 문학에 관한 어느 강의를 듣기 위해서 <롤리타>를 처음 읽었었고, 이 책을 쓰면서 다시 읽어 보았다고 말한다. 나 역시 이 작품이 도발적인 문학 작품임에는 확실하지만, 이야기를 서술하는 화자의 시점이라던가 관점에 동의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범죄니까. 그러니 그 감정을 사랑이라고 정의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롤리타의 처지를 자신에게 대입해 자신의 과거를 조각조각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저자의 의붓아버지 역시 <롤리타> 속 험버트 험버트처럼 성도착증 환자였다. 알프스산맥 속 작은 마을에 살던 저자는 갑작스럽게 어머니의 새 남차친구와 가족이 되었고, 대가족을 꿈꿨던 그는 아주 빠르게 아이 둘을 새로 가진다. 그는 키가 크고 힘이 세며 난폭하기까지 했고, 늘 소리를 지르고 명령하고 지시했다. 그는 아이들이 도덕적으로 처신하도록 엄격하게 요구했다. 정작 자신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가족 또는 가정이라는 닫힌 세계에서 전능한 존재였던 그를 저자는 조물주 같은 존재, 실물보다 더 큰 존재로 여겼다. 끔찍한 일이다. 저자는 신문과 편지 스크랩 등을 함께 수록하며,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 어머니와 함께 의붓아버지를 고소하기까지의 과정을 재구성했다. 아니 에르노는 '어른에게 강간당하는 아이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진정으로 보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모두가 읽어야 한다고 이 작품을 추천했다.




악은 여기저기 도처에 있다. 악은 모든 것의 색깔과 맛을 달라지게 만든다. 악을 무시하거나 잊는 것은 선택지가 아니다. 우리가 악에서 도망치면 칠수록 악이 더 빨리 우리를 잡으러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세계에 들어가지 않고 가장자리에 버티며 살 수는 있다. 그 세계의 문턱에 머무는 법을 배우라. 그렇게 도전하라. 우리 운명들의 줄 위로 곡예사들처럼 걸어라. 비틀거릴 수는 있지만,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떨어지지 말라, 떨어지지 말라. 떨어지지 말라.              p.350


이 책은 어릴 적 의붓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성적 학대를 당한 저자가 쓴 자전 소설이자, 에세이, 회고록이다. 그 남자가 못된 짓을 벌이기 시작했을 때 아이는 겨우 아홉 살이었다. 7년에 걸친 수난을 당하고 아이는 이제 성인이 되었다. 그녀는 그 무시무시한 비밀을 어머니에게 털어놓았고, 어머니는 고소장을 제출했다. 그 남자는 9년 형을 선고받았지만 모범수라는 이유로 5년밖에 복역하지 않았다. 이는 성범죄자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다. 그는 다시 사회에 복귀해서, 다른 여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평범하게 살고 있다. 자신이 저질렀던 일을 후회하고 용서를 구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피해자는 여전히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이해하고자 애쓰며 살고 있지만,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그냥 다시 살아간다. 안타깝게도 그것이 현실이다.


이 책을 읽으며 시종일관 화가 났고, 마음이 아팠다. 누구나 이 글을 읽으며 분노가 치밀고 슬픔이 북받치는 경험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고백이나 회고록으로 치부하기엔 훨씬 더 넓고 깊다. 저자가 가정을 꾸린 40대가 되어 자신의 어릴 적과 똑 닮은 딸아이를 보며 글을 썼기 때문이다. 저자는 끊임없이 자문한다. 나는 왜 이 이야기를 써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는 과정이자 그 결과물로 어린아이가 침묵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예술과 문학이라는 형태로 자신의 경험과 사유를 그려 나갔다. 끔찍한 비극이 벌어졌을 때 무엇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문학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에 대한 고통스럽지만 찬란한 대답이자, 빛나는 문학적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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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출근합니다 - 식물과 함께 쓰는 나무의사 다이어리
황금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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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보이는 것에는 식물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식물을 가꾸는 사람들의 정성도 포함된다. 심어만 두면 알아서 잘 자랄 것 같아 보이는 꽃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 철마다 새로운 꽃이 피는 화초를 심어주고, 시든 꽃대는 잘라내고, 잡초는 크기 전에 솎아낸다... 뒤돌아서면 떨어지는 낙엽을 치워 오솔길을 정리하고, 이끼가 낀 연못은 주기적으로 청소하고, 사람들이 잠깐 걸터앉아 쉬어 가는 벤치의 먼지를 닦는다. 그제야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다운 수목원의 모습이 나타난다.                p.104


한국 최초 민간 수목원이자 아시아 최초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에 선정된 천리포수목원의 나무의사 황금비가 쓴 첫 책이다. 저자는 나무의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수목원 입사해 두 번의 사계절을 겪으며 이 책을 썼다. 천리포수목원에서 가꾸는 1만 7,000여 분류군의 식물 가운데 극히 일부인 서른세 종을 계절별로 소개하고 있다. 저자의 이력도 독특하다. 세상을 바꿀 특종 기사를 쓰겠다는 포부를 갖고 기자라는 첫 직업을 가졌었는데, 10년이 지난 뒤 정신을 차려보니 수목원 화단에서 잡초를 뽑고 있다고 서문을 시작한다. 기자와 수목원의 나무의사는 간극이 참 큰데 말이다. 재미있는 이력이라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페이지 곳곳에서 식물을 향한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봄에는 목련, 벚나무, 산딸나무 등이, 여름에는 무궁화, 빅토리아수련, 배롱나무 등이, 가을에는 목서, 화살나무, 팜파스그래스, 칠엽수 등이, 마지막으로 겨울에는 동백, 호랑가시나무, 풍년화, 삼나무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모든 식물들을 생동감 가득한 사진으로 소개하고 있어 페이지를 넘기는 것만으로 사계절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람보다 숲과 나무와 바다와 새가 더 자주 보이는 삶이라니, 하루가 다르게 짙게 물드는 가을날 단풍의 색깔이 도심의 화려한 네온사인보다 더 자극적이라니... 너무 근사하게 느껴졌다. 물론 수많은 식물이 계절에 맞게 피고 지고 얽히고 부대끼는 공간에서 일하는 것이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겠지만, 그럼에도 도심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초록의 순간들과 함께 하는 일상이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봄의 초입에는 항상 호들갑을 떨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두둥실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같다. 복수초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대다수가 매년 입춘 즈음 전국 각지의 복수초 개회 소식을 전하는 뉴스들인데, 매년 똑같아 보여도 또 매년 새롭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도 대부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얼었던 땅이 녹고 새싹이 돋는 따스한 계절의 감각이 날서고 긴장했던 사람의 마음까지 유연하게 녹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p.274


탐방객들에게 수목원은 번잡한 일상에서 도피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이지만, 가드너들에게는 말 그대로 현실 직장이자 생업의 현장이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뒤돌아서면 자라는 잡초를 뽑느라 하루가 다 가고, 바람이 차가워지는 가을엔 심어도 심어도 끝나지 않는 구근 심기를 무한 반복해야 하니 말이다. 나름 식집사로 수년 째 지내다보니 식물을 돌본다는 게 얼마나 고된 노동인지 어느 정도는 체감하고 있다. 고작 집에서 키우는 식물을 돌보는 데도 이리 힘이 드는데, 방대한 규모의 수목원을 돌보는 가드너들은 오죽할까 싶었다. 나뭇가지에 찔리고, 벌레에 물리고, 벌에 쏘이는 일도 예사라고 하니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다. 식물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오래 버티기 힘든 직업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는 목련이 약 1억 4,0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시대에 처음 등장한 식물이라는 사실부터 각종 작품에서 가장 외롭고 아름다웠던 시절을 표현할 때 벚꽃이 등장하는 이유, 알록달록한 꽃이 피는 여름철 주목받는 배롱나무의 진가는 사시사철 드러난다는 사실 등 어디서도 알 수 없었던 식물에 관한 다양한 정보들도 가득해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저자는 수목원 곳곳에 뿌리를 내린 오래된 목련을 보다가 자신이 죽은 뒤에도 이 나무는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잔잔한 호수 위로 흐드러지게 핀 벚꽃 풍경을 보며 오직 자연으로부터만 느낄 수 있는 감각에 대해 깨닫게 되기도 한다. 지름 30센티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꽃 빅토리아수련의 개화와 수분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매우 흥미로웠고, 죽은 우산고로쇠로 만든 벤치 사진을 보며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떠오르기도 했다. 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민간 수목원이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수목원이 얼마나 예쁜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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